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0일 14시
작업을 일찍 마친다. 우리에게 할당된 작업량을 일찍 해치운 탓이다. 이런 경우 갖는 감정은 하루 24시간에서 몇 시간을 덤으로 더 얻었다는 것이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 집으로 간다. 개금에서 부암역을 돌아 열차 정비창의 옆길을 걸어가면서부터 책을 읽는다.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는 길이다. 몇 페이지를 읽자 범내골이 가까워졌다. 열차가 다니는 작은 다리 아래 두 명의 노숙자가 볕을 쬐며 잠들어 있다. 새카만 얼굴, 새카만 손발과 옷, 그리고 때에 절은 밥그릇, 역시 새카만 깔개 그런 남루하고 불결한 풍경.... 얼굴은 의외로 젊은 편이다. 저들도 과거엔 청결한 옷을 입고 청결한 얼굴로 희망차며 깨끗한 꿈을 가지고 살았을 것이다. 희망도 잃고 깨끗한 꿈도 잃으면 나도 저렇게 될까? 아니 곰곰 생각하니 나는 희망 같은 걸 마음에 크게 얹고 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냥 다음 날 닥쳐올 사건과 일을 방어 하며 살았던 것 같다. ‘방어적’ 내 삶을 석자로 도식화 시킨다면 그렇게 말 할 수 있다. 거기서 부연한다면 지지 않을 것, 그러니까 패배한 생애는 되지 말자는 것에 굵은 밑줄을 치고 살았다. 그렇다. 지지않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울타리를 만들고 지지 않을 만큼의 일과 행동, 염원 따위를 들여 놓았다. 그런 ‘방어적’인 삶 때문에 나는 질 이유가 없었다. 노숙자들의 두터운 입술에 햇볕이 다정하게 내려앉는다. 태양이 주는 따뜻함에 그들은 나름대로의 쾌적함을 즐기고 있다.
*15시
문현동 조방 앞엔 내가 가야 할 곳이 두어군데 있다. 장갑 가게에서 10개들이 면 장갑을 2600원에 사고 망치를 파는 철물점에서 나무 자루의 중간급 망치를 5000원에 샀다. 망치는 여태 4-50자루는 산 것 같다. 그 정도 많이 망치질을 했다는 말이다. 나는 항상 망치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망치는 나와 우리 가족의 삶을 그럭저럭 곧게 펴주었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구질구질하게 살게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망치를 두들겨 만든 건물이나 다리, 종합 운동장, 발전소가 전국에 많이 흩어져 있다. 그러나 망치는 때때로 나를 가격하기도 했다. 손가락에 망치의 쇳덩이가 떨어져 손톱 몇 갠가를 뭉개놓았고. 또 치아의 한 끝을 깨트렸다. 죽을 만큼 아팠지만 그래도 망치를 한 번도 원망하지 않았다. 내가 죽을 땐 내가 마지막으로 잡았던 망치를 관에 넣어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제 생각 난건데 피아노 음악을 특히 좋아하는 것도 망치 때문이 것 같다. 맑은 두드림, 망치는 때때로 피아노가 되기도 한다. 피아노가 햄머를 두드려 추상적인 건물을 만든다면 망치는 두드려 구상적인 건물을 만든다. 그리고 비둘기처럼 그곳에 우리의 영혼이 깃든다.
15시30분
조방앞 현대치과에 들러 지난 번 적지 않은 규모의 치아 수리 중간 결과를 점검하고 요즘 살짝 살짝 아프기 시작한 사랑니를 처분하고 싶었다. 그러나 치과 의사는 지난 번 치아 수리의 결과가 좋다 했고 사랑니는 최대한 유지하라고 권한다. 그리고 지금 그 사랑니를 빼면 상당히 아플거라고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상당히 아플거라는 그 말에 나는 공포를 갖는다. 그래서 최대한 유지하려고 한다. “너무 과음하지 마세요” 의사는 마지막으로 그 말을 나에게 한다. 나는 뜨끔했고 ‘참 지키기 어려운 것’ 이란 생각을 했다. 아아 솔직히 말하면 나는 과음하고 싶은 적은 거의 없었다. 결과적으로 과음하게 된 다음 날의 괴로움이 반복되면서 과음을 필사적으로 멀리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나는 과음했다. 과음의 괴로움과 술자리에서의 시시한 취담이 이제 지겨워진 나는 그래서 혼자 마시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혼자서는 절대로 과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혼자 마시며 나는 이런 생각도 한다. 이건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붉거나 푸른 물감으로 내 가슴에 붓질하는 일이다. 좋은 생각(말하자면 사색 같은 것)과 좋은 음악, 좋은 문장을 떠올리며 술의 물감으로 좋은 그림을 그리는 날은 무척 행복하다.
*16시
문현동 돌산 공원을 올라서면 산이 가깝다. 조금 흐린 날씨, 나는 어느 중견 작가의 소설을 읽고 있다. 호젓한 산길을 걸으며 책 읽는 순간이 또한 행복하다. 지나가는 산행객이 몇 걸음 떨어지더니 일행에게 낮게 속삭인다. “저 아저씨 참 공부 열심히도 하네...”그리곤 깔깔 웃는다. 다소 황당한 모습을 보았을 때 갖게 되는 비아냥 섞인 웃음이 비릿하게 들려온다. 공부를 할 것 같으면 집의 책상머리서 하지 왜 산길에서 별스럽게 하느냐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것인데 나는 이렇게 하는 것이 행복하다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책 읽는 것이 공부? 만약 그 말대로 책 읽는 공부라고 한다면 나는 책을 읽지 않을 것이다. 공부는 자의적이라기보다는 대체로 타의적, 혹은 그 무엇인가를 성취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하는 노동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그것이 과거부터 싫었다. 공부가 싫었던 것이다. 당연히 공부를 못했다. 그렇더라도 나는 책을 즐겼다. 책 속에 나를 밀어 넣고 활자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했다. 뭉뚱그려 말하자면 즐긴다는 것이다. 즐긴다... 나는 즐긴다는 말에서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각박하게 살지 않는다는 말이다. 노동을 즐기고 책을 즐기고, 음악을 즐기고, 회화를 즐기고, 글쓰는 일을 즐기고, 산길을 걷는 것을 즐기고, 술을 즐기고....그리고 성을 즐긴다. 한마디로 쾌락주의자다. 그러나 쾌락을 쫓지는 않는다. 이 말장난을 당신은 현명하게 분간하시리라.
*17시
“딸은 울상을 짓고 있었다”
읽고 있던 소설의 어느 한 대목에서 나는 덜컥 마음의 브레이크를 건다.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에게 딸은 기분 전환을 시켜주기 위해 밥을 사게 된다. 식당 안엔 과거 사업가였던 그에게 많은 신세를 진 은행의 부장이 있다. 형님, 형님하며 낯간지러울 정도로 곰살맞게 굴던 작자였다. 허나 사업에 완전히 실패한 그를 부장은 끝끝내 외면한다. 몰락한자의 비애와 울분이 어느 순간 폭발한다. 아버지는 부장을 끌어다 폭행한다. 그런 아버지 뒤에 딸은 말을 잊고 울상만 짓고 있다. 여하한 행동도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단지 울상만 짓고 있는 다 큰 딸의 모습이 확, 다가온다. 성장을 하고 예쁘장한 핸드백을 늘어 뜨리고 큰 눈을 떠 울상을 짓는 딸, 그 모습을 흘낏 보게 된 아버지, 아버지의 일순 몰아닥쳤을 파도 같은 아픔, 서러움 같은 것.... 나는 내 뒤에 울상을 짓고 있은 사람이 있다. 딸과 같이 성장을 하고 또각이는 뾰족 구두를 신고 핸드백을 늘어뜨린 채 울상을 짓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소설의 그 대목에서 나는 한숨을 크게 짓는다. 소설이란, 문학이란 세상을 그럭저럭 많이 살아온 사람이 읽을 땐 그렇게 망연히 서서 한숨짓는 순간이 많다.
*18시
낙엽은 갈 곳이 없는 난민처럼 좁고 얕게 패인 길 가장자리의 수로에 바싹 여윈 채 몰려있다. 바람이 불어 조금 들썩여 누운 자리를 약간 고칠 뿐이다. 헐벗은 나무들이 그런 낙엽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다. 산에서는 애틋한 일을 만들지 말 것이다. 그것은 나뭇잎이 나뭇가지에서 새로 돋아도 연푸른 잎이 녹색으로 짙게 익어가도, 가을에 잎이 지고 겨울에 잎이 눈보라처럼 바람에 흩날려도 끝끝내 당신을 괴롭힐 것이다. 나무가 우리보다 일찍 죽지 않고 산이 거의 영원히 살아 있는 판국엔 우리는 아주 지독하게 오래 시달릴 것이다. 겨울 해가 창백한 눈을 하고 바라본다. 엄청나게 먼 거리에서 우리를 비추고 있는 태양이 화살처럼 햇살을 쏘아댄다.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가 생각났다. 햇살이 마탄과 같다고 생각한다. 영혼을 악마에게 팔고 얻은 탄알은 무엇이든 맞춘다. 햇살이 맞추지 못하는 것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리고 아가테의 아리아 ‘구름이 하늘을 가리고’를 환청으로 듣는다. 오페라는 각종 색채로 미어터질 듯한 시간 예술이다. 물감으로 흥건한 음악, 그것은 대체로 낙조와 같이 아프게 아름답고, 슬프게 황홀하다. 아가테의 아리아가 귀를 놓치지 않는다. 문득 술이 생각났다.
*19시
과음하지 않고 혼자 마시기를 즐김에도 불구하고 나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한다. “시간나면 막걸리 마시자”한 친구는 술을 아주 많이 마시고 한 친구는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한다. 두 친구를 부른 것은 같은 부산에 살면서 너무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는 자책에 가까운 감정에서였다. 친구를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는 것은 내가 성의가 없었다는 말과 같다고 생각했다. 대연동 막걸릿집에서 친구들과 만난다. 담배를 피워 물고 있는 여자 둘이 막걸릿집의 한가운데 앉아 소주를 마시고 있다. 약간 눈살을 찌푸렸다. 대략 막걸리 두병씩을 마신 우리는 헤어지기가 섭섭했다. 막걸릿집 지하에 노래방이 있었다. 소위 7080스타일의 노래를 부르는 중간 중간 나는 가곡을 몇곡 불렀다. 술을 전혀 못하는 친구는 요즘 노래도 부를 줄 안다. 딸에게서 배웠다고 했다. 클래식만 주야장천 듣는 나도 요즘은 흘낏흘낏 요즘 가요를 듣기도 한다. 아주 드물지만 가요에도 놀랄만한 음색이 바람처럼 불어 올 때가 있다. 며칠 전엔 아주 특이한 리듬의 가요를 듣고선 벗겨진 전선을 만진 듯한 상황이 있었다. 낯설어 기묘하면서도 마음을 묶는 압박감 같은 것. 노래를 부르고 나서 우리는 헤어진다.
*22시
술 잘 마시는 친구가 해장국이나 먹고 가자는 말에 해장국집에 갔다가 뜻하지 않게 소주를 마시게 되었다. 친구는 과거 택시 회사의 노조 위원장을 지냈다. 노조 위원장까지 지냈으니 좌측의 날개가 발달했으리라 짐작하겠지만 그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해장국집에서 소주를 앞에 두고 말씨름을 벌여야했다. 뭐 좌익이니 우익이라기보다는 박근혜와 문재인의 문제였다. 박근혜가 독재자의 딸이란건 사실 나에겐 아무 문제가 없다. 술꾼 아버지의 아래엔 전혀 술꾼이 아닌 아들이 있는 경우가 많다. 다만 나는 박근혜가 그간 정치판에서 보여준 모습에서 환멸과 어두컴컴함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경원의 모습에서도 그것을 발견했고 홍준표와 박희태에게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명박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정당과 관계없이 그들의 행적이 더럽고 수상했다면 돌이킬 수 없는 비호감으로 찍혀버렸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고나서 나는 뱀이 국토를 기어 다니는 듯해 피부과적으로 몹시 불편했다. 박근혜가 만약 집권한다면? 아마 기형적인 물고기가 출몰하는 호수에 빠져있는 느낌을 가질 것이다. 정치, 더구나 술을 마시며 나누는 정치담이 끝날리 만무하고 오가는 대화의 결이 고울 리 없다. 먼저 자리를 박차고 나간 것은 나였다. 친구가 큰소리로 불렀지만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와버렸다. “나쁜 놈의새끼. 박근혜라니 박근혜라니.....”집으로 오는 중에 나는 수 없이 그말을 되풀이 했다.
*다음 날 아침
약간 미안해진 나는 박근혜측 친구에게 문자를 보낸다.
“미친 놈 어젠 잘 들어갔냐?”
“그래 이놈아”
“또라이....”
“죽을래?”
우리의 대화는 항상 이런 식이다.
욕을 해야 다정한 그런.
좋은 공연 & 소중한 만남은, 언제나 [뮤클]과 함께 ^^ http://cafe.daum.net/mukle
첫댓글 주변에 별 관심이 없이 살아 왔던 나, 좀더 치열하게 살지 못했던 나, 견해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토록 잔인했던 나를 되돌아 보게 됩니다.
그럼 이제부턴 주변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좀 더 치열하고 견해가 다른 사람에겐 더 없이 선량하시겠다는 이말씀이죠? ㅍㅍ
잘 읽었습니다 ^^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목로님은 정말 예술적 감각이 있는 분인거 같아요. 일상의 일도 글로 표현하시는게 솔직하시며, 담백하고 잔잔한 파도같다고나 할까?
(쫌 민망하지만....) 감사합니다. 극찬을 해주셔서 제가 어찌할바를 모르겠습니다. 기분이다 한꼽뿌 쏩니다!!!
항상 재미있게 잘 보고 있습니다. 나의 일상도 별볼일 없는 일상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정말 많은 사건과 생각이 뒤섞여 있겠죠... 우리 모두들 다 그럴겁니다. 오늘 한번 자세히 들여다 봅시다. 내가 잘한건 칭찬해주고, 못한건 담엔 안그러도록 노력해봅시다.
문제는 안그러기로 노력하고 맹세해도 또 그러는 그것...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