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장루
가) 이름조차 몰랐던 장루.
비록 한시적이라고 하지만 용어조차 생소한 장루를 몸에 달고 다닌다는 사실은 병을 낫기 위한 전제만 아니라면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장루란 간단히 설명하자면 직장을 드러내고 대장과 항문을 바로 연결 후 상처가 봉합되는 동안 대장 혹은 소장의 중간을 절단하여 복부 밖으로 드러내 대변을 받아 저장하는 일종의 인공 항문이다.
장루는 영구 장루와 임시 장루로 구별하는데 암의 진행정도 항문을 살리기 어려운 경우 영구 장루를 설치하고 임시 장루는 일정기간 후 복원이 가능한 장루를 말한다.
장루의 역사는 일설에 18세기에 이미 유럽에서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보이지만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우리나라에서 언제 장루 수술을 시행한지는 알 수 없으나 최근 외과 수술이 발전 하면서 대장암과 직장암 환자들에게 시술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의 경우 배꼽에서 오른쪽으로 10cm 정도의 거리에 구멍을 뚫어 대장과 소장을 연결하는 부분을 절단하여 장루를 설치하였다.
내가 달았던 장루는 보통 3개월에서 6개월이 지나면 대장과 소장의 절단 부분을 연결하는 복원 수술이 가능한 의학적인 용어로 회장루라고 했다.
장루는 직장암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는 시술로 알려졌다.
아마 이런 시술을 몰랐던 옛날에는 그대로 직장의 고통을 참다 죽었으리라고 생각하면 진보 의술의 혜택을 보고 있다는 점에서 고맙게 여겨야할 것이다.
장루 용품은 덴마크 수입품이었다.
환자는 1인당 1주일에 4개씩 4주 분을 한꺼번에 구입할 수 있고 반품은 불가하며 개인적으로 구입시 개당 1만원인데 중증 환자 판정을 받으면 개당 500원이었다.
환자를 위한 정부의 복지정책인데 늘 정부에게 불이익만 받았던 내가 하필 그런 혜택을 받는 처지가 된 것은 또 다른 아이러니였다.
나) 장루라는 특이한 인공항문은 완치로 가는 희망이라고 하지만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불편한 물건이었다.
샤워는커녕 허리를 숙이고 세수조차 힘들었다.
아무리 내가 먹은 음식의 잔재라고 하지만 만졌을 때의 꺼려지는 물컹함, 가벼운 걸음을 옮길 때도 오른쪽 배에서 출렁이는 장루로 인한 이질감 등 일상에서 부딪치는 느낌은 경험자들만 아는 일이다.
음식은 가려야하고, 보고 싶은 곳으로 여행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현실도 환자의 삶을 주눅들게 하는 요인이었다.
그렇지만 장루라는 이름의 인공항문을 배에 붙이고 살았던 2015년 5월 6일부터 2015년 10월 14일 복원 수술하기까지 가장 큰 문제는 장루 청소였다.
온통 장루에 신경을 쓰고 하루에도 몇 번씩 장루를 확인하고 청소하는 그런 자신을 보면서 괜히 위축되고, 아무리 마음을 비우고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다짐하지만 불편한 현실로 인한 심리적인 갈등은 적지 않았다.
30분을 컴퓨터 앞에 앉아 있기 어려운 체력, 생각을 끊어놓는 순간의 통증으로 인한 혼란은 진정되지 않았다.
더구나 소장은 괄약근이 없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변을 쏟아 낸다.
대변과는 달리 무른 상태의 물질 그러면서 냄새는 대변이나 다름없다.
거기에 통제 불가능한 배변의 상태로 인해 장루는 쉴 새 없이 부풀었다.
그러면 터지기 전에 청소를 해야 한다.
하루 청소 횟수는 일정하지는 않지만 밤중에 두세 번 정도 아침 식사 후 한 번 점심을 먹은 후 두세 번, 저녁 식사 후 잠자리에 들기 전에 두세 번 하는 셈인데 식사량을 줄여보기도 했지만 거의 하루에 열 번 정도가 보통이었다.
병원에서는 간호사의 도움을 받고 퇴원 후 이틀 동안은 아내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 점도 인간적으로 미안한 노릇이었다.
다) 동물도 맞닥뜨린 불행 앞에서 벗어나기 위한 길을 찾으려고 노력한다고 들었다.
그래도 사람은 동물일지라도 염치와 고마움을 아는 고등 동물 아닌가.
대변이 차서 출렁이는 장루를 아내가 청소하는 시간이면 불편함을 넘어 자신의 모습이 한심해졌다.
아내에게 미안함을 덜고 싶었다.
그래서 14일 저녁 처음으로 혼자서 장루 청소를 시도했던 것이다.
물티슈 4장, 화장지4장을 준비하고 간호사와 아애가 하던 순서대로 조심스럽게 시도했는데 일단 성공이었다.
아무리 나의 배설물이라고 하지만 즐거운 일은 못 되었다.
그날 일기에는
[사람은 사회 문화적 환경에 쉽게 적응하는 동물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장루 청소를 하는 아내를 보며 머리 무겁게 했던 부담이 좀 줄어든 것 같다.
내가 언제 이런 날이 있으리라고 상상이나 했던가.
스스로의 꼴이 한심하고 서글프다.] 는 촌평을 남겼다.
마) 장루에 청소에 관한 어느 날 일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매일 장루를 10여회 청소 한다.
밤에 자다가 일어나 묵직하고 물컹한 장루 주머니를 비우는 일이 즐거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요즘은 많이 익숙해져 나만의 요령도 터득하여 조용히 처리하는 편이다.
장루를 청소하려면 먼저 준비할 것이 화장지와 물티슈다.
그리고 물과 변을 닦아낸 화장지를 쌀 신문지가 필요하다.
또 중요한 것이 주머니 내부를 씻어낼 물이다.
순서는
하나, 준비물 점검.
둘, 변기 앞에 목욕 의자를 놓고 앉아 장루를 드러내고 변을 짜내기
셋, 장루 배출구를 화장지로 닦아 준비된 신문지에 버리기
넷, 패트병에 담긴 물을 장루 주둥이에 조심조심 부어 장루 내부를 씻어내기. (항문에 약을 넣어 관장하는 방법과 비슷하다)
씻은 물은 변기에 버리는데 조심하지 않으면 대변 물이 튈 수 있다.
다섯, 신문지에 놓은 화장지는 한약 첩을 싸듯 보기 좋게 접어 휴지통에 버린다.
신문지로 싸는 이유는 화장지를 그대로 버릴 경우 화장실에 고약한 냄새가 나는 데 신문지를 싸서 버리면 냄새를 훨씬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섯, 변기의 물을 내리고 변기 내부까지 물티슈로 닦기.
아무리 조심해도 변기에 대변이 튀기는 수가 있는데 특히 변기 안쪽의 보이지 않는 부분도 신경을 써야 냄새를 막고 청결을 유지할 수 있다.
패트병이 없는 경우에는 물을 담은 종이컵 한 잔이면 청소가 가능한데 이런 방법은 내 아이디어가 아니라 인터넷에서 본 누군가의 경험담을 참고 하였다.
외출 시 급한 경우에는 종이컵에 물을 가득 담아 가지고 좌변기를 찾아 들어가서 위와 같은 방법으로 하면 괜찮다.
다만 외출 시에는 목욕의자가 없으니 변기에 앉아 처리해야하는데 옷에 묻지 않도록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
바) 병을 이기겠다는 의지와 장루를 보는 비감이 교차했던 시간들.
하지만 무심한 봄날 정원에는 작약, 저먼아이리스, 꽃양귀비, 수레국화, 패랭이 등 많은 꽃들이 그야말로 화려했다.
그러나 몸이 아프면 마음도 불편해진다.
아픈 순간에는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위로가 되지 못하며, 아무리 다정한 목소리도 위안이 될 수 없었다.
사람의 방문도 반갑지 않고 걱정하는 친구의 전화도 부담이었다.
매이지 않고 오직 하늘만 바라는 꽃들을 닮고 싶지만 몸이 찢기는 통증에는 한갓 바람일 뿐이었다.
5월 16일 일기에는
[보기에 좋은 낙원일지라도 아픈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낙원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고 하는 줄 모르겠다.] 는 소감을 남기고 있었다.
5월 18일에는
[성한 사람도 몸의 컨디션은 늘 한 결 같지 않은 법이다.
전날 일의 양과 시간 강도에 따라 지치기도 하고 보람과 기쁨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지만 환자에게 몸의 컨디션은 완전히 롤러코스트를 타는 느낌이다.
좌절감이 상존하는 일상의 감정이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또 다른 감정들이 사람의 기를 꺾는다.
발등과 발목이 시리면 즉시 콧물이 나오고 갑자기 등판은 쪼개질 듯 아팠다.
그러면서 의욕은 떨어지고 만다.
이러다가 기쁨과 즐거움이 없는 말년이 되고 말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 우울하다.] 는 글로 하루를 마무리 짓고 있었다.
사) 많은 경험자들과 의사들은 빠른 회복을 위해서 먹는 음식도 중요하지만 적절한 운동이 필요하다고 했다.
카페에 보면 여러 운동이 소개되고 있었는데 게으른 나에게는 걷기가 가장 적합했다.
그래서 그즈음 나는 주로 오전에 30분가량 텃밭과 정원 둘레 길을 걷는 정도로 운동을 했다.
그리고 집안에서도 일삼아 비록 기능은 못하지만 괄약근 운동을 부지런히 했다.
그밖에 하루에 한두 번 좌욕과 족욕을 했던 것도 일과 중의 하나였다.
좌욕은 비데에 부착된 좌욕 기능도 활용했지만 주로 뜨거운 물에 항문을 담그는 좌욕을 했고 가끔 증기를 이용한 쑥 찜 등을 할 수 있는 좌욕기를 활용했다.
첫댓글 아!
감사합니다.
광촌님 투병기 감사히 정독하고 있습니다
저는 결장암이기에 화장실과 배변은 문제없지만
광촌님과 직장암 환우님들의 고통을 상상하기조차 힘들군요
지난 1월 대장내시경 검사받고자 장비우는 약을 먹으며
10여회도 안되는 배변으로 항문이 몹시 쓰라리던 기억이납니다
고생 많이 하셨군요.
빠른 치유를 바랍니다.
직장암만 고통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통증을 받는 부분이 다르다 뿐이지요.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고생 많으셨네요
응원합니다~
처음 당황하고 조급했던 나머지 깊이 생각히지 못했던 점이 많습니다.
암을 만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나서 당황하시는 분들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궁금한게 있어서 여쭈어봅니다 남편이 직장암 3기 판정을 받고 선항암과 방사선28회하고 월요일 수술을 하였는데 조직검사 결과가 광촌님과 비슷하게 암세포가 보이지 않는다라 나왔습니다 이런 경우 항암을 하는지 궁금해서요 항암을 하셨는지 하셨다면 어떤 걸 하셨는지 궁금해서 여쭙니다
저는 수술하기 1주일 전까지 1.6cm크기의 암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수술 후 4주 간격으로 4주(5일)간 20회 항암 치료를 했습니다.
다음 기회에 자세한 글이 나갈 것입니다.
아~~~그러시군요
너무 고생이 많으셨네요~~
저는 결장이라 이런 고통은 만분의 일도 이해 못하겠지만~~
새삼 저의 처지가 감사하게 됩니다
힘내시구요 도움 되시는 글 감사합니다~~
지금은 그 때를 생각하면서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제가 할 수 있는데 까지는 음식이며 운동 등 최대한 조심하고 노력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댓글 감사드립니다.
좋은 날들 되시기 바랍니다.
전 문합부위 누공으로 21개월 장루 생활을 했지요
그와중에도 필사적으로 하루 1시간 이상 걸었네요
물론 화장실이 가까이 있는 장소만 선택해서 걸었죠
지금 5년차 지만 아직도 요놈과 싸워요
페로 전이된 놈이 말썽이네요
걷기는 누구나 권하는 운동이면서 효과도 좋습니다.
저도 지금은 매일 쉼 없이 갖가지 생각을 하면서 1시간 이상 걷고 있는데 항문이 단단해지고 변의 횟수도 줄어드는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폐로 전이가 문제인데 꾸준히 운동하시고 음식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힘 내시기바랍니다.
고통의 날들이 생생하게 느껴지네요
정말 잘 이겨내신거 같아요.. 이젠 계속 건강하시길~^^
뒤늦게 댓글을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 많았습니다,,저두 직장암3기로, 다행이도 장루는 면하고 수술후 12차 항암후 2년 다되갑니다,,,많이 좋아졌지만,, 발저림이 심합니다,,
장루를 안 하신 것만도 다행입니다.
발저림이 심한 이유는 항암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몸을 따뜻하게 하시고 걷기 운동을 열심히 하시면 도움되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