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현충원에 묻힌 이야기] 민주화운동 열사 희생자 이승삼·이진래·정연관 열사 평범한 사람의 노력과 희생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만들어 왔습니다. 대전현충원에는 민주화운동 과정에 힘을 모았던 열사와 희생자가 여럿 안장돼 있습니다. 이승삼 열사 현충탑 03-3-707위에는 이승삼 이병의 영혼을 기리는 위패가 봉안돼 있습니다. 이승삼 열사는 1966년 부산 당감동에서 태어났습니다. 1983년 4월 2일에는 부산 당감성당에서 부산 울산 경남 지역 민주화운동 대부로 불린 송기인 베드로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당시 부산 당감성당은 민주화운동 근거지였습니다.
선임병에 '야당 찍겠다' 선언, 이후 그는 군대에서 죽었다 김선재 2024. 5. 28. 10:36
평범한 사람의 노력과 희생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만들어 왔습니다. 대전현충원에는 민주화운동 과정에 힘을 모았던 열사와 희생자가 여럿 안장돼 있습니다. 이승삼 열사
현충탑 03-3-707위에는 이승삼 이병의 영혼을 기리는 위패가 봉안돼 있습니다. 이승삼 열사는 1966년 부산 당감동에서 태어났습니다.
1983년 4월 2일에는 부산 당감성당에서 부산 울산 경남 지역 민주화운동 대부로 불린 송기인 베드로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당시 부산 당감성당은 민주화운동 근거지였습니다.
1986년 2월 이승삼 열사는 부산공업전문대 전기과에 입학했는데요. 학교에서 가톨릭 학생회 회장을 역임하며, 부산지역 가톨릭 학생회 회장단 모임에 적극 참여했습니다. 성당에서는 청년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5.18 민중항쟁 사진전과 비디오를 돌려보며 민주 의식을 형성했습니다.
직선제 개헌과 민중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시위와 집회에도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1986년 12월 16일 논산훈련소에 입소한 후, 1987년 2월 2일 강원도 원주에 있는 36사단으로 배치받아 공병대 본부중대 행정반 서무계 조수로 군 생활을 시작했는데요. 민주 의식을 가지고 있던 열사는 군대 내 부조리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이승삼 열사는 고참이 내린 부당한 지시를 거부했는데요. 이로 인해 고참병으로부터 수시로 기합과 얼차려를 당했습니다.
당시 부대에서는 분위기 상 후임병이 구타를 당하거나 금전을 도난당해도 고참이나 상급자에게 보고할 수 없었는데요.
이승삼 열사는 부당하게 구타당한 점과 금전 도난 사실을 당시 일직사관에게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보고 체계를 통해 어려움을 호소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아지는 점은 없었습니다. 구타행위와 내무 부조리는 그대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