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서읽기 제146회 2019.4.26
(법정과 최인호의 산방 대담) 최인호 지음
■ 책 소개
2003년 4월, 길상사 요사채에서 가진 법정과 최인호의 네 시간에 걸친 대담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이 대담에서 두 사람은 모든 것은 받아들이기에 따라 행복이 될 수도 있고 고통이 될 수도 있다는 법정의 말을 시작으로 사랑, 가족, 자아, 말과 글. 그리고 진리, 삶의 마음가짐, 시대정신, 참 지식, 고독, 베풂과 용서. 종교, 죽음으로 이어진다. 모두 11가지 삶의 주제. 이책에서는 40여장의 곁들인 사진들이 편안하고 의미심장한 멋을 발휘한다.
법정. 1932년 전남 해남 출생. 1956년 송광사에서 효봉을 은사로 출가. 수필가. 2010.3.11. 길상사에서 입적.
최인호. 1945년 서울 출생. 서울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 신문사 신춘문예 입선으로 문단 데뷔. 소설가. 2013.9.25. 선종.
이 책은 원래 최인호가 생전에 법정의 기일(3주기와 4주기)에 맞추어 펴내려고 했다. 법정이 입적한 이듬해인 2011년 이후 병이 깊어져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결국 2013년 9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하지만 최인호는 병이 깊은 중에도 반드시 책을 펴내라는 유지를 남겼고, 그의 뜻은 법정의 5주기를 즈음하여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 무슨 인연이 있을까.
■ 내용 요약
◆ 1부 _ 언젠가는 나로 돌아가리라
•사람은 때로 외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외로움을 모르면 삶이 무디어 져요.
하지만 외로움에 갇혀 있으면 침체되지요.
외로움은 옆구리로 스쳐지나가는 마른 바람 같은
것이라고 할까요.
그런 바람을 쏘이면 사람은 맑아집니다.
- 밤이 내려야 별이 빛나듯 물질에 대한 욕망 같은 것이 모두 사라졌을 때에야 비로소 행복이 찾아온다. /행복이 시작되는 지점
- 그 사람을 통하여 우주를 바라보게 되는 것 /사랑의 원형:
‣사람이든 물건이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소유하려고 하기 때문에 고통이 따르는 것. 소유하려 들면 텅 빈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사라져.
- 사랑이라는 종교의 아름다운 성소 /억겁의 인연, 가족:
‣인관관계의 기본은 信義와 禮節이다. 아무리 속상해도 막말은 하지마라. 상처를 입히고 관계에 금이 간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영혼에는 나이가 없다. 단지 육신을 가지고 나온 시간이 얼마 안 되었을 뿐 몇 번의 생을 겪고 나온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라든가, 배울 새도 없었을 말들이 마구 쏟아져 나온다.
- 주인공아, 속지 마라 /진정한 나에게 이르는 길:
‣사람은 저마다 자기의 특성이 있다. 남을 닮으려고 하는 데서 병이 생긴다. 그건 복사품이지 창조물이 아니다. 이 세상에 단 한 사람으로 초대받은 존재다. 主人公이다.
- 말과 글은 그 사람의 삶을 드러낸다 /말과 글, 그리고 진리 :
‣소설에 대하여. 事實은 아니더라도 眞實하면 돼. 진실에는 普遍性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와 예술 작품에 대하여: 역사는 사실의 기록이고 창작 예술은 가능한 세계의 기록이다. 진실에는 메아리가 있어.
‣ 마음에서 생각이 나오고, 생각에서 말이 나오고, 말에서 습관이 나오고, 습관이 성격이 되고, 성격이 운명을 이룬다.(좋은 말에서는 좋은 열매가 맺고 나쁜 말에서는 나쁜 열매가 맺어. 말과 행동이 業이 되어 결과를 이루게 된다.)
‣ 나이가 들수록 말문은 닫고, 베풂에, 나눔에 인색하지 않은 사람이 되라.
‣ 창조란 진지한 삶을 토대로 이루어진다. 아름다움과 진실을 찾아내어 그에 알맞게 표현하는 창의력이 소설가의 중요한 덕목. 무엇보다 자기의 삶을 진지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
◆ 2부 _ 백년의 명상, 한 마디의 말
•우리는 죽음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고 준비도 안하는데, 그런 상태에서의 죽음은 느닷없는 피살과 같아요.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의 인생은 깊어진다고 봅니다.
- 남은 생을, 그리고 다음 생을 위하여 /삶을 대하는 마음가짐:
‣그 어떤 틀에도 메이거나 갇히지 않는 自由人, 그런 삶을 살고 싶다!
‣ “돈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지요.” “있는 사람에게는 그렇겠지요.”영화 「자이언트」에서). 명예도 그렇다. 지금 이생에서도 끝까지 창작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최인호).
‣나는 남은 삶을 보다 단순하고 간소하게 살고 싶다.(법정).
- 어지러울수록 깨어 있으라 /시대정신에 대하여:
‣현대인들이 자연을 잃어버렸다.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 자연은 사계절의 질서를 어김없이 지키고, 과속도 추월도 없다. 그리고 그 모진 추위와 더위 속에서도 묵묵히 참고 기다릴 줄 안다. 자연은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인다. 지구는 인간만이 사는 곳이 아니다. 국가와 민족에 대한 의식도 前과 다르다. 지구촌의 한 사람임을 명심하라.(법정)
글로벌 시대라는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민족주의를 指向해야 할 때. 그래야 뿌리가 흔들리지 않는다. 시대의 거울이란 역사이고, 민족의 역사에 대해 아는 일은 자기 자신을 아는 일처럼 굉장히 중요하다. 선비 정신 같은 훌륭한 민족성이 사라져 가고 서구에서 유입된 천민자본주의가 득세하는 것도 내 나라 내 민족, 우리 역사에 대한 무관심에서 나오는 것이다.(최인호)
한국 전쟁이 남긴 가장 큰 상처는 동족상잔이라는 경험으로 인한 가치관의 붕괴다.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쟁, 우리의 사상이 아닌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싸움에 엉뚱하게 우리가 동원돼. 군사 독재 시절의 고도성장도 폐해가 커. 오로지 成長이라는 목표 아래 경제 이외의 다른 가치들은 무시돼(최인호)
‣“亂世야말로 好時節이다”(조주 스님). 현대인의 병: 무엇을 갖고도 만족할 줄 모르고 고마워할 줄 모르는 끝없는 야망, 자기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넘치는 정보의 홍수에 휩쓸려 허우적거린다. 아는 것이 많다고 해서 행복한가? 현재는 난세. 어지러운 세상이기 때문에 사람이 깨어 있어야 한다. 만약 외환위기 같은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었다면 한국 사람들은 훨씬 더 무력해졌을지도 모른다. 너무 태평스러우면 잠이 든다(법정).
- 냉철한 머리보다는 따뜻한 가슴으로 /참 지식과 죽은 지식:
‣삶의 신선미를 잃어서는 안 돼. 맑고 투명한 영혼과 정신을 지니는 순간, 바로 그 때가 본래의 자아로 돌아간 순간이다. 그건 어렵다. 설사 참선을 한다해도 話頭에 걸려 순수하고 투명한 상태에 이르지 못한다. 화두로부터도 자유로워져야 한다.(법정)
‣ 자기를 관찰하는 것이 깨어있는 것. ‘나는 누구인가’(법정의 話頭). 성당에서 ‘묵상하라’, ‘기도하라’는 것도 천주님을 통해서 결국은 자기 내면에 잠들어 있는 주님을 일깨우라는 얘기.
‣ 해마다 맞는 봄이지만 불치병에 걸렸을 때 보는 봄의 풍경은 정말 다르다. 「바보의 벽」 때문이다(무엇에 얽매이거나 갇혀 있어서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에게 좋은 화두는 심청이 얘기. 사람은 모두 공양미 3백석이 있어야만 눈을 뜰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눈 뜨면 되는 건데…….
‣참된 지식이란 사랑을 동반한 지혜. 죽은 지식이란 메마른 이론이며 공허한 사변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냉철한 머리가 아니라 따뜻한 가슴이다. 그러면 하나의 개체인 나 자신이 전체인 우주로 확대될 수 있다.(법정)
‣남을 변화시키려 하기보다는 스스로 깨어서 변화하려고 노력하는 것, 지성인보다 더 좋아하는 ‘영성인’이다.
- 고독을 즐기고 외로움을 받아들이라 /고독에 대하여:
‣ 孤獨을 즐기려고 사하라 사막으로 나가 은둔 생활을 하고 돌아온 토마스 머튼. “나는 내가 굳이 사막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는 것 알았다” 내 삶 속에서 광야를 발견하는 게 필요하다. 죽음이야말로 고독의 최고 단계다.
‣삶의 귀한 태도: 그 무엇에도 쫒기거나 서둘지 않는 것, 자신에게 주어진 여건과 상황에 순응하는 것, 그러면서 순간순간 자신의 삶을 음미하는 것. 느림과 여유의 삶.
- 최고의 용기는 용서를 구하는 것 /베풂과 용서, 종교:
‣살아 있을 때 가진 물건을 나눠야 한다. 죽은 다음에는 내가 가졌던 물건들도 동시에 빛을 잃고 생명력을 잃게 된다. 교회에서든 절에서든 흔히 베푼다는 말을 쓰는데, 사실은 나누는 것이다. 수평적인 관계다. 우리는 시간이 많고 가진 게 많기 때문에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있기 때문에 나눌 수 있는 것이다.
‣ 용서의 개념에 대해: 수직적인 냄새가 난다. 용서라기보다는 서로가 감싸주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관용 정신이 필요하다.
성철 스님, “나는 기독교를 좋아한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한 가지는 바로 용서의 개념이다. 내가 너를 용서할 수 있다니, 어떻게 내가 너를 용서할 수 있겠는가!”
‘내가 미워하고 용서할 수 없는 저 사람이 하느님으로부터는 용서받은 존재이다’라는 것을 발견하는 일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용서.
- 죽음 또한 삶의 한 과정 /죽음이라는 여행:
샘은 늘 새 물이 솟아야. 자꾸 퍼내야 한다.(삶도 그렇다). 사람이란 농부가 되었든 대학 교수가 되었든 탐구하는 노력이 끝나면 그때부터 늙음과 죽음이 시작되는 것.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천 년이 넘었는데, 여전히 자라고 열매를 맺고 있다는 사실. 육신에는 세월이 있을망정 영혼에는 나이가 없기 때문에 영혼의 나이를 생각하며 산다면 지금‘ABC'부터,’하늘 천 따 지‘부터 시작해도 돼.
‣ 죽음 앞에서 두려워한다면 지금까지의 삶에 소홀했던 것입니다. 죽음은 누구나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자연스러운 생명 현상입니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자!
■ 독후 소감
책 내용은 “법정의 입적, 그리고 다시 시작된 이야기”이고 최인호의 마음 속 대화가 앞뒤에 나타나 있다. 처음엔 좀 어리둥절했다. 법정 스님의 죽음을 계기로 빈소를 찾아가, 회상하면서 과거 7년 前(2003.4월 산방대담을 말함)의 만남이 그리도 중요한 의미가 있는가? 그걸 책으로 엮을 의미가 있는가? 궁금하기도 했다.
책 내용을 음미해보니, 본문 보다는 앞부분 ‘들어가는 길’에 이 책의 전체 분위기가 다 들어있었다. 2010.3.11. 법정 스님이 78세의 세수로 입적하자 당시 65세의 암투병중인 최인호 작가는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길상사 빈소를 방문한다. 책의 본문 내용(주1은 대담이지만 실제로 감동을 주는 것은 최인호의 법정 스님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라 생각된다.
최인호는 생의 말년에 왜 이 책을 마음에 크게 두었을까? 최인호는 법정 스님과의 인연은 전생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宿世의 것임을 깨달았다. 법정 스님과 생전에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김수환 추기경은 부처의 가르침을 철저히 지켜 나가는 수행태도를 보고 “내가 한 가지 갖고 싶은 것이 있다면 바로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소유’하고 싶다.”라는 말을 했는데, 이를 깊이 동감하고 있었다. “법정 스님과 나는 둘이 아니다.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니다. 우리는 하나다. 태어나되 태어남이 없고, 죽되 죽음이 없으며, 있지 아니하되 있고, 없지 아니하되 없는 유일무이한 하나다.”(p29)
법정과 최인호는 잡지《샘터》가 매개가 되어 인연이 맺어졌다. 창간 후 십여 년 두 분은 《샘터》에 글을 연재하고 있었다.(주2 최인호가 법정에 대해 느낀 감정은 처음에는 질투심이자 막연한 라이벌의식도 있었다지만 만나자마자 서로의 마음은 통했던가 싶다. '법정 스님이 부처의 길을 좇아 修道의 나그네 길을 가고 있다면 나 또한 부처의 길을 좇아 가족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또 다른 나그네가 아닐 것인가.'(p21)
생전에 열 번 남짓한 만남. 최인호는 1980년대 초반 스님을 샘터에서 처음 뵈었을 때, 스님은 앞으로 뭘 쓰겠느냐고 물었다. “불교에 관한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겁도 없이 막연히 불교에 대한 초발심적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던 초창기. 아직 가톨릭에 귀의하기도 전의 일이었다. 그런데도 스님은 말했다. “쓰고 싶어 하면 언젠가는 쓰게 되겠지요. 業이란 것이 그런 것입니다. 말과 행동이 업이 되어서 결과를 이루게 됩니다.” 그랬다. 법정이 話頭를 점지해 주셨고, 그 화두는 「길 없는 길」을 쓰게 된 최초의 원동력이 되었다.
이로부터 십여 년 후(1990년대 초) 소설「길 없는 길」을 쓰면서 더욱 법정스님과 깊은 교감을 느낀다.
불가의 수행자로, 가톨릭 신자로 각자의 종교관에 바탕을 두고 대화를 풀어나가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두 갈래가 아니다. 文學이라는 ‘宗敎’의 道伴으로서 한 시대를 같이 느끼고 살아온 그들이기에 두 사람의 언어는 절묘한 화음을 이루며 깊고 넓은 울림을 만들어 낸다. 대화의 끝에 이르러 최인호가 묻는다. “스님, 죽음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법정이 답한다. “몸이란 그저 내가 잠시 걸친 옷일 뿐인 걸요.” 이 우주의 근원을 넘나드는 사람에겐 죽음 같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본문 뒤에 ‘나오는 길’에서는 법정 스님의 은사인 효봉 스님의 출가 동기, 효봉의 법정에 대한 엄중한 가르침(효봉 스승은 시물(施物)과 시은(施恩)을 무섭게 생각했다. 우물가에 어쩌다 밥알 하나만 흘려도 평소 그토록 자비하신 분이 화를 내곤 하였다. 초 심지가 다 타서 내려앉기 전에 새 초를 갈아 끼지 못하게 하였다. 수행자는 가난하게 사는 게 곧 부자살림이고 되도록 몸에 지니지 않는 無所有야말로 참으로 全部를 갖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씀하였다)을 되새긴다.
빈소를 떠나다가 발견한 영춘화를 발견하고 독백을 한다. “너도 그토록 봄을 기다렸느냐. 그리하여 영춘화가 되었느냐. 나 또한 봄을 기다렸다. 그래서 나 또한 영춘화가 되었다…….꽃잎은 떨어지지만 꽃은 지지 않는다. 법정이란 이름의 그대는 꽃잎처럼 떨어졌지만 하늘과 땅이 갈라질 때부터 있었던 本地風光과 부모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眞面目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잘 가십쇼, 큰 형님.” 저자의 마음에 나의 감동이 크다.
이 독후감은 원래 대호 거사님의 발표 차례였다. 그런데, 임은 지금 노환으로 사경을 넘나들고 계시다. 팔십 인생을 바로 코앞에 두고, 오늘을 넘길까? 내일은 넘길까? 그런데, 지난 달 그는 이 책을 굳이 선택해서 같이 읽자고 하였다. 법정 스님도 9년 전에 가셨고, 최인호 작가도 떠난 지 6년이 다된다. 법정 스님과의 일체감을 간직하고 죽으면서도 저자는 책 출판을 당부해서, 이제 발간한지 4년이 다되고 사람들에게는 잊힐 만한 이때에! 그 책을 끝내 다 읽고 쥐고 계셨다가 아내에게 넘겨주고 읽어보라 하셨다한다. 대호님과 십여 년 불서읽기 모임을 계속하면서 철저하게 수행하고, 모임의 중심을 지켜나가셨던 지난 모습을 생각하며, 그동안 아꼈던 취미 수집품과 손수 만든 목각 작품, 심지어 다듬어 둔 주장자 까지 다 나눠주셨던 예감을 되새겨보면서, 나 또한 남은 인생을 진실하게 살 것을 다짐해 본다.<끝>.
주1) 2003.4월 1970년 4월 창간 잡지 《샘터》의 지령 400호를 맞이하여 법정스님과 나눈 山房對談 ‘산다는 것은 나누는 것입니다’
주2) 최인호: 연재소설 「가족」을, 법정은 수필 「산방한담」을 연재중이었음. 잡지를 대표하는 간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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