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방송은 장민호 박사님의 행방불명 소식이였다. 민규의 아버지
인 장민호 박사님이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신 것이다. 민규와 헤
어진지 4년 후에 이 소식을 듣고 나는 민규가 조금 걱정이 되었
다. 몇 년 전에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연구
를 하기 위해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장민호 박
사님이 행방불명이 되신 곳이 미국이라고 한다. 지금 민규가 있
는 곳 역시 미국일 것이다. 민규도 이 소식을 듣고 겉으로 표현
을 안 하겠지만 속으로는 슬퍼하고 있을 것이다. 민규는 전에 자
신의 아버지인 장민호 박사님께 자신의 눈에 나타나면 민규가 당
한만큼 똑같이 되돌려 주겠다는 그 일이 스쳐 지나간다. 민규 말
대로 자신의 눈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말해도 어디선가 행복하게
살고 있기를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바램도그
원망도 지금 모두 다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방송에서
는 장민호 박사님의 가족들이 나오는 것이었다. 장민호 박사님의
부인과 아들이 나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민규는 보이지 않았다.
민규는 이미 버려졌다고 생각할 일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훌륭
한 업적을 남긴 사람은 그리 끝이 행복하지 않다고들 말한다.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영웅들의 끝 역시 행복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
다. 장민호 박사님이 행방불명되어 많은 의문점이 남는다고들 한
다. 이유도 모르고 그리고 생사여부도 모른다. 그래서 아마 나의
궁금증이 더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일이 점점 사그라지고
있을 때 나는 회사를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렇게 평범한
날을 보내고 있었다. 민규와 헤어진지 5년이 되었다. 그리고 내
생일 날 축하해 주는 사람들 속에서 누군가 나에게 프로포즈를
하는 것이었다.
"서희씨..사랑합니다....."
난 그 말을 듣고 아무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이유없
이 그 프로포즈를 거절하고 말았다. 아마도 내 마음 속에서 잠자
고 있는 민규가 그 프로포즈를 거절하게 만들어 버렸는 지도 모
른다. 그 프로포즈를 받고 몇 달 뒤에 새로 부임하게 된 이사님
때문에 회사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들 말로는 약혼을
하고 돌아오는 이사님이라서 까다로울 거라는 말이였다. 기분좋
은 마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타는 순간 누군가 나의 눈에서 스쳐
지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민규인 것 같았다. 나는 올라가려
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그를 찾았다. 하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
다. 그냥 내 머릿 속에서는 비슷한 사람을 착각한 것 같았다. 이
런 일이 한 두번이 아니다. 자꾸 비슷한 사람을 보면 나도 모르
게 그 사람을 찾게 된다. 혹시 민규가 돌아왔을까 하는 기대감때
문에 말이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서 민규가 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5년이 지나도 다른 사랑 한 번도 못해 보고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에 다른 사람들은 답답해 한다. 그래서 내 마
음 속 깊숙히 있는 민규를 기다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 비슷한
사람을 보는 날이면 민규와의 지난 기억들이 떠오른다. 아마 민
규에게 못한 말이 있기 때문에 그럴 지도 모른다. 드디어 이사
취임식날이였다. 그런데 그 날은 늦잠을 자게 되어 지각을 했다.
그래서 새로 부임하신 이사님도 못 뵙고 사무실로 들어 갔다. 사
무실로 들어갔을 때 이사님이 회사를 돌아 다니신다는 말에 긴장
하고 있었다. 그 때 이사님이 돌아 오시려는 순간 내가 손에 잡
고 있던 팬이 책상 바닥 밑으로 떨어져 버린 것이었다. 난 바닥
에 떨어진 팬을 줍고 일어났다. 그러자 사람들은 환한 미소를 보
이며 모두 의자에 앉는 것이었다. 난 짜증을 부리며 말했다.
"뭐야 이게.....이사님 얼굴 한 번도 못 봤어!"
"그러게...안 맞나 봐! 부딪치지 않도록 조심해..."
다른 사람들은 인연이 아니면 혹시 악연일 지도 모르니 부딪치는
일 없게 만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사님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만약 그 분께 실수하는 날이면 언제 찍혀져 나갈 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였다. 언젠가는 마주치는 일이 있겠지 하는
마음이였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도 마주치는 일은 없고 계속 빗
겨 나가는 것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서로 엇갈리고 내가 화장실
에 갈 동안에 잠깐 들렀다 나가시고...그런 일이 한 두번이 아니
다. 어느 날에 회사 앞에 주차되어 있는 차 때문에 나는 지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차에 내려 주차도 못한 채 차 주인을 찾았다.
"이 차 주인 누구야? 이 차 때문에 회사 지각했잖아!"
"죄송합니다......."
그 때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에 나는 숨이 멎은 채로 뒤를 돌아
보았다. 그 사람은 장민규였다.
"민규야....너 장민규 맞지?"
"서희야....."
"오랜 만이다....."
"서희야.....미안 다음에 얘기하자!"
"그래......."
민규는 바쁘게 어딘가로 차를 몰고 사라지는 것이었다. 나 역시
차를 주차를 하고 사무실로 올라갔다. 나는 5년만에 보는 민규때
문에 기분이 조금은 설레이고 있었다. 그 설레임을 뒤로 한채 회
사를 빠져 나오는 길에 민규를 보았다.
"장민규......너 여기 회사 다니니?"
"어.....반갑다...또 만나네! 나랑 얘기 좀 하자!"
민규는 나를 카페로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
"되게 오랜 만이다.....근무 부서가 어디야?"
"어......이사로 부임......."
"네가 그럼 새로 부임한 이사님......."
"어...작은 아버님 회사라서....."
"한국으로 온지는......"
"1년 됐어!"
"너 약혼했다는 소문이 있더라....정말이야?"
"어.....약혼했어......"
"그래......축.....축하해!"
민규와 나의 이야기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기다림의 댓가가 고작 이런 거 였니? 민규......'
그리고 나는 눈물이 흘렀다. 벌써 약혼까지 했을 거라는 생각을
못한 것이었다. 민규는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의 상사라는 사실
도 함께 말이다. 그 날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면서 난 혼자 중얼거렸다.
"장민규.....그래...나 혼자 바라보던 사랑이야...이젠 포기하는
거야! 이미 약혼까지 했잖아.....기다렸다는 거....민규는 모르
겠지......그런데 왜 그렇게 기다린 걸까?"
난 혼자 중얼거리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내리는 것이었
다. 내 눈물은 아마 기다림에 대한 허탈감일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