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이야기.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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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한 시각은 5시 30분이다.
도착하기 한 시간 전부터 지친 몸때문에 허걱댔다.
아까 아줌마 한 분이 나보고 혼자서 이 길을 간다고 대단하고 했는데, 정말 대단한 일이구나.
속이 메스껍다.
노고단에 도착하자마자 배낭을 내려놓고 매점 앞 계단위에 앉아 캔막걸리와 김치볶음밥을 꺼냈다.
이 술 맛은 정말이지 끝내준다.
옆을 보니 나처럼 계단위에 자리잡고 앉아 밤을 깎는 아저씨가 계셨다.
아저씨가 풀어놓은 짐 중에 분홍색 막걸리병이 자꾸 내 눈을 끈다.
얘기해보니 인천에 사는 홍씨아저씨는 정통 산사나이셨다.
지리산을 비롯하여 방대한 산 이야기를 푸짐하게 풀어놓다.
몸도 푸짐하게 생겼고, 인정도 푸짐하고 재미도 푸짐하다.
서로 얘기를 나누다가 내가 지리산에 대해 아는 게 없자, 다음에 올 땐 꼭 지리산에 대해 공부하고 오라고 구박아닌 구박을 하신다.
허허실실하며 알았다고 하고 '이형규, 이현상, 길섶, 남난희, 책 <하얀 능선으로>, <77일간의 백두대간>'등을 메모해 놓았다.
산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산사나이가 확실하다.
이렇게 만난 인연에 감사하다.
노고단 산장에 어둠이 내리고 초승달이 떴다.
분홍색 산수유 이쁜 막걸리 한 병이 바닥날 즈음, 내가 하모니카를 불어준다고 하자 살뜰한 실랑이가 벌어졌다.
아저씨의 말은 '열 명 중 한 명이라도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니 불려면 저쪽에서 조용히 불고오라'는 거였다.
나도 할 말이 있었다.
'제가 박재동 김이준수 책 풀판기념회에 갔는데 그 자리에서 박재동님께서 그러셨어요. 아기 우는 소리와 악기 연주하는 소리를 소음으로 들어선 안된다고. 우리 사회가 그 두가지 소리만큼은 포용력있게 행복한 소리로 들어줘야 한다고 했어요.' 하고 말하니
'거 되게 하고 싶은가 보네. 한 번 불어봐요.' 하신다.
내 생각엔 속깊은 아저씨가 근처에 있는 20여명의 사람들이 미리 우리 얘기를 듣고 혹시 모를 반감없이 잘 들어보라고 예고한 것 같았다.
그러니 살뜰한 실랑이가 맞겠지.
세 곡을 불고 나니 '내가 하모니카에 대해 잘 모르는데, 연주 잘하는 거 맞죠? ' 그러신다.
주변 사람들도 같이 흥얼거리고, 웃으며 지나간다.
홍씨아저씨는 김현식, 김광석, 이장희 노래를 불어보라 주문도 하고, 덩실덩실 어깨춤도 추신다.
멋있는 사람이다.
<찔레꽃>, <섬마을선생님>을 불고 나니 그의 배낭에서 소주병이 나오고 유리소주잔도 나온다.
산에서 1박 이상을 하는 등산객에게 가장 귀한 게 술인데 알뜰히 챙겨온 가방에서 술 한 병이 나오다니, 흐미, 기분 좋은거.
다음 날 아침 늦게 잠 깨어 대피소 문을 여니 저쪽에서 "아줌마?" 하며 그 아저씨가 손을 흔든다.
나도 손 흔들어 인사했다.
산에서 나눈 짧은 우정이다.
들국화라는 닉보다 지리산반달곰이 더 어울릴 것 같은 홍씨아저씨.
이 분 얼굴은 지리산에서 또 만나면 기억날 것 같다.
첫댓글 몇년전 시월의 막바지 65세이상인 7명을 이끌고 지리산 종주를 한적이 있었습니다,
예약한 산장에 늦게 도착해서 밖에서 비박을 하며 종주하는 동안 고생고생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다행이도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수있다는 천황봉 일출을 볼수 있었답니다.
문샘께서도 지리산을 자주 가시는군요.
언제 시간되시면 하늘아래 첫동네에 들리시어 송어회도 맛보시길 권해 봅니다.^_^
김선생님께서 대단한 일을 하셨네요.
저는 지리산을 가도 천왕봉을 찍은 적이 없으니...
무릎 시큰거리고, 발가락 발톱이 아퍼, 제 체력에 맞게 짧게만 걸어다닙니다.
그러니 지리산에 대해 공부하고 오라는 타박을 받았지요. ㅎㅎㅎ
언젠가 지리산하늘아래 첫동네 송어회도 먹을날이 있을런지...^^
한참늦은 오늘에야 읽었네요.
읽으면서 흐뭇한 표정지으며 나도 지리산 노고단 자락 계단에 걸터앉아 있네요.
이쁜 막걸리병에서 흘러나오는 뽀얀 막걸리를 한잔 얻어 마실까나요.
혼자 지리산에서 막걸리도 마시며 한밤 자기도한다는 엄청난 사건(?)이
왜이리 부럽나요? 평생 해볼 엄두를 못내는 것을 한탄하며 부러워만 합니다.
꼭 한번 해보고 싶어요. 부러워요. 그여린 몸에서 어찌이런 강단이 나오다니......
시인 박선생님!
막걸리도 좋고, 밤하늘의 초승달도 좋고, 노고단 자락의 바람도 좋지요^^
이거 엄청난 거 아니예요.
저도 처음에는 단체산행에 같이 가고, 옆지기랑 둘이서도 가고...
그렇게 시간보내다가 혼자서 가 본 거예요.
어찌 생각하면 이렇게 다닐 수 있는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홍아저씨가 우리 하모니카협회의 홍회장님인 줄 알았다는.ㅋㅋ
아, 성이 같으네요^^ 지리산반달곰 아저씨는 좀 통통하세요^^
우연히 만난 사람을 또 만나기는 쉽지 않지만, 지리산에서 또 뵙고싶은 분이네요. 영화 에베레스트를 보면서 생각난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