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중고로 교환한 뮤직맨 스팅레이 5현. 베이시스트 루이스 존슨과 플리, 그리고 로버트 트루질로를 상당히 좋아하다 보니 저절로 그들이 사용하는 베이스인 뮤직맨에 끌리더군요. 그래서 원래 갖고 있던 데임 재즈를 처분하고 중고품을 덜컥 질러버리고 말았습니다. 사실 이거 사느라고 한 석달간 초긴축재정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이래저래 세팅 좀 손보고, 좀 써보고 난 후 대강 이놈이 어떤 놈인지를 파악하고 나서 쓰는 글입니다. 내 주관이 심각하다 싶을 정도로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1. 외관
외관이야 다 아시다시피 톤 컨트롤부와 연결되어 있는, 다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뮤직맨만의 특이한 픽가드가 일단 눈에 들어오고, 4:1이라는 비대칭의 헤드머신 배열이 또 눈에 띄죠. 만들어진 지 12년이나 된 놈을 중고로 샀으니 상태는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으나 예상외로 중고치고는 상당히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우선 내가 가지고 있는 놈은 옵션이 붙어있지 않습니다. 헤드매칭도 없고, 펄 또는 쉘 픽가드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내추럴이나 좀 스페셜한 컬러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스팅레이답게, 엄청난 뽀대를 자랑합니다.
반투명 틸 그린으로 페인트되어 있으며, 두세 군데 1~2mm 정도로 칠이 벗겨진 흔적이 존재합니다. 아무래도 첫 주인이 이현석 프로젝트와 김경호밴드를 거쳤던 베이시스트 한철재씨이다 보니, 이놈은 여기저기에 라이브의 흔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헤드 끝에 찍힌 자국이 대여섯군데 있었고, 바디에도 마찬가지였구요. 게다가 오래 쓴 놈이다 보니, 뮤직맨의 고질병인 거무틱틱하게 녹슨 픽업 폴피스와 거의 원래 색을 잃어버릴 정도로 새카맣게 때가 탄 넥 뒷면은 어쩔 수 없었지요.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뮤직맨 본사에서 링크한 사진. 대충 요로코롬 생겼답니다.
2. 재질
뮤직맨 베이스 하면 떠오르는 바디재질은 애쉬입니다. 어니볼 사에 인수합병되기 이전에는 포플러를 사용한 경우도 있고, 요즘 나오는 요상하게 생긴 제품라인인 '봉고 (Bongo)' 에서는 베이스우드를 사용한다고 하지만 뮤직맨 하면 역시 애쉬가 떠오르는군요.
요즘 나오는 새로운 뮤직맨 베이스 '봉고'.
BMW자동차의 디자인팀에게 디자인을 의뢰했다죠.
12년이라는 세월이 지난데다가 올드뮤직맨 특유의 얇은 피니쉬로 인해 나무가 계속 건조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놈은 상당한 무게를 지니고 있었고, 반투명 피니쉬가 되어 있어 애쉬의 굵은 나뭇결이 밖으로 보였습니다. 또한 바디의 어디에도 붙인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 베이스의 바디는 원피스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넥은 버드아이 메이플이며, 지판은 상당히 질 좋은, 기름지고 짙은 초콜릿색을 띤 로즈우드 로 되어 있었습니다. 처음에 한철재씨가 주문제작한 베이스이다 보니 상당히 양질의 목재로 제작된 듯 합니다.
하드웨어는 매우 견고해 보입니다. 5개의 헤드머신은 뮤직맨 자체 헤드머신이며, 샬러 (Schaller. 기타/베이스용 하드웨어를 제작하는 독일 회사. 그 정밀도는 정평이 나 있다) 사에서 OEM으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외관이 아주 유사하더군요. 브릿지의 플레이트는 브라스 이며, 브릿지 새들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알고 있습니다.
무식하게 큰 뮤직맨 5현 픽업은, 픽업 폴피스에 거무틱틱하게 녹이 슨 것을 빼고는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볼륨과 3밴드 EQ의 노브들 (포텐셔미터가 아니라, 그냥 노브 캡) 은 약간 녹슬어 있었습니다.
3. 사운드
아마도 여기서 할 말이 가장 많을 것 같군요. 악기를 뭘로 만들었건 사운드가 가장 중요하니까 말입니다.
우선 이 악기를 쳐 본 결과, 신품가 180~200만원대의 5현 베이스 중 이정도로 로우 B현의 퀄리티가 좋은 제품은 없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로우 B 현의 텐션과 그 무게감, 그리고 음의 선명도에, 개인적으로는 대만족입니다.
EQ는 부스트와 컷이 모두 가능하도록 되어 있는데, 우선은 트레블-미들-베이스를 모두 플랫에 놓고 연주해 보았습니다. 그 상태에서도 애쉬+로즈우드의 조합으로 인해 중음역이 강조되고 고음역에서는 상당히 쏘는 듯한 소리가 났지요.
EQ의 가변성은 조금 아쉬운 정도였달까요. 악기 자체의 톤을 변화시킬 정도는 아니었으며, 비유하자면 강한 맛의 음식에 약간의 양념이나 향신료를 더하는 정도였습니다. 매운 맛의 카레에 후추 좀 더 치고 덜 치는 듯한 느낌이었죠.
스팅레이 5현의 일렉트로닉스가 가진 최대의 무기는 바로 '코일셀렉터' 인데, 이 3단의 스위치는 스팅레이 5현의 톤 가변성을 최대한으로 끌어내 주며, 가변성이 다소 부족한 EQ의 단점은 여기에서 거의 모두 커버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기타와 베이스의 심장은 픽업이고, 양질의 목재를 사용했다는 가정하에서 픽업의 성향이 바뀌면 사운드는 확연하게 달라집니다. 뮤직맨의 코일셀렉터는 이 픽업에서 코일을 선택하여 작동시킴으로써 베이스의 소리를 훨씬 더 다양화시킬 수 있게 하였습니다. 코일을 선택하여 슬라이드 레버로 되어 있는 코일셀렉터는 가장 위에 놓았을 때가 시리즈 (Series, 직렬. 두 개의 코일이 하나로 묶여 작동한다) 이며, 가운데 놓였을 때는 뒤에 위치한 코일 하나와 픽업 아래에 숨겨진 험 제거용 팬텀 코일이 함께 작동하여 픽업은 사실상 싱글 픽업으로 작동하게 됩니다. 그리고 맨 아래로 셀렉터를 이동시키면 패러렐 (Parallel, 병렬. 두 개의 코일을 각각 따로 극성이 다르게 작동시켜, 험을 제거하게 되어 있다) 모드로 작동합니다.
각각의 사운드 특성은, 내 귀로 들어봤을때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ㄱ. 셀렉터 1-시리즈 모드
중고음역이 조금 비는 듯한 소리가 나고, 톤이 밝은 뉘앙스를 갖습니다. 슬랩보다는 헤비한 핑거피킹 혹은 피크 연주에 더 어울릴 듯.
ㄴ. 셀렉터 2-싱글 모드
고음역이 강조되어 날카로운 뉘앙스가 살아나며, 험버커의 텁텁한 맛이 다소 덜해지지만 반면에 펀치감이 약간 떨어지는 느낌이 듭니다. 슬랩보다는 가벼운 핑거피킹 연주에 어울릴 톤입니다.
ㄷ. 셀렉터 3-패러렐 모드
개인적으로 가장 스팅레이답다고 생각하는 톤이며, 또한 내가 가장 즐겨 쓰는 톤이기도 합니다. 상대적으로 중음역이 강조되어 있고 조금 다크한 분위기의 톤을 내지요. 슬랩뿐 아니라 거의 모든 종류의 연주에 사용해도 좋을 듯.
그러나 스팅레이의 톤에 있어서 어떤 짓을 해놔도 죽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바로 스팅레이 특유의 그 드라이하고 텁텁한 뉘앙스일 듯 합니다. 록 장르에서 뮤직맨 베이스가 다방면으로 사용되는 (프로그레시브 밴드 킹 크림슨의 토니 레빈, 전 오지 오스본/현 메틀리카의 로버트 트루질로,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플리, 헬로윈의 마커스 그로스코프 등...) 이유가 바로 그것이겠지만요. (사실 저만 해도 뮤직맨의 그 점이 상당히 마음에 들어서 산 겁니다) 뮤직맨 5현 픽업이 싱글 전환 가능하다 해서 펜더 재즈 베이스의 촉촉한 싱글 소리를 기대한다면, 그건 치명적인 오산이 될 듯 합니다. 특히 리어에 하나만 덩그러니 박혀있는 픽업 구성이 그런 드라이한 톤에 한 몫을 합니다. 넥 쪽에 픽업이 없어, 부드러운 저음은 수음할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4. 총평
다양한 톤, 그러나 지나친 개성
뮤직맨 스팅레이 특유의 드라이하고도 긴장감 넘치는 톤을 5현에 그대로 옮긴 걸작이며, 한 대 가지고 있으면 여러모로 쓸 데가 많은 베이스인 듯 합니다. 또한 코일셀렉터 덕분에 톤 가변성이 좋다는 장점을 함께 가지고 있지요. 다만, 아예 록음악에 투신할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장르를 소화해내야 하는 세션맨의 경우, 지나칠 정도로 캐릭터가 강한 이 악기는 메인으로 사용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네요.
번거로우시겠지만.. 사운드 테스트 하실 때 사용하신 앰프에 대해서도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얼마전 우연찮게 아는 분을 통해서 Crimson16thBass 님과 같은 사양의 스팅레이가 수중에 들어와서 이걸 어찌써야하나 고민하던 중에 좋은 사용기 접하게 되어 감사드립니다(__)
소리 들어본 앰프는 Ampeg SVT-4 PRO입니다. 제 앰프는 아니고 낙원상가서 살짝 들어봤죠...; 그리고 나중에 사용해본 앰프는 그보다는 더 작은 앰프인데 Hartke 1210 콤보앰프였습니다. 두 앰프의 성향과 성능은 상당히 차이가 있지만, 그 두 곳에서도 스팅레이 5현은 자기 톤을 크게 잃지 않더군요.
첫댓글 정말 좋은 글이네요. 요점도 알아보기 쉽게 신경써주신것도 정말 고맙습니다. ^^; 안그래도 뮤직맨의 리뷰를 잘 못봐서 아쉬웠는데...
참, 기타색 정말 멋있네요. ^^;
번거로우시겠지만.. 사운드 테스트 하실 때 사용하신 앰프에 대해서도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얼마전 우연찮게 아는 분을 통해서 Crimson16thBass 님과 같은 사양의 스팅레이가 수중에 들어와서 이걸 어찌써야하나 고민하던 중에 좋은 사용기 접하게 되어 감사드립니다(__)
소리 들어본 앰프는 Ampeg SVT-4 PRO입니다. 제 앰프는 아니고 낙원상가서 살짝 들어봤죠...; 그리고 나중에 사용해본 앰프는 그보다는 더 작은 앰프인데 Hartke 1210 콤보앰프였습니다. 두 앰프의 성향과 성능은 상당히 차이가 있지만, 그 두 곳에서도 스팅레이 5현은 자기 톤을 크게 잃지 않더군요.
좋은 정보 감사드리구요~^^ 나중에 또 시간되시면 하케1210 사용기두 공유해주세요^^ㅋ
헐.... 이거 제가 작년초쯤에 지방에 사시는 어떤분에게 팔았던 악기인데 ^^; 잘쓰시길 바래요 ^^
내가 가장 사고싶어하는....ㅠㅠ얼마정도에 사셨어요?? 12년 됬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