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성(北漢山城) 13성문(城門) 종주기(從走記)
□ 산행일시/ 2013년 5월 25일 토요일 맑음
□ 참가인원/ 집시김과 무원마을
□ 산행진행상황
07시 20분 : 파주집 출발
08시 30분 : 구파발역 2번출구
08시 50분 : 북한산성 입구/ 산행시작
09시 18분 : 첫번째 성문 - 대서문(150m)
10시 19분 : 의상봉(502m)
10시 28분 : 두번째 성문 - 가사당암문(488m)
11시 08분 : 세번째 성문 - 중성문(200m)
11시 27분 : 부왕사지
11시 45분 : 네번째 성문 - 부왕동암문(521m)
12시 05분 : 나월봉(635m)
12시 39분 : 칠성봉(715.7m)
12시 47분 : 다섯번째 성문 - 청수동암문(694m)
12시 52분 : 칠성봉(715.7m)
14시 56분 : 문수봉(727m)
13시 03분 : 여섯번째 성문 - 대남문/문수봉암문(663m)
13시 25분 : 일곱번째 성문 - 대성문(625m)
13시 44분 : 여덟번째 성문 - 보국문(567m)
13시 58분 : 칼바위능선 갈림봉
14시 11분 : 아홉번째 성문 - 대동문(540m)
14시 27분 : 시단봉(동장대)
18시 39분 : 북한산 대피소
14시 50분 : 열번째 성문 - 용암문(584m)
15시 50분 : 열한번째 성문 - 위문/백운봉암문(725m)
16시 15분 : 북한산 정상 백운대(836.5m)
17시 27분 : 여우굴
18시 25분 : 열두번째 성문 - 북문(430m)
18시 33분 : 원효봉(505m)
19시 03분 : 열세번째 성문 - 서암문/시구문(180m)
19시 15분 : 효자리 신둔마을회관/ 산행종료
21시 10분 : 파주집 도착
<총 산행시간/ 10시간 25분>
□ 산행지도
산행경로/ 대서문~가사당암문~중성문~부왕동암문~청수동암문~대남문~대성문~보국문~대동문~용암문~위문~북문~서암문
<지도를 클릭하면 확대됨>
□ 산행개요
북한산성은 삼국시대에 백제가 위례성(慰禮城)에 도읍을 정한 뒤 도성을 지키기 위하여
서기132년 백제 개루왕 5년에 토성(土城)으로 최초로 축조 하였다.
특히 이 지역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쟁탈전을 벌였던 곳으로
조선시대에는 도성을 지키는 중요한 곳이었다.
이 북한산성은 고구려의 남진을 막는 중요한 구실을 하였으며,
근초고왕의 북진정책하에서는 북정군(北征軍)의 중심요새지가 되기도 하였다.
삼국시대에 삼국이 모두 군사요지로 여겨 치열한 쟁탈지가 되었는데,
475년(개로왕 21년) 고구려의 장수왕이 이 성을 함락시키고
개로왕을 전사 시킴으로써 백제는 웅진성(熊津城)으로 도읍을 옮겼다.
그 뒤 553년(진흥왕14년) 신라가 한강 하류까지 진출하여 북한산성을 차지 하고서
북한산 비봉능선 정상에 진흥왕순수비를 세웠다.
603년(진평왕 25년) 고구려군이 신라의 북한산성을 포위했으나 곧 격퇴당했다.
또한 661년(무열왕 8) 고구려 장군 뇌음신(惱音信)이 말갈군과 함께 20여 일 동안 포위 공격했을 때
성주 동타천(冬陀川)이 성 안의 주민을 동원해 끝까지 성을 지켰다.
고려시대에는 현종이 거란의 침입을 피해 고려 태조의 재궁(梓宮 : 임금의 棺)을 옮긴 일이 있는데
이때 성을 증축했으며, 1232년(고종 19년) 이곳에서 몽골군과 격전을 벌였다.
조선시대에는 양 난을 겪은 뒤 도성 외곽성을 강화하자는 축성론(築城論)이 일어나,
숙종 37년(서기1711년) 음력4월 3일 착수하여 6개월 만인 10월 19일에
백운봉, 만경봉, 용암봉, 문수봉, 의상봉 등 북한산의 주요 봉우리를 연결하는 9.5km의 석성을 완성하였다.
성의 규모는 둘레 7,620보(93,716m), 면적 약200여만평, 높이3~5m의 석성을 완성시켰다.
이 산성은 북한산의 여러 봉우리를 연결하여 축조한 초곡식 석축산성이다.
축성인력은 3군문(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이 산성의 각 구역을 담당하여 축성하였는데
수문 북변에서 용암봉까지 2292보의 구간은 훈련도감에서 축성하였고,
용암봉 남변에서 보현봉까지 2821보는 금위영에서 축성하였고,
보현봉에서 수문 남변까지 2507보는 어영청에서 각각 담당하여 축성하였다.
용도는 임란이어처(臨亂移御處) 즉, 위급시 임금과 백성을 피신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축성 하였다.
성의 규모는 130칸의 행궁, 140칸의 군창(軍倉), 12곳의 사찰,
2곳의 암자와 8곳의 창고, 99곳의 우물, 저수지 26곳과
성벽위에서 적을 공격할때 몸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시설인 여장이 2807첩이 있었으며
99곳의 우물과 26곳의 작은 저수지, 그리고 8곳의 창고가 있었으며
숙종37년 수축 당시13곳의 성문(대문6, 암문7)을 건축하였으며, 1년이 지난 후
지대가 평탄한 대서문쪽 방면의 수비보완으로 성내에 중성문을 축조하여 총14기의 성문이 있었다.
산성의 지휘본부인 장대는 동장대, 남장대, 북장대가 있었는데 현재 동장대만 남아 있다.
이 북한산성은 길이12.7km, 면적543,795㎡ 규모의 산성으로 1968년 12월 5일 사적 제162호로 제정 되었다.
□ 산행사진
지난 2007년 11월 18일날 북한산성의 13성문 중에서 북한산성 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중성문을 제외하고
12곳의 성문을 효자리 신둔마을회관 앞에서 출발하여 서암문을 시작으로 종주를 하였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현존하는 북한산성의 13곳의 성문을 이번에는 반대로 북한산성 입구에서 출발을 하여서
대서문을 시작으로 대서문~가사당암문~중성문~부왕동암문~청수동암문~대남문~
대성문~보국문~대동문~용암문~위문~북문~서암문의 순서로 일주하기로 계획을 하고 파주집을 나서서
9709번 광역버스를 타고 상쾌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통일로를 달려서 구파발역 2번출구 앞에서
오늘 산행의 동반자 집시김을 만나서 버스를 한번 타고 북한산성 입구에서 북한산성 13성문 종주산행을 출발하였다.
대서문(大西門)
의상봉 서북쪽 방향으로 해발고도 150m 높이의 낮은 구릉지에 위치하고 있는 성문으로 북한산성에 있는
현재 실존하는 13성문 중에서 서쪽을 대표하는 성문으로 북한산성의 정문이다.
1712년 숙종38년 숙종이 북한산성에 행차하였을때 이 대서문을 통하여 성내로 들어갔다고 한다.
1958년에 최헌길 경기지사의 주도로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된 문루(門樓)는 북한산성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
대서문에서 우측으로 산성 성곽을 따라서 의상봉으로 올라서고...
의상능선으로 올라서서 바라본 북한산 정상부의 장엄한 모습과 용출봉으로 이어지는 의상능선의 모습
넓은 공간에 헬기장이 설치되어 있는 의상봉(義相峰) 정상의 모습
의상봉 정상에서 바라본 용출봉~용혈봉~증취봉으로 이어지는 의상능선의 모습
가사당암문(袈裟堂暗門)
의상봉과 용출봉 사이의 고개마루에 위치하고 있는 고도 488m에 암문으로
암문(暗門)이란 노출을 꺼리는 출입통로로 출입문 위에
문루(門樓)를 세우지 않고 눈에 띄지 않게 몰래 출입할 수 있도록 만든 문이다.
가사당암문에서 중성문으로 향하면서 산성계곡의 맑은 계곡물이 보이는 계곡길을 지나고...
중성문(中城門)
북한산 노적봉과 증취봉 사이의 협곡에 쌓은 중성(重城)에 설치한 성문으로
이 중성문은 1998년에 문루를 올리고 성벽도 말끔히 복원하였다.
현재의 중성문은 석축기단인 육축부, 그 위에 올려진 문루와
무지개 모양의 출입구인 홍예문을 갖춘 전형적인 대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중성문 바로 옆을 흐르는 계곡에는 수문이 설치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계곡을 따라 한동안 오르다가 중흥사지 부근에서 계곡을 건너서 부왕동암문을 향하고...
부왕사지(扶旺寺址)를 지나고...
부왕동암문(扶旺洞暗門)
부왕동암문은 나월봉(羅月峰)과 증취봉(甑炊峰) 사이의 고도521m 지점에 설치되어 있는 암문으로
"부왕동" 이란 성곽안 동쪽의 부왕사로 내려가는 계곡 일대를 일컫는 지명으로 보이는데
이 부왕동암문은 북한산성에 설치되어 있는 7곳의 암문 중에 가장 규모가 크고,
정식 홍예(虹霓)는 아니지만 위쪽 성돌을 둥글게 파서 홍예문 처럼 만든 아름다운 암문이다.
홍예란 성문 얼굴의 윗 머리가 무지개 같이 반원형이 되게 만든 구조물 또는 그러한 구조로 만든 문이다.
의상봉과 대남문의 중간 지점에 설치되어 있는 이정목
잠시 능선 좌측으로 북한산 주봉들의 장엄한 모습을 바라보고...
지나온 부왕동암문으로 가는 방향과 대남문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판과 이정목이 보이고...
정상부에서 간단하게 김밥을 먹으며 잠시 쉬었던 나월봉과 장엄한 모습의 북한산 주봉들의 모습
역광속에 능선 우측 방향으로 바라본 비봉능선의 모습
방금 지나온 의상능선의 모습이 역 "C" 자형으로 멋지게 휘어져 보이고 뒤로 원효봉으 모습이 보이고 있다.
정상에 넓은 공간의 안부가 있는 해발고도 715.7m의 칠성봉 정상의 모습
칠성봉에서 바라본 나무가지 사이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문수봉
청수동암문(靑水東暗門)
청수동암문은 칠성봉(715.7m)과 문수봉(727m) 사이의 고도694m에 설치되어 있는 암문이다.
이 암문은 1711년(숙종37년)에 북한산성을 축성하면서 설치한 14성문 중에서 8곳의 암문 중의 한 곳이다
대남문(大南門)
북한산성의 동서남북 4방위중 남쪽을 대표하고 있는 성문으로 처음 축성 당시에는
문수봉암문(文殊峰暗門)으로 부르던 문으로 문수봉(727m)과 보현봉(714m) 사이의 안부에 설치되어 있다.
대남문을 지나서 성곽을 따라서 대성문을 향하면서 뒤 돌아본 대남문과 뒤로 문수봉 전위봉의 모습
우측으로 이어지는 보현봉 갈림길을 지나고...
대성문(大城門)
대성문은 북한산성의 동남쪽의 고도625m에 설치되어 있는 성문으로 형제봉능선을 타고
서울의 북쪽 평창동과 정릉동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관문으로
성문 하부는 홍예 모양으로 통로를 내고 성문을 달아 여닫을 수 있도록 하였다.
상부 단층 문루는 우진각 지붕 형태인데 이는 지붕 네면 모두에서 불화산 공격을 막기위한 것이다.
이 대성문은 13성문 중에서 문루가 있는 6곳의 성문중에 가장 큰 문으로 문루는 1992년에 새로 복원을 하였다.
앞쪽으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는 북한산 주봉들이 모여 있는 암릉의 장엄한 모습
장쾌하게 이어지는 산성주능선의 성곽길
보국문(輔國門)
정확한 본래의 명칭은 동암문(東暗門)으로 대성문과 대동문 사이의 고도567m 높이에 설치되어 있다.
오른쪽 방향으로 정릉으로 이어지는 칼바위능선이 이어지는 갈림길을 지나고...
대동문(大東門)
북한산성의 성문 중에서 동쪽을 대표하는 성문으로 1993년에 문루를 새로 복원하였다.
성문 앞에는 그야말로 넓은 안부가 있어서 늘 산행인들로 붐비고 있고...
이 곳 대동문에서 북동쪽 방향으로 시작되는 진달래능선이 우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복원된 성곽을 따라서 시단봉을 향하고...
시단봉(610m) 정상에 자리잡고 있는 세곳의 장대(남장대, 북장대, 동장대)중 현존하는 동장대의 모습
시단봉에서 바라본 의상능선의 나한봉, 칠성봉, 문수봉과 뽀족하게 보이는 보현봉 등의 모습이 보인다.
항상 이곳을 걸으면서 편안함을 느끼는 통나무를 박아논 멋진 산행로
북한산 대피소에 설치되어 있는 이정목과 묘한 형상을 하고 있는 나무 한 그루
용암문(龍岩門)
대동문 북쪽에 설치되어 있는 용암문은 용암봉 아래에 있어서 용암봉암문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암문은 그 모양이 홍예가 아닌 방형이라는 것이 특징이며
상부에 문루를 만들지 않는데 용암문은 동암문인 보국문과 달리 성 내부쪽을 홍예형으로 만들었고
용암문 상부의 여장은 무너졌던 것을 1996년에 새로 복원한 것이다.
노적봉(露積峰 716m)
만경대 사면의 암릉길을 가면서 바라본 노적봉의 모습으로 어린시절 고향인 고양시 쪽에서
바라보면 꼭 인수봉 같이 멋진 모습의 거대한 암봉으로 보이는데 이쪽 방향에서는 이런 모습으로 보이고 있다.
염초봉과 원효봉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고...
앞쪽으로 백운대의 거대한 암릉의 모습이 장엄하게 보이기 시작하는데...
저 암릉 가운데 클랙 부위는10여년 전에 한참 북한산 릿지 산행을 즐기던 코스로 반가운 모습이다.
위문/ 백운봉암문(衛門/ 白雲峰暗門)
북한산 정상인 백운대와 만경대 사이 고도725m의 안부에 설치되어 있는 암문으로
북한산성의 13성문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일제시대부터 위문이라 부르고 있다.
만경대(萬景臺 799.5m)
백운대로 오르면서 바라본 정상 부위의 홈이 파인 V 계곡의 멋진 모습이 보이는 만경대는
북한산의 여러 봉우리 중에서 백운대(836.5m), 인수봉(810.5m)에 이어서 세번째의 높이를 자랑하는 봉우리이다.
인수봉(仁壽峰 810.5m)
북한산에서 백운대에 이어서 두번째로 높은 인수봉은 항상 클라이머들이 암벽을 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백운대(白雲臺 836.5m)
북한산 정상의 모습으로 어린시절부터 이 북한산을 바라보고 성장을 하였는데 이 북한산은
신라말 고려초에 도선국사는 "북한산의 형상은 천하 으뜸이요 땅의 기운은 해동 전역에 퍼져 나갈만 하다" 고 하면서
전국 제일의 길산이라 하면서 해동5악(海東五岳)의 백두산, 금강산, 묘향산, 지리산과 더불어
북한산을 해동5악에 포함시키며 북한산을 중악화산(中岳華山)이라 하여 해동5악에 중심이라 하였다.
해동5악은 北岳에 백두산, 南岳에 지리산, 東岳에 금강산, 西岳에 묘향산, 中岳에 북한산으로 해동5악의 중심이라 하였다.
북한산 정상 백운대에서 바라본 만경대와 한때 짜릿한 릿지산행을 즐기던 염초능선의 모습
염초능선에서 릿지산행을 하기 전에 자주 다니던 여우굴로 내려서면서 뒤 돌아본 백운대의 모습
실로 10년이 훨씬 넘는 2000년 초에 자주 다니던 여우굴을 오늘 오랜만에 들어가 본다.
여우굴을 빠져 나와서 시발클럽을 지나서 바라본 원효봉의 모습과 만경대, 노적봉의 모습
북문으로 내려서기 직전에 보이는 무너진 성곽의 모습으로...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한다.
북문(北門)
4방위 중에 북쪽을 대표하는 성문으로 원효봉과 염초봉 사이의 고도430m에 위치하고 있다.
원효봉에서 북문을 거쳐서 염초봉~백운대~만경대~용암봉으로 이어지는 북한산성 자연성곽의 모습
건너편으로 의상봉에서 용출봉을 거쳐서 문수봉으로 이어지는 의상능선의 모습
해발고도 505m의 원효봉 정상의 모습으로 정상부에는 많은 인원이 쉴 수 있는 넓은 휴식 공간이 있다.
원효봉 정상에서 서암문을 향하여 성곽을 따라서 내려서고...
성랑지(城廊址)
성곽에 딸린 초소 건물이자 병사들의 숙소인 성랑이 있었던 곳으로 북한산성에는 143곳의 성랑이 있었다.
서암문으로 양호하게 이어지는 성곽옆 산행로를 따라서 내려서고...
서암문/ 시구문 (西暗門/ 屍柩門)
1711년 숙종37년에 북한산성을 축조하면서 설치한 8곳의 암문중에 한 문으로
북한산성 내에서 생긴 시신(屍身)들을 내 보내는 문이라 해서 시구문이라고도 불리우고 있다.
수문(水門)
서암문에서 남쪽으로 대서문 가기전에 산성계곡에 있었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성문으로
수문은 폭50척(15.5m), 높이16척(5m)인 큰 규모의 성문으로
1925년 을축년 8월 대홍수때 성돌과 장대석 하나 남기지 않고 완전히 유실되었다고 한다.
현재 수구정이라는 음식점에서 보이는 시구문과 대서문으로 오르는
계곡 양 옆의 산 비탈에 성곽의 흔적만이 협곡에 웅장했던 수문이 있었음을 추측할 뿐이다.
북한산 둘레길이 이어지는 효자농원 앞으로 내려서고...
백두대간을 시작하기 전인 2000년대 중반까지 염초능선으로 릿지산행을 올라갈 때
효자리 신둔마을회관앞에서 이 마을길로 올라서곤 하였는데 실로 오랜만에 저 집들 사이로 내려서게 되었다.
효자리 신둔마을회관앞에서 바라본 원효봉과 의상봉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북한산성 13성문 종주산행을 마무리 하였다.
무원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