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탐험사 100장면 76 - 얼음덩어리에 갇힌 채 떠돌다 남극해 1,300km를 보트로 돌파한 어니스트 헨리 섀클턴(19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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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4.04.28. 01:59조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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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탐험사 100장면
얼음덩어리에 갇힌 채 떠돌다
남극해 1,300km를 보트로 돌파한 어니스트 헨리 섀클턴(1916년)
요약 섀클턴은 1901년 스콧의 1차 남극탐험대에 끼어 썰매를 타고 로스 빙하를 건너며 처음 남극대륙을 보았다. 1914년, 네 번째로 남극에 도전하며 웨들 해에서 남극점을 지나 맥머도 만까지 대륙을 횡단하기로 했다. 총 열여섯 달 동안 얼음덩어리에 갇혀 지내다 엘리펀트 섬에 도착해 36시간 만에 섬을 가로질렀다.
흔들리지 않는 곳
엘리펀트 섬에 상륙한 섀클턴 탐험대 대원들이 차를 마시며 기쁨을 나누고 있다. 그들은 열여섯 달이나 얼음덩어리에 갇힌 채 남극해를 떠돌다 단단한 땅을 밟았다.
'우리는 산처럼 큰 빙산을 97개나 세었다. 이것들을 뚫고 나아가기란 너무 위험했다. 이제는 남쪽으로 1cm도 더 갈 수 없다. 저 얼음땅을 탐험하기는 영원히 불가능하리라···.'
1772년 제임스 쿡 선장이 처음으로 남극권을 넘어 남위 72도 10분까지 다녀와서 보고한 '얼음땅'이 대륙인지 알아 보려고 탐험대가 떠났다. 1819년 벨링스하우센이 이끈 러시아 해군이었다. 1820년에는 영국의 브랜스필드가 갔다. 두 사람은 남극에 대륙이 있음을 밝혔다. 그뒤로 줄줄이 이어진 남극 탐험사에서 '영웅 시대'라 일컫는 20세기 초반 20년 간을 수놓은 사람은 섀클턴, 스콧, 아문센, 버드이다.
어니스트 헨리 섀클턴은 1874년 아일랜드 킬키에서 태어났다. 그가 남극 대륙을 처음 본 때는 1901년으로, 스콧의 1차 남극탐험대에 끼어 썰매를 타고 로스 빙하를 건넜다. 1908년에는 에레버스 산(4,075m)이 조산(造山)운동을 하고 있음을 알아 냈고, 1909년에는 남자극을 발견했다. 이 탐험에서 그는 남극점 155km 앞에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1914년 섀클턴은 네 번째로 남극에 도전했다. 아문센과 스콧이 남극점에 갔으므로, 이번에는 웨들 해에서 남극점을 지나 맥머도 만까지 대륙을 횡단하기로 했다. 그는 인듀런스호를 이끌고 11월 초 아르헨티나와 남극 대륙의 중간에 있는 사우스조지아 섬으로 갔다.
사우스조지아의 영국 고래잡이 기지에서 한 달을 머무른 섀클턴은 12월 5일 남극으로 떠났다. 1915년 1월 15일. 40일 만에 남극 대륙을 눈앞에 둔 그들은 상륙할 곳을 찾으며 천천히 나아갔다. 그런데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더니 바다가 온통 얼어붙었다. 도끼로 키에 달라붙은 얼음을 깨면서 나아갔지만, 며칠간 얼음에 밀려 가다 보니 25km 앞에 있던 대륙은 사라지고 없었다.
2월 말이 되자 얼음들은 배를 가둔 채 북서쪽으로 빠르게 흘러갔다. 수은주가 자꾸 떨어지고 눈보라가 거세게 몰아치자 얼음은 더 두텁게 얼면서 배를 옥죄었다. 그렇게 넉 달이 흘렀다.
5월 1일, 제일 두려워하던 일이 벌어졌다. 해가 수평선 너머로 져버린 것이다. 앞으로 반 년이나 어둠 속에서 살아야 한다니. 캄캄하고 추운 바다에서 얼음덩어리들에 운명을 맡기고 한없이 떠도는 사람들의 절망감이 어떠할까. 그러나 대원들은 서로서로 북돋워 노래를 부르고 악기도 연주하면서 어려움을 헤쳐 나갔다.
10월 27일이 되었을 때 배는 남위 69도까지 흘러가 있었다. 그 다음날은 283일이나 바다를 떠돌던 배가 마지막을 고한 날이다. 인듀런스호는 그 이름처럼 '끈기'로 버텼지만 더 어쩔 수가 없었다. 그 날의 항해일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배가 커다란 얼음덩이 둘 사이에 꽉 끼였다. 얼음 하나가 고물을 깨뜨리고 키를 망가뜨렸다. 얼음이 배를 뚫고 들어왔을 때의 놀라움이란 말로 나타낼 수가 없다.'
섀클턴과 대원들은 배를 탈출했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165일 간을 얼음 위에서 지내게 되었다. 대원들은 너무나 지쳐서 텐트에서 죽음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던 1916년 4월 9일, 느닷없이 얼음이 갈라지더니 물길이 트였다.
"자, 이 틈을 놓치면 안 돼!"
대장의 힘찬 목소리에 대원들은 번개처럼 보트 3척을 내려 바다로 저어갔다. 그리고 6일 만에 한 무인도에 이르렀다. 1년 반 만에 땅을 밟은 대원들은 엉엉 울었다. 그 섬에는 펭귄이 살고 있어 식량 문제는 한시름 놓아도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정작 남극 탐험 사상 가장 처절했다고 일컬어지는 싸움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그 섬은 사우스셰틀랜드 제도의 엘리펀트 섬이었다. 텐트는 몰아치는 바닷바람에 갈가리 찢기고, 오래 지내다 보니 펭귄마저 줄어 갔다. 죽음의 그림자가 시시각각 다가왔다.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눈동자들이 섀클턴을 바라보았다. 바위처럼 단단한 지도자, 그 믿음직한 대장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배를 구할 수 있는 데로 갑시다."
"그곳이 어딥니까?"
"우리가 떠나온 사우스조지아 섬이요."
맙소사! 사우스조지아라면 거기서 1,300km나 떨어져 있다. 더구나 세계에서 가장 험한 드레이크 해로를 지나서다. 보트 1척으로 그 먼길을 저어 갈 생각을 하다니.
섀클턴은 다섯 사람을 뽑아 길이 7m짜리 보트 '제임스 케어드'에 타고 엘리펀트 섬을 떠났다. 남극해의 거센 바람은 보트를 이리저리 휘몰아 얼음덩이 쪽으로 밀어붙였고, 얼음물이나 다름없는 파도는 3~4분마다 폭포처럼 배 안으로 쏟아졌다.
영하 20~30도 추위에서 이런 물벼락을 밤낮 없이 맞으며 손바닥이 갈라지도록 노를 젓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뼈를 깎고 살을 엔다는 것은 이를 두고 이르는 말일 것이다. 그들의 입술은 모두 터졌고, 목이 너무 말라 아무것도 삼킬 수 없었다. 그대로는 며칠 못가 다 죽을 것 같았다.
바다에 나선 지 두 주일 째 되던 날, 안개 속에 희끄무레한 것이 보였다. 사우스조지아였다. 고래잡이 기지의 반대편이었지만, 얼음덩이가 떠도는 섬 둘레를 빙 돌아 가느니 섬을 걸어서 가로지르는 편이 나을 것 같아 상륙했다.
첫날 그들은 새 한 마리를 잡아서 요기하고, 시냇물을 배가 터지도록 마셨다. 바닷가 동굴에서 모처럼 단잠도 잤다.
1916년 5월 19일, 섀클턴은 더 갈 수 없으리만큼 지친 세 사람을 남기고, 다른 두 사람과 함께 얼음으로 뒤덮인 산에 올랐다. 한 발짝 한 발짝, 로프로 서로 묶은 그들은 넘어지고 자빠지며 산에 올랐다.
오르고 보니 내려가기는 더 어려웠다. 그들은 한 줄로 나란히 앉아 앞사람을 껴안고 엉덩이로 썰매를 타며 산을 내려와, 36시간 만에 섬을 가로질렀다. 그들이 고래잡이 기지에 닿았을 때 섀클턴의 머리는 하얗게 변해 있었다.
섀클턴이 구조대를 이끌고 엘리펀트 섬으로 돌아가니, 스물두 사람은 보트 2척을 뒤집어 놓고 그 속에서 끈질기게 버티고 있었다. 그들로 하여금 살아 남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믿음'이었다. 용감하고 슬기로운 지도자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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