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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영남문학> 겨울호 신인문학상 당선작] 신점숙 외
오이넝쿨 외 2편
ㅡ신점숙
세상에 나온 오이넝쿨이
쭉쭉 벋은 자식들 주렁주렁 매달며
천국의 계단을 오르고 있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를 때마다
감아쥐는 튼튼한 넝쿨손
하느님이 부르는 소리 들었다는 듯
구름이 일러주는 길을 따라
이것 말고는 다른 도리는 없다는 듯
안간힘으로 기어오르고 있다
발 아래 봉숭아꽃이 올려다 보며
야, 위험해! 너 혼자 어딜 가?
네 고향은 여기야!
오이넝쿨은 못 들은 척
고개 돌리며 제 세상인 양
울타리의 키를 넘었다
황사
명사산 모래바람
비단은 보이지 않고 흙먼지만 이는
비단길 따라 길을 연다
가벼워진 몸짓들
헤어짐이 아쉬운지 공중을 배회하더니
낙타의 큰 눈망울
눈꺼풀에 앉아 따라간다
해가 된 소년이 피리를 불며
낙타 등 위에서 길을 연다
바람이 된 여인이
낙타의 엉덩이를 쓰다듬는다
여기는 가도 가도 끝없는 타클라만타 사막
저 혼자 외로워 가시풀들 돋아나
말 걸어 주는데
모래바람 이제 떠나면 언제 돌아오나?
명사산이 울고 있다
풀꽃들처럼
뒤돌아 보면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 뿐인데
아직도 잎을 달려고 바람을 불러 모으고
구름을 불러 모으고 있네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향기로운 빛깔의 열매
맺어본 적 없는데
내마음의 비탈진 텃밭
울타리 치고 살았나 보다
사공을 불러 나룻배 쉬어가게 하는
수양버들 한 그루 내 마음 강가에 심어
꾀꼬리 불러 모으고 구름도 불러 모으고
길손 친구들 불러 모아 쉬어가게 하리
벗들이여, 쉬어 가자 쉬어서 가자
불어드는 바람에 간지럼 타는
풀꽃들처럼 한껏 떠들고 웃으며
쉬어서 가세
탱자꽃 필 무렵 외 2편
ㅡ최영철
부시기로야 十五夜 박꽃이지만
이엉 오르는 박꽃이지만
刹那 은은해라 仙界의 뜰인 듯
산내음 갯내음 霧色의 안개내음
어미 없는 아이의 찔레꽃같은
울타리 탱자꽃이 새삼스럽네
가시나무 웃자라 처마를 거느리고
개구멍 비집는 앞바다 물결소리
안개그물 걷으러가는 노소리 들리는 듯
그날사말고!
늦은 봄날이었지
바람소린 듯 樵童녀석 메아린 듯
어디선가 그 어디선가.
책을 덮고 맨발로 엎어졌을 때
물 건너 흰연꽃마을 언덕
느티나무 아래 허우적 손사래
어머니 반벙어리로 무어라 무어라
천리나 먼 길을 저승보다 먼 길을
행랑아범 고함고함 부디 몸성히.
노친네 주저앉아 맥을 놓은 듯
주석애비 등에 허깨비로 매달리고
뒤돌아보며 또 돌아보며 나귀끌던 아내는
울던가 울었던가 나는 혼절했던가
매보다 아픈말이 있느니
백대 杖보다 아픈 만남도 있음이랴
저 느티나무 회춘하여
無垢한 연두바람에 살랑이네
조카가 왔지
그 가을에 정경부인 天地를 버렸다고.
부시기로야 박꽃이지만
그리운 낯들 三冬 하늘에 병든 달로 떴지만
노래하고 싶구나 벙어리새 가시나무새
손가락 두 마디 길이 가시에 염통을 박고
울고 싶구나 가지마다 빈틈없이
목 놓아 활짝!
각시투구꽃
나 좀 내려줘
어렵지 않을거야
까치발 서서 등뼈를 늘이면
놋젓가락꽃 줄기같은
내 허리가 잡힐거야
아 조심해
촛농에 쌓인 망각의 毒을
구중궁궐 불새도 종당엔 먼지!
빈대피 도배한 흙바람벽에
바람없이 그림자 일렁일때
겁내지마라 내니 무서워마라
中東의 죄인 물 위로 걸어온 時辰
四更 지나는 달빛으로 봉당을 쓸던
묵은 기침소리도 있었드랬어
잊었어 다
장다리는 한철이요
미나리는 사철...
피맛골에 쉬쉬하던
타령조를 잊었어
뒷손으로 건네주던 무명 속곳
섬섬옥수 사연마다 골 깊은 손금
쪽마루끝 하염없던 한 사내의 먼 눈길도
타 버렸어 다
속불 천불에 애간장
밀랍으로 녹아나고
香이사 진즉에 다 날아갔으니
그을음만 서까래에 옻칠했을 뿐
그리움만 봉창에 덧칠했을 뿐
빈 촛대야
빈 집 빈 부엌 기울어진 시렁에
햇덩이 같이만 살아라 환하게 환하게
달덩이 같이만 살아라 둥글게 둥글게
빛깔들인 밀초는 손으로 끄나니
不如歸 不如歸
華燭洞房 빈 방에 歸蜀道 운다.
夏至
산새는 산그늘에 숨어서 울고
물새는 갯바우 뒤에서 운다
흐린날엔 물빛 열 길 더 깊어
귀양다리 눈길도 아득해진다
예는 어드메뇨 이 허울은 또 뉘냐
때 거른 괭이갈매기 쉰 목청으로
비 앞선 바람에 죽지 젖느니
남쪽바다 노 잃은 사공이라네
안개 몸 푼 앵강만에 앵무새 울고
사람의 말로 앵무새 울고
앵간히 울어라 낮이 길구나
감자전 지름내 마실에 자욱하니
감자천신 하는구나 보릿고개 넘었다
시나브로 氣候는 시들어
마음구석으로 저물어간다만
저 건너 다랑이논 祈雨祭 근심은 덜겠네
前三日 後三日 물꼬에 담글 발
쭈글쭈글 주름이 흐뭇하겠네
夏至감자 몇 알에 강냉이 몇 송이
노자니의 포도청도 흐뭇하구나
풍문도 풍랑에 갈앉았는가
한 소식, 가는귀에 오는 말 없고
니 어미도 홀어미냐
꾀꼬리 저 홀로 짓이 나서
재롱잔치 찧고 까부는구나
딱새 좇아 둥지 찾아 산허리 오리걸음
풀내 맵던 여름날도 있었드냐
뱃동아 船生아
후레자식 후레, 물푸레가지 들썩이던
어깻죽지도 있었드냐
둥지를 나서면 그날로 고아려니
봉두난발 휘끗해서 고아가 되었구나
너울 너머 흉흉한 장마 소문
왜구처럼 힐끔슬금 기웃대는데
三更 무렵 홀어미 눈물 베틀
기어코 명주실같은 비가 오시네
씨줄없이 色卽是空 헛길쌈질로
이 나라 사는법 삼세판이던가
꼽아보니 유배길도 세번째로세
집은 이제 절간이 되었으리
대청마루 웃음소리 적막하리니
까치발로 다시 까치 울 날 있을까
동구 벽오동 푸른 가지에.
집을 오래 비웠으니
마음 삿자리 먼지 켜켜이 쌓였으니
뻐꾹아비야 니 本鄕 어드메뇨
江南이냐 安南이냐 만릿길 바닷길을
참으로 용하구나 저 목청 장하구나
노섬아 노 저어라
이제 그만 집에 가자
집을 오래 비웠으니
댓돌 木靴자리 오래 비웠으니.
저 황조롱이 제자리날갯짓
개머루 넝쿨에 숨어 마른침 삼키던
설레이고 목마르던 열 살 乃至 그 전으로..
*남해군 상주면 양아리 0.41제곱km의 고독! 유복자에겐 홀어미가 우주의 전부였던가. 三冬내 윤씨부인의 訃告를 앓다가 새봄 새꽃 필 무렵 아홉조각 구름타고 서쪽으로 흘렀으니 유배3년! 남해섬 노도에서 生을 닫았다. 서포. 오십오세!
달과 창문 외 2편
ㅡ조정래
달과 나무 그리고 소년
밤과 마당 그리고 창문
숨소리 소록소록
고운 내 님이 잠들었어요.
소록
소록 소록
소록 소록 소록
달빛 가득 쌓인 풀잎을 밟고
소년은 이슬을 뿌려요.
자꾸
자꾸 자꾸
자꾸 자꾸 자꾸
달과 나무 그리고 소년
밤과 마당 그리고 창문
통증(痛症)
아프다. 서로가 묶인 줄을 모르고 우리는 소리친다. 태양은 뜨겁고 숨이 목까지 찬다. 너는 조금이라도 더 나를 붙잡고 싶다고 말한다. 사막만을 바라보는 낙타의 눈물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만해요. 여기까지가 내 노동의 끝이에요. 노란 은행잎을 누구에게도 아직 보여준 적이 없어요. 너는 모두를 사랑한다면서 왜 그래? 너는 좀 이기적인 인간의 전형이야. 당신은 사랑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군요. 세월 속에 무참하게 아니 너무 억울하게 죽어간 역사의 고귀한 생명들에게 신은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당신이 무사안일로 서있는 지금 자리가 누군가 흘린 피의 반석이라는 것을 모르는 군요. 나는 가겠어요. 저기 사막을 건너는 낙타가 보여요. 너는 정말 양심도 없구나. 지금 내가 힘든게 안보여? 알아요. 그것이 내 알량한 양심을 자극하는군요. 하지만 내가 얼마나 이 알량한 양심을 원수로 싫어하는지 모르는 군요. 고추밭에서 쓰러진 고추나무를 일으켜 세우는 두 남자의 대화는 빨간 고추같이 떨어지며 끝났다. 노동에 지친 나는 검은 아스팔트를 맨발로 걸어가며 세상의 욕망에서 숨이 막힌다. 아프다.
일기(日記)
하루를 보낸다. 우리가 살아있다면 말이다. 온갖 죽음들의 소식에 나의 마음은 괴롭다. 지금 내가 맞이한 시간의 방에서 자살 그리고 뜻밖의 사고들로 너희의 시간은 멈추어 버렸다. 가을로 가는 감나무로 나는 다가간다. 해를 닮아가는 홍시가 공중에 떠올라 불안하게 흔들린다. 역사의 운명은 열매되어 나의 감쪽자 안으로 떨어진다. 너는 하루를 살아서 감나무를 심었고 나는 하루를 살아서 감을 딴다. 한 소쿠리 홍시를 안고 방으로 돌아온 나는 그 중 가장 곱고도 투명한 홍시 하나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는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도 않으면서 왜 나는 사진을 찍는 것일까? 그 무엇을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왜 이렇게 슬피 우는 것일까? 이해할 수 없어요. 내 삶은 무엇인가요? 아직도 멀었나요? 나는 홍시의 속살을 갉아먹듯 엄마의 속을 후비판다. 엄마를 땅속에 묻던 날에서야 비로소 나비가 날았다. 나는 점점 더 깊어가는 엄마의 무덤 속으로 들어간다. 몸을 움직여라. 생각을 멈추고 몸을 움직여라. 그때서야 나는 아이처럼 일어나 노란 은행잎을 꺼낸다. 노란 잎새 사이로 새로운 하루가 보였다.
일용잡부의 하루 외 2편
ㅡ이대수
가로등 불빛이
아슴아슴 졸고 있는 서글픈 새벽
배낭을 메고 인력사무실로 향한다
배낭속에는
작업복 한 벌 안전화 두 쪽
햇살이 스며오는 새벽과 희망이 잠들어있었다
어색한 시간이 흐르고
백희망씨 이름이 호명되고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깨어난 아침 속으로 사라져간다
甲과 乙의 관계보다 더 멀고 먼 丁이 되어
긴 하루를 땀으로 한 됫박 먼지로 한 됫박
배고픈 고양이로 하루 종일 울어젖힌다
야수의 본능으로 발톱을 숨기고
가시가 있는 뼈에 붙은 고기를 핥아먹으며
피곤한 몰골로
고양이 한 마리 까만 선을 넘어간다
오태못 저수지
이른 새벽 자욱한 물 안개는 용머리를 감싸고
잠에서 뒤척이는 고요의 물결
왜가리 한 마리 접시 비행
깨어있는 자여! 일어나거라!
긴 모가지 자맥질에
붕어,잉어,가물치 놀래서 잔뜩 움추린다
살찐 잉어,엉거주춤 바닥을 흐리고
가물치는 잽싸게 순찰 배회를 한다
샛바람에 안개 흩날릴때 엷은 햇살은 둑을 넘고
기나긴 여름 하루의 시작은
미루나무 꼭대기 자지러지는 매미의 울음소리 부터이다
고향의 가을
파란 물감으로 채색한 병암리(屛岩里)하늘
뭉게구름은 노루목 고갯길 더 높고
한가로이 스치는 하늬바람
하늘 가지 꼭대기에 걸린다
산제비 한 쌍 국사봉을 넘어가고
병풍바위 까치집은 아침 준비로 부산하다
귀뚜라미는 간밤에 저리도 보채더니
아침엔 연붉은 햇살 가을바람에 펄럭인다
일몰 외 2편
ㅡ최정원
노란색 주황색 빨간색
그 위에 보라색 남색
해가 사라지고 술래잡기가 시작됐다
여러 색들이 앞다퉈 도망가보지만
검은색 술래가 순식간에 삼켜버렸다
오늘도 술래가 이기고
하얀 반짝이들이 축하해준다
그림자
널 만날 시간이 되었다
오랜만에 보게 될 너를 기대하며
한 발 밖으로 내디딘다
기다림 없이 널 봐 좋아
토라져 떠나지 않아 좋아
발걸음을 맞추는 네가 좋아
사라졌나 하면 뒤에 있고
안보이네 하면 옆에 있고
함께 걷는 이 시간을 기다린다
어두운가 싶더니
이내 맑은 해가 쨍쨍하다
널 만날 시간이 되었다
손톱
또옥- 또옥-
나에게서 너를 덜어낸다
무거워서가 아니다
귀찮아서도 아니다
단지 너의 새 얼굴을 보고 싶을 뿐
작은나무 외 2편
ㅡ최신애
시려운 손가락 마디마디
하늘로 뻗으면 물 들어요
눈코입이 안 보이도록
더 빨갛게
숨깁니다.
푸르던 청춘이
없던 것처럼
기억하지 않습니다.
내가 옛날
금빛 부스러지는
빛 아래 청춘이었다고
다만
바스러지기 전
생의 충심으로
더 더 물들어
얼마나 푸르러야
붉어질 수 있는지
노래하렵니다.
습관
뚫린 주머니 사이로
굴러가버렸다.
동전같이 빈약한 날들
다시 필통을 구입한다.
다이소를 탐닉하고
천냥마트를 기웃하며
상업성으로 비벼진 문방구점
앞을 서성인다.
뭐로든지 채우려는
만족을 향한 식생활이
채식주의일 수 없다.
화이트(뭐라도 기록물을 지우는)
액상타입, 테잎타입, 펜타입
타입을 향한 식욕
모든 종류를 향한 탐욕
1원짜리에 못미칠 업적이
뚫린 주머니사이로 흘러내릴 때
절망의 칼을 갈며
헐떡이는 불안을 섭취한다
다시 필통을 구입한다.
도서관에 간다.
십년 만에 허락된 흔하지 않고 기적이 피어나는
자유시간
초겨울 피어난 개나리가 설렘으로 범벅하고서
시동을 건다.
지난밤 초승달 꽁무니에
타이어가 찢어졌다.
카센터로 간다. 타이어가 부푼다. 가슴이 터질 듯
블라우스 단추마저 튿어졌다.
설렐수록 느리게, 두근거림은 반만
아메리카노 핫으로 주세요.
톨 사이즈도 모자란 허기를 시럽으로 달랜다.
주차장은 만원
더 아프기 전, 더 흔들리기 전에 얼씬도 말라는
안내판이 생경하다. 노안이 왔나보다
갈수록 멀어지는, 기어코 오르려는
만져보지 못할 고지의 젖가슴을
오늘은 포기해도 괜찮겠니?
5분 거리
500년도 더 걸릴
[심사평]
고급시를 쓰려는 의도와 실력을 충분히 겸비한 작품들
서지월(시인)
날이 갈수록 많은 분들이 응모하여 경쟁이 치열했다. 시를 쓰면서 그리고 심사를 하면서 시가 인간의 삶과 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가 의문 아닌 의문을 가져보기도 한다. 시가 인간의 삶과 이 사회에 진정 필요한 것인가 말이다. 역으로 말하면 인간의 삶이 매마를 정도로 매말라 시가 설 자리가 있는가, 효용성이 있는가 말이다. 그래도 시는 시인들에 의해 줄기차게 쓰여지고 있고, 시인으로 등단하는 이들이 때를 가리지 않고 우후죽순처럼 새 얼굴을 드러내고 있으니 말이다. 시를 생각하고 시를 쓰는 마음가짐과 자세야말로 고귀한 삶의 원천이 아닐 수 없다. 2000년전 고구려 제2대 왕인 유리왕도 시를 읊었고 만고의 충신으로 불리우는 고려말 포은 정몽주선생도 시를 읊었고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장군도 시를 읊었고 보면, 시는 역사와 무관하지 않고 그 시대와 무관하지 않는가 하면 유한한 목숨의 인간은 역사와 함께 지나가지만 시는 남아 후대에까지 회자되는 것이고 보면 인간의 삶을 가장 적절하게 잘 반추해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신점숙씨의 당선작은 <오이넝쿨>과 <풀꽃들처럼>, <황사> 3편이었다. 신점숙씨의 시는 서정적 언어구사가 단연 뛰어났으며 응모작 모두가 완결된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오이넝쿨>에서 보면, ‘세상에 나온 오이넝쿨이 / 쭉쭉 벋은 자식들 주렁주렁 매달며 / 천국의 계단을 오르고 있다’ 이런 표현이라든지, ‘발 아래 봉숭아꽃이 올려다 보며 / 야, 위험해! 너 혼자 어딜 가? / 네 고향은 여기야!‘에서 보듯 ’네 고향은 여기‘ 즉 고향이 흙이라는, 흙의 태생이라는 이런 의미심장함도 돋보였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스며나오는 시적 울림이 돋보였던 것이다. <풀꽃들처럼>에서도 보면, 살아온 삶을 풀꽃에 비유하고 있는게 돋보였다. ‘사공을 불러 나룻배 쉬어가게 하는 / 수양버들 한 그루 내 마음 강가에 심어 / 꾀꼬리 불러 모으고 구름도 불러 모으고 / 길손 친구들 불러 모아 쉬어가게 하리 / 벗들이여, 쉬어 가자 쉬어서 가자 / 불어드는 바람에 간지럼 타는 / 풀꽃들처럼 한껏 떠들고 웃으며 / 쉬어서 가세’ 이렇게 매마르고 팍팍한 세상을 향하여 인생담론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찰적인 넉넉한 삶을 갈구하는 정신을 불어넣어주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풀꽃들처럼 한껏 떠들고 웃으며’란 대목이 더욱 귀감이 가는데 풀꽃들이 무리 지어 피어서 화해로운 풍경을 보여주듯 한평생 즐겁게 긍정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황사>에서도 보면, ’해가 된 소년이 피리를 불며 / 낙타 등 위에서 길을 연다‘ 이런 상상력의 조화나 ’모래바람 이제 떠나면 언제 돌아오나?‘ 하면서 ’명사산이 울고 있다‘고 의인화한 수법이 오랜 기간 시를 써온 내공으로 이루어진 결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최영철씨의 당선작은 <탱자꽃 필 무렵>, <각시투구꽃>, <夏至>였다. <탱자꽃 필 무렵>에서 보면, ‘十五夜 박꽃’, ‘어미 없는 아이의 찔레꽃’ 이런 표현이 의미있게 읽혔다. <각시투구꽃>에서는 ‘햇덩이 같이만 살아라 환하게 환하게 / 달덩이 같이만 살아라 둥글게 둥글게 / 빛깔들인 밀초는 손으로 끄나니 / 不如歸 不如歸 / 華燭洞房 빈 방에 歸蜀道 운다’에서 보듯 각시투구꽃의형상화가 돋보였다. <夏至>에서는 ‘산새는 산그늘에 숨어서 울고 /물새는 갯바우 뒤에서 운다’ 이런 구절이 흔한 것 같으면서 율조를 띠고 있다는데 시적 가락을 풍요롭게 하고 있는게 돋보였다. ‘시나브로 氣候는.....’ 같은 상투적인 언어와 그리고 말을 많이 널어놓는 데에 주의하면 좋을 것이다.
조정래씨의 당선작은 <달과 창문>, <통증(痛症)>, <일기(日記)>였다. <달과 창문>에서 보면, ‘달과 나무 그리고 소년 / 밤과 마당 그리고 창문.....’, ‘소록 / 소록 소록 / 소록 소록 소록.....’에서 보듯 함축적 이미지가 돋보이는 서정시였다. 원래 시란 말을 많이 하는게 아니라 정제된 이미지로 시적 포에지를 그려내면 되는 것이리라. <통증(痛症)>과 <일기(日記)>는 산문시 형태로 씌어졌는데 앞의 시와 대조를 이루는 표현방식이라 할 수 있다. <통증(痛症)>에서 ‘사막만을 바라보는 낙타의 눈물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런 구절이 돋보인다. 통증을 형이상학적으로 변용하는 솜씨도 좋았다. <일기(日記)>에서는 ‘해를 닮아가는 홍시가 공중에 떠올라 불안하게 흔들린다. 역사의 운명은 열매되어 나의 감쪽자 안으로 떨어진다.’에서 보듯 다소 뒷부분이 무거운 느낌을 주고 있으나 심사위원에겐 아주 마음에 드는 좋은 표현으로 읽혔다. ‘너는 하루를 살아서 감나무를 심었고 나는 하루를 살아서 감을 딴다.’까지는 좋았으나 ‘한 소쿠리 홍시를 안고 방으로 돌아온 나는 그 중 가장 곱고도 투명한 홍시 하나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는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도 않으면서 왜 나는 사진을 찍는 것일까?’ 이런 퍽 사소한 개인사적인 상념에 대해서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대수씨의 당선작은 <일용잡부의 하루>, <오태못 저수지>, <고향의 가을>이었다. <일용잡부의 하루>에서 보면, 별로 말을 많이 널어놓지 않으면서 일용잡부의 하루의 삶을 충분히 소화해 내고 있어 호감이 갔다. ‘백희망’이라는 윗트 있는 기발한 이름도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좋았다. <오태못 저수지>에서는 왜가리 한 마리가 접시 비행을 하는데 ‘깨어있는 자여! 일어나거라!’에서 보듯 어찌보면 평범하지 않은 이런 자연스런 표현에서 번뜩이는 시적 자질이 확인되는 대목이랄까 한 편의 시를 구사하는 능력이 돋보였다. <고향 예찬>보다는 제목이 <고향의 가을>이 좋은 것 같다. 고향예찬이라면 시답지 않은 축시나 산문에서 추상적으로 다루는 제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에 말이다. 명료한 <고향의 가을> 그대로가 좋겠다. 시문장 구사에도 명료한 표현이 중요한 것처럼.
최정원씨의 당선작은 <일몰>, <그림자>, <손톱>이었다. <일몰>에서 보면, ‘해가 사라지고 술래잡기가 시작됐다’는 이색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는게 신선했으며 ‘여러 색들이 앞 다퉈 도망가 보지만 / 검은 색 술래가 순식간에 삼켜버렸다’는 어둠이 오는 정황을 잘 형상화하면서 리얼하게 표현한게 아주 돋보였다. ‘오늘도 술래가 이’겼다는 보편화된 일상을 의미화 하는데 성공한 작품으로 읽혔다. ‘하얀 반짝이들이 축하해 준다’는 대목에서 ‘푸른 반짝이들이 축하해 준다’고 했으면 더 좋으리라 생각한다. <그림자> 역시 형상화 하는데 무리없어 보인다. 과욕을 부리지 않고 즉물적 대상을 바라보는 눈이 신선해서 좋았다. ‘사라졌나 하면 뒤에 있고 / 안 보이네 하면 옆에 있고 / 함께 걷는 이 시간을 기다린다’고 표현한 것처럼. 다른 작품 <손톱>은 어떤가 보자. ‘또옥- 또옥- / 나에게서 너를 덜어낸다’는 표현이 절창이다. ‘무거워서가 아니다 / 귀찮아서도 아니다’라는 의미부여도 참신해서 좋다. 구구절절 활달한 언어구사가 돋보인다. 받쳐주는 마지막 구절 ‘단지 너의 새 얼굴을 보고 싶을 뿐’에서가 더욱 의미있게 다가왔다. 동시같은 색채를 띠고 있으나 시로서도 훌륭하다 하겠다.
최신애씨의 당선작은 <작은 나무>, <습관>, <도서관에 간다>였다. <작은 나무>에서 보면, 상징적 의미의 ‘작은 나무’의 삶이 돋보였다. 한 해 한 해 커 가는 작은 나무의 계절의 순환을 잘 살려낸 작품으로 읽혔다. 그리고 ‘시려운 손가락 마디마디’로 의인화 한 것, ‘푸르던 청춘이 / 없던 것처럼’ 성장하는 인고의 삶을 잘 살려냈다고 할 수 있다. <습관>에서도 보면 ‘뚫린 주머니 사이로
굴러가버렸다‘는 것이다. 무엇이? 동전이 아니고 ’동전같이 빈약한 날들‘이다. 필통을 통해서 욕구를 채우려는 속성을 잘 변용한 작품으로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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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당선된 분들의 작품도 보면 형편없는 시를 유행처럼 마구 써서 시라고 내어놓는 그런 부류가 전혀 아닌 고급시를 쓰려는 의도와 실력을 충분히 겸비하고 있는 것 같아 안도가 되었으며 심사위원으로서도 기분이 아주 좋았다. 짜증나는 시가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그게 아니니 믿음이 가는 것이다.
필자는 현대시창작전문강좌라고 해서 26년을 매주 1회씩 시창작강좌를 열어오고 있는데 요즘 이런 생각을 강하게 하게 되었음을 한번 밝혀본다. 시인으로 등단하지 않은 이들을 26년을 가르쳐 왔다는 말이 되는데 이제는 시인으로 등단하지 않은 이들은 차지하고, 시인으로 등단한 이들을 다시 올바르게 시의 진수가 무엇인가에서부터 확실히 가르쳐 줘야겠다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들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시인으로 등단하면 다 시인이겠지만 말이 시인이지 시인으로 등단한 이들 시를 보면 영 아닌 시가 너무 범람하니 말이다. 자신 보다 나은 식견이 있는 시인이 지적해 주면 기분 나빠하고 자존심 상한다고 여기니 전혀 발전이 없고 한 꺼풀 벗겨나가지도 못하고 타성적인 그 수준에만 맴돌고 마니 하는 말이다.
그리고, 좋은 시인이 되기 위하여 나아가는데 한 마디 첨언하겠는데 다음과 같다. 글자 그대로 좋은 시인이 되기 위하여 나아가는 데는 남다른 각고의 보이지 않는 노력과 저력이 있어야 된다는 말이다. 좋은 시인이 되고 싶어 한다면 이유를 달지 마라. 아직도 직장 때문에, 남편 때문에, 애들 때문에, 돈 때문에, 교통 때문에..... 때문에..... 때문에..... 그러면 포기해야 한다. 세상에 그냥 얻어지는 건 하나도 없는데 왜 시를 쓰는 데는 시인이 되는 데는 남들 거름 지고 장에 가면 자신도 그냥 따라가면 될 거라 생각는가 말이다. 자신도 냄새 나고 무거운 거름을 지고 가야지. 장에 가서 그 거름을 사는 사람 없더라도 거름을 지고 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면 쨍 하고 해 뜰 날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데 이는 점쟁이도 잘 못 맞출 일이고 보면 시를 쓰는 일이나 인생을 살아가는 일이나 매 한 가지다. 죽도록 열심히 하다 보면 될 수도 있고 아니 될 수도 있고..... 정답이 있는 인생 보았던가?
중국의 고사에 의하면, 어느 날 한 선비가 길을 가다가 바닷가에서 허름하게 옷을 차려입은 남자가 되(바가지)로 바닷물을 육지로 하염없이 퍼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의아하게 여겨 물었더니 손에 끼었던 금가락지를 그만 잘못하여 벗겨져 이곳 바다속에 빠트렸다는 것이다. 그걸 찾으려고 바닷물을 퍼내고 있다는 것이다. 길을 가던 선비는 이 말을 듣고서 묵묵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겠지. 자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말인데 이런 우매한 자가 있는가 하고 야유를 퍼붓기도 하겠지만 아주 미련한 행위 같아 보이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일에는 최선을 다하는 그 자체의 모습은 아름답지 않은가 말이다. 바다속에 빠트린 금가락지를 찾기 위해 되(바가지)로 바닷물을 퍼내는 행위를 한자어로 조합하면 승해(升海)가 되는데, 단군 이래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미당 서정주시인께서 첫 아들을 낳자 이름을 승해(升海)로 지은 것이 바로 이런 연유라 한다. 승해(升海)란 미련하기 그지 없지만 자신의 일에는 최선을 다하라는 고사에서 따온 귀감이 아니겠는가.
시산방 남서재에서, 2016년 12월 19일 집필하다.
(심사위원:서지월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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