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회복캠프①
나는 예배자입니까?
참고말씀: 욥1:20,21; 시42:5; 103:1; 단6:10; 행16:25
읽을말씀: 시95:6; 1:1,2
주제말씀: 시95:6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 나는 예배자입니까?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시95:6)
진지하게 스스로에게 물었으면 합니다. “나는 예배자입니까?” 곰곰이 스스로를 되돌아보았으면 합니다. “나는 진정 예배자입니까?”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짚고 넘어갔으면 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참으로 예배하는 예배자입니까?”
만일 이 물음 앞에 자신이 없으면 어찌 해야 합니까? 예배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깨닫고, 다시금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예배(禮拜, worship service)란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꿇어 경배하는 것’이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누구 앞에 꿇어 엎드리는 것입니까?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 경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시95:6)
그렇다면 한 번 묻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하나님 앞에 꿇어 엎드리고 있습니까? 물론 실제로 무릎을 꿇고 예배할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전인격(全人格)이 하나님 앞에 꿇어 엎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단순히 우리의 전인격, 곧 인격의 전체로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있습니까? 즉 ‘내 속에 있는 모든 것들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내 속에 있는 모든 것들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내게 있는 모든 것들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습니까?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시103:1)
* 다시 예배자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1:1,2)
예배자라면 응당 어디에 머물러야 합니까? 예배의 자리입니다. 항상 예배의 자리에 머물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1:2) 반면 어디에는 가까이하거나 머물러서는 안 됩니까? 죄인들의 길이나 오만한 자들의 자리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시1:1)
혹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항상 예배의 자리에 머물고 있습니까? 즉 예배하는 시간에 예배하는 곳에서 찾으면 항상 만날 수 있느냔 말입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이제라도 돌아가야 합니다. 다시 예배자의 자리로 속히 나아가야 합니다.
예배자라면 응당 무엇을 우선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입니다. 여기에는 예외가 있을 수 있습니까? 그럴 순 없습니다. 예배자는 어떤 상황이나 어떤 형편에서도 항상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이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욥1:20,21) /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42:5) /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6:10) / “한 밤 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행16:25)
혹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예배를 항상 우선시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노력도 해보지 않은 채 너무도 쉽게 타협하고 포기하고 있습니까? 이제라도 예배자의 자리로 다시 돌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