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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오사카 여행
7월 25일~ 28일 4일간 일본 교토,오사카를 다녀 왔다
간사이 교토는 고대국가의 수도로서 문화의 중심지 였고, 오사카는 그 항구로써 유통의 중심지였다.
유럽여행에서 빼 놓을 수 없는 특징은 다양한 건축양식의 건축물과 여러형식의 성당을 만나게 되는데 유럽자체가 종교를 바탕으로 발달 되었고 성당은 생활속에 함께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교토는 역사의 도시인만큼 다양하고 수 많은 사찰과 신사가 있어, 사찰과 신사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찰 1600여개와신사400~600여개가 있는데 그중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사찰만도 13개이고, 신사 3개, 성 1개등 총 17곳이 등록되어 있다.우리나라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사찰이 불국사, 해인사 2곳인 점을 감안하면 과거 고대국가 교토의 불교 융성을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의 역사에서 배운 지식을 총 동원해 불교가 일본에 전래된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일본열도는 주로 간토지역에 거주한 조몬인 중심으로 약 1만년 조몬시대가 계속되었는데 기원전 3세기경 이들과는 젼혀 다른 문화를 갖고 있는 한반도에서 건너온 것으로 보이는 세력이 북규수에 등장하였고 이들이 '야요인'이었다. 이들은 벼농사등의 산업 발달로 잦은 다툼이 벌어졌고 전쟁에서 이긴 집단들은 규모가 커져 소국의 수준에 이르렀다.
그 후 4~5세기경에는 나라와 오사카지역의 소국들이 연합하여 정치조직을 만드는데 바로 '야마모토 정권'이다.
야마모토 정권은 한반도의 3국 그 중에서도 백제와 긴밀한 외교관계를 맺고 여러기술과 문화를 열성적으로 흡수하여 힘을 길렀다. 6세기 538년 한반도에서는 백제 성왕이 공주에서 부여로 도읍을 옮겼는데 이무렵 불교가 조정에 전래 되었다고 한다. 그후 불교수용을 둘러싸고 권력 다툼이 벌어졌고 권력다툼에서 이긴 소가씨가 실권을 잡게 된다.소가씨의 배경아래 스이코 천황의 섭정이 된 쇼토쿠태자는 고대국가 기틀을 잡고, 선진문물을 적극 수입하는데 백제의 기술을 열심히 받아들였고 그중에서도 불교는 특히 매우 융성하였다. 쇼토쿠태자17조 헌법 2번째 조항에 '불교를 돈독히 받든다'는 조항이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백제의 영향이 강한 국제성 짙은 문화를 만들었는데 이를 '아스카 문화'라고 한다.
이어 쿠데타로 체계를 갖춘 다이카개신 고대국가는 710년에 나라에 헤이조교(平城京)를 짓고 수도를 옮겼다. 나라시대는 당의 문물을 배우고 통일신라와도 많은 교류를 했고 이를 통해 불교가 융성했는데 도다이지(東大寺)를 비롯한 많은 사찰이 세웠졌고 대불도 제조되었다. 그러다 또 다시 794년 간무천황이 나라의 곤궁을 타파하기위해 교토의 헤이안교로 천도하였고, 야마모토나 나라시대와는 달리 외교에 소극적이어서 842년 통일신라와 국교를 단절하고 중국으로부터의 문물 유입도 약해졌다.이때부터 일본은 가나문학, 야마토에, 건축기술등을 일본색으로 강화해 나갔다.
이렇게 우리나라 불교가 일본에 유입되어 융성하게 되었고 지금도 많은 국민들이 믿고 있는 종교가 되었다.
한편 고대국가 수도였던 교토는 간무천황이 헤이안교로 천도한 후 천년이 넘게 수도였지만 메이지 유신의 성공으로 천황 유신이 1869년 은근슬쩍 수도를 도쿄로 옮겼고 수도를 옮긴다는 공식적인 발표도 없이 천도했다고 한다.
고대에는 현재의 도쿄를 중심으로 한 간토지역은 변방이었으며, 오랑캐족들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간주하였는데
교토 사람들은 도쿄로 수도가 이전되었다는게 받아 들이기 힘든 상처였고, 여전히 교토를 일본의 수도로 생각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도쿄에서 교토로 옮겨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한다.
교토는 천년이 넘게 고대국가 수도였던 만큼 가장 일본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도시이고, 번잡스럽지 않고 잔잔하면서 은근한 멋을 풍기는 도시였던 반면 오사카는 마지막날 오후에 들러 도톤보리와 우메다 스카이빌딩만 다녀 왔는데 도톤보리는 먹자골목처럼 침샘을 자극시키는 온갖 음식점 간판들이 인상적이었고, 세계각국의 관광객들과 현지인들이 어우러져 골목 가득 붐비고 북적여서 에너지를 뿜어내는 역동성이 느껴지는 도시였다.
그리고 사실오사카는 서울의 3배에 달하는 도시다. 그걸 실감했던 순간은, 우메다 스카이 빌딩 하늘공원에서 바라보는 야경을 보면서였다. 고층 빌딩숲들이 불빛을 반짝이며 발전성을 과시하듯 끝없이 늘어 서 있었기 때문이다.
4일간 짧은 일정에다 자유여행이라 커피숍에도 들어가 쉬는등 너무 한갓지게 다니다 보니 많은 곳을 가 보지는 못해 아쉽지만 행복했던 여행이라 다음에 벚꽃철이나 단풍철에 꼭 가고 싶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김해 공항을 출발한지 1시간여 후 간사이 공항에 도착해
리무진을 타고( 1시간 30분 소요) 교토 오이케도리에 있는 GIMMOND HOTEL로 갔다.
체크인 시간이 오후 2시라 일단 호텔에 짐을 맡기고
오후 여행은 점심을 먹고 시작해야 할 것 같아 교토서 제일 먼저 찾아 간 곳이 가까이에 있는 상점가였으며,
상점가 골목에 맛있는 돈까스 집을 찾아 점심을 먹은 후 교토 첫 여행을 시작했다.
니시키 시장쪽 상점가에서 점심을 먹은 후 100번 버스를 타고 찾아간 첫번째 여행지는
교토의 필수 관광코스로 손 꼽히는 기요미즈데라(淸水寺)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곳이고
여행객들이 좋아하는 스토리가 담긴 곳이기도 하다.
778년에 창건된 역사가 깊은 절로서 성불을 드리기 위해 방문하는 신자들도 꽤 많다고 한다.
'세계의 풍속과 문화' 책 자료에 의하면 일본의 종교 인구는
불교가 44.8%, 신도가49.6%. 기독교가0.8, 기타가 4.8%로 나타났다.
전국민의 95%가까이 불교와 신도 신자이다. 불교는 6세기에 유입되어 급격히 성장하여 일본화 되었고
신도와의 구별은 매우 모호하다,
근대이전에는 뒤섞여 있었으며 도쿠가와 시대에는 기독교를 막기 위해 모든 일본인들에게
불교사찰에 관련을 갖도록 하였고,
메이지 정부는 또 신도를 국교로 하고 천황을 최고 사제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추진하는 등
불교와 신도를 분리 하였으나 오락가락한 종교 정책으로 성공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 기요미즈데라(淸水寺)내에 있는 지슈 신사는
사랑에 관련된 신을 모시기 때문에 사랑과 인연을 맺어주는 효험이 있는 신사라고 한다.
이신사는 청수사내에 있는 신사다. 일본의 종교는 배타적이지 않으며 제설혼합주의적 성격을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절에도 가고 신사에도 간다. 불교사찰과 신사처럼 다른 종교시설이 같은 경내에 존재하는 경우가 많아 불교 사찰인지 신사인지 모호한 경우가 많다. 심지어 한 종교의 사제가 다른 종교의 사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기요미즈테라(淸水寺)의 본당은 상당히 유명한 관광지이다.
십일면 청수사관세음보살을 위하여 본당 넓은 무대에서 춤을 춘 곳이자 자살한 사람도 여럿되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본당에서 밑을 내려다 보는 아찔함과 자연의 아름다운 절경을 함께 느낄수 있는 교토 최고의 관광지다.
그런데 아뿔사 공교롭게도 2017년 2월부터 2020년3월까지 장장 3년간 하는 공사로 인해 가장 유명한 본당에 들어 갈 수
없었고 공사로 설치되어 있는 막대기만 바라봐야 하는 아쉬움을 달래며 돌아섰다.
이 긴 공사는 50년마다 한번씩 진행되는 공사라고 한다.
▲기요미즈데라(淸水寺)내에 있는 오토와폭포
오토와 폭포엔 건강, 학업, 연애를 나타내는 세줄기 물줄기가 있다.
마시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설이 있는데 마실때는 물을 받아 그 물로 손을 깨끗이 씻은 후 손으로 물을 마신다는것이다.
여기는 산넨자카와 니넨자카로 청수사(淸水寺)에서 내려와 기온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골목길이다.
'자카'란 일본말로 고개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실제 이거리는 제법 경사진 계단으로 이루어진 된비알이었다.
이 산넨자카에서 넘어지면 3년안에 죽거나 수명이 3년 단축 된다는 무시무시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는데
길이 경사가 심하고 하니 주의 하라는 의미로 무시무시한 전설을 만들어 낸것이리라 믿는다.
한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는 산넨자카에서 넘어지면 액땜을 위해
고개 아래 가게에서 호리병박을 사면 괜찮다고 한다.
믿지 않으면서도 막상 넘어지면 또 불안한게 사람마음이다.
그런 불안한 관광객들의 마음을 이용한 뻔한 상술인줄 알면서도 속아주는게 관광객들이다.
산넨자카와 니넨자카 거리에 어둠이 깔려 상점앞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지니
거리의 멋이 한층 짙어집니다.
밤에 산넨자카와 니넨자카 거리를 걷는다면 한층 더 일본의 느낌을 느낄 수 있을듯 하다.
산넨자카. 니넨자카는 거리는
일본의 전통 가옥 보존지구로 일본스러움을 한껏 느낄수
있는 거리로 전통 공예품과 전통 과자등을 파는
가게와 찻집들이 즐비하고 있는 아름다운 거리다.
산넨자카의 계단은 46개고 니넨자카의 계단은 17개인데 계단과 이름은 연관성이 없는듯 하고
알다시피 일본어로 산은 3을 , 니는 2를 뜻하는데 3을 뜻하는 산넨자카에서
넘어지면 3년내 죽거나 , 3년 수명이 단축된다는 전설과
니넨자카에서 넘어지면 2년내에 재앙이 온다는 부정적인 이야기는
우리나라 전래동화 3년고개와 거의 같은 이야기다.
우리나라 3년고개는 한번 구르면 3년 살고 죽는다는 전설이 있었는데
한남자는 3년고개에서 잘못하여 구르게 된 후로 그만 시름시름 병을 얻어 앓게 되었는데
아내의 지혜로 한번 구르면 3년을 살게 되니 여러번 구르면 오래 살지 않겠느냐고 여러번 구르게 하여 심리적 안정감을 회복하여 건강하게 오래 살았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가 있다.
날씨가 꾸물꾸물 하더니 결국 빗방울이 떨어졌다.
때마침 니넨자카 아래에 독특한 일본 전통가옥의 스타벅스(Starbucks)가 눈에 띄어
실내인테리어가 궁금하기도 하고, 비도 피할겸 들어갔다.
역시 밖에서 느낀대로 실내가 넓지 않아 자리가 부족한지 많은 손님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커피를 시켰지만 자리가 없어 선채로 마신후 ,
긴 기다림끝에 겨우 자리를 잡아 2층으로 올라 가 독특한 스타벅스의 분위기도 느끼고, 비 그치기를 기다렸다
궁금했던 2층은 100년된 전통가옥 그대로를 잘 보존한 다다미식 인테리로 편안함과 아늑한 공간으로
일본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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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쿄토 여행 둘째날 자유 여행이라 좀 늦게 일어나 아침을 먹은후 28번 버스를 타고 아라시야마로 갔다.
교토의 버스와 지하철에 적용되는 요금 시스템은
교토 버스 1일권 요금은 500엔.(균일 요금 구간만 승차 가능)이고, 1회승차 요금이 230엔이다.
3번이상을 타야 한다면 당연히 1일권 티켓을 사야한다는 것, 그리고 원데이 패스 1일권은 1,200엔인데
이건 버스와 지하철 둘 다 이용할 수 있다
지하철만 탈 수 있는 1일 티켓은 600엔이다. 둘쨋날은 아무래도 버스를 많이 타야 하니
우리들은 버스 1일권 티켓을 끊었다.
▲아라시야마의 상징 '도게츠 다리'
도게츠 다리는 다리에 달이 걸려 있는 것과 같다는 의미라고 하며,
호즈가와 강변을 중심으로 한 아름다운 교토 외곽지역의 자연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헤이안 시대 귀족들이 아라시야마의 아름다음에 빠져 별장들을 조성하기 시작 하면서 유명한 관광지가 된곳이다.
▲ 자료에 의하면 도게츠 다리건너 마을이 백제인 마을 이라고 한다.
고대 백제인들이 그곳에 타운을 이루었는데 일본화 되어
백제나 한국에 관심은 없으나, 옛 조상들이 형성시킨 마을은 그대로 있다.
▲교토 여행의 명소 아라시야마에는
치쿠린, 덴류지, 노노미야마 신사 등 명소가 많이 있다
교토의 관광명소중 대표적이며
헤이안시대에 귀족의 별장지로 개발 된 이후
교토의 대표적 관광지로 관리 되고 있다.
여름에 간 아라시야마는 검푸른 녹음만이 짙게 드리워져 있지만
사계절의 변화가 선명하여, 특히 봄의벚꽃, 가을의 단풍이 너무 아릅답다고 하는데
봄이나 가을에 다시오고 싶은 곳이다.
▲덴류지(天龍寺) 본당으로 가기 전 잘 가꾸어진 정원들
일본의 사찰은 매표소가 절 입구에 있지 않다.
출입문에서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매표소가 있는게 우리나라와 다른점이다.
▲덴류지(天龍寺) 본당
덴류지 (天龍寺) 는 임제종 덴류지파 대본산으로 교토시 우교구사가에 위치하고 있다.
1339년에 요시노에서 죽은 '고다이고 천황'의 명복을 빌기 위해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몽창국사를 창시로서 창건해서 천황의 별궁이던 자리에 절을 짓고 덴류지라고 하였다.
▲ 일본 정원의 진수를 보여주는 곳이 이곳 천용사 '소겐치 못 정원'이라고 한다.
사실 일본의 문화재는 정원을 보러 간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정원이 인상적이다.
이곳 '소겐치 못 정원'은 무소 소세키가 만든 정원으로 일본 에서 최초의 사적/특별 명승지 제1호로 지정되어
1994년에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곳이다.
천용사는 안타깝게도 무슨 전투나 전쟁이 있을때마다 건물이 불타 없어지는 대화재 참사를 8번을 겪었다고 한다.
지금 있는 건물들은 대부분 복원된 것이고 아름다운 정원 역시 마찬가지다.
이곳 천용사는 건축 비용을 대기 위해 천용사라는 이름을 단 무역선이 중국에 파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는 막부가 경제적 부를 축적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텐류지 (天龍寺)뒷쪽엔 산책할 수 있는 오솔길이 잘 조성되어 있었다.
일본 교토의 여름 최고 기온은 우리나라 대구의 최고 평균 기온보다 2도 가량 높다고 한다.
한여름 무더위를 실감 할 수 있는 온도지만 우리가 다닌 3일 동안은 온도가 많이 떨어져 복받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많이 걸었는데도 그저 몸이 칙칙할 정도지 땀이 흐르지는 않았다.
게다가 시원한 바람을 만들어 주는 이런 멋진 산책길이 많다는 것도 더위를 식혀주는 요인이었다.
▲아라시야마의 명소 '치쿠린'
일본의 대나무밭 3대 명소라는데 이처럼 보호막을 쳐 놓아 답답한 느낌이 있었다.
대나무밭은 우리나라 울산이 더 좋지 않나 싶다.
교토 시내에서 17번 버스를 타고 간 오하라 산센인(三千院)
오하라 일대는 약 천년전 부터 교잔(魚山)이라 불리며 불교 음악의 발상지였고
염불, 성인에 의한 정토, 신앙의 성지로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창건은 사이초 고승 덴교(傳敎)대사가 787~822 초암을 만든것에서 시작 되었다고 한다.
천태종 5대 문적 중 하나로 이곳은 황자나 황족이 주지를 맡는 궁문적이었다고 한다.
▲오하라 산센인(三千院)은 교토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 넘게 걸리는 시골로,
외곽지역인 탓에 1일 버스권으로 타니 추가 요금을 요구 하였다.
우리가 오하라 산센인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 30분이었는데 5시 30분이면 문을 닫는다고 하였다.
절은 규모가 크지않아 아담하였으며, 찾는사람도 우리외엔 남녀 둘뿐이었으므로
너무 호젓하고 고즈넉하여 마루에 앉아 정원을 바라보며 마냥 시간을 잊고 싶었지만
감상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었으므로 앞 이끼정원과 위쪽 수국 꽃밭을 둘러 보고 서둘러 내려 왔다.
▲이곳 회전 초밥집도 교토 시내에 있는
유명한 맛집이라고 밖에 줄이 길게 서 있었는데 이름을 모르겠다.
우리도 기다림 끝에 입성하여 생맥주와 초밥을 배불리 먹고 입을 깔끔하게 해줄 커피를 찾아 고고싱~~
▲ 우리가 저녁밥을 먹은 회전초밥집서 조금만 걸어 나오면 카모가와 강줄기를 따라 예쁘게 들어서 있는
여러 음식점들인데 이중 첫집은 스타벅스 교토 '산조오하시'점이다.
우리도 낭만적인 분위기에 반해 안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런데 저 남만적인 실외 테라스 좌석은 만석이라 자리가 없단다.
에고에고 카모가와강 밤풍경을 바라보며 낭만을 즐기려 했거늘 실내에서 먹고 나올 수 밖에.........
이렇게 둘쨋날은 커피집을 마지막으로 일정을 끝내고 호텔로 고고싱
아침의 하나미코지, 해질녘 하나미코지
▲ 첫날 청수사 갔다 내려오면서 지나쳤으나, 멀리서 사진만 몇컷 찍고 들르지 못했으므로
셋쨋날 첫 코스로 들리게 된 기온거리 남측에 있는' 하나미코지'
이제는 얼마남지 않은 게이샤(마이코)를 볼 수 있는 고급 술집 거리다.
밤이면 게이샤들도 볼 수 있었겠지만 아침이라 너무 한산한 거리다.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동양권사람들은 미신을 많이 찾는 건 다르지 않은것 같다.
가게 앞에 짚으로 예쁘게 만들어 놓은 위에 '소문(笑門)'이란 글은 웃음이 들어오는 문이라는 말인가
'笑門萬福來' 그런거 비슷한가? 행운을 비는 글귀로. 어떤 바람에서 오는 막연한 믿음일 것이다.
현대 일본인들은 결혼은 신도식으로 장례식은 불교식으로 라고 하듯이 신도나 불교나 신앙의 문제라기보다
생활속에 뿌리를 내린 습관이라는 측면이 강한듯 하다. 우리가 생활 습관처럼 입춘이면 '입춘대길' 글귀를 붙이는것과 같은 의미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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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시미나리 신사에 있는 붉은 토리이
기온시조역에서 지하철로 몇 정거장을 지나 후시미이나리역 근처에 있는 여우신사(후시미이나리 신사)
'게이샤의 추억' 촬영지
돈많은 남성에게 엄청 큰돈을 받은 어린여주인공이 여우신사로 뛰어와서 게이샤 되는게 소원이라고 소원을 빌던곳이다.
후시미이나리신사( 여우를 모시는 신사)에는 천개의 문 (토리이)이 있는 신사다.
이렇게 붉은 문이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끝없이 산꼭대기까지 늘어서 있는데 우리는 너무 많아 다 보지는 않았다.
토리이는 여러곳에서 기부로 세워졌는지 지방단체, 동문회,협회등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기념일인지 기부일인지 다양한 연도도 적혀 있었다.
우리 기준으로 볼 때는 여우신을 모신다는게 좀 우스울 수도 있는데 일본의 신도는 체계적인 믿음이라기보다는
여러 정령 등을 둘러싼 원시적인 믿음과 관행의 총쳬로서
일본인의 자연인과 조상숭배의 관념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지상의 삼라만상은 신에 의해 생겨나고 신을 모시는 장소이며 자연 어디에나 신이 깃들어 있다는 믿음
그런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시간이 한정되어 있으니 일정은 타이트 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금각사와 은각사 중 고민하다 이곳 금각사를 선택했다.
이곳 킨카쿠지(金閣寺)는 교토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관광지다.
시내에서 59번 버스를 타고 절앞에 내려 절 입구에 들어서니 수령을 알 수 없을 정도의 아름드리 나무들이
도열하듯 우뚝 서 참배객들을 반겨주었다.
금각사는 본래 무로마치막부시대의 장군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1397년에 지은 별장이었으나,
그가 죽은 뒤 유언에 따라 로쿠온지라는 선종(禪宗) 사찰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1950년 한 사미승에 의하여 불에 타 없어졌으며, 지금의 건물은 1955년에 재건한 것이다!
금박은 1962년에 이어 1987년에 다시 입혀졌으며, 199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나,
화재로 인한 소실 때문에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내려갔으며 복원하면서 너무 금칠을 많이 하여서 본래의 미를 상실했다는 비판까지 나왔을 정도이다.
이후 금각사는 매년 교토 시민들의 세금으로 보수된다고 한다!
금각사가 일본 내에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가 이를 소재로 하여
1956년에 쓴 장편 소설 <금각사(金閣寺)>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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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각사의 정식 명칭은 로쿠온지(麗苑寺)이다
부처님의 사리(뼈)를 모신 사리전 킨카쿠지(金閣寺)가 특히 유명하여 킨카쿠지로 불리고 있다.
금각은 2층과 3층은 옻칠을 한 위에 금박을 입히고 지붕은 늘지붕으로 위에는 봉황이 빛나고 있는 형식이다
좋은 카메라 였더라면 물속에 비친 금각사의 반영을 멋지게 담았을텐데 아쉽다.
▲일본의 사찰들을 관람하면서 느낀점은 우리나라와 달리 건축물에 화려한 단청그림들이 없다는 것과
정원을 아름답게 꾸며 놓은것이 인상적이었다.
금각사 역시도 킨카쿠지가 위치한 연못을 중심으로 하여 크고 작은 섬들과 당시의 각 다이묘가 헌납했다는 바위들이
배치된 무로마치 시대의 대표적인 지천 회유식 정원이라고 한다.
금각사 정원 역시도 특별 사적 및 특별명승으로 지정된 곳이라 한다.
▲번쩍 거리는 금각사에만 정신이 팔려 이 소나무를 놓치면 안 된다고 한다.
배모양의 소나무 분재인 '리쿠슈노마츠'로 이 절에서 가장 오랜 세월을 버텨온 나무라고 한다,
600년이란 장구한 세월동안 이 절의 역사를 지켜봐온 킨카쿠지의 터줏대감인 셈이다.
일본의 절은 우리나라와 달리 뒷쪽 깊숙히 까지 산책로를 잘 만들어 놓았다.
▲금각사에서 버스를 타고 교토시내에 있는 도시샤 대학에 갔다.
교토는 그면적에 비해 대학수가 놀라울 만큼 많아 인구에 비해 학생의 비율이 일본
전국에서 가장 높아 '학생의 도시'라고 불리는 곳이다.
국립대학 교토대학을 필두로 간사이 4대시립명문대학의 말인
'칸칸도리츠' 중 도리츠에 해당하는 도시샤대학과 리츠메이칸 대학이 있으며
그외 많은 대학과 만화 관련학과가 유명한 세이카대학등수많은 대학들이 교토시내에 있다.
▲도시샤대학내에 있는 '윤동주' 시비
올해는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윤동주 시인의 고향은 중국조선족 자치주인 퉁징(용정)시 명동촌으로 지금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평양 숭실중학교, 서울 연희 전문에서 공부를 했으며
이곳 도시샤 대학엔 평소 존경했던 정지용 시인의 모교라서 편입했고
1943년 도시샤대학 재학중 항일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되어 후쿠오카 감옥에 투옥되었고
1945년 해방을 몇개월 앞두고, 27세의 나이로 옥중 요절했다.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본의 소금 생체실험, 일본군에 의한 마루타설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불확실하다.
윤동주가 주로 활동했던 북간도는 만주국이며, 만주국은 제국일본의 위성국으로 그곳 인근에 윤동주의 무덤이 있다.
시비에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서시'가 적혀 있는데 윤동주 시인의 자필이라고 한다.
한.중.일 3국에서 그의 시를 기억하고 있다.
▲우리에게 너무도 유명한 '향수' 의 시인 정지용의 시비
도시샤 대학에 윤동주 시인의 시비는 왼쪽에, 정지용시인의 시비는 오른쪽에 이렇게 나란히 있다.
정지용 시인은 윤동주 시인보다 12년 형으로 도시샤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교사, 교수로 활동했으며
해방후는 영어교사를 했는데 한국전쟁 후 행방불명 되었다고 한다.,
▲교토에 있다는 유명한 떡집
도시샤 대학에서 나와 유명한 떡집 맛을 안보고 갈 수 없으므로 사 먹으려는데 긴줄이 .....
입이 행복해지려면 어딜가나 유명한 맛집은 어느정도의 기회비용이 필요한가 보다.
▲오사카 도톤보리
맛의 도시 오사카에서 먹거리는 빠질 수 없는 즐거움이다.
누군가 말 하였다. 간사이(오사카중심)사람들은 먹는것에 몰두하며, 개방적이고 실용적이고,
간토(도쿄 중심)사람들은 입는것에 몰두하고, 형식적이며 명분을 중시한다고
그런 오사카에서 끝없이 먹거리가 늘어선 곳이 도톤보리인데
타코야키, 오코노미야키.스시,규동,우동,라멘등 모든 먹거리를 이곳에서 맛 볼수 있다.
도톤보리에 있는 유명한 글리코상이 머리가 잘려 버렸다.
물자수송을 위한 인공수로가 지금은 관광객들을 위한 크루즈가 다니고 있는 도톤보리천
그런데 정화가 안 되는지 너무 오염되어 있었다.
▲ 교토 유명한 떡집서 산 떡으로 대충 요기를 하였으므로 이곳 오사카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이곳도 이름난 맛집이라 그런지 늦은 점심 시간인데도 밖에서 좀 대기를 한 후 룸으로 들어갔다.
각 다른 우동을 5개 시키고 김밥도 하나 시켰다.
예전에 후쿠오카에서 먹은 맛집 우동은 맛은 진짜 좋았는데 간이 짰었는데
이곳 우동 역시도 맛은 좋았지만 종류에 따라 간이 다르기 때문에 카레 우동이랑 또 다른 한개는 정말 짰다.
일본 우동의 맛은 굵으면서 쫄깃한게 식감을 높이는 특징이 아닐까 싶다.
우메다 스카이 빌딩 하늘공원에서 바라다본 야경,
마지막에 비가 내려 사진에 빗방울 흔적이 남았다.
▲오사카 우메다는 오사카 교통의 중심지이자 상업의 중심지이다.
여러 명품 매장과 여러 대형 백화점 그리고 특급 호텔들이 즐비한 곳이다.
반면 대중적이고 실용적인 쇼핑을 즐길 수 있는 곳도 곳곳에 있어서 쇼핑객들의 만족도가 높은 지역이다.
▲여행 마지막 밤을 즐기기 위해 위사진에 있는 술집골목 한곳에서 생맥주를 마시고 밤 11시에
숙소로 돌아가는 중에 만난 '게이샤'(마이코)
죄송하다는 인사와 함께 사진한컷을 부탁 했드니 꼭 한컷만이라는 전제로 흔쾌히 응해 주었다,
게이샤는 1688~1704년경부터 생긴 제도로서 본래는 예능에 관한 일만을 하였으나
유녀가 갖추지 못한 예능을 도와주는 약할을 한 게이샤와
춤을 추는 것을 구실로 손님에게 몸을 파는 유녀, 두종류가 생겼다.
1940년대에는 게이샤 유흥점이 불법화되어 많은 게이샤들이 공장의 산업근로자로 전락하였다.
1790년대 후반엔 17000이었으나 최근에 1000명 정도(어떤 조사에서는 200명이라고도 함)로
오사카나 교토에서만 볼 수 있는 정도이고
오늘날 게이샤는 살아있는 유적과 다름없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대부분의 일본사람들은 한번도 게이샤를 실제 본적이 없다고 한다.
일본 문화를 논할때는 흔히 쇼군(將軍)과 더불어 후지야마게이샤 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그만큼 게이샤는 일본을 상징하는 문화상징어로 자리매김 된지 오래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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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와
가이드없이 자유여행
일본어 잘하나보네 ㅎㅎ
금각사 ㅋㅋ
온천은 안갔나
난 온천 가고 싶은데
돈까스도 맛있지
울나라 돈까스랑은 쬐금 맛이 다르지 ㅋㅋ
난 9월 둘째주에 남편이랑 둘이서 자유여행
삿포르 4박5일
렌트해서 직접 운전해서 다닐려고 하네 ㅎ
갔다옴 사진 올릴게
상옥이 처럼 거창하게 해설 붙여서는 못한다
오랫만에 일본여행 눈요기라도
좋으네 ♥♥♥
ㅋ ㅋ 일본어 모른다.
좀 배워 보려 했는데 돌아서면 잊게 되더라. 난 기본만 우리 일행중 학원 다녀 조금 아는얘가 있었고 또 복잡한 오사카 갈 때는 일행 딸이 도시샤 대학 재학중이라 같이 갔다. 친구도 전에 금각사 사진 올린적 있었잖아 금각사 가니 아~주미친구 왔던곳이 여기구나 싶었다. 샷포르 사진 많이 올려라 우리도 지난 2월에 친구 몇명이랑 샷포르 가려 했는데 춥다고 중국 계림 갔었다. 언젠가 갈지 모르잖아
그런데 주미 친구는 서방님 너무 잘 만난것 같아 부러워 !
너무 행복해 보여. 건강하게 잘 다녀와
@이상옥(신곡초) 고마버 ㅎㅎㅎ
신랑이 나를 잘 만난거징 ㅋㅋㅋ
상옥이도 여행 마니 다니네
기회가 되면 부지런히 다녀라
9월엔 3주간 해외에서 ㅋㅋㅋ
@안주미 물론 서방님도 친구 잘 만났지
인정하는 ks마크 아니가
주미는 좋겠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 많이 다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