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홍의 나쁜 생각718 - 당신에게
날이 추워졌소. 유난히 추위를 타는 당신, 이번 겨울엔 우울증에 시달리지 말길 바라오. 우울증도 견딜 수 없는 욕망의 한 끝이라는 걸, 당신도 잘 알고 있지 않소? 당신이 우울하면 당신 주변이 어두워지오. 그렇다고 너무 부담스러워하진 마소. 그저 당신 더 몸 상하면, 아주 슬퍼할 사람들이 있다는 걸 잊지 말라는 말이지요. 이번 겨울을 잘 버텨내길 바라오. 아무도 당신 주머니에 손난로를 넣어주지 않는다는 것도 잊지 마시오. 세상엔 대가가 없는 것이 하나도 없잖소. 우리에겐 이젠, 시간이 별로 없다는 걸 잘 알지만 그래도 힘껏 가보아야 하지 않겠소.
유독 겨울에 시달리는 당신, 늘 여름 나라로 이민을 꿈꾸어왔지만 한 번도 실행하지 못했지요. 아마 더 외로워질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겠지요. 사람은 누구나 혼자라는 말이 전혀 당신에게 위로가 되지 못하고, 항우울제 중독이 된 당신에게 약을 끊으라고는 말하진 못하겠소. 약을 끊고 더 오래 살아서 뭐하겠소. 다만 고통만이라도 덜 수 있길 바래요. 그리고 다 내버려 두시오. 세상에서 더이상 당신이 책임질 일은 하나도 없다는 걸 잊지 마시오. 왜냐하면, 당신은 할 만큼 했고, 세상은 그냥 세상일 뿐이기 때문이오.
가수 김광석
"또 하루 멀어져 간다"라고 노래하던 젊은 가수가 있었다. 그는 젊은 나이데 자살했다. 필자에게 그의 노래는 그의 생전엔 별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 톤이 필자의 취향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멀어져 간 후, 한 5년이 지났을까부터 필자는 그의 노래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그의 음반을 구하고 틈나면 듣고, 그의 노래 중 한두 곡을 레파토리로 만들기도 했다. 통키타 하나와 하모니카 하나만으로도 자신의 노래를 만들어 부르던 그, 그의 이름은 독자 제위도 잘 아시는바 가수 김광석이다. 이 땅에 몇 안 되는 음유시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시로 등단하지도 않았고, 시라고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곡을 쓰고 불렀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문학적 성향이 깊다. 그의 노래엔 설득력 있는 이야기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필자에겐 그의 멜로디와 화음보다 그의 가사들이 먼저 귀에 들어왔다.
그가 왜 자살했는가는 구체적으로 알고 싶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절대적 절망감이 있었을 것이고, 그가 본 절망감을 필자는 호기심으로 읽어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전문적 음악교육이라고는 단 한 번도 받아본 적 없이 그저 좋아서 독학으로 음악에 입문한 필자로선 그의 단순한 멜로디와 코드, 리듬, 진솔한 가사들과 꾸밈없는 목소리 톤에 점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십을 훌쩍 넘긴 지금부터라도 음악을 차근차근 공부해 보고 싶은 의욕을 불러일으켰다. 마음만은 그렇다. 마땅히 음악을 배울 곳이 없었던 필자로서는 아주 느리고, 답답하게 독학하는 수밖에 없겠다. 음악적 스승이라곤 음반에 담긴 기라성 같은 음악가들의 음악을 듣는 일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 또 하루 멀어져 가는구나!
상류층 딸들 / 에리히 캐스트너
한 여자는 앉아 있다. 다른 여자는 누워 있다.
그들은 수다를 많이 떤다. 시간이 날아간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랴.
한 여자는 누워 있다. 다른 여자는 앉아 있다.
그들은 수다를 많이 떤다, 소파는 진이 빠지고
허튼 소리를 많이 들어야 한다.
그들의 몸은 탄탄하고
피부는 매력적이다.
얼마나 값비싼 여자들인가?
온몸이 통통한 그들은
입과 몸이 녹슬지 않도록
칠을 한다.
그들의 향기는 케이크를 연상시킨다.
향기는 머리 꼭대기에서 발끝까지
그들 삶의 목적이다.
돈 많은 남자와
멋진 방으로 들어서는 일.
이런 걸 결혼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초콜릿과 시간을 쩝쩝 소리 내며 삼킨다.
남편에게서 모자와 옷을 얻지만
아이는 낳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44 사이즈의 몸매로
살아갈 뿐이다.
때로은 앉아서, 또 때로는 누워서.
그들의 머리는 나무랄 데가 없지만 텅 비어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편안함을 느낀다.
이쯤에서 어떤 결론을 내리면 좋을까?
사람들은 그들을 보는 건 좋아하지만
정말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은
그들이 말을 멈출 때이다.
나무가 인사한다 / 에리히 캐스트너
우리는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여행한다.
벌써 햄 샌드위치를 네 개나 먹었다.
기차는 잘 달리고 여로는 순탄하다.
혹시 연착하지 않을까 조바심 내는 사람도 있고
별다른 관심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본다.
눈을 감고 있는 듯이 보이는 사람도
가끔씩 자기 집을 힐끔힐끔 올려다본다.
차창 밖에는 눈이 흩날리고 멀리 쓰레기가 쌓인 마을이 지나간다.
평행사변형 건물이 보이지만, 그 밖에는 초원이다.
하품이 나오지만 게으른 손은 입을 가리지도 않는다.
피곤해서 그런가 ----
오른쪽에 앉은 부인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엉덩이가 제발 가까이 오지 않았으면!
이런 일을 겪느나 금세 피곤함도 잊는다.
그녀를 피해야 할지 생각한다.
그녀가 몸을 기댄다.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갑자기 차창 밖에 떡갈나무가 보인다!
단풍나무일 수도 있다. 아무려나.
하나는 분명하다: 그건 나무다!
기억을 더듬어 보다가 깜짝 놀란다:
20년 동안 들판을 보지 못한 것이다!
보긴 했겠지만 지금처럼 본 적은 없다!
언제 마지막으로 꽃밭을 보았던가?
언제 마지막으로 자작나무 숲을 보았던가?
정원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저녁에 지저귀는 작은 새들이 있는 정원.
어머니가 좋아하는 푸른 제비꽃이 있는 정원 ----
부인이 더 가까이 몸을 붙이는 동안
보란 듯이 햄 샌드위치를 하나 더 집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