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유선 임마누엘 신부
사순 제1주일
신명기 26,4-10
로마 10,8-13
루카 4,1-13
유혹에 흔들리는 예수님
모든 이는 저마다의 ‘약점’ 한 가지씩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약점들을 통해 ‘유혹’이 오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유혹자들은 바로 이 점을 놓치지 않습니다.
유혹자들은 우리가 가진 약점들을 통해서 너무나도 쉽게 하느님과 단절되고 멀어지게
만들 수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광야로 나가 당신의 때를 기다리시는 동안 유혹을 받으십니다.
오늘 복음에서의 표현만 보면 악마의 유혹을 예수님께서는 너무도 쉽게 단호히 이겨내신 것처럼
생각해 버릴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찾아오신 예수님 역시 유혹 앞에서 내적갈등,
흔들림이 있었을 것입니다.
후에 잡히시기 전에도,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가게 해 주십시오.”
라고 고백하시던 모습을 통해 ‘지금 나는 죽는 것이 두렵습니다, 무섭습니다.
그래서 못하겠습니다.’라는 유혹 앞의 흔들리는 당신의 연약한 마음을 드러내시고 있죠.
예수님께서도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흔들리셨고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이 유혹을 받고 흔들리는 모습들로
너무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어차피 유혹자는 이러한 연약함을 잘 알고 있고 그것을 끊임없이 이용해 올 것입니다.
유혹을 겪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유혹 앞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모습은 죄책감이 아니라 약함을 통해
하느님을 드러내시던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광야의 유혹을 물리쳤던 것은, 예수님 당신의 힘이 아닌, “하느님 말씀”을 통해서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통해서 당신을 드러내십니다.(2코린 12,9)
우리는 나의 약점을 마주했을 때, 그것을 부인하거나 방어하고 핑계만 대는 것이 아니라,
약함을 인정하고 주님께 청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가 가진 연약함과 약점을 통해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라면 우리의 연약함 안에서,
역설적으로 하느님의 강함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의정부교구 홍유선 임마누엘 신부 : 2019년 3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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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천봉 베네딕도 신부
사순 제1주일
신명기 26,4-10
로마 10,8-13
루카 4,1-13
“등 떠밀려서 들어선 광야”
오늘부터 우리는 억지로 끌려서(?) 전쟁터로 들여보내 집니다.
이것은 마치 오늘 예수님께서 성령에 이끌려서 광야로 보내진 것과 같습니다.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루카 4,1) 내가 원한 건 아닌데,
거친 바람 부는 광야로 향하는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편하게 안주하면서 적당히 대충 살고 싶은데,
사순절이라는 거친 모래 바람 속으로 들어가도록 등을 떠밀리고 있고,
그 시작에 광야에서 40일간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는 말씀을 듣습니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예수님도 나처럼 유혹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평소 왜 이렇게 유혹이 많을까? 유혹 없이살 수는 없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온 만큼, 새삼 예수님이 유혹 받으신 이야기는
의기소침한 나에게 용기를 줍니다.
예수님도 유혹을 받으셨구나!
꼭 기억하십시오!
예수님도 우리처럼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유혹은 죄가 아닙니다. 살아있으니까 유혹도 있습니다.
거듭되는 유혹 앞에 절망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사탄의 유혹은 거룩한 길을 가려는 사람에게만 있습니다.
유혹할 필요조차 없는 쪽에 있다면 사탄도 유혹의 필요성을 못 느낍니다.
그러니까 유혹을 받을 때 힘들어하지 맙시다.
그런데 한편으로, 예수님이 유혹을 모두 물리치셨다는 말씀 앞에서는 초라해집니다.
거듭되는 사탄의 유혹을 받으셨지만 모두 물리치셨는데 나는 늘 유혹에 넘어지기 때문에
시작부터 벌써 긴장이 됩니다.
어떻게 이 시기를 보내야 하나?
등 떠밀려 들어선 광야지만, 문득 생각해보니…광야는 늘 있어왔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바로 광야였습니다.
늘 유혹이 있는 곳! 사는 곳이 거친 모래바람 속과 같았음을 생각하면 광야는
바로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이었구나!
그 길을 걸어서 내가 지금 여기까지 와있네요.
그런 생각하면 광야로 들어가는 이 사순시기가 그렇게 크게 부담 가지는 않습니다.
평소 실력이 있으니까요. 지금까지 살아온 곳이 광야니까요.
다만 조금만 더 힘을 내봅시다. 풀린 신발 끈을 묶고 느슨한 허리띠를 동이면서,
이미 이 싸움에서 승리하셨던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유혹과 싸움에 승리하셨던 예수님의 비결을. 오늘 복음은 알려줍니다.
바로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유혹 때마다 하느님 말씀으로 사탄과 싸우셨으니,
우리도 오늘부터 시작되는 사탄과의 싸움에서 예수님처럼, 하느님 말씀으로
단단히 무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무기로 사탄의 유혹에 맞설 수 있습니다.
이번 사순 시기에 어느 때보다도 하느님 말씀을 가까이하여, 말씀으로 힘을 얻고
유혹을 이겨냅시다.
등 떠밀려 들어선 사순절의 광야지만, 평소 실력도 있는 데다가 광야에는 사탄의 유혹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편인 천사의 도움도 있음을 기억하면서(마르 1,13 참조).
거친 모래바람 부는 광야에서, 특별히 하느님 말씀으로 힘을 얻어 유혹과 맞서 승리하는
은혜로운 사순 시기가 되십시오.
전주교구 정천봉 베네딕도 신부 : 2019년 3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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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 알렉산델 신부
사순 제1주일
신명기 26,4-10
로마 10,8-13
루카 4,1-13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이겨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충만하시어 광야로 가십니다.
사십일 동안 머무시면서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세 가지 유혹은 모든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원수와 계속할 내적 투쟁을 상징적으로 비춰줍니다.
예수님께서 허기가 극에 달하셨을 때를 맞춰 악마는 하느님과 예수님 사이의 조화를 깨뜨리려고,
‘너 하느님 아들아니니? 빵을 만들어 먹어’라고 마음속에 떠올려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신명기 8장 3절을 인용하여,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라고 하시면서
속삭임을 단호하게 떨쳐버리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소 배고픔을 겪는 가운데, 아버지께 대한 믿음과 순명을 드러내는 것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임을 아셨기 때문에 하느님 아들로서의 권능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기를 거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메시아이지만, 또한 하느님의 종으로서 겸손과 순명 속에 머무르십니다.
예수님께서 걸으실 영광의 길은 결코 받은 권능을 맘대로 사용하면서
자기 뜻을 펼쳐 나가는 길이 아니라, 하느님 입에서 나오는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귀 기울여 듣고,
순명하고, 봉사하는데 사용하는 길입니다.
다른 두 가지 유혹, 즉 마귀가 또 하느님 흉내를 내며, 세상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주겠다고
속삭입니다. 이 유혹에 말려들면 하느님으로 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가게 되고
배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은 모두 다 하느님께로 부터 받은 것이지, 내 것은 아니다’
라는 자각을 하십니다.
그리고는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루카 4,8)라고
단호히 그 생각을 떨쳐버리십니다.
또한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서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보호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당신 신원과 권능에 관한 보장이 과연 사실인지
확인해보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의 계획과 뜻을 펼쳐 나가지 않고,
하느님께 봉사하고자, 삶의 주도권도 자기가 움켜쥐지 않고,
하느님께 드리며 순종하고자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셨던 유혹들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제자들도 교회도 받을 것입니다.
특히 사순 시기 동안 성령께 의탁하며, 성경을 충실히 읽어 깨닫고, 기도함으로써
이 유혹들을 식별해 내고 극복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도록 노력해봅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유혹을 물리치고 승리를 얻으셨듯이,
우리도 끝내는 그렇게 될 것을 굳게 믿읍시다.
서울대교구 박일 알렉산델 신부 : 2019년 3월 10일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