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아버님, 와세다고등공학교 졸업(1943.09.30, 일본 도쿄)
참아버님께서는 미래의 섭리를 위해 더 크고 넓게 준비하고자 일본 유학을 떠나셨다. 1941년 3월 31일 경부선 히카리(光)호 열차를 타고
서울역을 떠나셨으며, 4월 1일 부관(釜關)연락선 쇼케이마루(昌慶丸)를 타고 부산을 출발, 시모노세키로 향하셨다. 그리고 4월 초순 와세다대학교
부속 와세다고등공학교(早稻田高等工學校) 전기공학과에 입학하셨다. 아직도 참아버님께서 다니셨던 교사(校舎)는 와세다대학 니시와세다 캠퍼스(도쿄도
신주쿠구 니시와세다) 14호관 근처에 있다. 입학 후 수업 장소로 와세다대학 부속 제2와세다고등학원 교사(현 니시와세다 캠퍼스 14호관)를
공동으로 사용했고, 실험과 실습은 이공학부의 설비를 이용했다. 수업은 주로 야간에 이루어졌는데 오후 6시부터 저녁 9시까지
이어졌다.
참아버님께서는 당시 전시 상황 변화에 따라 학기가 반년 단축되어 1944년 봄에 졸업할 예정이었지만 1943년 9월 30일에
제25회로 졸업하셨다. 이때 와세다고등공학교의 학생수는 1,320명이었으며 졸업생 580명 중 전기공학과 졸업생은 125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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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내가 와세다대학에 다닐 때 야간에 학교를 다니면서 공부했습니다. 고학생들의 비용을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내가 노동자생활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것을 여러분은 모릅니다.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이 눈물로써 그것을 호소하지 않고는
일본이 설 수 없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자세를 갖추고 설 수 없는 부끄러움의 역사를 품고 통곡과 더불어 사죄를 해야 될 날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참2.3.4:5, 590-145, 2008.05.20)
서울 학교에서 추천해서 와세다고등공학교에 들어갔습니다. 학교 공부 대신 교회와 관련된 공부를 하거나 성경에 있는 미지의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 성경을 읽었습니다. 성경 한 장을 중심삼고 5년 동안 연구해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 한 장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뿌리입니다. 그렇게 성경 가운데 제일 어렵고 난해한 문제를 전부 환하게 풀어야 합니다. 원리말씀이 그렇습니다. 하늘과 더불어 이것을 풀어냈기
때문에 하늘이 무관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늘이 다 안다는 것입니다. (참2.3.4:9, 571-190, 2007.08.10)
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사상을 갖고 있는지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친구들도 몰랐습니다. 성서를 연구하기도 하고 종교관계 서적이나
보통사람들이 잘 읽지 않는 철학서적을 읽었습니다. 와세다대학 정경과에 다니던 친구가 있었는데, 공산주의를 공부하고 있던 그 친구와 격론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또 노방에서 큰소리로 연설한 적도 있습니다. 벚꽃이 만발하여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서도 연설을 했습니다. 그 시대에 대한
비판을 했습니다. 내일의 청년은 이러이러한 식으로 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외쳤습니다. 그때 예언했던 것이 지금 다 맞아 나가고 있습니다.
그때 친구들이 구경하러 와서 내가 연설하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참2.3.4:8, 015-182, 1965.10.08)
<출처 : 선학역사편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