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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르 몬드리안(Pieter Mondrian・1872~ 1944. 네덜란드), 빅토리 부기우기(Victory Boogie Woogie), 1942~44년, 캔버스에 유채와 연필, 테이프 등, 127.5×127.5cm, 헤이그 게멘테 미술관 소장
헬무트 콜의 ‘눈물’, 부러웠다
1996년 프랑스 대통령 프랑수아 미테랑(Francois Mitterrand, 1916~1996)의 영결식이 유서 깊은 노트르담 성당에서 거행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영결식을 지켜보던 독일의 헬무트 콜(Helmut Kohl, 1930~2017) 총리가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채 결국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눈물을 ‘진주보다 아름다운 눈물’이라 칭송하면서도, 왜 그가 눈물을 흘렸을까 의아해하기도 하였습니다.
필자는 헬무트 콜의 ‘눈물’이 진정 두 거인이 나눈 깊은 우정의 결정체라 생각하였습니다. 삼십오 년 전인 1984년의 역사적인 한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곳이자 격전지였던 프랑스령 베르됭(Verdun)에서 전쟁 발발 70주년 기념행사에 즈음하여 프랑스 대통령이 역사상 처음으로 독일군 전몰자묘역을 방문했습니다. 그곳에 프랑스 대통령이 방문했다는 사실 자체도 놀라움으로 다가왔는데, 거기에 더하여 프랑스 대통령과 독일 총리는 전몰자기념비 앞에서 함께 손에 손을 잡고 묵묵히 조의를 표하였습니다.
프랑스 대통령 프랑수아 미테랑과 독일 총리 헬무트 콜이 보여준 아름다운 우정을 지켜본 전 세계 시민들은 그 아름답고 품위 있는 용기에 숙연해지기까지 하였습니다.
‘프랑스・독일, 독일・프랑스’ 국가 원수들이 전몰자묘역에서 서로 손을 맞잡은 모습에서 뿜어 나오는 열기가 찬바람이 세차게 부는 쌀쌀하였던 날씨도 잊게 하였다고 전해옵니다. (FAZ. 1984. 9. 22.). 그만큼 지켜보던 이의 마음도 온기로 가득하였던 것입니다.
1960년대 초, 나토(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었던 독일의 연방군(Bundeswehr)과, 프랑스의 군대는 조약에 따라, 군사훈련을 목적으로 국경을 넘어 상대국 영역에 진입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필자는 독일의 시민들이 높은 적대감을 가지고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프랑스와 독일, 독일과 프랑스는 그 어느 나라의 전쟁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처절한 승패가 오갔던 아픈 전쟁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본보기가 1871년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Kaiser Friedrich Whilhelm I.) 황제대관식을 겸한 독일의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k) 총리가 이끈 ‘보불전쟁(普佛전쟁, Deutsch-Franzoesischer Krieg)의 승전 기념식을 독일에서 거행하지 않고 굳이 패전국 프랑스, 그것도 프랑스의 자존심인 베르사유궁(宮)에서 거행하였던 것입니다.
패전의 결과로 프랑스는 알사스-로렌[Alsace-Lorraine(프랑스), Elsass-Lothringen(독일)]이라는 드넓은 국토를 승전국 독일에 빼앗긴 것도 서러운데, 독일이 승전 기념식을 자국의 심장에서 거행하는 오만함의 극치를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프랑스인들의 심정은 ’먹물처럼‘ 새까맣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독일과 프랑스, 프랑스와 독일 국민은 서로 끝 모를 증오심만을 키웠던 것입니다. 1960년대 독일에서 지내던 필자도 양국 간의 깊은 증오심을 일상생활에서 수도 없이 실감하곤 했습니다.
그러한 양국이 ’역사라는 공간’에서 30년이라는 절대 길지 않은 시간에 두 나라 정상들이 그것도 서로 잊을 수 없는 전쟁의 상흔이 가득한 장소인 전몰자묘역에서 화해의 ‘손에 손을 잡는’ 행동이 충격적일 만큼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왔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 역사적인 장면에 독일도, 프랑스도, 세계도 놀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필자는 헬무트 콜에 대한 저서 《헬무트 콜과 역사의 외투(Helmut Kohl und der Mantel der Geschichte)》 (Gernot Sittner, Sueddeutsche Zeitung Edition, 2016)를 읽고 나서, 그 우정의 뿌리가 헬무트 콜의 엄청나고 끈질긴 노력의 결과였을 거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헬무트 콜은 그의 총리 임기 16년(1982.10.~1998.10.), 즉 192개월 동안 프랑스를 무려 79번이나 방문하였답니다. 좀 더 수치화하면 독일 총리는 그의 임기 중, 두 달 반마다 이웃 나라 프랑스를 찾아 나선 것입니다. 여기에 프랑스 대통령이 독일을 찾은 횟수를 고려한다면, 아마 두 나라 정상은 두 달이 머다 하고 서로 얼굴을 맞대었던 것으로 짐작합니다. 상상을 초월한 전무후무한 국가 정상 간의 ‘빈번한 교류’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헬무트 콜이 노트르담 성당의 영결식에서 ‘마음의 친구’를 영면의 길로 보내는 심정이 남달리 애절하여 눈물이 절로 흘렀을 것으로 짐작하였습니다.
요즘 들어 고인이 된 프랑수아 미테랑과 헬무트 콜, 두 정치 거목을 자주 떠올리는 것은 한국과 일본, 일본과 한국 사이의 거리감이 너무 멀어져, 위험수위에 다다른 것은 아닌지 걱정되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와 독일, 독일과 프랑스 간의 역사는 우리와 일본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도 어떤 해법이 나와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필자는 그 해결의 실마리를 ‘만남’에서 찾았으면 합니다.
지난 반세기를 돌아보면,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이렇게 ‘황망’한 상태에 이른 적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나 외교와는 거리가 멀어, 필자의 생각은 대중의 범주를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풀뿌리 대중의 생각에도 일말의 의미가 있다면, 우리 대통령이 일본과의 접촉을 소홀히 하지 말았으면 하는 아쉬운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우리 한반도를 멀리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없기에 일본과 이웃해야 하는 지정학적 조건이라면 이제는 서로 함께 사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프랑스에서나 유럽 여러 곳에서나 나치 독일의 만행을 고발하는 홀로코스트(Holocaust)가 담고 있는 공통 언어가 있다면, 그것은 '용서하되 잊지 않겠다(Forgive it, but never forget it.)'는 다짐입니다. 용서의 힘을 느끼게 합니다. 이를 가장 강력하게 서술적으로 남긴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 1854~1900)가 했던 “항상 당신의 적을 용서하라, 그것만큼 적을 괴롭힐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Always forgive your enemies, nothing annoys them so much)”는 글귀가 떠오르는 요즘입니다. 그래서 헬무트 콜의 진주와도 같은 눈물이 부럽게 다가옵니다.
[2019.06.21. 06:58에 받은 e메일에서 퍼온 글] / 필자소개; 이성낙(뮌헨의과대 졸업.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전 한국의ㆍ약사평론가회 회장, 전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메리골드
目(눈목) 的(과녁 적)
양견(楊堅)이 북주(北周)를 무너뜨리고 수(隋)나라를 세울 580년 무렵이었다고 한다. 양견에게 쫓겨난 북주의 대신 두의(竇毅)에게 딸이 하나 있었다. 용모와 재주가 뛰어났고 용맹함마저 갖췄다고 한다.
두의는 이런 딸을 시집보내려 아이디어를 하나 냈다. 공작(孔雀) 그림이 있는 병풍을 세워두고 먼 거리에서 공작의 두 눈을 화살로 쏘아 맞히는 사람에게 딸을 준다는 소문을 냈다. 아주 많은 사람이 와서 도전했지만 죄다 실패했다.
드디어 한 사람이 찾아와 정확하게 공작의 눈을 맞혔다. 이연(李淵)이라는 사람이었다. 뒤에 당(唐)나라를 세운 고조(高祖)다. 두씨(竇氏) 부인은 당나라 최고 전성기를 이끈 태종(太宗) 이세민(李世民)의 생모다.
그런 맥락에서 과녁의 뜻으로 등장한 글자가 目(목)이다. 그다음에 的(적)을 붙이면 目的(목적)이라는 단어를 이룬다. 的(적)은 과녁의 중심이다. 전체 과녁을 가리켰던 글자는 본래 侯(후)다. 이 글자 안에 화살을 지칭하는 矢(시)가 들어 있음에 주목하자. 초기 글자꼴을 보면 펼쳐진 과녁에 화살이 날아드는 모습이다. 따라서 초기 이 글자의 새김은 과녁이다. 射侯(사후)는 과녁을 맞히는 일, 나아가 그런 예법을 일컫는다.
과녁의 핵심을 일컫는 한자어는 또 있다. 正鵠(정곡)이다. 여러 해설이 있어 정확하게 특정하기가 조금 어렵다. 일반적으로는 베 등 직물에다 그린 과녁의 핵심을 正(정), 가죽에다 그린 과녁의 가운데를 鵠(곡)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正鵠(정곡)이라고 하면 과녁의 가장 중간, 핵심의 목표다.
과녁이라는 말 또한 한자어 貫革(관혁)에서 왔다. 화살로 겨냥해 가죽의 가운데를 뚫는 일이었다가 결국 지금의 말로 자리잡았다. 모두 타깃을 설정해 정확하게 겨냥하며 쏘는 일이다.
그런 ‘목적’이 분명하지 않으면 지향(指向)을 놓친다. 제가 이루는 업(業)의 방향을 잃으니 행위가 부실해지다가 결국 망조(亡兆)에 접어든다. 나라 지키는 군대가 그 지경이라면 심각하다. 삼척에 북한 선박이 닿을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한 지금의 우리 군대가 꼭 그 경우다.
[퍼온 글] / 출처; 한국경제신문 / 2019.06.21 00:10 유광종(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체리세이지
골드바 품귀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칸영화제에서 받은 상은 황금종려상이다. 칸의 상징인 종려나무 잎을 섬세하게 표현한 황금 트로피다. 베니스영화제는 황금사자상, 베를린영화제는 황금곰상을 각각 최우수 작품상으로 수여한다. 세계 3대 영화제가 한결같이 최우수 작품에는 금으로 만든 트로피를 수여한다는 게 흥미롭다. 금으로 만든 트로피가 그만큼 값지고 영예롭기 때문일 것이다.
수학에도 황금이 등장한다. 황금분할(황금비)이 그것. 물론 금 덩어리가 아니라, 인간이 인식하기에 가장 균형적이고 이상적으로 보이는 비율(1:1.816)을 말한다. 건축・조각・회화・공예 등 조형예술 분야를 비롯해 TV 화면, 현금카드, 담뱃갑 등 각종 제품에는 모두 이 황금분할을 기초해 모양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식물의 잎이나 꽃뿐만 아니라 미인의 얼굴 생김새, 체형 등도 황금분할로 분석하는 이들도 있다.
황제나 왕을 상징하는 복장과 각종 장신구 등에 금을 많이 사용한 이유는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과 함께 소중한 것을 가졌다는 권위가 추가됐기 때문일 것이다. 불상을 비롯해 각종 종교에서 황금이 많이 사용되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금송아지, 금두꺼비, 황금으로 된 행운의 열쇠 등을 선물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현대인들에게 황금은 더이상 권위의 상징물이 되지 못한다. 돈만 있다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귀중품이자 투자의 대상일 뿐이다. 한국거래소와 시중 은행들에서 금거래가 일반화되면서 반지, 목거리 등 장신구가 아니라 덩어리 형태로 만든 골드바(금괴)를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에 맞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도 이달 들어 전국 223개 우체국을 통해서도 총 6종(10~500g)의 골드바를 판매한다.
최근 국내 금시장이 후끈 달아올라 골드바 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고 한다. 한국조폐공사와 제련업체 등에서 만들어 내기 바쁘게 팔려 나간다고 한다. 금은 시장 변화에 둔감하지만 언제든 현금화가 가능해 경제상황이 불확실할수록 수요가 늘어난다. 금리 변동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달러에 대한 투자보다 더욱 안전하다는 인식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리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변경)을 논의할 때가 됐다”는 발언이 금 투자의 단초가 됐다. 물가가 오르고 화폐 가치는 떨어진다고 판단한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으로 금을 찾는 것이다. 경제부총리까지 진화에 나섰지만, 금 수요는 여전하다.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화해 금 수요는 세계 시장으로 확대됐다. 금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서민들은 그저 걱정이다. 국내외 지도자들이 하루빨리 경제를 안정시킬 황금비율을 찾아냈으면 한다.
[퍼온 글] / 출처: 서울신문 / 2019-06-21 02:19 / 이동구(서울신문 논설위원)
술은 닭이 물마시듯 조금씩만 마셔라
발효주 도수의 비밀 '지나침을 싫어한 자연, 14도까지만 허락했다'
과학자 파스퇴르, 佛 양조산업에 기여…獨 부흐너 '발효효소' 추출
발효과정 자연이자 과학이라면…증류주는 인간만이 마실 수 있어
한국에 방문한 외국인과 술자리를 하는 경우가 저는 종종 있고 그때마다 소개하는 우리 술이 있습니다. 바로 막걸리입니다. 그들에게 생소한 이름의 막걸리는 '쌀로 만든 와인(Rice wine)'이라는 설명으로 친근하게 다가갑니다. 막걸리와 포도주는 발효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술이기 때문이죠.
어느 날 발효주에 관해 관심 있던 외국 친구가 두 술은 비슷한 제조방식인데 막걸리 알코올 도수가 6~7도 정도로 낮은 이유를 물었습니다. 원래 막걸리도 포도주 도수와 비슷합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포도주처럼 과당이 아니라 쌀을 재료로 한다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누룩을 사용하고 전분으로 걸쭉해집니다. 술의 물성을 높여 마시기 좋게 하려고 물을 타서 알코올 함유가 낮아진 거죠. 높은 도수인 증류술과 발효주의 도수는 대략 12~14도가 한계점입니다. 발효는 자연이 만든 화학반응 과정입니다. 과정이 과학이니 그 한계도 분명 과학적인 이유가 있을 겁니다.
술에 관한 발효의 역사는 인류의 기록이 남아있는 시간까지 깊숙이 들어갑니다. 기원전 수많은 자료와 고대 신화에서 발효의 기록이 있습니다. 발효 과정은 당연히 수많은 과학자의 관심 대상이었겠지요. 발효라는 용어를 떠올리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과학자가 저온살균법을 개발한 루이 파스퇴르입니다. 그의 업적은 발효가 물질의 화학적 변화 이전에 생물에 의한 개시를 보여준 전환점이었지만 발효 과정의 기본적인 흐름을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파스퇴르를 떠올리면 우유나 발효한 요구르트가 생각나지만 사실 그의 연구는 당시 프랑스 양조산업에 기여하게 됩니다. 이렇게 발효와 술은 뗄레야 뗄 수가 없지요. 발효에 기여하는 미생물을 효모(酵母)라고 하는데 한자에서 보듯 밑술을 뜻합니다. 효모를 뜻하는 영어 '이스트(yeast)'도 '끓는다'는 의미가 있지요. 발효로 술을 만들 때 올라오는 거품이 마치 끓는 모습과 비슷해 붙여진 겁니다. 과학자들은 효모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 참여하는 특정 효소의 정체를 알고 싶어 했습니다. 효소만 찾아낼 수 있다면 당시에 발효에 생명력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생기론을 종식할 수 있었으니까요.
결국 1897년 독일의 화학자 에두아르트 부흐너는 효모에서 발효효소를 추출합니다. 그는 설탕을 가지고 추출한 발효효소만으로 이산화탄소와 알코올을 생성했지요. 결국 발효는 살아있는 효모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효모가 가진 특정 단백질 촉매인 효소에 의해 유발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1907년 노벨화학상을 받지요. 발효의 흐름이 밝혀졌고 생화학(Biochemistry)이란 분야의 시작이 부흐너의 발효 과정 연구로 출발했다고 간주할 정도로 발효는 생물체의 동작을 물질의 화학반응과 같은 방법으로 연구하는 분야로 확대됐지요. 모든 발효물에 효소(酵素ㆍEnzyme)를 적용한 것도 이때부터이고 엔자임은 '효모의 안'이라는 의미로 효모에 있는 요소로 정의되기 시작했습니다.
신윤복 '주사거배(술집에서 술을 들다・왼쪽)'와 이집트 벽화
이제 발효주 과정을 훔쳐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포도주처럼 과일을 이용하지 않는 막걸리나 약주를 만드는 경우 쌀과 같은 전분을 사용합니다. 쌀을 익히고 누룩을 섞습니다. 바로 누룩이 효모인 셈이지요. 고분자인 전분을 효모가 이용할 수 있는 저분자인 단당류나 이당류로 분해해야 합니다. 누룩 속 곰팡이는 알파 아밀라아제 효소로 전분을 잘게 잘라 포도당을 만듭니다. 포도주 경우에는 바로 단당류인 과당을 사용할 수 있어 이 과정을 건너뛸 수 있지요. 증류주도 이 과정을 피하지 못합니다. 코냑은 포도주를 증류한 것이고 위스키는 보리를 발효 후 증류한 겁니다.
결국 발효의 출발은 당(糖)인 셈이죠. 이제 미생물인 효모가 등장하고 효모는 특정 분자를 포도당에 붙여 다른 물질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은 당을 분해한다고 해서 해당(解糖)이라고 하지요. 그리고 일련의 화학반응을 거쳐 당은 결국 '피루브산'이 됩니다. 막걸리와 달리 포도주를 만들 때는 효모를 따로 넣지 않지만, 껍질째 으깨 넣는 이유는 술의 색깔 때문만이 아니라 껍질에 효모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발효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해당이라는 과정 중에 떨어져 나간 수소 양성자가 여기에 다시 사용됩니다. 자연은 버리는 게 없습니다. 알뜰하게 모든 자원을 동원해 생명력을 이어가죠. 효모는 피루브산 분자를 이산화탄소와 아세트알데하이드(C2H4O)로 분해하고 여기에 수소양성자(H+) 두 개를 붙여 에탄올(C2H5OH)을 만듭니다. 이산화탄소는 공기 중으로 날아가고 결국 술이 남는 겁니다. 막힌 병 안에서 발효가 일어나면 이산화탄소가 술에 녹아 들어가고 병을 열면 압력이 낮아져 뻥 하고 튀어나오죠. 이게 바로 샴페인이고 막걸리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루이 파스퇴르
효모는 빵을 만들 때도 사용됩니다. 빵을 구울때 부풀어 오르는 건 발효에 의해 생성된 이산화탄소 때문이고 알코올은 열에 의해 날아가 버립니다. 이제 발효주의 알코올 농도가 12~14도에서 멈추는 이유를 확인해 봅니다.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우리는 상처를 알코올로 소독을 합니다. 알코올은 미생물을 죽이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죠. 바로 이 지점의 농도에서 거꾸로 효모가 죽기 때문이고 발효가 멈춥니다.
하지만 여기가 발효의 끝은 아닙니다. 발효는 알코올을 아세트산으로 만들지요. 바로 초산(醋酸)입니다. 두 한자에 술독을 뜻하는 '유(酉)'가 있고 식초를 의미하는 초에 있는 '석(昔)'자에는 '날(日)'이 지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마치 문자가 화학 반응식을 표현한 것 같습니다. 향기가 좋다는 이탈리아어 '발사믹(balsamic)'은 모데나 지방 포도 품종 포도주를 목질이 다른 여러 나무통을 옮겨 가며 시간을 더해 만든 식초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렇게 발효는 술과 시간을 포함하고 있지요. 우리 몸에서도 같은 화학반응이 일어납니다. 술을 마신 몸은 알코올을 산화시켜 아세트알데하이드를 거쳐 초산을 만듭니다. 그리고 이산화탄소와 물로 산화시키죠. 식물이 물과 이산화탄소와 빛으로 포도당과 탄수화물을 만들어 내고 자연은 발효를 통해 여러 물질로 변화시킵니다. 인간은 이 과정에서 에너지를 얻고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며 다시 원래 물질로 자연에 돌려놓는 거대한 화학순환에 참여합니다. 이쯤되면 우리 삶의 모든 것은 화학이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에두아르트 부흐너
이렇게 발효는 과학이고 자연만이 할 수 있는 위대한 일입니다. 그에 비해 증류 방식은 다릅니다.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방식이지요. 증류주는 원래 몽골이 기원입니다. 몽골이 아랍을 지배하며 끓는점이 낮은 금속인 아연을 제련하는 데에 사용한 증류 방식에서 힌트를 얻은 겁니다. 그들이 마신 마유주라는 낮은 도수의 발효주는 쉽게 변질됐기 때문에 높은 도수의 술을 얻기 위해 증류방식을 응용해 보관 기간을 늘린 겁니다. 이후 증류 방식은 몽골의 지배지역을 중심으로 퍼져 나갔죠.
우리나라 안동소주도 고려와 몽골이 연합하던 시기에 안동에 전해진 것이고 코냑과 위스키도 몽골에게서 배운 결과물입니다. 물론 도수를 높이는 방법은 증류외에도 술을 동결시켜 알코올만 얻는 방법도 있고 밑술을 더하거나 높은 도수에도 견디는 효모를 적용하는 방법등 여러가지가 있지요. 자연의 순환에 인간이 개입하며 도수가 높아지며 다양하고 고급화된 술은 인간의 욕망이란 본성과 맞물리며 부의 과시와 쾌락과 탐닉에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최근 사회적 논란이 된 버닝썬 클럽 사건이나 각종 접대사건에도 술은 매개로 등장했지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술 권하는 사회 현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인간의 삶과 사회적 활동에 술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힘겨운 삶을 영위하는 인류에게 고통의 망각으로 버텨낼 만큼 필요하고 음식의 하나로 삶의 즐거움을 더해주는 긍정적 효과가 있습니다.
발효주가 매력적인 이유는 자연의 순환에 온전하게 참여하는 일원으로 느끼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삶이 자연의 순환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게 그 한계인 14도를 거대한 자연이 결정한 거지요. 포도주에 신의 물방울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도 자연의 위대함을 빗댄 말일 겁니다. 문제는 늘 지나침이지요. 과음과 그에 따른 중독은 각종 사고와 범죄, 그리고 질병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한자인 '술 주(酒)'는 '물 수(水)'변에 '닭 유(酉)'가 들어 있습니다. 닭이 물을 마시듯 조금씩 즐기라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잘못된 속설이죠. '유(酉)'가 십이지 가운데 닭을 뜻하기 때문이고 닭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이 문자는 고대문자인 갑골문과 금문에서 밀봉한 술독의 형상으로 표현됩니다. 술독을 보관할 때는 변질되지 않도록 밀봉해야 한다는 의미를 가지며 지금의 문자로 발전했지요. 문자에도 과학이 있었습니다. 술 권하는 사회 현상이 바람직한 건 아니지만 지금은 틀린 속설을 따라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자연이 준 선물로 닭이 물을 마시듯 즐기며 작은 위안을 받고 가는 정도라면 술을 권해도 되지 않을까 싶기 때문입니다.
[퍼온 글] / 출처; 아시아경제신문 / 2019.05.08 12:56 / 김병민(과학저술가)
호안 미로(Joan Miro, 1893∼1983, 스페인) / Seated Woman II(Femme assise II), 1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