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맥그리거를 무릎 꿇게 만들었나
얼마 전 UFC 196에서 코너 맥그리거와 네이트 디아즈의 대결이 있었습니다. 인기 절정의 두 선수가 격돌했기에 현재 역대 최고의 PPV 판매량을 기록했다는 뒷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데, 이 대결이 그토록 많은 관심을 모았던 이유 중 하나는 '체급'이라는 코드였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맥그리거의 상대는 UFC 라이트급 챔피언 하파엘 도스 안요스였습니다. 현 페더급 챔피언인 맥그리거가 한 체급 위의 제왕에게 도전장을 던진 것이었는데, 도스 안요스가 부상으로 빠지며 디아즈가 들어왔죠. 이게 불과 대회 열흘 전 벌어진 사태였기에 디아즈가 라이트급 체중을 맞추기 힘들다며 양쪽 진영이 설왕설래하다, 결국 맥그리거가 "까짓 거, 웰터급에서 한 판 붙자!"고 제안해 결국 두 체급을 뛰어넘는 대결이 성사된 겁니다. 맥그리거의 도전은 실패했지만, 격투기 팬들 사이에서 '체급'이란 코드는 여전히 뜨겁게 달아오른 상태입니다.
두 선수의 경기 얘기를 조금 해 보자면, 일단 코너 맥그리거가 전략상 무리수를 두었다는 전문가들의 평가가 대부분입니다. 네이트 디아즈는 오랫동안 UFC에서 여러 경기를 가져 온 만큼 그 스타일에 대한 파훼법이 꽤 나와 있는데, 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1. 디아즈의 좀비 복싱에 정면으로 대응하지 않고 풋워크를 활용하며 로우킥으로 디아즈의 다리를 두들긴다.
2. 중심이 높은 디아즈의 다리에 태클을 걸어 넘어뜨린 후 디아즈의 주짓수 기술을 방어하며 상위 포지션을 유지해 포인트를 가져간다.
이제까지 디아즈를 이긴 선수들은 다들 이 두 가지 중 하나는 꼭 무기로 들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맥그리거는 흥미롭게도 이 두 갈래 길이 아닌 정면 펀치 승부라는 길을 택했습니다. 이제까지 디아즈에게 그렇게 들이댄 선수들은 하나같이 무너졌습니다. 도날드 세로니와 마이클 존슨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겠네요. 결국 맥그리거 역시 똑같은 아픔을 맛봐야 했습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imgnews.naver.net%2Fimage%2F064%2F2016%2F03%2F18%2F162813460_a32.jpg%3Ftype%3Dw540) 펀치에 자신이 있었던 맥그리거, 하지만 자신감이 현실로 이어지진 못했다 (사진 = Getty Images) |
그렇다면 맥그리거는 왜 이런 실수를 범했을까요? 아마도 본인의 펀치력에 그만큼 자신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10년 간 페더급 제왕으로 군림한 조제 알도를 13초 만에 KO로 잡아냈을 정도니, 맥그리거의 펀치 파워는 가히 UFC 페더급 역대 최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맥그리거의 그 '페더급 최강 펀치'는 웰터급인 네이트 디아즈에게 통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디아즈의 얼굴은 맥그리거의 펀치에 엉망이 되었고 초반엔 당황한 기색도 역력했으나, 페더급에서와는 달리 한 방 걸리기만 하면 상대가 잠드는 마법은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이 대목에 바로 체급의 무서움이 있습니다. 물론 네이트 디아즈는 원래 맷집이 좋은 선수기도 하고, 경기 당일 오히려 맥그리거가 체중이 더 나갔을 거라는 얘기도 나옵니다만, 결국 본질은 페더급 선수인 맥그리거의 파워가 라이트급 및 웰터급 선수인 디아즈의 맷집을 뚫지 못했다는 거죠. 페더급의 조제 알도나 채드 멘데스는 다시 붙어도 맥그리거의 펀치에 걸리면 위험을 피할 수 없겠지만, 웰터급의 로비 라울러나 조니 핸드릭스, 카를로스 콘딧이 맥그리거의 펀치 한 방에 고꾸라지는 모습은 쉽게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과는 달리 1993년 UFC가 처음 시작되었을 땐 체급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스타일의 무술가들이 제한 없이 맞붙는' 이종격투기 무대였기에 체급은 물론 규칙도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원초적 형태의 싸움은 사람들의 강한 관심과 거부감을 동시에 불러왔고, 이는 UFC에 대한 엄격한 규제로 이어졌습니다. 당연히 UFC 측은 '우리는 막싸움 단체가 아니다! 종합격투기도 엄연한 스포츠다!'라는 주장을 내세울 수 밖에 없었고,(물론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걸 뒷받침하기 위해 라운드 제도, 글러브, 여러 복잡한 규칙 등을 도입했는데, 이 때 체급 제도도 함께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미국과 달리 격투 스포츠에 대해 국가 차원의 규제가 없는 일본에서도 체급의 도입은 일찌감치 이루어졌습니다. UFC 초창기 때 보았듯이 기술이 월등하다면 체급에 관계없이 우위를 점하는 게 가능하지만, 기술이 평준화되면 육체적인 부분이 중요해지기에 결국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을 이기는 게 힘들어집니다. 대부분 체구가 작은 일본 격투기 선수들에게 체급을 나눠 경쟁하는 건 필수적인 요소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현재 종합격투기의 체급은 남성부 기준으로 총 8개입니다.
플라이급 (57kg 이하)
밴텀급 (61kg 이하)
페더급 (66kg 이하)
라이트급 (70kg 이하)
웰터급 (77kg 이하)
미들급 (84kg 이하)
라이트헤비급 (93kg 이하)
헤비급 (120kg 이하)
프로복싱의 체급에 비해 상당히 간소하고, 체급 간 체중 차이가 상당히 크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경량급들 쪽은 그나마 나은데 라이트급과 웰터급, 미들급은 체급 간 차이가 무려 7kg, 미들급과 라이트헤비급 간의 차는 거의 10kg에 가깝습니다. 프로복싱의 라이트급은 61.2kg이고, 웰터급은 66.7kg입니다. 그리고 그 중간에는 슈퍼라이트급(63.5kg)도 존재합니다. 각 체급 간 차이가 대부분 3kg 가량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복싱 같은 경우 2-3체급을 제패하는 챔피언들이 잔뜩 있지만, 종합격투기에서는 두 체급을 제패하는 선수들이 극히 적습니다.(UFC 역사상 딱 두 명 뿐입니다) 그만큼 체급의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을 극복하기가 힘든 거죠.
체급을 넘어 싸우게 되면 우선 파워와 맷집의 차이가 두드러집니다. 위에서 설명한 코너 맥그리거와 네이트 디아즈의 경기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페더급에서 한 방 걸리기만 하면 상대를 쓰러뜨리는 보증수표였던 맥그리거의 주먹은 디아즈의 맷집을 뚫지 못했던 반면, 페더급에서 무쇠턱이라 불릴 정도로 맷집이 좋다고 칭찬받던 평가받던 맥그리거는 디아즈의 경쾌한 원투 한 방에 다리가 풀리고 말았습니다. 얼마 전 UFC에서 퇴출당한 브라질의 인기 파이터 파비오 말도나도도 본인의 체급인 라이트헤비급에서는 웬만한 돌주먹들은 다 견뎌낼 정도로 강철 맷집을 자랑했지만, 헤비급 선수인 스티페 미오치치에게는 35초 만에 KO되고 말았죠.
근력의 차이도 큽니다. 라이트급으로 오랫동안 활동하다 최근 웰터급으로 주전장을 옮긴 벤 핸더슨은 '라이트급에서는 내가 대부분 상대보다 힘이 셌지만, 웰터급에서는 나보다 힘이 약한 선수를 찾아보기가 힘들다.'고 얘기한 바 있습니다. 웰터급의 대표적 신성 중 한 명인 켈빈 게스틀럼은 계체량을 몇 차례 실패한 다음 데이나 화이트 UFC 대표가 강제로 미들급으로 월장할 것을 명령했지만, 본인의 힘과 신체적 능력으로는 미들급에서 평범한 선수로 남을 수 밖에 없다며 애원한 끝에 가까스로 웰터급으로 돌아온 바 있습니다. 말할 필요도 없이 클린치, 그라운드 싸움 등 여러 분야에서 근력의 차이는 엄청난 작용을 합니다.
또 하나 생각해야 할 부분은 리치입니다. 위 체급으로 올라갈수록 선수들의 팔다리가 길어지는데, 이는 작은 선수들에게는 근력이나 파워 못지않게 큰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최근 아쉽게 UFC 커리어를 접은 남의철은 페더급 전향 당시 가장 큰 이유로 UFC 라이트급에서 상대들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라고 얘기한 바 있습니다. 흔히 팔 길고 다리 길면 타격에서 유리할 거란 생각이 제일 먼저 들겠지만, 리치의 우위는 레슬링과 그라운드에서도 똑같이 빛을 발합니다. 클린치에서 팔이 긴 사람이 겨드랑이를 파서 감으면 상대방은 저절로 몸이 살짝 뜨며 상당히 중심이 불안해집니다. 그라운드에서도 팔이 긴 사람이 위에서 상대 손목을 컨트롤하며 펀치나 엘보 공격을 날리면 훨씬 위력적입니다. 밑에 깔렸을 때도 긴 팔을 이용해 상대를 멀찍이 밀어놓고 일어나기가 편하죠. 존 존스가 만나는 상대마다 긴 리치를 활용해 집요하게 괴롭히던 모습을 생각해 보시면 이해가 편할 겁니다.
이렇게 열세에 몰린 측은 타격에서든 레슬링에서든 그라운드에서는 여유 있게 싸움을 이끌기가 어렵습니다. 일단 상대방에게 한 번 유리한 고지를 내주면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에 항상 상대 움직임에 즉각 반응을 해야 하고, 상대가 한 번 움직일 때 두 번 세 번 움직여야 합니다. 본인이 공격할 때는 페이크 동작도 더 많이 써야하고, 상대는 한 번에 날 넘길 수 있지만 본인은 세 번 네 번 흔들어야 넘어뜨릴까 말까 합니다. 그러다 혹시라도 상대가 유리한 위치를 점유하면 거기서 빠져나오는 데 남은 힘을 다 쓸 수밖에 없습니다. 펀치 공방, 킥 공방, 태클, 태클 방어, 클린치에서의 겨드랑이파기 싸움, 목잡기 싸움, 그라운드에서 모든 포지션에서의 싸움 등 어디로 가든 이처럼 힘겹게 싸울 수밖에 없기에, 큰 사람과 싸우면 힘이 몇 배로 빨리 빠집니다.
이처럼 종합격투기에서 체급을 뛰어넘어 싸우는 건 참 힘든데, 각 체급별로도 차이가 좀 있습니다. 우선 체급 간 차이가 4~5kg 정도인 경량급은 체급 간 선수들의 이동이 그래도 많이 일어나는 편입니다. 플라이급-밴텀급-페더급-라이트급 까지의 라인이 여기 해당됩니다. 경량급에서는 위에서 설명한 힘든 점들의 영향이 확실히 덜합니다. 하위 체급 선수들이 힘이나 파워에서는 딸려도 스피드와 지구력으로 그런 부족한 면을 채워 역습을 하는 경우가 많아 무조건 크면 좋다는 공식이 잘 통하지 않습니다. 코너 맥그리거도 원래 상대인 하파엘 도스 안요스와 싸우기로 했던 체급은 라이트급으로, 본인 체급인 페더급과는 4kg 밖에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만일 예정대로 도스 안요스와 싸웠더라면 승패를 떠나 체급에서 오는 부담은 훨씬 덜했을 겁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imgnews.naver.net%2Fimage%2F064%2F2016%2F03%2F18%2F163117881_a33.jpg%3Ftype%3Dw540) 지난 2013년, 앤더슨 실바를 무너뜨렸던 크리스 와이드먼 (사진 = Getty Images)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imgnews.naver.net%2Fimage%2F064%2F2016%2F03%2F18%2F163324878_a34.jpg%3Ftype%3Dw540) 와이드먼을 꺾고 미들급 챔피언에 오른 루크 락홀드 (사진 = Getty Images) |
문제는 라이트급 위쪽입니다. 보통 라이트급 선수들까지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그리 체격이 크지 않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무려 7kg이 올라가는 웰터급엔 실제로 만나면 "우와, 크다."라 느껴지는 선수들이 대부분입니다. 우리나라의 임현규 선수나 김동현 선수, 미국의 카를로스 콘딧이나 로리 맥도날드가 이 체급이죠. 웰터급부터는 선수들의 키가 대부분 180cm가 넘고, 체격도 상당히 커집니다. 평소 체중은 다들 90kg에 육박하니까요.(그보다 더 무거운 선수들도 꽤 많습니다)
그 위 미들급부터는 그야말로 거한들입니다. 현재 미들급의 No.1, 2로 꼽히는 루크 락홀드와 크리스 와이드먼은 과거 프라이드 시절 같으면 아마 헤비급에서 뛰고도 남았을 거대한 선수들입니다. 이들의 평소 체중은 100kg이 넘죠. 그 위 라이트헤비급이나 헤비급으로 올라가면 한 마디로 '괴수 대전'이죠. 다방면에 두루 기술을 갖춘 키 190cm 이상, 몸무게 120kg에 가까운 괴물들이 득실득실합니다.
그래서 중량급에서는 체급 이동의 빈도가 확 줄어듭니다. 체급을 바꾸는 선수들은 전적이 좋지 않아 뭔가 새로운 계기를 찾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자기 체급에서 일이 잘 풀리고 있는데 체급을 바꾸는 경우는 없습니다. 체급 간 한계 체중의 차가 큰 만큼 위에서 설명한 전력의 차이 또한 크게 와 닿거든요.
이처럼 체급을 넘어선 도전이 힘든 종합격투기 무대의 최고봉이라 꼽히는 UFC에서 두 체급 챔피언을 지낸 사람은 단 두 명 뿐 입니다. 그 중 한 명인 랜디 커투어는 그레코로만 레슬링을 베이스로 서른넷이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종합격투기에 뛰어든 케이스인데, 커리어 내내 라이트헤비급과 헤비급을 넘나들며 두 체급에서 모두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통산 세 번째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했을 때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는데, 당시 커투어는 라이트헤비급에서 척 리델에게 패하고 은퇴한 상태였습니다. 복싱 세계 챔피언 제임스 토니, 레슬링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유명 프로레슬러인 커트 앵글 등과의 대결을 UFC 측에서 복귀전으로 제안하기도 했지만 결국 다 무산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커투어는 당시 UFC 헤비급 챔피언이던 팀 실비아의 경기를 보고는 본인이 실비아에게 도전해보면 어떠냐고 데이나 화이트 대표에게 문자를 보냈다고 합니다. 당시 커투어의 컴백은 흥행이 무조건 보장된 카드였기에 데이나 화이트 대표는 뛸 듯이 기뻐하며 승낙했고, 둘의 대결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실비아는 커투어와 본인은 친구 사이라 생각했다며 대결을 요구한 데 대해 서운함을 표시했다고 합니다. 어쨌든 커투어는 실비아를 완벽히 제압하며 또다시 챔피언에 오르는 데 성공했습니다.
커투어는 라이트헤비급에서조차 유난히 큰 체격은 아니었지만, 굉장히 머리가 좋은 선수였습니다. 레슬링 경험이 많았던 그는 격투기 시합 또한 레슬링과 마찬가지로 철저히 스포츠로 정의하며 감정을 배제했고, 상대의 장, 단점을 확실히 분석해 승리를 이끌어 냈습니다. 신체적으로는 지구력이 유난히 뛰어나 젊은 선수들에게도 전혀 뒤지지 않는 체력을 과시했고, 기술적으로는 그레코로만 레슬링 베이스를 토대로 한 더티 복싱 스타일을 개발해 끈적끈적한 클린치 싸움으로 상대들을 괴롭혔습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imgnews.naver.net%2Fimage%2F064%2F2016%2F03%2F18%2F164421796_a36.jpg%3Ftype%3Dw540) 종합격투기계에 파란을 일으켰던 남자, 비제이 펜 (사진 = Getty Images) |
또 한 명은 '천재'라 불리는 비제이 펜으로, 세계 격투계에 랜디 커투어에 결코 뒤지지 않는 임팩트를 던지며 두 체급을 석권했던 선수입니다. 펜은 주짓수를 수련한 지 4년 만에 미국인 최초로 주짓수 세계 선수권 블랙벨트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했는데, 당시 그의 나이는 고작 21세에 불과했습니다. 종합격투기 무대에서도 그 천재성을 똑같이 보여주던 펜은 2004년 당시 UFC 웰터급의 황제였던 맷 휴즈를 꺾고 챔피언 자리에 오른 후 누구도 시도한 적이 없었던 비상식적인 계획을 발표합니다. 원래 본인 체급인 라이트급 하나 위 웰터급을 접수했으니 계속 체급을 올려 헤비급까지 제패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펜의 이런 돌발 행동의 배경엔 UFC와의 계약 분쟁이라는 이유가 숨어 있었습니다. 맷 휴즈를 꺾었을 때 펜의 기본 파이트머니는 고작 2만 5천 달러(한화 약 2천 9백 8십 만 원)였습니다. 챔피언에 오른 후 협상 테이블에서 펜은 최소 5만 달러(한화 약 5천 9백 6십 만 원)의 기본급을 원했으나 데이나 화이트 대표는 최대로 줄 수 있는 금액이 3만 달러(한화 약 3천 5백 8십 만 원)라며 양 측의 주장은 평행선을 달렸죠. 이 때 마침 일본의 K-1 측에서 경기당 18만 7천 5백 달러(한화 약 2억 2천 만 원)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제시했습니다. UFC 측은 화들짝 놀라 펜을 붙잡으려 했으나 당시 계약서 조항에 문제가 있어 결국 펜을 보내줄 수 밖 에 없었습니다. UFC는 펜의 타이틀을 박탈했고, 펜은 그 결정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죠. 펜은 UFC와의 소송을 승리로 이끄는 동시에 일본 무대에서 전 체급 석권을 이루겠다는 엄청난 포부를 갖고 있던 셈이었죠.
당시 동료 선수인 프랭크 트릭이 펜이 너무도 비현실적이라며 비판 아닌 비판을 하자 펜은 특유의 기세등등한 태도로 쏘아붙였습니다. "그게 바로 일반인들의 생각 방식이다. 나 같은 천재들에겐 천재들만의 방식이 있다. 프랭크 당신은 영원히 내 방식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은 천재가 아니니까."
펜은 이후 본인의 말을 상당 부분 증명했습니다. 미들급에서 호드리고 그레이시를 판정으로 꺾은 후, 몇 년 후 UFC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하게 되는 료토 마치다와 싸워 선전 끝에 판정패했습니다. 당시 마치다의 체중은 무려 102kg이었고, 펜은 억지로 살을 찌워 군살이 덕지덕지 붙은 몸이었지만 81kg 정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펜은 이제까지 마치다를 상당히 괴롭혔던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물론 마치다와의 대결은 너무도 힘들었기에 펜은 경기 후 걸을 힘도 없을 정도로 탈진해 코너맨들이 문자 그대로 그를 둘러메고 옮겨야 했습니다.
펜은 이후 UFC에 돌아와 조 스티븐슨을 꺾고 라이트급 챔피언에 올라 두 체급 석권에 성공했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웰터급 챔피언 조르쥬 생 피에르에게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이는 UFC 역사상 최초 두 체급의 챔피언이 격돌한 슈퍼파이트로 기록되었는데, 펜은 결국 생 피에르의 벽을 넘지 못했지만 팬들은 아직까지 그의 도전 정신에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펜은 주짓수 무대에서 특별한 감량 필요 없이 61kg 급에서 활약했습니다. 그만큼 다른 UFC 라이트급 선수들에 비해 체격이 작다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운동 신경, 유연성, 스피드 등 격투기 선수로서의 재능은 역대 최고 중 한 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펜은 종합격투기 데뷔 이전 하비에르 멘데즈가 이끄는 AKA(현재 다니엘 코미어, 루크 락홀드, 케인 벨라스케즈 등이 속해 있는 명문팀)에서 가끔 재미로 타격 훈련을 하곤 했는데, 그 때마다 멘데즈는 펜이 타격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는데도 타격 실력이 너무 뛰어나다며, 타고난 펀치력과 반사 신경에 대해 늘 극찬했다고 합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imgnews.naver.net%2Fimage%2F064%2F2016%2F03%2F18%2F163622911_a35.jpg%3Ftype%3Dw540)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 시절, 헤비급 도전 의사를 드러냈던 존 존스 (사진 = Getty Images) |
그렇다면 앞으로 비제이 펜이나 랜디 커투어 같은 케이스를 더 볼 수 있을까요? 적어도 그렇게 하겠다는 포부를 내비친 선수들은 몇몇 있습니다. 비록 네이트 디아즈에게 패배했지만 코너 맥그리거는 페더급 타이틀을 방어한 후 라이트급에 다시 도전하겠다는 의지는 아직 꺾지 않은 걸로 보입니다. 맥그리거 말고도 경량급에서는 미래에 슈퍼파이트들이 펼쳐질 가능성이 꽤 있습니다. 밴텀급 전 챔피언 TJ 딜라쇼는 언제든 플라이급 감량이 가능한 작은 체격입니다. 플라이급 챔피언 드미트리우스 존슨은 밴텀급 톱클래스 파이터들과의 대결에 대해 일찌감치 긍정적 의사를 내비친 적이 있고, 조제 알도나 앤소니 페티스 등 페더급과 라이트급의 몇몇 인기 파이터들도 체급을 넘나들며 싸우는 게 가능합니다.
중량급 위쪽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고 있는 사람은 단연 존 존스입니다. 존스는 과거 최강의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으로 군림하던 시절, 헤비급 도전 의사를 몇 차례 내비친 바 있습니다. 현 라이트헤비급 챔피언 다니엘 코미어는 이미 스트라이크포스 헤비급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차지한 바 있죠. 또, 전 미들급 챔피언 크리스 와이드먼도 미들급을 모두 정리한 후 라이트헤비급으로 올라가겠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와이드먼에게 커리어 사상 첫 패배를 안겨준 루크 락홀드 또한 라이트헤비급 선수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 신체조건과 실력을 겸비하고 있죠.
체급의 확립은 종합격투기가 스포츠로 자리 잡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팬들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정해진 틀을 뛰어넘는 스타를 보고 싶은 게 당연하죠. '다윗 VS 골리앗' 구도는 프로 격투기 무대의 영원한 흥행 테마니까요. 시간이 지나며 격투기가 발전할수록 골리앗은 다윗만큼 영리해지지만, 다윗은 골리앗처럼 커질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체급을 뛰어넘어 싸우는 건 갈수록 더 어려워지겠지만, 비제이 펜이나 코너 맥그리거처럼 용감하게 도전하는 선수들은 계속 나올 거라 생각합니다. 코너 맥그리거 대 하파엘 도스 안요스, 크리스 와이드먼 대 존 존스, 존 존스 대 파브리시오 베우둠 같은 슈퍼파이트들을 격투팬의 한 사람으로써 꼭 보고 싶네요.
[아름다운 도전이 된 코너 맥그리거 인터뷰]
※ 매거진S 표지를 소개합니다
기사제공 네이버스포츠
첫댓글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
입만 적당히털면 참 멋진 선수인데 말이죠.. 비제이펜의 커리어는 언제봐도 ㅎㄷㄷ
실력은 좋다만 코너 이길선수는 깔렸다는 점
누가썼는지정말 잘썼네
코너스타일과 전술이 너무 뻔해서 롱런할 스탕일은 아니듯...그걸 본인 스스로가 너무 잘 알고 뻥튀기 하는데 전문가라 돈은 많이 벌듯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