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올바른 본존(本尊)
본존이란 근본존숭(根本尊崇)·본유존형(本有尊形)·본래존중(本來尊重)이라는 자의(字義)가 있는데 니치렌 대성인은 「본존(本尊)이란 뛰어난 것을 쓸지어다」(신편어서 p.1275) 라고 말씀하시어 일체(一切)의 뛰어난 본존을 가려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하시고 있습니다.
대성인은 구원(久遠)의 어본불로서의 깨달음을 한 폭의 대만다라본존(大曼茶羅本尊)으로 나타내셨습니다. 이 대만다라야말로 모든 사람을 근본적으로 구할 수 있는 최승최존(最勝最尊)의 본존이며, 이것을 「본문(本門)의 본존(本尊)」이라 칭합니다.
「일념삼천(一念三千)의 법문을 흔들어 헹궈 세운 것이 대만다라(大曼茶羅)이다.」(신편어서 p.523) 「본존이란 법화경 행자의 일신(一身)」의 당체(當體)이니라.」(신편어서 p.1773) 라는 말씀처럼 이 본문의 본존에는 「인즉법(人即法)」과 「법즉인(法即人)」의 뜻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이것을 「인법일개(人法一箇)」또는 「인법체일(人法體一)」이라고도 합니다.
그중에서도 1279년 10월 12일에 도현(圖顯)하신 대만다라야말로 삼대비법이 모두 갖추어진 대성인의 화도(化導)의 본회구경(本懷究境)의 어본존인 것입니다.
이 본존을 「본문계단의 대어본존」이라 존칭하며, 말법 전 세계의 민중은 이 어본존에 의해서만이 진정한 즉신성불(卽身成佛)의 대공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련정종에서는 결코 불상(佛像) 등을 본존으로 배(拝)한다거나 하면 안 됩니다.
그 의의(意義)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3회에 걸처 단적(端的)인 이유를 제시하고자 합니다.법화경(法華經)을 본적상대(本迹相對)하여 논(論)한다면, 적문(迹門)은 역시 시성정각(始成正覺)의 취지(趣旨)를 밝히는 고(故)로 아직 유난(留難)이 걸렸느니라, 본문(本門)은 이러한 유난(留難)을 떠났으나 그렇다고 해도 제목(題目)의 오자(五字)에 상대(相對)할 때는, 말법(末法)의 기근(機根)에 맞지 않는 법(法)이니라. 진실(眞實)로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색심(色心)의 유난(留難)을 멈추게 하는 비술(秘術)은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시조깅고전답서(四條金吾殿答書) 미노부에서 56세에 술작오토(乙)님은 훌륭한 이(尼)가 되셨겠지요. 법화경(法華經)을 받들어 섬기고 봉사(奉事)하셨기에·오토(乙)님 이(尼)는 내내 행복(幸福)해질것이라.
오토님모어서 (乙님母御書) 미노부에서 술작대저 무시(無始)의 생사(生死)를 멈추고 이번에 결정(決定)코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증득(證得)하려고 생각한다면 모름지기 중생본유(衆生本有)의 묘리(妙理)를 관(觀)할지어다. 중생본유(衆生本有)의 묘리(妙理)란·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 이것이니라. 그러므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한다면 중생본유(衆生本有)의 묘리(妙理)를 관(觀)하는 것으로 되느니라. 문리(文理)가 진정(眞正)한 경왕(經王)이므로 문자즉실상(文字卽實相)이고 실상즉묘법(實相卽妙法)이니라, 오직 구극(究極)은 일심법계(一心法界)의 취지(趣旨)를 설(說)해 나타냄을 묘법(妙法)이라고 이름하는 고(故)로 이 경(經)을 제불(諸佛)의 지혜(智慧)라고 하느니라. 일심법계(一心法界)의 취지(趣旨)란 십계삼천(十界三千)의 의정색심(依正色心)·비정초목(非情草木)·허공찰토(虛空刹土) 어느것도 제외(除外)하지 않고, 먼지도 남김없이 일념(一念)의 마음에다 포함(包含)하고 이 일념(一念)의 마음이 법계(法界)에 편만(偏滿)함을 가리켜서 만법(萬法)이라고 하느니라. 이 이(理)를 각지(覺知)함을 일심법계(一心法界)라고도 말하는 것이니라. 단(但)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부르며 수지(受持)한다 해도 만약 기심(己心)의 밖에 법(法)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전(全)혀 묘법(妙法)이 아니라 추법(麤法)이니라. 추법(麤法)은 금경(今經)이 아니로다, 금경(今經)이 아니면 방편(方便)이며 권문(權門)이니라. 방편권문(方便權門)의 교(敎)란다면 성불(成佛)의 직도(直道)가 아니고, 성불(成佛)의 직도(直道)가 아니면 다생광겁(多生曠劫)의 수행(修行)을 거쳐도 성불(成佛)되는 것이 아니므로 일생성불(一生成佛)은 이루기 어려우니라. 그러므로 묘호(妙法)라고 부르고 렌게(蓮華)라고 읽을 때에는 나의 일념(一念)을 가리켜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이름한다고 깊이 신심(信心)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일생성불초(一生成佛抄) 가마쿠라에서 34세에 술작(1)니치렌(日蓮) 대성인의 교시(敎示)
대성인을 종조(宗祖)라고 우러러보는 종지(宗旨)는 일련정종 이외에도 미노부의 일련종(日蓮宗)등이 있습니다만 그 종파(宗派)는 석존상(釋尊像)이나 이나리[(稲荷): 곡식을 맡은 신] 등 난잡(亂雜)한 본존을 숭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성인은 대만다라를 본존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어서 곳곳에서 어지남 하시고 있습니다. 일련종 등이 본존이라 미혹하고 있는 것은 상전(相傳)이 아니므로 어서를 올바르게 배(拝)할 수 없는 증거입니다.
『관심본존초(觀心本尊抄)』에는 「이들의 부처는 정상(正像)에는 만들고 그렸지만, 아직 수량(壽量)의 부처는 계시지 않았느니라. 말법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이 불상(佛像)을 출현케 했느니라」(신편어서 p.654)라고, 대성인 출현 이전의 정법 시대(正法時代), 상법시대(像法時代)에 건립된 목상(木像)이나 회상(繪像)은 말법의 중생이 존숭해야 할 본문수량품(本門壽量品)의 부처가 아니라고 명시하시고 있습니다.
더욱이 정법시대(正法時代), 상법시대(像法時代)의 불상(佛象)이 「만들고 그려졌다」라는 표현에 반해 『수량품(壽量品)』의 부처를 「출현(出現)」이라 표현하신 것은 실제로 세상에 출현한 부처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수량품(壽量品)』의 부처란 바로 니치렌 대성인이며, 대성인 출현 이전부터 만들고 그려진 모든 불상은 결코 말법의 본존이 될 수 없음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교오님답서(經王殿御返事)』에 「니치렌의 넋을 먹물에 물들여 넣어서 썼으니 믿으실지어다. 부처의 참뜻은 법화경이며 니치렌의 넋은 바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신편어서 p.685) 라고, 대만다라본존은 대성인이 자신의 혼을 먹물에 물들여 넣어서 나타내신 것이라고 어지남 하시고 있습니다.
말법의 어본불 니치렌 대성인의 혼(魂)의 당체(當體)인 대만다라야말로 대성인이 정하신 말법의 본존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2)종탈(種脫)의 도리(道理)
다음으로, 일련정종에서 불상(佛像)을 배(拝)하지 않는 교의적(敎義的)인 이유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석존 재세의 중생은 「본이유선(本已有善)」이라 하여 구원(久遠)이라는 아득히 먼 과거세(過去世)에 곧바로 묘법의 하종(下種)을 받았지만 퇴전(退轉)하여 즉시 성불하지 못한 채 오백진점겁(五百塵點劫)을 지난 중생입니다.
따라서 석존의 역할은 과거의 하종(下種)을 깨달아 알게 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편(方便)의 가르침을 설하여 차례로 길러내어[숙익(熟益)], 최종적으로 법화경에 의해 성불시키는 것[탈익(脫益)]입니다.
이에 반해 말법의 중생은 「본미유선(本未有善)」이라 하여 과거세에 묘법의 하종을 받은 적이 없는 중생입니다. 그러므로 말법에서는 일체중생을 성불로 이끌기 위해 그 근본이 되는 묘법의 씨를 직접 심는 「하종익(下種益)의 부처」가 출현하시는 것입니다.
하종익(下種益)의 부처는 황무지에 씨를 뿌리는 것처럼 범부(凡夫)의 모습 그대로 출현하여 성불의 근원이 되는 하종의 묘법을 가지고 일체중생을 화도(化導) 하십니다. 그분이 바로 니치렌 대성인 이십니다.
또한 하종의 묘법이란 대성인이 건립하신 삼대비법(三大秘法)이며 일체중생이 성불하기 위한 근본의 씨가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식물의 씨에는 뿌리, 줄기, 잎, 꽃 그리고 열매 등 모든 성분이 본래 갖추어져 있는 것처럼 묘법의 씨에는 숙익(熟益)·탈익(脫益)의 불법의 공덕 모두가 갖추어져 있으므로 말법의 일체중생은 묘법의 하종에 의해 범부(凡夫)의 몸 그대로 즉신성불(卽身成佛)을 이룰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말법인 오늘날, 하종익(下種益)의 부처[니치렌 대성인]를 제쳐놓고 탈익(脫益)의 부처[석존상(釋尊像)이나 보살상(菩薩像) 등]를 배(拝)하더라도 전혀 성불의 요인(要因)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방법(謗法)을 저지르는 일이 됩니다. 따라서 타종타문(他宗他門)의 불상을 배(拝)하는 것은 엄중히 삼가야 합니다.일(一)이란 일도청정(一道淸淨)의 의(義) 심(心)이란 제법(諸法)이로다, 그러므로 천태대사(天台大師)가 심(心)의 자(字)를 석(釋)하여 가로되 「일월삼성(一月三星)·심과청정(心果淸淨)」 운운(云云), 니치렌(日蓮) 가로되, 一이란 묘(妙)이며 심(心)이란 호(法)이며 욕(欲)이란 렌(蓮)이며 견(見)이란 게(華)이며 불(佛)이란 쿄(經)이니라, 이 오자(五字)를 홍통(弘通)하려면 부자석신명(不自惜身命)이것이니라, 일심(一心)으로 부처를 보는 마음을 하나로 하여 부처를 보는 일심(一心)을 보면 부처이니라. 무작(無作)의 삼신(三身)의 불과(佛果)를 성취(成就)함에 있어서는 아마도 천태(天台) 전교(傳敎)보다도 월등(越等)하고 용수(龍樹)·가섭(迦葉)보다도 뛰어났도다, 명심(銘心)하고 명심(銘心)하여 마음의 스승이 될지언정 마음을 스승으로 삼지 말지어다 라고 부처는 기술(記述)하시었다. 법화경(法華經)을 위하여 몸을 버리고 목숨도 아끼지 말라고 강성(强盛)히 말한 것은 이 까닭이니라,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기조보어서(義淨房御書) 사도에서 52세에 술작대저 무시(無始)의 생사(生死)를 멈추고 이번에 결정(決定)코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증득(證得)하려고 생각한다면 모름지기 중생본유(衆生本有)의 묘리(妙理)를 관(觀)할지어다. 중생본유(衆生本有)의 묘리(妙理)란·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 이것이니라. 그러므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한다면 중생본유(衆生本有)의 묘리(妙理)를 관(觀)하는 것으로 되느니라. 문리(文理)가 진정(眞正)한 경왕(經王)이므로 문자즉실상(文字卽實相)이고 실상즉묘법(實相卽妙法)이니라, 오직 구극(究極)은 일심법계(一心法界)의 취지(趣旨)를 설(說)해 나타냄을 묘법(妙法)이라고 이름하는 고(故)로 이 경(經)을 제불(諸佛)의 지혜(智慧)라고 하느니라. 일심법계(一心法界)의 취지(趣旨)란 십계삼천(十界三千)의 의정색심(依正色心)·비정초목(非情草木)·허공찰토(虛空刹土) 어느것도 제외(除外)하지 않고, 먼지도 남김없이 일념(一念)의 마음에다 포함(包含)하고 이 일념(一念)의 마음이 법계(法界)에 편만(偏滿)함을 가리켜서 만법(萬法)이라고 하느니라. (3)일련종(日蓮宗)의 본존 난잡(亂雜)
닛코상인의 『하라님답서(原殿御返事)』에는 닛코상인이 미노부(身延)를 떠나신 이유가 쓰여져 있습니다. 그중에 지두(地頭)였던 하기리사네나가(波木井実長)가 닛코상인의 제지(制止)를 뿌리치고 석존의 입상(立像)을 건립하여 미노부 본당에 안치한 것, 민부니코(民部日向)가 술에 취해 회(繪) 만다라(漫茶羅)를 만들게 했다는 사실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대성인을 하종(下種)의 부처라고 배(拝)하지 못하는 사견방법(邪見謗法)의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 닛코상인이 혈맥전지(血脈傳持) 상(上)에서 대성인에게 물려받으신 정의(正意)는 『후지일적문도존지사(富士一跡門徒存知事)』에 「성인(聖人)이 세우신 법문에 있어서는 결코 회상(繪像) 목상(木像)의 불(拂) 보살(菩薩)로써 본존으로 하지 않았고 오직 어서(御書)의 뜻에 따라서 묘법연화경의 오자(五字)로써 본존으로 해야 하느니라. 즉 자필(自筆)의 본존 이것이니라.」(신편어서 p.1871-1872) 라는 말씀처럼 대만다라본존을 근본의 본존이라 배(拝)하는 것입니다.(1) 창제(唱題)는 수행의 근본
창제(唱題)란, 어본존을 믿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제목을 부르는 것을 말합니다.
창제를 할 때는 먼저 자세를 바르게 하고 어본존의 「묘(妙)」 자(字)를 중심으로 어본존을 똑똑히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작고 가냘픈 목소리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도사(導師) 하시는 분의 목소리에 맞춰 힘차고 큰 목소리로 분명하게 부릅시다. 창제는 스스로의 의지로 솔선(率先)해서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적극적으로 가족에게 이야기해 봅시다. “이 시간은 모두 모여 창제합시다”라고 정해서 실천하면 가족 한 명 한 명에게도 생활이 바뀌어 변화가 찾아올 것입니다.법화경(法華經)을 읽었더니 무량(無量)의 호랑이가 와서 수호(守護)했는데 당신도 또한 그들과 다름이 없도다. 지(地)에는 삼십육기(三十六祇)·천(天)에는 이십팔수(二十八宿)가 수호(守護)하시는데다가·사람에게는 반드시 두 가지의 천(天)이 그림자처럼 따르느니라. 소위(所謂) 一을 동생천(同生天)이라고 하며, 二를 동명천(同名天)이라고 하는데, 좌우(左右)의 어깨에 붙어 있으면서 사람을 수호(守護)하므로 죄(罪) 없는 자(者)는 천(天)도 벌(罰)하는 일이 없으니·하물며 선인(善人)에 있어서랴. 그러므로 묘락대사(妙樂大師) 가로되 「반드시 마음의 견고(堅固)함에 따라서 신(神)의 수호(守護) 즉 강(强)함이라」 등 운운(云云). 사람의 마음이 견고(堅固)하면 신(神)의 가호(加護)도 반드시 강(强)하다 함이라. 이는 당신을 위해서 말하느니라. 옛날의 신심(信心)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그보다도 지금 한층 강성(强盛)히 신심(信心)을 가지시라. 그 때는 더욱더 십나찰녀(十羅刹女)의 수호(守護)도 강(强)해지리라고 생각하시라.
오토님어소식 (乙님御消息) 미노부에서 54세에 술작기쁘도다, 생(生)을 오탁악세(五濁惡世)에 받았다 할지라도 일승(一乘)의 진문(眞文)은 견문(見聞)하게 되었느니라. 희련항사(熙連恒沙)의 선근(善根)을 쌓은 자(者)가 이 경(境)을 만나서 신심(信心)을 일으킨다고 설해졌느니라. 그대가 지금 일념수희(一念隨喜)의 신(信)을 다하니 함개상응(凾蓋相應) 감응도교(感應道交)는 의심할 바 없느니라.
성우문답초(聖愚問答抄) 가마쿠라에서 44세에 술작제일(第一) 안락행품지사(安樂行品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를 안락(安樂)하게 행(行)하는 일은 말법(末法)에 있어서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의 수행(修行)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를 수행(修行)함에 난(難)이 옴을 가지고 안락(安樂)이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어의구전(御義口傳) 미노부에서 57세에 술작(2)창제의 공덕에 확신을 갖자
세상에는 고민이나 괴로움을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물론 우리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본존에게 진지하게 제목을 하는 것으로 고민이나 괴로움을 극복해 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창제로 인해 어본존의 힘에 의한 공덕을 받게 되어, 신기하게도 최선의 방법으로 다양한 곤란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오전어반사(經王殿御返事)』에 「기필코 신심을 일으켜 이 어본존(御本尊)께 기념(祈念)하시라. 무슨 일이든지 성취(成就)되지 않을손가.」(신편어서 p.685)」 라고 말씀하시듯이 창제할 때는 신심 강성히 확신을 가지고 기념하면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어본존에게 제목을 부르고 기념(祈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직 이로 인해 우리의 기원은 성취됩니다.
예를 들면 ‘친구를 절복하고 싶다’, ‘공부나 운동을 잘해서 좋은 성적을 남기고 싶다’라는 소원을 이루고 싶다면 먼저 어본존에게 진심으로 제목을 불러 기념(祈念)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지고 올 것입니다.(3)제목(題目)을 널리 알리는 사람이 되자
니치렌 대성인님은 「일념(一念)이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무의왈신(無疑曰信)의 일념이다.」(신편어서 p.1745) 라고 가르치시고 있습니다.
「무의왈신(無疑曰信)」이란 어본존을 의심하는 마음 없이 믿는 것을 말합니다. 이 일념으로 제목을 부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법주 니치뇨(日如)상인 예하님은 「신심이라는 것은 무의왈신으로, 의심이 없는 것을 ‘신(信)’이라 합니다. 다시 말해 ‘이 어본존이야말로 절대적이다’라는 확신을 갖고 제목을 불러 나가야합니다.(중략) 그리고 제목을 부른 공덕과 환희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절복해 가는 자행화타(自行化他)의 신심을 하지 않으면 진실한 공덕은 없습니다.」(대백법 822호)라고 어지남하고 계십니다.
열심히 창제하여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본존에게 받은 공덕을 체험하고 실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친구에게 창제의 공덕을 이야기해가는 것이 자행화타에 이르는 창제 실천이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절복까지 확실히 행해야 비로소 어본존으로부터 진실한 공덕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니치렌 대성인의 올바른 제목을 부를 수 있는 행복과 자신(自信)을 갖고 많은 사람에게 어본존의 공덕을 널리 알려 나갑시다.말이라 함은 마음의 생각을 울려서 소리로 나타냄을 말함인데, 범부(凡夫)는 나의 마음에 미혹(迷惑)하여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니라. 부처는 이를 깨달아 나타내서 신통(神通)이라 이름하니 신통(神通)이란 혼신(魂神)이 일체법(一切法)에 통(通)하여 장애(障碍)가 없음이라. 이 자재(自在)의 신통(神通)은 일체유정(一切有情)의 마음인 고(故)로 호리(狐狸)도 응분(應分)으로 신통(神通)을 나타냄은 모두 마음의 혼신(魂神)의 응분(應分)의 깨달음이며, 이 마음의 일법(一法)에서 국토세간(國土世間)도 출래(出來)하는 것이니라. 일대성교(一代聖敎)란 이 일을 설(說)한 것이며, 이것을 팔만사천(八萬四千)의 법장(法藏)이라고 하느니라. 이는 모두 일인(一人)의 신중(身中)의 법문(法門)이니라, 그러므로 팔만사천(八萬四千)의 법장(法藏)은 자신일인(自身一人)의 일기문서(日記文書)로다. 이 팔만법장(八萬法藏)을 나의 심중(心中)에 내포(內包)하여 갖고, 품어 가졌노라, 나의 신중(身中)의 마음을 가지고, 부처와 법(法)과 정토(淨土)를 내 몸 밖에서 생각하고 원(願)하며 구(求)함을 미혹(迷惑)이라 하고 이 마음이 선악(善惡)의 연(緣)을 만나 선악(善惡)의 법(法)을 만들어 내느니라. <중략> 이 마음을 깨달아 앎을 이름하여 여래(如來)라 하며, 이를 깨달아 알고나면 십계(十界)는 나의 몸이고, 나의 마음이고 나의 모습이니라. 본각(本覺)의 여래(如來)는 나의 신심(身心)이기 때문이니라. 이를 알지 못하는 때를 이름하여 무명(無明)이라 하며 무명(無明)은 밝음이 없다고 읽느니라. 나의 마음의 모습을 분명(分明)하게 깨닫지 못함이라. 이것을 깨달아 아는 때를 이름하여 법성(法性)이라 하니, 고(故)로 무명(無明)과 법성(法性)은 일심(一心)의 이명(異名)이니라. 이름과 말은 둘일지라도 마음은 오직 하나의 마음이며, 이런 까닭에 무명(無明)을 단절(斷切)해서는 안 되느니라. 꿈의 마음인 무명(無明)함을 단절(斷切)하면 생시(生時)의 마음을 잃게 되는 고(故)로 통틀어 원교(圓敎)의 뜻은 일호(一毫)의 혹(惑)마저도 단절(斷切)하지 않으니 고(故)로 일체(一切)의 법(法)은 모두 이는 불법(佛法)이라고 하느니라.
삼세제불총감문교상폐립(三世諸佛總勘文敎相廢立) 미노부에서 58세에 술작열심히 창제하여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본존에게 받은 공덕을 체험하고 실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친구에게 창제의 공덕을 이야기해가는 것이 자행화타에 이르는 창제 실천이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절복까지 확실히 행해야 비로소 어본존으로부터 진실한 공덕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니치렌 대성인의 올바른 제목을 부를 수 있는 행복과 자신(自信)을 갖고 많은 사람에게 어본존의 공덕을 널리 알려 나갑시다.이 마음이 선악(善惡)의 연(緣)을 만나 선악(善惡)의 법(法)을 만들어 내느니라. <중략> 이 마음을 깨달아 앎을 이름하여 여래(如來)라 하며, 이를 깨달아 알고나면 십계(十界)는 나의 몸이고, 나의 마음이고 나의 모습이니라. 본각(本覺)의 여래(如來)는 나의 신심(身心)이기 때문이니라. 이를 알지 못하는 때를 이름하여 무명(無明)이라 하며 무명(無明)은 밝음이 없다고 읽느니라. 나의 마음의 모습을 분명(分明)하게 깨닫지 못함이라. 이것을 깨달아 아는 때를 이름하여 법성(法性)이라 하니, 고(故)로 무명(無明)과 법성(法性)은 일심(一心)의 이명(異名)이니라. 이름과 말은 둘일지라도 마음은 오직 하나의 마음이며, 이런 까닭에 무명(無明)을 단절(斷切)해서는 안 되느니라. 꿈의 마음인 무명(無明)함을 단절(斷切)하면 생시(生時)의 마음을 잃게 되는 고(故)로 통틀어 원교(圓敎)의 뜻은 일호(一毫)의 혹(惑)마저도 단절(斷切)하지 않으니 고(故)로 일체(一切)의 법(法)은 모두 이는 불법(佛法)이라고 하느니라.
삼세제불총감문교상폐립(三世諸佛總勘文敎相廢立) 미노부에서 58세에 술작그렇지만 닛코상인이 미노부산身延山 구온지久遠寺의 별당別當으로서 니치렌대성인으로부터 부촉付囑을 받으신 미노부身延의 지두地頭, 하기리 사네나가波木井實長가 니치렌대성인께서 입멸入滅하신 후,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佛法에 위배하는 여러 가지 방법謗法 행위를 거듭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닛코상인은 니치렌대성인의 정법正法, 정의正義를 지켜나가기 위해서 1289년 봄, 본문계단의 대어본존을 비롯해 니치렌대성인의 일체의 중보重寶를 가지시고, 니치모쿠상인日目上人 등의 문제門弟와 함께 미노부산을 떠나, 이듬해 1290년 10월, 난죠도키미쓰南條時光님의 기진寄進과 외호外護아래 후지富士의 기슭인 우에노上野 땅에 대석사大石寺를 건립하셨습니다.
석존釋尊 출세出世의 본회本懷,『법화경法華經』을 유일한 의경전으로 하여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제목을 불러, 자기 스스로의 행복은 물론 많은 사람들의 행복, 사회의 번영과 평화를 기원하는 종단이 일련정종입니다.
현재 세계 여러 나라에 니치렌대성인의 불법을 신앙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묘법妙法을 믿음으로써 참된 세계평화가 실현된다라는 가르침을 받아 신앙을 근본으로 올바른 인생관을 몸에 익혀 세계 각지에서 희망과 행복에 가득 찬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1)일련정종日蓮正宗이란?
일련정종日蓮正宗은 1222년 2월 16일, 일본에서 출현하신 니치렌日蓮대성인이 출가득도이래, 모든 불법佛法의 연찬을 끝내시고, 1253년 4월 28일 32세 때, 구원본불久遠本佛의 근본 법인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깨달음에 의거 종지宗旨를 확립, 선창宣唱하신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니치렌대성인은 가마쿠라鎌倉에서의 야습夜襲, 다쓰노구치龍之口에서의 처형處刑과 두 번의 유죄 등 수많은 법난法難, 박해를 참고 견디시며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대법을 넓히시고, 제자, 신도들을 육성하시어, 1279년 10월 12일, 전세계 사람들의 영원한 행복과 번영을 위한 본존으로서 본문계단本門戒壇의 대어본존大御本尊을 건립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인 닛코상인日興上人을 제2조로 정하시어, 불법의 일체의 오의奧義를 부촉하시고, 1282년 10월 13일에 안상히 입멸하셨습니다.
그렇지만 닛코상인이 미노부산身延山 구온지久遠寺의 별당別當으로서 니치렌대성인으로부터 부촉付囑을 받으신 미노부身延의 지두地頭, 하기리 사네나가波木井實長가 니치렌대성인께서 입멸入滅하신 후,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佛法에 위배하는 여러 가지 방법謗法 행위를 거듭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닛코상인은 니치렌대성인의 정법正法, 정의正義를 지켜나가기 위해서 1289년 봄, 본문계단의 대어본존을 비롯해 니치렌대성인의 일체의 중보重寶를 가지시고, 니치모쿠상인日目上人 등의 문제門弟와 함께 미노부산을 떠나, 이듬해 1290년 10월, 난죠도키미쓰南條時光님의 기진寄進과 외호外護아래 후지富士의 기슭인 우에노上野 땅에 대석사大石寺를 건립하셨습니다.
석존釋尊 출세出世의 본회本懷,『법화경法華經』을 유일한 의경전으로 하여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제목을 불러, 자기 스스로의 행복은 물론 많은 사람들의 행복, 사회의 번영과 평화를 기원하는 종단이 일련정종입니다.
현재 세계 여러 나라에 니치렌대성인의 불법을 신앙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묘법妙法을 믿음으로써 참된 세계평화가 실현된다라는 가르침을 받아 신앙을 근본으로 올바른 인생관을 몸에 익혀 세계 각지에서 희망과 행복에 가득 찬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현재 세계 여러 나라에 니치렌대성인의 불법을 신앙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묘법妙法을 믿음으로써 참된 세계평화가 실현된다라는 가르침을 받아 신앙을 근본으로 올바른 인생관을 몸에 익혀 세계 각지에서 희망과 행복에 가득 찬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법사품(法師品)에는 「사람이 있어 팔십억겁(八十億劫) 동안 무량(無量)한 보물(寶物)을 다하여 부처를 공양(供養)해 드리는 공덕(功德)보다도 법화경(法華經)을 설(說)하는 승(僧)을 공양(供養)한 후(後)에 잠시라도 이 경(經)의 법문(法門)을 청문(聽聞)하는 일이 있으면 나는 큰 이익(利益)과 공덕(功德)을 얻을 것이라고 기뻐하시라」고 쓰여져 있다. 무지(無智)한 자(者)는 이 경(經)을 설(說)하는 자(者)를 섬김으로써 공덕(功德)을 받을 것이라, 어떠한 귀축(鬼畜)일지라도 법화경(法華經)의 일구(一句) 일게(一偈)를 설(說)하는 자(者)는 「마땅히 일어나 멀리 마중하여 응당 부처를 공경(恭敬)하듯이 하라」는 도리(道理)이므로 부처와 같이 서로 존경(尊敬)할지어다. 예(例)를 들면 보탑품(寶塔品)의 때에 석가(釋迦) 다보(多寶)와 같이 할지어다.
이 산미보(三位房)는 하열(下劣)한 자(者)이지만 조금이나마 법화경(法華經)의 법문(法門)을 말하는 자(者)이므로 부처와 같이 존경(尊敬)하여 법문(法門)을 물을지어다. 의법불의인(依法不依人) 이것을 생각하시라.
마쓰노전답서(松野殿答書) 미노부에서 55세에 술작세계 어느 곳의 사람이나 괴로운 일, 슬픈 일, 또 곤란한 일을 만났을 때는 그것을 재빨리 해결하고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해결 방법을 찾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진실한 행복이란 단순히 의식주의 충족이나 풍요로운 생활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니치렌 대성인의 가르침 속에는 인간이 태어나서 살아가는 동안 나타나는 괴로움, 그 위에 노고老苦, 병고病苦, 사고死苦 등의 누구나 직면하는 인생의 본질적인 고뇌苦惱나 미혹迷惑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흔들림 없는 복덕福德을 얻는 길이 밝혀져 있습니다.
이 니치렌 대성인의 정법正法에 대한 발심發心과 정진精進에 의해 누구나가 모두 평등하게 자신의 생명을 정화淨化하고, 심신心身의 건강을 가져오며, 가정을 밝게 하고, 생활을 풍요롭게 하며, 일체의 재화災禍를 행복으로 전환해서 진실한 행복을 체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민족의 분쟁이나 전란이 끊임없는 나라들에도 참된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줄 수 있는 것입니다.광선유포(廣宣流布)의 때를 가리킴이로다. 전교대사(傳敎大師) 가로되 「정상(正像)은 초초(稍稍) 지나가고 말법(末法)은 매우 가까이에 있다」 등(等) 운운(云云).
현불미래기(顯佛未來記) 사도에서 52세에 술작법화경(法華經)의 제칠(第七)에 가로되 「나의 멸도(滅度)의 후(後)·후(後)의 오백세(五百歲) 중(中)에 염부제(閻浮提)에 광선유포(廣宣流布)하여 단절(斷絶)케 함이 없으리라」 등(等) 운운(云云). 내가 일단(一旦)은 한탄(恨歎)하여 말하되, 불(佛) 멸후(滅後) 이미 이천이백이십여년(二千二百二十餘年)이 지났는데 어떠한 죄업(罪業)에 의(依)하여 부처의 재세(在世)에 태어나지 못하고, 정법(正法)의 사의(四依)·상법(像法) 중(中)의 천태(天台)·전교(傳敎) 등(等)도 만나지 못하였는가 라고. 또 일단(一旦)은 기뻐서 말하되, 무슨 복(福)이 있어 후오백세(後五百歲)에 태어나 이 진문(眞文)을 배견(拜見)함인가. 재세(在世)도 무익(無益)하니 전사미(前四味)의 사람은 아직 법화경(法華經)을 듣지 않았으며, 정상(正像)도 또 보람없으니, 남삼북칠(南三北七)과 아울러 화엄(華嚴) 진언(眞言) 등(等)의 학자(學者)는 법화경(法華經)을 믿지 않았느니라. 천태대사(天台大師) 가로되 「후(後)의 오백세(五百歲) 멀리 묘도(妙道)에 첨(沾)하리라」 등(等) 운운(云云). 광선유포(廣宣流布)의 때를 가리킴이로다. 전교대사(傳敎大師) 가로되 「정상(正像)은 초초(稍稍) 지나가고 말법(末法)은 매우 가까이에 있다」 등(等) 운운(云云).
현불미래기(顯佛未來記) 사도에서 52세에 술작불법佛法은 지금부터 약 3000년 전, 인도에서 출현한 석존釋尊에 의해 설해졌습니다.
석존은 남녀의 성별이나 계급, 신분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40년 이상에 걸쳐서 여러 가지 경교經敎를 설했습니다.
그리하여 마지막에 8년간에 걸쳐 출세出世의 본회本懷인 『법화경法華經』을 설하여, 일체 사람들의 성불의 길과 구원久遠 불법佛法의 실재를 밝히셨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석존이 입멸하고 2000년 후의 악세惡世, 말법末法이라고 불리는 시대에 석존을 대신하여 전세계의 모든 중생을 근본적으로 구제하시는 구원久遠의 진실한 부처가 출현하실 것을 예증했던 것입니다.
석존 멸 후 2000년을 지나 석존의 불교가 인도에서 또 중국, 우리나라, 일본 등의 각국에 있어서도 완전히 구제의 역용을 잃었을 때, 정말 석존의 법화경의 예증대로 염부제 제일의 법화경 행자로서 니치렌 대성인이 출현하시어 구원久遠의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본존님을 근본으로 하는 종지宗旨를 확립하셨던 것입니다.. 어떠한 일이 있을지라도 법화경(法華經)에다 이름을 세우고 몸을 맡기시라. 석가불(釋迦佛) 다보불(多寶佛)·시방(十方)의 제불(諸佛)·보살(菩薩)·허공(虛空)에서 이불(二佛)이 서로 수긍(首肯)하여 정(定)하신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오로지 말법(末法)의 영법구주(令法久住) 때문이니라.
제법실상초(諸法實相抄) 사도에서 52세에 술작어떻게 하여서라도 이번에 신심(信心)을 다하여 법화경(法華經) 행자(行者)로서 일관(一貫)하고 끝까지 니치렌(日蓮)의 일문(一門)이 되어 나아가시라. 니치렌(日蓮)과 동의(同意)란다면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이 아니겠느뇨. 지용(地涌)의 보살(菩薩)로 정(定)해진다면 석존(釋尊)의 구원(久遠)의 제자(弟子)라 함을 어찌 의심하리오. 경(經)에 가로되 「나는 구원(久遠) 이래(已來) 이들 중(衆)을 교화(敎化)하였다」라고 함은 이것이니라. 말법(末法)에 와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를 홍통(弘通)하는 자(者)는 남녀(男女)를 가리지 말지니라. 모두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의 출현(出現)이 아니고서는 부르기 어려운 제목(題目)이니라. 처음엔 니치렌(日蓮) 한 사람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불렀으나 이인(二人)·삼인(三人)·백인(百人) 이렇게 차례로 불러서 전(傳)하느니라. 미래(未來)도 또 그러하리라, 이 어찌 지용(地涌)의 의(義)가 아니리오. 더구나 광선유포(廣宣流布)의 때는 일본일동(日本一同)으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게 될 것은 대지(大地)를 과녁으로 하는 것과 같으리라. 어떠한 일이 있을지라도 법화경(法華經)에다 이름을 세우고 몸을 맡기시라. 석가불(釋迦佛) 다보불(多寶佛)·시방(十方)의 제불(諸佛)·보살(菩薩)·허공(虛空)에서 이불(二佛)이 서로 수긍(首肯)하여 정(定)하신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오로지 말법(末法)의 영법구주(令法久住) 때문이니라.
제법실상초(諸法實相抄) 사도에서 52세에 술작니치렌 대성인의 정법, 정의에 의한 모든 공덕과 중생의 성불成佛은 존귀한 신앙의 실천에 의해 생기는 것입니다.
이 신앙의 실천에 신信·행行· 학學 세 가지가 있습니다.
신信은 본존님과 니치렌 대성인의 가르침에 대하여 흔들림 없는 신앙심을 갖는 것, 최승 ‧ 진실의 신앙을 관철하는 자라는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행行이란 스스로 발심하여 본존님을 향해 조석으로 근행을 하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제목을 불러 자신의 생명을 닦는 것입니다. 그리고 친척이나 친구, 지인에게 니치렌 대성인의 위대함을 알리고, 세계 사람들의 행복을 원하며, 자타 함께 정진하고 번영해 가도록 힘쓰는 것을 말합니다.
학學은 니치렌 대성인의 가르침을 배우고, 니치렌 대성인 이래 상전相傳의 불법을 니치렌 대성인의 어서御書나 어법주상인예하의 어지남 등을 통해서 이해를 깊이하고, 신앙의 기쁨과 신심 경애를 높여가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의 존귀한 실천 수행을 다 한다면 반드시 자신의 모든 소원을 성취하고, 현당이세現當二世에 걸친 일가의 행복과 번영이 약속됩니다.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는 모든 사람의 생명 속에 내재 되어 있는 부처의 생명인 불계佛界의 이름입니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뜻이 있습니다.
첫째, 나무南無란 귀명歸命하다 즉 자기의 신명身命을 바쳐 마음으로부터 부처에게 귀의歸依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생명을 귀의한다는 뜻으로 자기 자신의 생명을 인법일개人法一箇의 대어본존大御本尊에게 귀입歸入시킨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는 부처의 생명에 나의 생명을 바치겠습니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둘째, 묘호妙法의 묘妙란 깨달음, 호法란 미혹迷惑을 말합니다.
우리들은 사물에 미혹되어 번뇌에 집착하는 경우도 있으나 올바른 불도수행만 하면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결국 미혹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열쇠가 바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입니다.
셋째, 렌게蓮華란 연꽃을 말하며, 꽃과 열매가 동시에 피고 맺기 때문에 인과구시因果俱時를 나타냅니다. 마찬가지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는 순간부터 불계佛界는 이미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넷째, 쿄經란 일체중생의 언어와 음성을 뜻합니다. 그 중에서 중생을 설법 교화하는 것은 부처의 언어와 음성입니다. 특히 말법에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를 부르고 홍통하는 사람이 부처입니다.
결론적으로 우주의 삼라만상이 전부 묘호妙法이며, 렌게蓮華이자, 쿄經입니다.
따라서 어떠한 불행이나 고난도 행복으로 바꾸어 갈 수 있는 근원의 힘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며, 누구든지 부르기만 하면 부처의 생명을 끄집어낼 수 있는 부처와 중생의 공통언어입니다.목숨이라고 하는 것은 일신(一身) 제일(第一)의 진보(珍寶)이니 일일(一日)이라도·이를 연장(延長)한다면 천만량(千萬兩)의 황금(黃金)보다도 더 값지도다, 법화경(法華經)이 일대(一代)의 성교(聖敎)보다 초과(超過)하여 존귀(尊貴)하다 함은 수량품(壽量品) 때문이니라, 염부(閻浮) 제일(第一)의 태자(太子)일지라도 단명(短命)하면 풀보다도 가볍고, 일륜(日輪)과 같은 지자(智者)일지라도 요사(夭死)한다면 살아 있는 개만도 못하니라, 빨리 신심(信心)의 재보(財寶)를 쌓아 서둘러서 치료(治療)하시라
가연정업서(可延定業書) 미노부에서 58세에 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