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필리어 말고 진짜 영화의 모티브로 삼았던 그림이 있죠. 바로 헤럴드 다비드의 [캄뷰세스왕의 재판]입니다.
그 감독의 말을 그대로 옮겨보면 이렇습니다.
" 캄뷰세스 왕의 재판-이 텔미썸딩을 만든 중요한 모티브다. 처음엔 가죽을 벗기는
엽기적인 모습에만 시선이 집중됐는데 차츰 여러가지 이야기가 그림에서 발전했다.
이 잔인한 광경 주위에 있는 사람들. 그들은 죽는 자의 모습에 무감각한
채 각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하나의 그림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게 만들어진 것이다. 텔미썸딩도 그런 영화가 됐으면 했다.
또 하나, 오른편에 있는 소년은 이 그림의 시점을 규정하는 인물이다. 승민이란 캐릭터는 여기서 나왔다. " -씨네 21230호
* 스크루 바를 양 옆으로 옮기면서 봐야하는 큰 그림입니다. 만약, 양 옆이 잘렸다 싶으면 '새로고침'을 해보세요.
다음은 다른 싸이트에서 퍼 온, 이 그림에 대한 해설입니다.
카탈로그에 있는 해설을 보니 이 그림은, 1498년에 브뤼쥬시청사의 시참사회실에 걸 목적으로
위탁된 것으로 " 이 그림은 무시무시한 리얼리즘에 의하여, 모든 판사와 시참사들에게,
영원히 타락, 부패하지 않아야겠다는 마음가짐을 잃지 않도록 하겠다는 뜻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그림은 신이나 교회에 바쳐진 것이 아니라, 지상의 인간에게,
그들의 시민적 자치제도에 바쳐진 것이다. 부정, 부패에 내려지는 것은 신에 의한
형벌이 아니라, 인간들 스스로가 내리는 형벌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여기 표현돼 있는 것은 구교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당시 한자동맹의
자치 상업도시로서 번영을 구가하던 브뤼쥬 시민들의 각박하고 가열한 합리정신이었던 셈이다.
이것은 또 북방 르네상스의 정신적 풍경이었다고 할 수 도 있으리라. 그러나 이 그림이 그려진 15세기 무렵부터 브뤼쥬는, 앙뜨와프에게 그 지위를 뺏긴 채
죽음의 도시라 불리는 침체 속으로 몰락해 간다. 흔히 문예 부흥, 인간성 부활이라
말하는 르네상스의 몸 전체로 피를 철철 흘리며 근대를 향해 탈피해나간 추상열일의 모습이 여기있다.
나는 이 한 장의 으스스한 그림으로 하여, 중세로부터 근대로 이어지는 서양 역사의
계승과 전환이 응축된 현장에 문득 맞닥뜨린 느낌이었다. 가열한 사실정신은
마음의 깊이에 도달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했음직하다. 과묵한 장인적 연찬과 수련만이,
보편성에 이르는 길을 열어주는지도 모른다. 반 아이크나 한스 메믈링크의 아류쯤으로
생각하고 있던 이 화가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