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마르다의 요청을 들어 주시는 대신 오히려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한다고 여기시면서 마리아를 두둔하셨을 뿐만 아니라 특히 마리아가 좋은 편을 택하였다고 해 주시고 빼앗기지 않으리라고 지지해 주신 일에 있어서 결코 예수님을 향한 마르다의 섬김과 헌신들이 잘못되었다거나 말씀 신앙적 요소가 아예 없어서였다기보다는 마리아가 더욱 합당했기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고, 무엇보다 마리아가 하나님의 세계, 신앙적 원리에 있어 아주 중요한 면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해 오늘 본문에서의 마리아는 믿음의 세계에 있어 본질이자 핵심인 것일 뿐 아니라 절대적인 것이고, 좋은 것이며, 중요한 것이고, 가장 우선적인 것이며, 어떤 면에서는 심히 긴급한 것을 잘 통찰하며 최우선으로 여기고 가장 소중하게 집중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인데 단적으로 말하면 말씀, 말씀의 신앙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주 예수님께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말씀 그 자체이신 분으로 세상에 있어 아무리 중요해 보이고 대단해 보이며 급해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예수님보다 우선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며, 특히 그러한 예수님께서 친히 주시는 말씀보다 더 좋거나 더욱 앞서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것이고, 게다가 그러한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에게처럼 직접 그 집으로 방문하시며 말씀해 주시는 경우는 극히 한정적인 것으로 아무나 누릴 수 없는 아주 특별하고 희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기에 그때는 마리아처럼 다른 그 무엇보다 구주 예수님 곁에서 말씀을 듣는 것이야 말로 중요하고 또 중요하며, 참으로 최우선 중의 최우선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신 그 목숨값으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그 예수님께서만이 말씀이 육신이 되신 말씀 그 자체이신 분일 뿐 아니라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창세전부터 계획, 약속, 준비,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경험케 하시는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근본적으로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인 것이고, 게다가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모두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 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하나하나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도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이 아시실 수 없는 것으로 근원적으로는 그렇듯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더 나아가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특히 온갖 응답과 승리와 부흥들 등의 중심, 근본, 실체이실 뿐 아니라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단 한 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께서 바로 그 자체가 말씀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행하시고 다 이루시는 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은 오늘 본문의 마리아가 얼마나 제대로 되고 깊은 믿음과 영성과 통찰의 신앙인지를 알 수 있게 하면서 마르다가 과연 무엇을 간과하고 어떤 실수를 했으며 어느 정도로 우둔한지를 잘 보여 주게 하는 것일 뿐 아니라 사실상 오늘날 우리들이 접하고 있는 성경 말씀도 직접적, 현실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시공을 넘는 하늘의 힘으로 실제가 되고 경험이 될 수 있게 하신 것으로 본질적으로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구주 예수님의 말씀과 결코 다를 수 없는 것이기에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들에 있어서도 무엇을 가장 최우선으로 하고 중요하게 여기며 더 나아가 절대적으로 두고 심지어는 긴급하게 결단할 수 있어야 하는지를, 무엇보다 우리의 삶의 자리와 사역의 현장들에 있어서의 날마다 순간마다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응답과 역전들 등의 실제와 경험들, 생생함과 강렬함들에 있어서 진정 무엇이 전제이고 기준이며, 관건이고 통로인지를 아주 잘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10:38~42)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3년 5월 1일(월)1/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