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추절에 삭개오 (눅 19:01-10)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을 보면 삭개오라고 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삭개오를 모르는 성도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삭개오를 모른다면 뽕나무에 올라간 키 작은 사람은 알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설교 중에 큰 실수를 하셨답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시고 <삭개오의 믿음> 이라는 제목으로 주일날 설교를 하셨습니다.
"니고데모는 신분이 세리였고 키가 작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을 몹시 보고 싶어 했습니다"
설교를 듣던 성도 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주일학교 아이들도 잘 아는 삭개오 이야기를 니고데모란 인물과 혼동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은 웅성거리는 소리가 설교에 큰 은혜가 있어 그러는 줄 알고 더 큰 소리로 설교했습니다. "
그 때 예수님이 니고데모가 사는 동네에 오셨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보고 싶어 나아갔으나 키가 작아 뽕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설교가 이쯤 되자 성도들이 "와~"하고 웃어 버렸습니다. 그때서야 목사님이 자신이 실수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황도 되고 얼굴도 화끈 거렸습니다. 큰일입니다. 니고데모를 뽕나무 위에 올려놓았으니 내려놓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목사님은 순간 재치를 발휘하였습니다. "그때 삭개오가 나타나 이렇게 외쳤습니다.. 야 ..거긴 내 자리야 ,빨리 내려와..."
이렇듯 설교를 하다가 본의 아니게 헷갈리는 수가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무슨 말인가 잘 이해해주시고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삭개오는 여리고성에 사는 사람입니다. 삭개오는 이 성의 세리장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삭개오가 사는 이 여리고성은 종려나무가 우거져 있는 아름다운 성입니다.
또 많은 장사꾼들이 오고가던 아주 큰 상업의 도시였습니다. 세리장인 삭개오는 돈도 많이 벌고 권세도 있었습니다.
물론 세금을 걷는 규정은 있지만 실제로는 걷어 가는 사람 마음에 달려 있었습니다.
삭개오도 그렇게 해서 얼마나 많은 돈을 부정적으로 벌었는지 모릅니다. 본문 2절에 삭개오는 세리장이며 부자라고 했습니다.
이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삭개오가 걷은 세금의 상당부분을 로마에 갖다 줬습니다.
그러니 이 삭개오라는 사람은 개인적으로는 부당하게 세금을 걷어서 재산을 늘렸고 국가적으로는 세금을 걷어서 로마에 갖다 주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볼 때는 로마의 앞잡이요 백성들의 원수요 아주 고약한 사람이었습니다. 민족의 피를 뽑아 팔아먹는 자며 매국노입니다. 삭개오는 이렇게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의 미움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 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왜냐면 그때나 지금이나 돈 잘 버는 직장을 최고로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습니다.
삭개오가 여전히 떵떵거리면서 살고 있던 이 마을에 예수님이 지나가시게 되었습니다.
마을에는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문이 쫙 퍼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린 자를 치유해 주신다는 소문 때문에 수많은 병자들이 몰려 왔습니다.
귀신들려서 죽어가던 사람도 치유해 주신다는 소문 때문에 주위에 귀신들린 자들도 몰려 왔습니다.
또 죄인들도 마다하지 않고 맞아주신다는 소문을 사람들은 이미 듣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그런 예수님을 만나보려고 예수님 곁으로 모여 들었습니다.
그러자 삭개오도 역시 궁금해졌습니다. 도대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사실은 삭개오는 세리장이요
부자지만 채워지지 않는 영적 갈급함이 있었습니다.
어떤 분이시기에 병자를 고치시고, 어떤 분이시기에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는 사람들까지 가까이 하시고, 친구로 삼아 주시는가? 더군다나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마태라는 사람은 자기와 같은 세리출신이었습니다. 그러니 삭개오는 정말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궁금해졌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꼭 한 번 봐야겠다는 열정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 가려 도저히 예수님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삭개오는 키가 작았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꼭 봐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을 앞질러 달렸습니다. 그리고 뽕나무위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그 위에서라도 예수님의 얼굴을 보고 싶었습니다.
사실 세리장의 체면을 생각하면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체면보다는 주님을 만나고자 하는 마음이 더 간절했습니다.
마침 삭개오의 생각대로 예수님이 그리로 지나시게 되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던 걸음을 멈추시더니 뽕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삭개오를 보시고는 속히 내려오라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삭개오의 그런 간절한 마음까지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를 개인적으로 불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집에 가서 유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에 유한다는 것은 그곳에서 쉬기도 하고 그곳에서 식사도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아무나 하고 식사를 하지 않습니다. 식사를 같이 한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친분을 가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삭개오는 급히 내려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했습니다.
8절에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삭개오는 이제까지 돈 밖에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민족의 자존심도, 사람들의 손가락질도 개의치 않고 돈을 위해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자기 소유 절반을 떼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고, 만약 누구의 것을 불의하게 가진 일이 있으면 네 배로 갚겠다고 했습니다. 은혜를 받고 나니 주위 사람들이 가난하게 사는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불의하게 세금을 포탈한 일들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가진 것을 내 놔서 이들에게 갚아주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맥추절을 맞은 삭개오를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 이 시대, 오늘 삭개오가 있었더라면 맥추절을 어떻게 맞았을까? 2010년 맥추절을 맞은 우리교회에서 절기 예배를 드리는 삭개오가 되어 보았습니다. 맥추절에 삭개오의 진정한 감사가 무엇일까? 삭개오의 감사는 하나님이 그에게 무엇을 주셨기 때문에 하는 감사가 아닙니다. 돈을 벌게 해주시고 부자가 되게 해주셨기에 드리는 감사가 아니었습니다.
세리장이 되어 세리들을 많이 거느리게 되었기 때문에 드리는 감사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감사는 오직 예수님을 만난 것이 감사했을 것입니다. 1.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5절) 삭개오는 예수님이 먼저 자신을 부르신 것을 감사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부르시리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 ‘삭개오야, 내려오라’하신 것입니다.
삭개오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만 오히려 불안과 죄책감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자신이 안고 있는 영육의 여러 가지 문제와 갈급한 심령이 예수님을 찾았지만 자기 같은 사람이 예수님을 대면할 수도 없고 주님을 초청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먼저 불러주셨기에 자신이 선택받고 인정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삭개오에 대하여 지극한 관심을 가진 것도 알게 됩니다.
무엇보다 평생을 죄책감 속에 살던 삭개오에게 자유함을 주시고 참 구원자를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들도 그동안 하나님께로부터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많이 받았을 것이고, 적게 받은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생각지 않은 선물을 받은 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때마다 일마다 필요를 채워주신 것에 대해서도 감사할 수 있지만 더 큰 감사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자녀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요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고린도전후서를 기록한 사도 바울이 자신을 소개할 때 '하나님의 뜻을 따라 부르심을 입은 바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을 소개할 때도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얻게 되는 교훈이 있습니다. 목사님으로 교사로 혹은 가르치는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나 평신도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나 하나님께서는 똑같은 방법으로 한 사람 한 사람 택하여 불러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한 사람 한 사람을 택하여 불러 내셔서 오늘의 우리가 있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삭개오를 불러 주신 것처럼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우리의 이름을 불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2. 찾아오셔서 감사합니다.
(5절) 이름을 불러주신 것만 해도 감사하고 인정해 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겠다” 는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삭개오는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초청받지 않았을 때에는 누구의 집이든 방문하신 적이 없습니다. 삭개오의 집만 유일하게 초대받지 않으셨는데도 찾아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을 찾으신 것 자체가 삭개오를 용서하시고 받으신다는 의미입니다.
삭개오는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미움과 질시(밉게 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악랄한 방법을 동원해서까지라도 돈을 버는 죄인 의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예수님이 집에 오시므로 용서 받았다는 확신이 생긴 것입니다. 그것이 너무나도 감사하고 감격했던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찾아가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주님이 찾아가신다면 어떤 문제도 자연적으로 해결될 것입니다. 더욱이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을 찾으심으로 삭개오는 천국 백성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삭개오의 감사는 주님이 삭개오의 집을 방문하신 것 자체가 큰 축복임을 깨닫는 감사입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섭니다. "(눅 15:4-6)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지금 양떼를 이끌고 풀을 먹이는 들판에서 한 마리가 없는 것을 확인합니다. 목자는 양을 알고,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셨습니다.
목자는 하루에 한번 이상은 양의 수를 헤아려보고, 어떤 양이 없어졌는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양 한 마리가 없어진 것을 알았습니다. 풀이 있는 곳을 찾아 여기 저기 옮겨 다니기 때문에 미처 따라오지 못한 것 같습니다. 목자는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들판에 아흔 아홉 마리의 양들을 두고 목자를 따라오지 않고 길을 헤매는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섰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멀어져 돌이키지 아니하고 세상을 향해 그렇게 달려가다 쓰러져도 언제 한번이라도 세상이 달려와서 여러분을 일으켜 세워준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배반하고 달려가는 우리의 길에 날마다 찾아 오셔서 끊임없이 가시로 길을 막으시고 담을 쌓으시며 우리를 돌이키시는 주님의 사랑을 아십니까?
3.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9절) ‘오늘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 는 말씀은 죄로 인한 고민과 죄책감과 불안과 고통으로 신음하는 것들로부터 자유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이제 네 심령에 임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하셨습니다.
그것은 영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이 귀중한 진리를 깨달았기에 구원의 감사를 드린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삶 속에서 감사할 일들이 많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구원 받은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소유에 대한 감사는 저차원의 감사입니다. 존재에 대한 감사를 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고차원의 감사가 될 것입니다. 미국 34대 대통령이자 명장인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마지막 임종의 순간을 아시는 분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월터리드 미육군병원에서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에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그분을 방문했습니다. 30분의 면회 시간을 얻어서 들어갔습니다. 그 30분의 면회 시간을 마치고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나가려고하자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조금 더 있다 가라고 합니다. "아니,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라고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묻자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만나야 할지 제게는 확신이 없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이 아이젠하워의 마지막 부탁입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자기 주머니에 있던 신약성경을 꺼내 놓고 어떻게 죄 사함을 받을 수가 있으며,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가 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선행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무슨 업적이 있다고 하나님 앞에 갈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노력이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내 모든 지나간 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는 그 순간, 그분을 믿는 그 순간,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빌리그래함 목사님의 인도를 통해서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했습니다.
함께 기도가 끝났을 때에 이 아이젠하워가 마지막 말을 남깁니다. "빌리, 감사하오. 나는 이제 준비 되었소.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세상에 가장 큰 감사가 있다면 구원의 감사입니다. 이 세상에 가장 값진 감사가 있다면 구원의 감사입니다.
이 세상에 가장 잊지 못할 감사가 있다면 구원의 감사입니다. 미국에 건너간 청교도들의 감사는 농사가 잘 되었기 때문에 드린 감사가 아닙니다. 많은 것을 소유했기 때문에 드려지는 감사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니 감사합니다.
남은 자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그리스도인이 된 것을 감사합니다’하는 감사입니다. 오늘 맥추절을 맞이하면서 다시 한 번 추수와 율법과 성령과 전도의 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