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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3:1-6절) 죽어가고 있는 교회
이때 대개 가족들은 이 분이 얼마가지 못하고 돌아가실 것을 각오하고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때로는 국가(國家)가 거의 죽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왕이나 대통령이 있지만, 이들은 극히 무능하거나 힘이 없고 관료들이나 외국 기업은 완전히 이리떼와 같이 국민들이나 나라를 뜯어먹고, 군대는 있으나 마나할 때, 이 나라는 이미 죽은 나라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미 이런 일을 그렇게 멀지 않은 과거에 경험을 했습니다.
우리나라 왕은 무능하고 관료들이나 외국 정부는 이리떼와 같이 덤벼들어서 우리나라를 잡아먹을 때,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고 일본에 잡아먹히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마치 사자에게 일격을 당한 노루가 산 채로 사자 떼에게 물어뜯기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리고 일제 36년 동안 우리나라 국민들이 겪었던 비참한 것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대한민국은 없어졌고, 국민들은 자존심도 없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때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에 힘을 준 것은 부흥의 능력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어느 나라도 사랑해주지 않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사랑하셔서 복음을 주시고, 위대한 부흥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부흥의 능력은 일제 시대 내내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을 깨어 있게 하였고, 결국 어떤 어려움에도 좌절하지 않는 믿음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나라를 사랑하셔서 우리는 생각하지도 못한 방법으로 해방되게 하셨고, 전쟁의 홍역을 치른 후에 급격하게 부흥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살게 되고, 많은 물질적 복을 받게 되니까 먼저 교회가 부패하고, 교인들이 올바른 신앙을 버리고, 세상과 타협함으로 이제 이 하나님의 축복이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타락하고 부패해도 교회만 살아 있으면, 얼마든지 희망이 있는데, 지금 교회가 너무나 세상을 따라가서 이제는 교회가 먼저 썩어가게 생겼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목숨을 건 각오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서 죽어가는 교회의 부흥을 살려내야 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다시 되찾아야 합니다. 소아시아의 지도를 보면, 해변 밑에서부터 위로 세 도시가 나란히 있습니다. 그것은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입니다. 그리고 버가모 에서 내륙으로 조금 들어간 지점에서 아래쪽으로 비스듬히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네 도시가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소아시아에 신앙적 뿌리에 해당하는 교회인데, 여러 가지 거짓 선생들은 잘 물리쳤지만,‘첫 사랑을 잃어 버렸기 때문’에 책망을 받았습니다. 또 서머나 교회는 물질적으로 어렵고 가난하지만, 영적으로 잘 싸우고 있는 교회여서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버가모 교회는 이미 영적 싸움을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발람의 교훈’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교인들은 세상과 타협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두아디라 교회는 더욱 심각한 상태에 빠져 있었는데, 그것은 교회 안에 성적 타락이 들어와서 이미 목회자들이 이세벨이라는 여선지자와 간음을 저질렀고, 교회 안에 깊은 음행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이 두아디라 교회는 이 썩은 부분을 잘라내지 않으면, 주님이 철장으로 질그릇을 깨트리듯이 그들을 깨트려서 박살을 내겠다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 교회 가 사데 교회인데, 주님은 사데 교회에 대하여‘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데 교회는 이미 죽어서 교회로서의 기능이 중지된 상태였습니다. 즉 사데 교회는 환자로 치면, 중환자실에 있다가 결국은 호흡이 중단되고 맥박이 끊어져서 거의 죽기 일보 직전의 환자와 같았습니다.
이제 이 환자는 맥박만 끊어지면, 의시는 즉시 사망선고 판정을 내릴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데 교회 목회자나 교인 자신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교회가 죽는 것은 거의 표시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각 교회에 나타나신 모습은 그 교회의 병든 부분을 치료하려고 하시는 주님의 모습인 것입니다. 1절)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주님은 사데 교회에‘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분’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여기서‘하나님의 일곱 영’이라는 것은 성령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영(靈)이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최초의 생명체가 생기게 된 것도 성령님이 생명을 주셨기 때문이고, 이 세상에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것도 성령님이 새 생명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도 성령님이 믿음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교회에 영적 부흥이 일어나는 것은 일곱 영이신 성령님이 부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거의 다 죽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해서든지 빨리 수혈을 하거나 혹은 링거액을 꽂거나 혹은 주사를 놓아 생명이 되살아나게 해야 합니다.
심지어 환자의 호흡이 멈추었을 경우는 인공호흡을 하거나 혹은 전기충격을 해서라도 다시 맥박이 뛰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죽은 것은 사람이 보아서는 잘 알 수 없고, 또 교회가 죽었을 때, 어떻게 살려야 하는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어느 지역이나 국가가 살려고 하면, 영적 부흥이 먼저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일제에서 해방되고 전쟁을 극복하고 크게 부흥할 수 있었던 것은 교회가 먼저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새로운 개척교회를 세웠을 때, 이 개척교회가 살아날 확률이 1%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백 명이 임신을 했는데, 그 중에서 아이가 살아서 태어날 확률이 한명 밖에 안 되는 것과 같습니다. 아직 우리나라 교회가 잘 성장하다가 죽는 경우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교회가 죽어가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요즘 시골에는 청년들이 도시로 떠나니까 교회에 노인들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리 농촌 교회라 하더라도 목사님이 열심히 설교하면, 교인들이 꾸준히 늘고 특히 가까운 도시로 나간 자녀들이 주일이 되면, 교회에 돌아오기 때문에 활기가 넘치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농촌 교회가 옛날 같은 전성기를 다시 맞이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옛날에는 우리나라가 농사 중심이었기 때문에 어떤 농촌을 가더라도 아이들이 있었고, 청소년이 있었는데, 이제는 모두 도시에 가야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의 다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자가 살아 있고 영적 부흥이 일어나면, 그 교회 주위에 큰 도시가 들어선다든지, 하는 변화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즉 교회의 기도의 힘이 세상을 끌어오는 것입니다. 서울이나 대도시에는 동네 주위의 웬만큼 큰 상가인데도 주위에 있는 백화점에서 손님들을 다 끌어가는 바람에 문을 닫아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이 많은 곳에 세워지게 되어 있고, 사람을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영적 부흥이 일어나면, 사람들이 교회를 찾아 이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국 같은 서구를 가보면, 죽은 교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예배당이 세워져 있지만, 실제로는 교인들이 모이지 않거나 어떤 경우는 건물을 유지하기 어려워서 팔아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궁금한 것은 왜 영국 교회가 갑자기 죽게 되었을까? 백 년 전에만 해도 영국은 전 세계를 향해서 복음을 전하고, 선교사를 파송하던 나라였습니다. 영국 런던에는 아프리카나 아시아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선교회본부가 있었고, 유명한 목회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학생운동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독일 같은 경우에도 독일 신학은 거의 다 철학적(哲學的)인 신학입니다. 독일 사람들은 너무나 철학적이어서 성경을 반드시 철학적으로 보아야 지적(知的)인 가치가 있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까 독일 신학은 신학 자체가 너무나 어려워서 일반인들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이 난해(難解)한 설교가 되고 말았습니다. 교인들은 교회에 와서 세상에서는 들을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데, 교회가 세상과 똑같으니까 굳이 올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면, 사람들은 교회에 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거기에서 나오는 설교들이 전부 나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 말씀을 먹지 않으면 내가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올바른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증거 되는 것이 교회가 사는 길이요, 그 올바른 말씀을 통해서 성령님은 우리에게 하늘의 능력과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Ⅱ.실제로 죽은 교회 사데 에는 섬유가 발달된 도시였습니다. 특히 사데 는 섬유 중에서도 양모(羊毛)산업이 많이 발달되어 있었고, 그래서 사데 교회에 보낸 편지에도 옷에 대한 이야기가 다른 교회보다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데 라는 도시는 우리나라로 치면, 대구와 같은 곳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대구는 우리나라에서 섬유 공업이 가장 발달된 도시였고, 경제적으로 가장 여유가 있는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대구는 갑자기 섬유산업이 하향(下向)산업이 되면서 거의 없어지다시피 하면서 우리나라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도시가 되었고, 젊은이들이 제대로 직장을 구하지 못해서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그런 도시가 되고 말았습니다.
도시에서 젊은이들이나 교인들이 자꾸만 빠져 나가니까 거의 대부분의 교회들이 재정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교회는 현상 유지가 어려운 형편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데 교회는 한때는 소아시아에서 아주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교회였고 부족한 것이 없는 안정된 교회였습니다. 그 이유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네 행위’에 있다고 했습니다. 즉 사데 교회가 어떤 행위를 하고 난 뒤에 교회는 살았지만 실제로는 죽은 상태가 된 것입니다. 아마 이것은 사데 교회가 복음의 핵심적 진리(眞理)를 버리는 순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와 비슷한 것을 먼데서 찾을 필요 없이 우리나라 교회 역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회는 일 제 시대 때,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부흥되고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교회의 부흥이 우리 민족의 정신을 지키는 든든한 보루였습니다. 그런데 일제는 전쟁 말기가 되면서 더욱 악랄(惡辣)하게 기독교를 탄압했습니다. 이때 미국의 한 선교사가‘아니요’하면서 반대를 했지만, 이미 일본에 굴복한 목사들에 의해서 한국 교회는 일본의 천황숭배를 정식으로 가결했습니다. 그리고 이 결정 이후로 한국 교회는 살았지만, 사실 전혀 기능을 하지 못하는 식물교회가 되고 만 것입니다. 교회의 많은 목회자들은 신사(神祀)참배를 하지 않는다고 교회에서 쫓겨나거나 혹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교회에서는 예배드리기 전에 일본 천황을 위해서 절을 하고 난 후에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우리가 사데 교회의 사정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어느 한 순간 사데 교회 지도자들이 로마의 황제숭배나 혹은 세상의 유행을 받아들이기로 결정을 한 후에 사데 교회는 식물교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천주교(天主敎)의 경우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진리를 믿지 않고, 교회의 전통을 성경위에 두기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천주교는 죽은 교회가 된 것입니다. 특히 로마 천주교는 성 베드로 성당을 짓기 위해서 면죄부(免罪符)를 팔면서 그것이 극단적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진정한 교회가 무엇이냐? 는 문제에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이들은 참된 교회는 교회의 제도만 있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 선포가 있고, 성례가 행해지며, 성도들의 잘못에 대하여 올바른 가르침이 행해져야 올바른 교회라고 정의를 내렸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아무리 작은 방에서 모이고, 집 밖에 십자가를 달아 놓지 않았다 하더라도 올바른 말씀의 선포가 있고, 성례(聖禮)가 있고, 권징(勸懲)이 있으면, 진정한 교회라는 것입니다. 종교 개혁자들의 말에 의하면, 로마 천주교는 올바른 말씀 선포가 없기 때문에 진정한 교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 천주교에서 개신교가 갈라져 나온 것이 아니라, 진정한 교회에서 로마 천주교가 떨어져 나간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 교회 안에 너무나 많은 우상이 있고 올바른 말씀 선포가 없기 때문에 죽은 교회라고 말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개신교도 얼마든지 죽은 교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해야 합니다. 한때 아무리 부흥하던 교회라 하더라도 올바른 말씀 선포가 없으면, 교회는 결국 죽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약 성경을 보면,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됩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남(男)과 북(北)으로 갈라집니다. 그런데 북쪽 이스라엘 왕국은 일찌감치 하나님의 말씀을 포기하고, 금송아지 숭배로 빠집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우상 숭배에 빠졌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금송아지가 여호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각은 모세같이 여호와의 율법만 믿는 것은 너무 패쇄적이니까 여호와의 종교와 이방 사상의 장점을 같이 받아들이자는 것입니다. 즉 우리나라로 치면, 기독교의 축복사상과 세상의 성공을 같이 추구하는 것입니다. 북쪽 이스라엘도 이런 식으로 여호와의 종교의 장점과 세상의 축복을 함께 받아들임으로써 엄청난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 아니었고, 이스라엘은 신앙의 순수성을 잃고 결국 망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이 망할 때, 사람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죽었는지, 대영박물관의 앗수르 관에 가보면 나오는데,‘사람들의 껍질을 벗겨서 죽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북쪽 이스라엘 교회가 죽은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을 공격했는데, 예루살렘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18만 5천 명이라는 군대가 하루 밤사이에 예루살렘 밖에서 몰살을 당합니다. 왜 다섯 배나 강한 이스라엘을 무너트린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은 이기지 못했을까? 그 당시 예루살렘은 아직 성전의 기능이 살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성도들이 눈물로 기도하는 교회는 어느 악(惡)한 세력도 정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도 그 후에 말씀을 버리고 우상을 성전 안까지 끌어들였을 때, 바벨론 군대에 의하여 똑같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보면 교회가 죽는 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습니다. 죽은 교회는 성도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줄 수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그대로 설교한다는 것은 거의 자기 목숨을 걸어 놓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설교자들이 사람들의 눈치나 보고, 자기 자리나 지키려고 할 때, 결국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설교를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 외. 어떤 것도 자랑거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의 행위가 교회 안에서 칭송되면, 그것은 결국 자신들의 의(義)가 되어 결국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광채를 막고 말 것입니다. 성령이 역사하시게 하기 위하여 우리 인간의 모든 자랑들은 모두 걷어 치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데 교회가 거의 다 죽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부분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사데 교회를 향해서 다른 것은 하려고 하지 말고, 지금 살아있는 그것이나 붙들어서 완전히 죽지 않도록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나라 목회자나 교인들 중에는 미국의 것이면 무조건 좋은 줄 알고 받아들이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미국이나 영국의 복음 송 같은 것들은 너무나도 좋은 것이 많고, 또 이미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진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나 영국의 교회와 한국은 사정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즉 이미 미국의 교회들은 거의 죽은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교회가 있고 교인들도 있지만, 너무나도 경직되어 있고, 형식적인 교회나 교인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들 중에는 새로운 부흥을 일으키기 위해서 완전히 불신자들 그 중에서 히피족이나 마약 중독자들 혹은 동성연애자들 이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전도해서 교회를 부흥시킨 분들이 있습니다.(캘리포니아 릭웨런 목사 새들백 교회) 이런 목회자들은 대개 오래된 형식을 완전히 깨고, 옷도 편한 옷으로 입고 예배의 형식도 자유롭게 해서 믿지 않는 자들이 편하게 교회에 오도록 하는 방법을 써서 성공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목회자들은 교회를 전혀 교회 같지 않은 느낌을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에 있어서도 믿지 않는 자들이 전혀 이질감(異質感)을 느끼지 않도록 해서 기독교를 조금씩 알아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예배의 형식을 없애기도 하고, 심지어는 교회도 전혀 교회 같지 않게 짓는 것이 유행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회는 아직 죽은 교회가 아닙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복음만 제대로 선포되기만 하면, 얼마든지 교회는 다시 부흥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는 부흥의 불씨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살려야 교회나 세상이 죽어서 썩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3절)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여기서‘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라는 것은‘복음(福音)’을 말합니다. 즉, 교회로 하여금 복음의 능력을 되찾으라는 것입니다. 여기서‘회개하라’는 것은 인간의 잘못된 생각이나 방법을 버리고,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것입니다. 교회가 죽었을 때, 간단한 복음적 설교가 얼마나 큰 역사를 불러일으키는지 모릅니다. 고(故) 대천덕 신부님의 원래 뿌리는 성공회가 아니라, 장로교였습니다. 이 분의 이름은 아쳐 토레이인데, 그분의 할아버지도 이름이 아쳐 토레이 였습니다. 할아버지 토레이는 무디와 함께 부흥사역을 하셨는데, 이 분도 특히 호주에서 큰 부흥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그의 설교는 아주 기본적인 교리 설교였습니다. 그런데도 큰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기본적인 그런 진리의 선포만으로도 놀라운 부흥과 회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혀 있었던 걸림돌이 제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있는 그대로 풀어서 설교해도 나타나는 반응은 놀랍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너무나도 형편없는 것이 주님의 복음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은혜요, 믿음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오늘날 복음이 가장 필요한 곳은 교회 안입니다. 왜냐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 진정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런데 이미 오래 전부터 믿은 분들은 자기가 한 번도 죄인이라는 깨달음 없이 교회에서 오래 믿음 생활을 했기 때문에 신자가 되고, 직분 자가 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결국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을 줄 모르고, 오히려 전통이라든지, 사업계획 같은 것을 너무나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행사가 없으면,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봉사 위주의 신앙생활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전도해야 할 대상은 먼저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복음 설교를 듣고 큰 은혜를 받습니다. 왜냐면 복음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도 도전이 되지만, 믿는 사람들에게도 굉장히 큰 힘이 되고,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복음의 능력을 되찾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있는 그대로 선포되어져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갑작스러운 심판이 오게 될 것입니다.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여기에‘도둑같이 임하겠다’는 것은 교회 파괴의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기서 교회 파괴 운동은 교회를 가장 싫어하는 세력들에 의해서 일어나게 됩니다. 결국 소아시아는 사라센 제국이 침략하면서 교회는 완전히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이 당시 회교도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면, 상금을 주었습니다. 사라센 제국이 공격했던 소아시아나 북부 아프리카는 당시 기독교가 가장 번창했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21세기에 공산주의에 의해서 다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평양이나 북경이나 러시아나 모두 기독교가 나름대로 번창하는 곳에 공산주의가 들어와서 완전히 교회를 죽이는 일을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도둑같이 임한다는 말씀이 얼마나 무섭게 이루어졌는지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복음의 능력을 잃어버린 이름뿐인 교회나 신자들을 가장 무자비하고 무시무시한 세력에 의해 심판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올바른 신앙을 지키고 있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4절)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여기서‘흰옷’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용서 받고, 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 믿을 때, 우리 모든 죄를 다 사하시고 깨끗한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데 교회에서 이 믿음을 더럽히지 않고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모두 마치 구약 이스라엘의 엘리야 때에 바알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은 7천 명과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로부터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힌 자들이요, 세상에서는 손가락질 당하는 처지에 있었지만, 예수님은 이들이‘흰 옷을 입고 있다’고 칭찬하셨습니다. (갈3:27절 세례 =그리스도의 옷). 즉 이들은 처음 들은 그 복음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붙들었으며, 다른 인간의 의(義)나 자랑을 믿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의지한 자들입니다. 주님은 이들을‘합당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들이야말로 주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에 합당한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죄용서 받은 자들이며, 거짓된 인간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은 자들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생각대로 믿으면, 반드시 잘못된 길로 가지만, 성경대로 믿는 사람은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독교는 이성으로‘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주의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성경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은 더러운 귀신이 속일 수 없습니다. 누가 뭐라고 거짓말을 해도 속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기는 자에게 놀라운 약속을 하셨습니다. 5절)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예수님은 세 가지 약속을 하십니다. 첫째는 그들에게 흰 옷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여기서의 흰 옷은 영광의 옷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지키며, 신앙의 순결을 버리지 아니한 그들을 영광스럽게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들에게 이 세상에서 받은 치욕과 비난을 보상하고도 남는 영광을 주실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세상에서 성공의 화려한 옷을 입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세상의 옷은 하나님의 영광의 빛에 비추어보면, 너무나도 더러운 누더기인 것입니다. 우리가 때로는 옷을 빨아서 잘 다려 입었다고 생각해도 햇빛에 나와 보면 얼룩이 있고 다림질이 잘되어 있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입은 옷은 어두운 데서는 멋진 것 같은데, 하나님의 빛 앞에서는 더러운 누더기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의 옷은 하나님의 빛에 나아올수록 더욱 깨끗하고 흠이 없는 옷입니다. 두 번째는 그들의 이름을 생명책(生命冊)에서 흐리지 아니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주님이 이들을 일일이 기억하셔서 절대로 중간에 변질되거나 타락하지 않게 붙들어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복음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핍박을 당하는 자들을 끝까지 지켜주셔서 실패하지 않게 하십니다. 세상에는 온갖 거짓과 더러운 인간의 의(義)가 그리스도의 자리를 찬탈(簒奪)하고 참된 복음의 빛을 막는 중에도 참으로 주님의 복음을 붙드는 자는 흰 옷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최종적으로 하나님 아버지 앞과 천사들 앞에서‘이들이 참 내 성도’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시인(是認)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왜냐면 이들이 세상에서 주님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이들은 주님이 주신 구원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이들을 부끄러워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는 모든 영광과 존귀한 대접을 다 받았는데, 막상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이‘너는 아니라’고 하시면, 너무나도 당황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 인정을 받아야만 진짜 신앙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들은 우리를 평가할 입장에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아무것도 모르면서 지껄여대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그 복음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됩니다. 끝까지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의(義)의 옷을 더럽혀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서‘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인정을 받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찬송가 446장 *주 음성 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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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 낮 예배(견본 참조) 생명의 양식 공유(셀 모임 : 회원 또는 가족)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 하늘에 쌓는 온라인 보물(마6:20-21) 농협 302-8772-0191-01(헌금종류) 축복의 통로 다음카페 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카톡선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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