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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 대림 제3주간 목요일(2014-12-18) |
대림 시기를 보내고 있는 우리는 지금 어떤 구세주를 바라고 있습니까? 그리고 미사 때마다 우리의 양식으로 오시는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실 때, 우리는 그분을 어떤 분으로 알고 있습니까? 참으로 주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러 오시는 분이시며,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시는 분이심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
[미사 추천성가] : 입당 성가 : 88번 임하소서 구세주여 예물준비 성가 ; 217번 정성어린 우리 제물 510번 주님께 올리는 기도 영성체 성가 : 166번 생명의 양식 170번 자애로운 예수 172번 그리스도의 영혼 파견 성가 : 96번 하느님 약속하신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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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 대림 제3주간 목요일(2014-12-18) | 미사 전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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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당송] : -
우리 임금님 그리스도 오시리라. 어린양이 오시리라 요한이 선포하였네.
[본기도] :
전능하신 하느님, 죄의 멍에를 메고 구원을 기다려 온 저희가, 다시 맞는 성자의 탄생으로 옛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말씀의 초대] :
예레미야 예언자는 미래의 임금 메시아의 도래를 예언한다.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태어날 그는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펼 것이다. 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졌다(제1독서). 마태오 복음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경위를 전해 준다. 여기에는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인간의 협조가 있었다. 곧, 마리아가 성령의 힘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셨지만, 이를 받아들인 요셉의 순명도 뒤따랐던 것이다(복음).
[제1독서] : <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23,5-8 5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그 싹은 임금이 되어 다스리고 슬기롭게 일을 처리하며,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루리라. 6 그의 시대에 유다가 구원을 받고, 이스라엘이 안전하게 살리라.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주님은 우리의 정의’라고 부르리라. 7 그러므로 이제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는 사람들이 더 이상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한다.” 하지 않고, 8 그 대신 “이스라엘 집안의 후손들을 북쪽 땅에서, 그리고 당신께서 쫓아 보내셨던 모든 나라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한다.” 할 것이다. 그때에 그들은 자기 고향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시편 72(71),1-2.12-13.18-19ㄱㄴ(◎ 7ㄴㄷ 참조)
◎ 주님, 이 시대에 정의와 평화가 꽃피게 하소서. ○ 하느님, 당신의 공정을 임금에게, 당신의 정의를 임금의 아들에게 베푸소서. 그가 당신 백성을 정의로, 가련한 이들을 공정으로 다스리게 하소서. ◎ ○ 그는 하소연하는 불쌍한 이를, 도와줄 사람 없는 가련한 이를 구원하나이다. 약한 이, 불쌍한 이에게 동정을 베풀고, 불쌍한 이들의 목숨을 살려 주나이다. ◎ ○ 주 하느님,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찬미받으시리라. 그분 홀로 기적들을 일으키신다. 영광스러운 그 이름 영원히 찬미받으시리라. 그 영광 온 누리에 가득하리라. ◎
[복음환호송] :
◎ 알렐루야. ○ 이스라엘 집안의 영도자, 시나이 산에서 모세에게 법을 주셨으니, 당신 팔을 펼치시어 저희를 구원하러 오소서. ◎ 알렐루야.
[복 음] :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자손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시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8-24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
주님, 성자의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게 하셨으니, 이 제사로 저희를 어여삐 여기시어, 성자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
[감사송] :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두 가지 의미>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모든 예언자는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미리 알려 주었고, 동정 성모께서는 극진한 사랑으로 그를 품어 주셨으며, 요한은 오실 분이 이미 와 계심을 알려 주었나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저희가 깨어 기도하고, 기쁘게 찬미의 노래를 부르면서, 당신 성탄을 준비하고 기다리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하늘의 모든 천사와 함께, 저희도 땅에서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 거룩하시도다! …….
[영성체송] : 마태 1,23 참조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니,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영성체 후 묵상] :
오늘 복음은 요셉이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았음을 들려줍니다. 요셉은 약혼자의 임신에서 세상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불명예가 아니라, 메시아 약속의 성취를 보았습니다. 그는 믿음의 눈으로 그 신비를 보았습니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법을 익히는 때가 대림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현대 문학의 대표 작가로 꼽히는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의 걸작인 『대성당』이라는 작품집이 있습니다. 그의 단편 소설 열두 편을 모은 것인데, 마지막 단편에는 뜻하지 않게 ‘시각 장애인’에게서 ‘보는 법’을 배우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삶에 지친 나머지 활기를 잃어버린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의 집에 아내의 손님인 한 시각 장애인이 방문합니다. 이 손님맞이는 그에게 귀찮은 일이었습니다. 그는 텔레비전의 장면을 하나하나 얘기해 주어야 했습니다. 시각 장애인은 대성당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합니다. 그는 성당의 외형을 열심히 설명하다가 포기하며 말합니다. “어마어마해요. 돌로 만들었죠. 때로는 대리석으로도요. 사람들이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가고 싶었던 거죠. 그 옛날에는 모든 삶에서 하느님이 중요한 부분이었지요.” 시각 장애인이 갑자기 ‘그게 어떤 형태로든’ 신앙심을 불러일으키는지 묻자 그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오랫동안의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뭘 믿는 건 없다고 봐야겠죠. 아무것도 안 믿어요. 그래서 가끔은 힘듭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대성당이라고 해서 나한테는 뭐 특별한 게 아니거든요. 아무 의미도 없어요.” 그러자 시각 장애인은 그가 지금 본 대성당을 ‘눈을 감고’ 함께 그려 보자고 합니다. 그의 손 위에 시각 장애인의 손이 얹히고 둘은 함께 대성당을 그립니다. “‘그럼 계속 눈은 감고.’ 시각 장애인이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했다. 내 손이 종이 위를 움직이는 동안 그의 손가락들이 내 손가락들을 타고 있었다. (중략) 그때 그가 말했다. ‘이제 된 것 같은데, 해낸 것 같아. 한번 보게나. 어떻게 생각하나?’ 하지만 나는 눈을 감고 있었다. 조금만 더 그렇게 눈은 감은 채로 있자고 나는 생각했다. (중략) ‘어때? 보고 있나?’ 나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우리 집 안에 있었다. 그건 분명했다. 하지만 내가 어디에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나는 말했다.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
주님, 저희가 이 성전에서 주님의 자비를 입었으니, 다가오는 구원의 대축제를 정성껏 준비하게 하소서. 우리 주…….
[파견] : |
[나해] 대림 제3주간 목요일(2014-12-18) | 미사 강론 [Lectio Divina & Comtemplation] * 독서 : 예레 23,5-8 / 복음 : 마태 1,18-24 * |
<미사강론-1> : 잠에서 깨어난 요셉 ;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우리는 어제 복음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인류 역사 안에 들어오시게 되었는지 예수님의 족보를 통해서 그분의 방법을 보았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 하느님, 한번 약속하신 것을 성실하게 지키시는 하느님,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그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그칠줄 모르고 베푸신다는 것을 보았다. 인간이 생각하는 방법으로가 아니고 하느님의 방법으로 개입하시고 역사 하시는 하느님을 보았다.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없고 막을 수 없는 하느님의 구원 방법을 방해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신앙이다.
오늘 그런 신앙인의 대표적인 모델을 성 요셉을 통해서 보여 주신다. 성 요셉은 마리아와 약혼한 사이였다. 성 요셉이 비록 의로운 사람이라 하더라도 마리아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인간적으로 생각해 볼 때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셉은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요셉이 파혼한다고 해서 요셉을 나무랄 사람이 없다. 동네 방네 돌아 다니면서 소문을 퍼뜨리지 않고 조용히 해결하기 위해 "남모르게 파혼하기로"한 것만도 감사할 일이다. 만일 인간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이런 일을 요셉도 그냥 그런 방법으로 해결하였다면 조금도 우리보다 나을 것이 없었을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일을 하였을 테니까. 그런데 요셉은 자기가 마음 먹었던 대로 일을 처리하지 않았다. 자칫 잘못하였으면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실패할 수도 있을만한 위험한 상태였다. 만일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하느님의 계획대로 이루워지지 않았다면 그 실패의 한 중앙에 요셉이 서게 되었을 것이다. 즉 요셉이 협조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을 것이고 그 책임을 요셉이 져야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요셉이 마음을 바꾸어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협조자가 되었을까? 이에 대해 복음은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라고 하였다.
요셉이 잠을 자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가?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서"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라는 말씀이었다. 그러나 이 내용도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결코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이 아니다. 느낫없이 천사가 나타나서 이야기 한 말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천사가 누구인지, 믿을 수 있는 분인지? 그리고 도저히 인간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말을 곧이 곧대로 믿고 이미 파혼하기로 결심까지 한 것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냥 마리아를 아내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고 하였다.
"잠에서 깨어나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잠에서 깨어다다"라는 말은 "부활하다"라는 말이다. 부활한다는 말은 말씀을 듣고 일어나는 것이다. 즉 자기 힘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힘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요셉이 잠에서 깨어나다."란 말은 인간적으로만 생각했던 것에서 하느님의 말씀에서 빛을 받고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요셉은 구약에서 이미 말씀하셨던 하느님의 약속 즉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이다."라는 말씀을 이해한 것이다. 지금 마리아와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역사 하시는 일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들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맞아들였다."라는 말은 마리아가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서 예수님의 잉태 소식을 전했을 때 그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 지기를 바랍니다."라고 말씀하셨던 것과 똑같은 태도이다. 즉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것 그것이 곧 부활이다. 요셉의 "맞아들였다."라는 자세는 하느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자세이다.
신앙은 우리의 이해를 초월한다. 신앙은 인간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려고 하던 것을 멈추고 하느님의 방법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신앙은 하느님의 구원을 방해하려던 마음을 바꾸어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절대적으로 순명하고 협력하는 것이다. 신앙은 우리 안에서 이루시는 하느님의 역사를 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신앙은 나의 방법대로가 아니라 하느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나 자신을 내어 드리는 것이다. 신앙은 내 생각대로 나의 행동을 옮기기전에 먼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생활이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너무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잠을 자고 있다. 그러니까 인간적으로만 모든 것을 생각하려고 하고 인간적인 이론과 합리성에 끼워 맞추려고 하는 데에서 불평하고 원망한다. 그래서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은혜를 받지 못할 때가 많이 있다. 우리가 말씀에 잠을 자고 있는 한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맞아들일 수도 없고 또 하느님이 주시는 은혜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잠에서 깨어난 사람만이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협력할 수 있다. 잠에서 깨어난 사람만이 어떻게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시는지 또 어떻게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협력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알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성탄 가까이에 와 있다. 그러나 내가 말씀으로 깨어나지 않는 한 말씀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우리는 맞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즉 내 안에 예수님이 탄생하지 못할 것이다. 내 안에 예수님이 탄생하지 못하면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누리게 될 많은 은총을 누릴 수 없다. 자기 마음 안에 예수님을 탄생시킨 사람만이 또한 예수님을 전해줄 수 있고 기쁘게 생활할 수 있다. 오늘 우리의 성탄은 말씀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맞아드리는 데서부터 시작될 것이고 성탄의 은혜를 받을 것이다............◆
[말씀자료 : 유광수 신부 / 편집 : 까따꿈바 묵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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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강론-2> : 임마누엘 하느님
기쁨의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여라.하시면서 구세주가 곧 오시리라 전해줍니다. 교회는 기쁨과 희망 속에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대림환의 모든 촛불을 환히 밝혔습니다. 어둠을 뚫고 빛으로 오시는 구세주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세상에 오심으로 모든 사람에게 큰 기쁨이 되어 주십니다.
한해가 다 저물어가고 예수의 성탄도 한 주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돌아보면 세상 것을 좀더 많이 얻겠다고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또 세상 안에 무엇인가를 나의 힘으로 이루어보겠다고 바둥거리느라 늘 우리 가운데 오시는 주을 잊고 살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유다의 왕 아하즈가 앗시리아의 침략에 대비한 약소국가들의 동맹에 가담하기를 거부하며 적국인 앗시리아에 도움을 청하려하자, 이사야는 아하즈에게 인간의 권력에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느님께 의지하여 신적 보호의 보증으로 징조를 청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하즈는 핑계를 대며 하느님께 징표를 청하기를 거절합니다. 그리고 끝내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아니라 정치적인 계산으로 앗시리아에 도움을 청하는 아하즈에게 이사야는 주님께서 몸소 징조를 보여주실 것인데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는 분이 오실 것이고 그 분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선언을 하십니다.
임마누엘이란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말씀입니다. 아하즈는 세상의 권력으로 자신을 보존하고자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시대의 우리들도 함께 하시고자 하는 하느님의 사랑을 외면하고, 하느님 없이 나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하겠다는 자만에 빠져들곤 합니다. 그러다보니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쳐오면 쉽게 좌절하여 쓰러지고 맙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께 의지하며 하느님께 징표를 구하라고 합니다.
대림시기는 오시는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며 주님의 말씀에 자신을 내어 맡기는 때이며, 사도 바오로의 “여러분은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왔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처음 믿던 때보다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그러니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라는 로마서 말씀처럼 빛의 갑옷을 입고 우리와 함께 하시고자 세상에 오신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하느님이 주시는 징표를 구하는 시기입니다.
하느님이 보여주시는 시대의 징표를 올바로 읽어내며, 당신의 아들을 알려주는 하느님 사랑의 징표를 찾아내어 오시는 주님의 성탄을 기쁘게 맞이하도록 합시다...............◆
[말씀자료 : 김원조 신부 / 편집 : 까따꿈바 묵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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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강론-3> :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얼마 전 한통의 휴대폰 문자가 왔습니다. 물론 많은 문자 메시지 가운데 특별한 한통입니다. ‘저 냉장고 없어서 시집 못가요.’... 문자를 보는 순간 수년전 여러 차례 선을 보고도 시집을 못간 노처녀에게 술김에 ‘네가 시집가면 냉장고 사준다.’고 큰소리 쳤던 기억이 났습니다.
사람에게도 다 때가 있는지 만난 지 몇 개월 만에 뜬금없이 시집을 간다는 소리에 기쁨도 있었겠지만 모아둔 돈이 없는 저에게는 난감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성당의 후배로서 또 동생으로서, 친구로서 지내기에는 너무나 진솔하고 편했지만, 그에게는 큰 결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결혼을 생각하면 자신도 모르게 잣대를 들고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능력은 있나, 나쁜 습관, 버릇, 사고방식 등등 이것저것 보다 보면 그만 싫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보낸 세월이 아마 10년은 된 것 같습니다.
한 번은 그녀의 집 앞에서 만난 적이 있었는데, 노처녀라 그런지 아파트 베란다에서 어머님과 가족들이 다 내다보고, 심지어 그녀의 조카들이 무슨 구경이라도 난 듯 내려와 유심히 살피며 주변을 서성거렸습니다. 어이가 없어서 서로 쳐다보며 웃음을 짓기도 한지도 꽤 된듯한데 시집을 간다니... 다들 시집가면 이것 저것 사준다던 동기들은 다들 오리발을 내밀더라며... 믿는 건 신부님뿐 이랍니다.
요즘 냉장고 하면... 백만원이 넘는게 기본이라던데... 이리저리 모아 반값 정도 보내고 미안하다고 했더니.. ‘혼자 살면서 모아둔 돈두 없나.’라고 면박까지 받았습니다. ‘혼자 사니까 그런 거 없어도 돼.’라고 얼버무리긴 했지만 이런 황당한 일은 처음입니다.
아마 성모님은 더 황당하셨겠지요. 결혼이 낼 모랜데 임신이라니... 그것도 누구 아이라고 변명할 여지도 없는 상황을 겪어야 할 텐데...
하지만 루카 복음은 먼저 엘리사벳과 즈카리아의 이야기,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의 성모님 잉태, 그리고 유명한 ‘성모의 노래’로 탄생의 이야기를 하면서 이 황당한 사건을 잘 풀어내고 있습니다.
이미 엘리사벳과 즈카리아의 사건은 구약에서 가끔씩 등장하는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노년에 아이를 갖는다는 이야기는 하느님의 약속은 어떠한 상황에서든 반드시 지켜진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즉 과거의 약속의 실현이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다음에 이어지는 성모님의 동정 잉태 사건은 아직까지 없었던 새로운 사건이면서도 구약과의 긴밀한 관계를 맺어주고 있습니다. 성모님 역시 즈카리아처럼 어떻게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 하고 묻지만 천사는 의심했다고 질책하기 보다는 엘리사벳의 사건을 말해주면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것이 없다’라고 믿음을 더해 줍니다.
즉 과거에도 단 한 번도 약속을 어긴 적이 없으신 하느님은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조금만 다른 상황이 닥치면 금새 과거의 기쁨도 잊은 채 원망을 늘어놓기가 일쑤인데... 성모님은 ‘예, 과연 그렇네요.. 전 주님의 종입니다.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받아들입니다.
저는 황당했던 일을 통해 생각합니다. 제 형편 뻔히 알면서도 꼭 냉장고를 사달라고 했던 마음을.. 냉장고를 열 때마다 상하지 않고 싱싱하고 시원한 것을 꺼낼 수 있는 기쁨과 ‘관계’라고 하는 기쁨이 더하여 있다고 하는 것을 배우게 해줬습니다.
성모님의 노래는 이 관계의 기쁨이 한층 더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없을 사건 속에 자신이 함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쁠까요? 저는 예수님의 탄생과 같은 사건은 다시없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다시 술김에 ‘뭐 사준다’는 얘기를 안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자료 : 원정학 신부 / 편집 : 까따꿈바 묵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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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 임금님 그리스도 오시리라.
어린양이 오시리라 요한이 선포하였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