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24] 이소담(李小淡) - 내 인생 외길에 걸고 3. 통일교회 문을 두드리다 - 1
1 1953년, 수복으로 서울에 올라와 조선전업회사 사택인 성동구 신당동 52번지 풍산료에 자리 잡았다. 2 아파트지만 형편없이 엉성하고 작은 집이다. 애들은 셋이 서울대학 부속국민학교에 다니고 나는 대학에 강사로 나가면서 발명협회의 권고로 국산품 전시회 발명관에 출품을 하여 발명 특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그러자 여성 문화회관의 권유로 틈틈이 그곳엘 나가게 되었다. 3 그 당시 함께 일하는 분에게 성화 사진을 사고 싶다고 했더니 하루는 남자분이 찾아와서 “아주머니 사진 산다고 했어요?” 한다. “네 가져왔어요?” 하자 주섬주섬 사진을 꺼내놓고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라고 한다.
4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고르고 사진값을 주는데 싸게 해주고 덤도 준다. “야! 이 장사꾼 신사적이다” 생각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곤색 코트에 밴드를 한 그 청년은 미소를 띠며 “아주머니, 어느 교회 나가세요?” 한다.
5 “성도교회 나가는데 만족하지 않은 걸 나갑니다” 하고 솔직히 대답을 하니까 “그럼 저하고 신앙 토론 좀 하시겠어요?” 한다. “좋아요. 그러나 요새 식모가 없어 빨리 집에 가야 되는데요” 하고 일어나려니까 “잠깐만 다방에 들어 가시지오” 하여 따라 들어가는데 벌써 어두워 간다.
6 자리에 앉자마자 그 청년은 “아주머니 예수님 십자가가 기정사실입니까?” 하고 묻기에 “물론 기정사실이지오” 하면서 “댁에서 신학 나왔소?” 하고 물었다. 그러나 그는 “아니오” 하면서 빨리 집에 가려는 눈치를 알고 “아주머니 성경공부하고 싶지 않아요?” 한다.
7 학교에서 종교 철학 시간에도 칭찬을 들은 난데 생각하면서 “배우는 것을 참 좋아해요” 하니 그분은 명함을 주면서 “내일 아침 10시부터 시작합니다. 꼭 나오세요” 하기에 무조건 “네 가겠어요” 하고 명함도 자세히 보지 않고 백속에 얼른 넣은 뒤 인사한 후 총총걸음으로 행길로 나왔다.
8 차를 타고 싶지 않아 을지로에서 신당동까지 걸어오는데 나의 발은 어느 틈에 사교춤추듯이 하늘에 붕붕 뜬 것처럼 움직이고 나의 귀에는 경쾌한 춤곡이 계속 들려오는 것이었다. 기분 좋게 걸으며 주위 상점을 살펴보았으나 레코드나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었다. 꼭 오빠와 잘 추던 왈츠곡과 같았다.
9 꿈결같이 춤추며 걷다 보니 어느새 집에 다다랐다. 나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여보 나 오늘 참 이상해요. 처음 본 사람한테서 사진을 사고 명함을 받아가지고 오는데 큰 오빠와 사교춤추듯이 여기까지 걸어왔어요” 하니까 “당신 춤을 좋아하니까 그렇지!” 하며 핀잔을 준다.
10 “그러니까 참 이상하다고 하잖아요” 하고 손가방에서 명함을 꺼내서 보니까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유효민이라고 쓰여 있었다. “내일 꼭 가봐야지 그곳은 어떤 곳일까?” 궁금해하며 잠이 들었다.
11 다음 날 명함을 들고 무학여고(舞鶴女高) 뒤로 돌아 간판을 보고 문을 두드렸다. 소식이 없어 열고 들어가니 또 문이 나왔다. 그 문을 두드렸으나 대답이 없어 또 열고 들어가니 마당에 우물이 보인다.
12 말쑥한 부인이 나오면서 “누가 오라고 했어요?” 한다. “유 선생이요” 하자 “어서 오세요” 하며 앞서 걸어간다. 따라 들어가니 좁은 마루에 사진이 널려 있고 큰 가위 두 개가 보인다. 안내하는 부인이 옆의 방문을 열고 “유 선생 찾아왔어요” 하자 “들어오세요” 하는데 남자가 누워서 머리만 들고 반가워한다.
13 조그만 단칸방에는 사람으로 꽉 차 있었다. 구석에 앉으려는 나를 한복판에 앉게 한다. “이소담입니다” 인사를 하자 옆에 앉은 남자분이 “이 선생의 책과 재단형을 구해서 내 안사람에게 주었어요” 한다.
14 청중의 눈길이 내게로 와서 잠시 강의가 중단되었다가 다시 강의를 시작하는데 누운 채 왼팔로 머리를 고이고 오른팔로는 연필을 들고 시험지에 써가며 창조원리 강의를 하는 것이다.
15 강의를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나는 것 같고 머릿속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생각으로 꽉 차 한없는 기쁨이 솟아올랐다. 이럴 때 “가정부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아” 생각하며 집안일을 부지런히 하고 나는 듯이 저녁 강의 들으러 교회로 가니 넓은 식구 댁으로 안내하였다.
16 일본식 목조 건물인데, 이대 음악교수인 양윤영씨 댁을 경우에 따라서 임시 교회로 쓰고 있었다. 이층으로 올라가니 넓은 다다미 방이다. 앞자리에 강사 선생님이 의자에 앉아 “어서 오세요” 인사를 하는데 참 반가웠다.
17 아침에 불편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실존을 확연히 알게 하여 감사와 회개의 눈물을 쏟게 하시고 30년 믿음의 담을 일시에 무너뜨리고, 또한 질문 한번 못하고 저녁에 또다시 이렇게 오라는 말 한마디 안 해도 자진하여 오게 만든 그분 바로 저분이 목사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