2022년 9월 15일 (목) 촬영.
천등산 봉정사 일주문.
세계유산 한국의 산지승원.
산사는 한반도 남쪽 지방에 위치한 통도사, 부석사, 봉정사,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 등 7개 산지승원을 일컫는 것이다.
7세기에서 9세기에 창건된 이들 7개 사찰은 신앙과 수행, 일상생활을 중심으로 한 한국 불교의 역사적인 발전 모습을
보여 준다. 또한 한국 선불교의 특징인 자급자족이 가능한 사찰 관리, 승려 교육, 수행과 교리 학습뿐만 아니라 한국 불교의
무형적, 역사적 측면도 확인할 수 있다.
경내에는 한국의 다양한 불교신앙이 수용되어 있으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다수의 구조물과 전각, 유물, 문서 등은 한국
불교의 포용적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 산사는 조선시대 억압과 전란으로 많은 손상을 입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신성한 장소로서, 신앙과 일상적인 종교적 실천이 살아 있다. -현지 안내문-
천등산 봉정사라고 쓴 현판이 걸린 일주문 앞
땅바닥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한국의 산지승원 봉정사라고 새긴 동판이 설치되어 있다.
봉황이 머물다 간 천년 고찰 한국 전통불교의 맥을 이어오다.
천등산 봉정사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도 험하지도 않아
잠시 바쁜 도심을 떠나 한적한 여유를 가질 수 있어서 좋다. 또한 점차 번잡해 가는
다른 사찰들과는 달리 조용한 한국 산중 불교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어 더없이 좋은 수련의 장소이기도 하다.
1천 년 넘게 우리 불교문화를 계승하고 지킨 종합 승원을 묶은 "산사(山寺), 한국의 산지승원" 중 한 곳으로, 2018년
6월 30일 바레인 수도 마나마에서 열린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WHC) 회의에서 세계유산 중 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봉정사는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천등산은 원래 대망산이라 불렀는데 능인대사가 젊었을 때 대망산 바위굴에서 도를 닦고 있던 중 스님의 도력에
감복한 천상의 선녀가 하늘에서 등불을 내려 굴 안을 환하게 밝혀줘 '천등산'이라 이름하고 그 굴을 '천등굴'이라 하였다.
그 뒤 더욱 수행에 정진하던 능인대사가 도력으로 종이 봉황을 접어서 날리니 이곳에 와서 머물러
산문을 개산하고, 봉황이 머물렀다 하여 봉황새 봉(鳳)자에 머무를 정(停)자를 따서 '봉정사'라 명명하였다.
그 뒤 6차례에 걸쳐 중수하였으며, 국보 제15호인 극락전, 국보 제311호인 대웅전,
보물 제1614호 영산회상벽화, 보물 제488호인 화엄강당, 보물 제449호인 고금당, 덕휘루, 무량해회, 삼성각 및
삼층석탑과 부속암자로 영산암과 지조암, 중암이 있다. 특히 고려 태조와 공민왕이 다녀가기도 한 아름다운 사찰이다.
안동 봉정사 (安東 鳳停寺)
봉정사는 672년 능인대사가 창건한 신라고찰이다. 본당 영역은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건물이자
고려시대의 간결하면서도 강한 아름다움을 지닌 극락전과,
조선시대 최고의 대웅전, 고금당과 화엄강당, 무량해회, 스님들이 기거하는 공덕당, 만세루, 종각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봉정사는 질서 정연한 건물배치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다넝하고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산사이다.
봉정사 출입문인 만세루에는 천등산 봉정사란 현판이 걸려 있다.
만세루는 막돌 허튼층쌓기로 축대를 쌓아 세운 누각이다.
출입구로 들어 가면 바로 대웅전이 보인다.
만세루를 통과한 후 돌아본 모습.
만세루에는 얼마 전 타계한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안동 봉정사 만세루(萬歲樓)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25호.
이 건물은 대웅전 앞에 있는 2층의 누각형태를 한 건물로 사찰의 출입구에 해당된다.
1680년(숙종 6)에 건립되었다고 전하는 이 건물은 원래 덕휘루(德輝樓)라 불렀으나 언제부터 만세루로 바뀐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건립 후 여러 차례 보수가 있었다고 한다.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로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지형의 경사를 자연스럽게 이용하여 앞면은 2층이나 뒷면은 단층으로 처리하였다. 만세루는 17세기 후반의 건실하면서도
당당한 건축수법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어 조선 시대 건축사 연구에 가치가 있는 문화재이다.
만세루에 걸린 북과 목어.
정면의 건물이 국보인 대웅전이고 좌측의 건물은 보물인 화엄강당이고, 우측의 건물은 무량해회이다.
안동 봉정사 대웅전 / 국보 제311호.
이 건물은 봉정사의 중심 건물로 1999년부터 2001년 초까지 이루어진 해체보수공사시
1435년(세종 17년)에 중창하였다는 묵서명이 발견되며 연혁이 밝혀졌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건물이며 건물 앞에는 축대를 높이 쌓았다.
건물 앞쪽에는 툇마루를 설치하였는데 이러한 방식은 사찰건축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예로
이 건물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불단은 내부 중앙 뒷면에 높은 기둥 2개를 세워 그것에 의지해 만들었다.
기둥 사이의 창문이나 벽체 등 일부가 건립된 이후 변경되었으나 공포의 구성에서 힘 있고 단순한 수법은 초기의
다포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내부 단청은 고려시대의 기법을 지니고 있어 건물과 함께 중요한 회화자료로 주목되고 있다.
연등이 무량해회의 앞을 막았다.
무량해회는 겹처마 집에 전면과 남쪽에 마루를 놓고 양쪽의 중앙에 칸벽을 설치하여 몇 개의 방으로 나누어진 요사이다.
물량해회 편액.
무량해회 건물과 마주보고 있는 건물은 보물인 화엄강당이다.
무량해회의 남쪽면이다.
무량해회
무량해회 끝에는 외부로 통하는 문이 있다.
무량해회에서 본 국보인 대웅전이다.
대웅전 전면에 마루가 깔려 있다.
대웅전의 내부.
보물 제1643호인 아미타설법도.
바단바탕에 채색, 1713년 작, 대웅전 후불탱화이다.
다수의 권속들을 표현했음에도 다른 불화에 비해 본존의 비중을 작게 해 안정적인 균형을 이루고 있다.
전반적으로 붉은 색을 많이 사용하였다.
불단도 고풍스럽다.
고려시대의 단청 기법이 남아 있다는 불단위에 있는 닫집과 천장의 단청.
대웅전에서 본 만세루.
대웅전 전면에 있는 마루.
대웅전의 좌측면과 후면 모습이다.
대웅전의 후면.
극락전의 우측면과 대웅전의 좌측면 사이에 있는 마당에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안동 안정사 석조여래좌상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4호.
이 불상은 안동군 월곡면 미질동에서 발굴된 것으로 그 곳에 있던 안정사에 보관되어 있었다.
원래는 연화좌대에 안치된 석불상인데 안정사 주지가 방에 안치하면서 금분을 칠해 원형이 다소 손상되었다.
대좌와 광배는 없어졌다. 그 뒤 안동댐 건설로 안정사가 폐사 되면서 1973년부터 봉정사에서 보관하고 있다.
신체에 비해 작은 불두에는 나선형 머리카락과 큼직한 살상투가 표현되었다. 당당하고 둥근 어깨에서 느껴지는 양감에
비해 가슴은 대체로 평평하며, 결가부좌를 튼 하반신을 높게 표현하여 안정감이 느껴진다.
손은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다. 이 불상의 양식은 통일신라 하대의 방식과 유사하므로 제작시기를 9세기경으로 추정한다.
극락저놔 앞 마당에 있는 삼층석탑.
안동 봉정사 극락전 / 국보 제15호
이 건물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정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 주심포 건물로 고려시대의 건물이지만 삼국시대의 건축양식을 내포하고 있다.
1972년에 실시한 보수공사 때 밝혀진 내용에 의하면 건립 후 첫 수리는 고려 공민왕 12년(1363)이며
그 뒤 조선 인조 3년(1625) , 순조 9년(1809) 3차에 걸친 수리가 있었다.
원래는 대장전이라 불렀으나 뒤에 극락전이라 이름을 바꿨다. 기둥의 배흘림, 공포의 단조로운 짜임새, 내부가구의 고격
(古格)함이 이 건물의 특징이다. 돌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배열했으며 전면과 후면 중앙칸에 판문(板門)을 달고
양쪽에는 살창을 내었는데 전면의 판문과 살창은 1972년 보수공사때 고증을 통하여 고형(古形)으로 복원한 것이다.
법당의 중앙 뒤쪽에 2개의 기둥을 세워 불단 벽을 만들고 그 안에 불단을 설치하였다.
법당의 중앙 뒤쪽에 2개의 기둥을 세워 불단 벽을 만들고 그 안에 불단을 설치하였다.
극락전에서 본 삼층석탑.
안동 봉정사 삼층석탑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2호,.
봉정사의 극락전 앞뜰에 있는 이 탑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높이는 3.18m이다.
탑 기단부의 일부가 약간 파손되었으며 상륜부의 일부가 남아 있지 않으나 거의 완전한 석탑이다.
2중 기단의 방형 석탑으로서 기단부에 비해 탑신부의 폭이 좁으며 각층 높이의 체감이 적당한 반면 폭의 체감율이 적고
지붕돌도 높이에 비해 폭이 좁아 처마의 반전이 약하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약간 둔한 느낌을 준다.
이 탑은 봉정사의 극락전과 건립연대가 같을 것으로 추정되며 당대의 다른 석탑과 비교하여 특이한 점이나 미적으로
뛰어난 점은 없으나 전체적으로 고려 중엽의 석탑양식을 잘 갖추고 있다.
안동 봉정사 고금당 / 보물 제449호.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스님들이 참선하는 선원이었으나 지금은 요사채로 사용되고 있다.
1969년 해체 복원 당시 발견된 상량문에 광해군 8년(1616)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처음 건립한 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당초 남쪽에는 우화루가 있어서 남쪽 지붕이 이 건물과 연결되고 그 아래쪽을 부엌으로 사용하였는데,
1969년 고금당과 화엄강당을 해체하면서 지금의 영산암으로 이건하였다. 고금당은 맞은편에
바라보이는 화엄강당과 같은 시기에 같은 목수에 의하여 지은 건물로 조선시대 중기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좌측부터, 고금당, 극락전, 화엄강당의 후면.
안동 봉정사 화엄강당 / 보물 제448호.
이 건물은 승려들이 경전을 공부하던 곳으로 온돌방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남쪽에 2칸
부엌, 북쪽에 4칸 온돌방이다. 원래는 정면 4칸, 측면 4칸으로 현재의 온돌방 뒤쪽에 4칸의 마루가 있었다고 한다.
강당으로 사용한 건물이므로 불당에 비해 낮은 기둥을 사용하였다.
측면에는 중앙에 사각기둥 1개를 세워 대들보를 받치도록 하였으며 그 사이에 창을 냈다. 주심포 계열의 익공 양식이다.
극락전과 고금당 사이에 있는 길로 살짝 올라오면, 삼성각이 있다.
삼성각이다.
삼성각에서 본 경내 모습. 극락전과 대웅전이 위에 보이고, 아래에 고금당과 화엄강당의 지붕이 보인다.
삼성각 후면.
고금당과 아래에 있는 종각.
화엄강당.
종각.
종각.
만세루.
은행나무(보호수) / 수령 440년, 나무 높이 20m, 나무 둘레 5m, 지정일자. 1982년.
공양간으로 가는 길에 있는 홍예교인 능인교.
무량해회의 흙담, 울밑에 핀 옛날 꽃 봉선화.
무량해회에서 나오는 문.
담안에는 무량해회 건물이 있다.
만세루.
만세루.
만세루의 기둥.
첫댓글 젊은 날에 아무것도 모르고 가보았던 절입니다 세세한 설명을 읽어보니 다시 가서 봐야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ㅎㅎ
거사님 봉정사에 대하여 하나하나
설명과함께 사진을 올려주셔서 너무나
고맙게 잘 보았습니다.
세계문화유산이자 고인이되신 영국여왕께서
다여가신 아주 유서깊은 고찰인데 이렇게
사진으로보니까 더 좋습니다.
복 많이 지으셨습니다 _()_
미처 보지 못한 곳까지
정성으로 올려 주시니 차분히 공부하며
진심담아 감사드립니다
연산암도 차분히 친견드렸습니다
함께하신 순례길 더욱 의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