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박인희(본명 박춘호)는 1945년 태어납니다. 올해 79살이죠.
(학력) 풍문여자중학교 졸업, 숙명여자대학교 불문과 학사
(종교) 기독교(개신교, 처음에는 천주교였다가 후에 개종함)
(박인희 프로필 및 경력)
1970년 이필원과 함께 혼성 포크 듀엣 '뚜아에모아'를 결성, 가수로 데뷔.
이때 '스카브로우의 추억', '썸머 와인', '그리운 사람끼리', '약속', '님이 오는 소리' 등을 발표합니다.
박인희는 동아방송의 '3시의 다이얼' DJ로도 활동했고, 1972년 '뚜아에모아'를 해체한 후에는 솔로 가수로 활동하게 됩니다. 이때 대표곡으로 모닥불, 방랑자, 봄이 오는 길 등이 있습니다.
이후 가수 생활을 은퇴하고, LA 미주 한인방송 제작국 국장으로 일하기도 했고,
1989년에는 이해인 수녀와 함께 수필집을 내기도 합니다.
박인희는 글쓰기에 재능을 갖고 있었습니다.
숙명여대 3학년 재학중에 지은 시 '얼굴'은 후에 '한국의 명시집'에 수록되기도 했죠.
이런 글쓰기에 대한 재능 덕분에, 그녀는 수많은 주옥같은 작품들을 남기게 됩니다.
* 가수 박인희와 시인 박인환의 관계
가수 박인희에게는 2가지 오해받는 사실이 있습니다.
첫번째가 바로 박인희가 시인 박인환의 친척(여동생, 딸 등)이라는 루머입니다.
박인희 박인환의 이름이 비슷하고, 또 박인희가 박인환의 시 '세월이 가면', '목마와 숙녀' 등이 박인희의 노래나 시 낭송 등으로 유명해지면, 둘은 친척 관계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죠.
하지만 둘의 이름이 비슷하고 박인희가 박인환의 시를 좋아했을 뿐, 실제로 친척관계가 아닙니다.
원래 노래 '세월이 가면'은 박인환의 시에 당시 경향신문 기자(후에 극작가)였던 이진섭이 곡을 붙여서 탄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박인희의 노래로 이 곡은 대중들에게 널리 사랑을 받게 되었죠.
* 박인희와 이필원 결별 이유
박인희에 대한 2번째 루머는 바로 뚜아에모아 결별 이유입니다.
당시 뚜아에모아가 큰 인기를 얻게 되자, 박인희가 자신의 인기를 믿고 듀엣을 깼다는 루머였습니다.
실제로 이후에도 박인희는 솔로 가수로 큰 인기를 누린 반면에,
이필원은 한인경과 뚜아에모아 2기를 결성했지만 예전만큼의 인기를 누리지 못하면서, 이런 루머가 더 힘을 얻게 되었죠.
하지만 뚜아에무오가 결별한 것은,
당시 박인희 이필원간에 터진 스캔들과 박인희 남편때문이었습니다.
가수 박인희 전남편과 이혼 후에 아들을 혼자 키웁니다.
* 박인희 이필원 스캔들 이유
뚜아에모아는 혼성 듀엣으로 큰 인기를 끌게 됩니다.
처음에 박인희는 숙명여대에 다니면서, '미도파 살롱'이라는 카페에서 MC로 활동합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필원과 함께 무대에 올라서 함께 듀엣 노래를 부르는 것이 계기가 되어서 '뚜아에모아'를 결성하게 되었죠(박인희 이필원).
(뚜아 에 모아 뜻 - 너와 나(Toi et Moi)라는 프랑스어)
(당시 두 사람의 화음이 무척 청아하면서 잘 어울려져서, 이필원이 박인희에게 강력하게 요청함)
두 사람은 자비 30만원으로 1집 앨범을 직접 제작하는데, 이 앨범이 불티나게 팔리게 됩니다.(현재도 전설적인 포크 명곡으로 이름이 높음)
듀엣 뚜아에모아는 2집, 3집을 발표하면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데, 불과 2년도 되지 않아서 해체하게 됩니다.
* 박인희 남편과 결혼 후
이전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박인희 이필원간에 스캔들이 터지고, 박인희 남편때문에 결국 해체하게 됩니다.
당시 박인희 이필원은 적당한 연습실이 없어서 경복궁 벤치에 앉아서 기타를 치면서 노래 연습을 합니다.
그런데 이 모습을 본 모 신문사 기자가 '박인희 이필원 핑크빛 무드'라는 기사를 작성해서 두 사람은 크게 마음 고생을 하게 됩니다.
또한 박인희는 1972년에 결혼을 하게 됩니다.
(박인희 성격상 자신의 결혼을 널리 알리지 않았기에, 대중들은 물론이고, 기자들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음)
박인희 남편 직업 - 무역업
후에 박인희는 아들을 한명 낳게 됩니다.
아무튼 스캔들 기사가 터진 다음에 박인희는 마음고생을 많이 했고, 결국 두 사람은 "나중에 머리카락이 하얗게 되면 다시 만나서 노래를 하자"라는 약속만 남긴채 결별하게 됩니다.
이후 박인희는 '3시의 다이얼'의 DJ를 맡기도 하고, 솔로 가수로 '끝이 없는 길', '모닥불', '세월이 가면', '방랑자', '하얀 조가비' 등을 발표하면서 큰 인기를 누리게 됩니다.
또한 '얼굴'이나 '목마와 숙녀'같은 낭송곡으로도 큰 인기를 얻었죠.
그리고 박인희는 1981년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됩니다.
이후 1994년 KBS '박인희의 음악앨범' DJ로 3개월 정도 국내에 얼굴을 내밀기도 했지만, 주로 미국 LA의 미주한인방송국(KCB) 제작국 국장 겸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로 활동을 합니다.
(참고로 박인희 아들은 성장하여 미국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게 됨)
그러다가 박인희는 남편과 이혼을 하고 혼자 살게 됩니다.
참고로 박인희 오빠가 교회 목사인데, 아마 박인희가 천주교에서 개신교로 개종을 한데에는 오빠의 영향이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박인희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습니다.
남에게 알려지기를 꺼려하는 그녀의 성격상, 박인희 근황에 대하여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뭅니다
첫댓글 한곡으로 박인희를 넘기기에 아쉬워 갠적으로 최애라 할 수 있는 3곡 올려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