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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이야기경희 사이버대학 임진모 교수
고려대 사회학과, 내외신문 기자, 음악평론가, 사이버대 교수, 배철수의 음악캠프 등 다양한 활동. 가수 41명의 뒷이야기 - 가수를 말하다 책 출간.
1994년부터 바쁘게 살았고 IMF때도 바빳고, 요즘에는 싸이 덕분에 바쁘고 책을 내서 분주하고 여러 강의를 다니지만 이렇게 같은 50대끼리 만나니 참 좋다. 1958년생이 많으시죠? 마음이 편안하다. 지금 나이 되신 분들이 위험하다. 회사 직장에서 위험한 것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위험하다는 말이다. 사회가 급변하기 때문이다. LP를 좋아하는 분들이 CD는 충격이었지만 10년만에 MP3에 넘어갔다. 국장급들이 다운로딩을 하시나? 그렇다면 세련된 것이다. 많은 변화가 있다. 50대 중후반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가장 위험한 사람이다.
음악적으로, 임방월? 이은관, 조상현, 김영임(이상해씨 부인), 신중현, 이미자, 패티킴, 배호. 디퍼풀? 샹송? 1951-56년이 우리나라 문화의 황금세대이다. 세계 누구도 갖지 못한 풍부한 컨텐츠를 흡수했다. 임방월, 비틀즈, 샹송, 깐소네도 모두 아는 세대가 51년생-56년생이다. 영화 형사에서 ‘아모레미야....’아시죠?
우리의 문화컨텐츠가 지평이 넓고 풍부하다. 조용필 모르는 사람 없다. 김광석, 김현식. 서태지 이후에 음악을 듣지 않았다. 너무 다르기 때문에 접수가 힘들었다. 4덩어리 음악을 부정한 가수가 서태지이다. 하지만 서태지를 우리는 안다. 그런데 이런 문화를 후배들에게 대물림하지 않았다. 이사갈 때 LP판을 가장먼저 버린다.
문체부는 한류와 K-POP밖에 없다. 대한민국에 가수사전이 없다. 이난영을 알아볼 사전이 없다. 다양한 음악을 들었지만 아랫사람과 소통이 안된다. 젊은이들은 여러분을 꼰대로 본다. 3학년다니는 아들이 군대갔다. 아들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하지 않겠다고 했었다. 물리 화학이 내 인생에 모슨 도움이 되나? 나는 음악을 하고 싶은데 학교가 나를 괴롭게 했다. 싫었다. 가장 전 근대적인 교육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안했다. 아들 말년 휴가때 이야기다. 아들 입대하기 전에 대학 1-2학년때는 진짜 놀더라.
어느날 군대를 간다고 했다. 아들과 소주한잔 하는데 건너편 테이블에서 소주 1병을 보냈다. 인사를 하니 “거! 아들하고 술먹는 거죠?‘한다. 크게 놀랐다. 아들하고 술 먹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그분들은 이 모습이 부러웠나보다. 이후 나는 아버지와 아들이 술 먹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소통이 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지금의 아버지 때문이다. 문화적 소통이 안되고 있다. 아들 제대말년 밤 12:00경에 만나 한잔했다. 얼린 연어를 강제로 파먹었다. 그리고 아들과 집에서 소주한잔 했다. 아들 말이, 아버지 존경하는데 아버지는 “꼰대”세요. “꼰데”라는 말이 뭐냐? 아버지 경험만 옳고 항상 충고하고 가르치려 하고 돈으로 막는 것이 꼰대다. 자식한테서 꼰대소리 들으니 잠이 오지 않는다. 기분이 황당하다. 그 후 학생이나 청년 아이들과의 모임 2차에서 돈만 내고 빠졌더니 그들이 엄청 좋아했단다.
자꾸 문화적으로 거리를 좁혀가는 환경을 본인들이 만들어 나가야 한다. 조용필 음반을 들으면서 아이들과 대화를 해야 한다. 제7집에 “이제 우리가 가진 것은 무엇인가” “그대여” “사랑하기 때문에” 등 아주 민감하고 성의있게 음반을 만들었다. 1985년에 나온 음반인데 참 내용이 좋다. 그래서 나가수가 되는 것이다. 조용필, 이선희, 배호를 다시 들어야 한다.
[이미자 패티김] 이미자>패티김(김혜자). 패티킴이 말하기를 “나는 우리나라 국민 10%가 좋아했지만 이미자는 전 국민이 좋아하는 가수다.” 최희준 한명숙 현미 패티김. 신중현의 락엔롤, 송창식 이장희의 포크, 쎄시봉. 서태지가 이 4개의 음악을 날려버렸다. 1941년생 이미자, 패티김 1938년생. 올해 패티김이 은퇴선언을 하는데 임성훈 사회자, 임진모가 설명담당으로 초대되었다.
1938년생 20살 위인 패티김이 청바지를 입고 나왔더라. 능란하고 당당하게 말하더라. 빛과 그림자를 불렀다. 기자회견 끝나고 대기실에 들어와 눈물을 흘리는데 임성훈, 임진모는 아무 말 못했다. 168cm이니 지금도 큰 키다. 이미자는 가까이 서서 노래하지 않으려 했다. 이미자 패티김 두사람에게 배울것이 많다. 두사람 다 독종이다. 자신을 잘 관리한다. 패티김은 ‘가수되고 난 후 먹고 싶은 대로 마음껏 먹지 못했다.’ 조용필은 가수되고 나서 길거리 음식을 먹어보지 못했다. 배달해서 먹었으니 맛이 없다고 하더라.
이미자 디너쇼 가격이 국내 1등이다. 자존심이다. 두분 다 노래부르는 기본에 충실하다. 노래는 가장 순수하게 불러야 한다는 것이 두사람의 신념이다. 이미자 = 나는 한번도 노래하면서 꺽거나 구부리거나 한 일없이 내 목소리를 믿고 불렀다. 패티김 = 나는 노래에서 기교부린 적 없다.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 = 가사 좋고 멜리디 좋아. 박춘석 선생님. 이미자는 단 한번도 꺽지 않는다. 나훈아는 포장과 기교가 많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노래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를 좋아한다. 공연은 잘되는데 음반이 잘 안되더라. 이미자, 패티김이 50년 동안 기본을 지켰다.
나도 평론가로서 기본에 충실하고자 했다. 아티스트의 출발점은 자기만족이다. 예술가는 가난하지만 자유를 얻는 것이다. 곡을 쓸 때 그들은 평론가를 생각하지 않는다. 평론가는 2차 직업이다. 가수, 작곡가, 연주가가 있어야 존재하는 평론가이니 2차 직업인 것이다. 비판은 애정이고 칭찬은 비겁할 수도 있다. 음악가에게 서비스하는 것이 평론이다. 무명밴드에게도 내가 먼저 가서 인사한다. 공무원은 나라의 사람이다. 공무원은 지역주민의 사람, 주민에게 봉사하기 위해 공무원이 된 것이다.
공무원이 월급 따지고 승진만 따진다면 순수하지 않는 공무원이다. 기본은 지역에 대한, 나라에 대한 봉사인 것이다. 그 기본을 지키지 않으니 나라가 어지러운 것이다. 이미자 패티김이 50년 버틴 것은 기본에 충실하였기 때문이다. 이분들은 저에게 기본을 갖도록 일깨워 주었다.
[책, 가수를 말하다] 이미자부터 현재의 가수를 말했다. 젊은 친구들이 이미자 패티김을 싫어한다. 뽕짝을 싫어한다. 30대는 접근하기 어렵다. 이런 책은 정부차원에서 예산사업으로 진행해야 한다.
[배호] 요절하지 않았으면 큰 일을 냈을 것이다. 남진 나훈아 때 3등을 하던 가수다. 배호는 훌륭한 가수다. 음악은 그사람의 삶과 관련이 있다. 돌아가는 삼각지. 이 노래가 남일해, 금포동에게 갔다가 남진에게 갔다가 신인가수가 취입하다가 접어버렸고 결국 또다른 신인가수 배호에게 왔다. 배호는 레코드 취입당시 아파서 의자에 앉아 있었고 안개긴 장춘단 공원은 기침하면서 녹음했다. 안개속에 가버린 사람, 당신이는 노래음질이 좋다. 저는 가수가 자기색을 가지고 있고 기본에 충실해야 하고 가수는 음역이 넓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노래를 소화할 수 있다.
10대가수 쇼에서 배호가 노래를 부르는데 배호는 저음가수가 아니라 2옥타브가 올라가는 가수다. 그 소리가 매혹적이다. 풀피리 불며불려 돌아가는 길에서 고음이 나온다. 능금빛 순정을 들어보면 중간에 솟아오르는 부분은 아무나 못한다. 최희준선생이 배호에게 긴장했단다. 아프니까 비애가 넘치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예술가의 삶은 고난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요즘 우리나라 음악하는 아이들은 부자라서 걱정이다. 삶이 어려운 가수가 댄스를 하면 와닿는 것이 있다. 부모 어려운 것 알고 노래부르는 것과 모르고 부르는 것이 다르다. 배호는 비애의 왕자인 것이다.
[조용필] 그겨울의 찻집 - 울고있어도 눈물이 난다. 1950년생 조용필. 63세. 광고 - 조용필, 그대가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팬들이 돈을 모아 중앙지 7개사에 조용필 60세에 신문광고를 했다. 1975년 돌아와요 부산항에. 1976년에 떳다. 1968년에 가수로 데뷔한다. 1974년 자기이름 밴드 = 조용필과 그림자. 7년2개월동안 무명이었다. 눈물의 세월을 음악하는 즐거움으로 버텼다. 이회택씨가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르라 권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김동석의 바이얼린이 들어갔고 초반부분을 조용필이 직접 연주한다. 음색이 아름답다. 애절한 노래, 꽃피는 동백섬에~~ 한방에 떳다. 풍부한 음색의 호소력은 역사의 한순간이다. 정은 더 잘 물렀다. 정이란 무엇일까? 주는걸까 ~ 받는걸까~
조용필이 조통달을 찾아간다. 민요의 대가, 시조창의 명인을 찾아간 것이다. 복식호흡을 배운다. 위대한 결심을 한 것이다. 판소리와 민요의 창법을 연마, 단련했다. 가수는 호흡이 좋아야 한다. 한 음을 얼마나 계속하느냐에 달려있다. 2분동안 한 음을 불러야 한다. (평음). 굴곡음으로 장단을 춰야 한다. 보신각 종 = 두우우웅 떨어지다가 다시 올라가는 종소리처럼 굴곡을 타야 한다. 꺽는 것이 아니라 굴곡을 타야 한다. 바비브레이션의 대가가 엘비스플레슬리다. 평음-굴곡음 -떨림/ 조용필이 2년동안 폭포앞에서 노래를 불러서 목을 다듬었다. 복식호흡과 두성을 활용하게 되었다.
조용필이 3년만에 컴백했다. 라디오 연속극 주제가 “창밖의 여자”를 부르며 조용필이 돌아온다. 나훈아가 처음 칭찬한 가수가 조용필이다. 차라리 그대의 빈손으로 나를 잠들게 하라~이 노래로 돌아온다. 잊으라면 잊지요 잊으라면 잊지요 그까짓것 못잊을까봐. 이렇게 조용필이 변한다.
조용필의 빠른 노래도 슬프다. 조용필의 인생은 2년간의 혹독한 수련, 단련기가 있기에 가왕을 만들었다. 자기혁신이 필요하다. “변즉생 불변즉사”이라는말이 공감이 가더라. 여러분 바뀌어야 한다. 가정, 직장, 나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바뀌어야 한다. 조용필은 평론으로 나가도 대단할 것이다. 조용필은 젊은이들도 잘 모르는 밴드이름을 죽죽 댄다. 조용필은 고인물을 싫어한다. 옛날 것 팔아먹는 것을 싫어한단다. 자기혁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쳐다보지 않는다. 조용필의 자기혁신을 강조한다.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이장희, 조영남(1945). 세시봉 할아버지들 노래잘 한다고 딸이 말한다. 할아버지들 노래가 들린단다. 4명이 모여서 농담하다가 노래를 하는데 딱 멋진 노래를 부르더란다. 그들은 내공으로 노래를 부른다. 대단한 복고현상이 세시봉이다.
여러분은 조용필 중요한 노래는 다 아는 세대다. 음악이 우리에게 유일한 예술이었다. 라디오는 항상 들었고 LP로 음악을 들어온 세대인데 우리가 왜 꼰대가 되었나? 끝없이 자기 혁신을 해야 한다. [싸이] 우리나라 가수가 외국인의 박수를 받은 경우가 흔하지 않다. 음악을 듣고 예술적 감성을 쌓아보자.
국가의 재정을 문화에도 나누어야 한다. 우리나라 산업구조가 재편되어야 한다. 전자, 자동차, 석유화학, 철강, 조선분야가 중요하다. 1990년 국산엔진 개발했다는 기사를 스고 기자를 퇴직했다. 이 5개 분야가 국부를 창출했고 국가기간 산업인 것 맞다. 미래성장 동력이나 차세대 성장동력이니 한다.
나중에 우리가 돈 벌 분야가 무엇인가? 우리 대한민국이 음악을 잘한다. 영화를 잘 만든다. 피에타로 베니스에서 골든 상 받았다. 5년내 깐느에서 아카데미상 받을 것이다. 뮤지컬 세계적이고 현재 5위다. 뮤지컬이 세계 최강이다. 패션잡지 일본책 논노... 이제는 안 본다. 패션도 이탈리아, 파리를 앞지른다. 음식, 관광이 세계적인 대한민국이다.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 문화가 중요하다. 오바마가 선거유세에서 노래 불렀다. 선거전에 밴드가 출연한다. 조용필 7집, 아바, 김광석의 음악평가. 젊은이들과 소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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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는 아시죠? 그럼 배호는 아세요?
[오마이뉴스 허정윤 기자]
"아무리 생각해도 과분하고 믿을 수가 없습니다." 가수 싸이가 옥관훈장을 수상하고 난 뒤 한 말이다. 대한민국은 문화예술 발전에 공을 세워 국민문화향상과 국가발전에 이바지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훈장을 수여한다. 이는 등급별로 5가지가 있다. 그 중 옥관훈장은 4등급에 해당하는 상으로 수상하는 문화예술인에게는 큰 영예다. 어떤 사람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국위선양으로 보았고, 어떤 사람은 중독성과 풍자의 절묘한 조화가 멋진 곡이라고 평했다. '강남스타일'과 관련된 기사와 평론이 연신 쏟아지고 그 인기도 쉬이 사그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인기가 불안한 건 왜일까?
o... 잊히기엔 너무 중요한 시대의 가객(歌客)18일 방송된 KBS 1TV <KBS스페셜-가객(歌客) 배호의 귀환 >편에서는 탄생 만 70주년 된 한 가수를 기리며, 그를 통해 한국 대중 가요사를 들여다보았다. 그 가수는 '누가 울어'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 낀 장충단 공원' '비 내리는 명동 거리' 등의 명곡을 남긴 배호다. 그는 스물아홉 나이로 요절해 이미 우리 곁에 없지만, 그의 주옥같은 명곡은 아직도 남아 사람들에게 불린다. 싸이가 받은 옥관문화훈장을 대중가수 최초로 수상한 이도 배호다.수 배호는 이미자, 현인과 함께 '창법' 칭호를 가진 세 명의 가수 중 한 명이다.
미성으로만 불렸던 트로트가 그를 통해 거칠게 표현되었고 뱃속 깊은 곳에서 울분처럼 올라온 그만의 독특한 창법이 1960년대를 가득 채웠다. 그렇게 배호는 '배호 스타일'로 한국 대중음악에 한 획을 그었다. 전통 트로트와 당시 들어오기 시작했던 외국 노래의 융합 또한 배호의 탄생을 도왔다. 지금도 그의 노래에서는 한국 트로트와 미국 음악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급하게 진행된 경제발전과 정치적 자유가 억압된 시대에 살던 이들은 배호의 노래를 통해 차마 말하지 못했던 슬픔과 회한을 표현할 수 있었다. '비에 젖어 한숨을 토하고, 또 눈물을 흘리고 쓸쓸히 돌아서는 사나이'가 주인공인 가사는 자연스레 그 시대를 살던 '한 사나이'를 떠오르게 한다. '나와 관련 없는 이'라 할지 모르지만 사실 그이가 우리네 할아버지고 이름 모를 공순이, 공돌이다.지금 젊은 세대 중에는 영국의 비틀스는 알면서 배호는 모르는 이들이 많다. 배호의 히트곡 수가 비틀스보다 적기 때문이라고 일단락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음악의 좋고 나쁨을 평하기 전에 대중가요 또한 우리의 역사다. 그러나 현재 국내에는 가수 사전도, 가요 박물관도 없다. 방송시장은 넓어졌는데 콘텐츠가 없다고 한탄할 것 없다. 사실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뿌리 없는 성장은 없다. 있다 하더라도 얼마 못 가 콘텐츠가 그 생명력을 잃는 게 자명하다. 한류를 논하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우리네 대중 가요사를 정확하고 세밀하게 정리해야 한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물론, 세계시장에서 사랑받는 우리네 가요가 그 뿌리와 근본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이는 앞서 말했듯이 '불안한 행복'일 뿐이다.
o... <KBS스페셜 >의 똑똑한 기획 편성< KBS스페셜 >은 심성락, 고 김광빈, 신중현, 문주란 같은 가요계 선후배를 인터뷰하는 것은 물론, 프랑스 재즈그룹 프릭스 리더 에티앙과 동행하며 배호를 보는 외국 뮤지션의 시선도 담아냈다.
음악 평론가 임진모, 박성서는 시청자에게 배호에 관한 정보를 쉽게 설명해주는 동시에 한국 대중 가요사 정리의 필요성을 설득력 있게 전달했다. 배호의 노래로 그 시대를 살았던 팬들의 모습은 지금의 팬덤 문화와는 사뭇 다르다. 그래서인지 시청자로 하여금 현재를 더 돌아보게 한다.이번 <KBS스페셜 >은 편성 부분에서도 영민함을 보였다. 오는 11월 24일과 12월 1일 <불후의 명곡2-배호 편 >(KBS2)이 방영될 예정이다. 12팀의 아이돌 가수가 열띤 경연을 펼치는 가운데 다시 재조명될 배호의 음악이 기대된다. 배호의 음악이나 한국 대중 가요사에 관심이 있는 기민한 시청자라면 <불후의 명곡2 >를 시청한 뒤, <KBS 스페셜 >를 분명 찾아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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