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텅구리네 5남매. 실한 고추, 착한 딸기, 참한 수박, 얌전한 배추, 막내둥이 알찬 무가 등장인물이다. 모두 성기남(53) 선생의 품에서 자식처럼 키워지는 복 받은 채소들이다. 선생은 자신을 "멍텅구리"라고 말한다.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기르는 채소에도 멍텅구리네 5남매로 이름붙였다.
맏형 같은 넉넉한 품을 가진 사람.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자신의 품으로 빨아들이는 놀라운 흡인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선생의 농장은 늘 사람으로 분주하다. 사람 좋은 웃음과 입심으로 즐겨 맞는 그의 넉넉함이 모든 사람을 편하게 하기 때문일까.
농사짓는 것보다 마음을 읽고 마음을 나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선생의 그 웃음 '거름' 때문인지 농장에서 키워지는 작물들도 하나같이 때깔이 곱다.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도 선생의 농장은 단무지무를 뽑고 무청으로 시래기를 말리느라 분주하다. 선생을 만나면 늘 기분이 좋다.
올해 수확기에 들이닥친 태풍 매미의 영향으로 선생의 하우스도 비닐이 찢어지거나 몇 동이 기울어졌다. 새로 하우스를 지어야함에도 선생은 "피해가 심한 아랫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역시 다른 곳 걱정을 먼저 한다.
선생의 농장은 흙살림 생활농장이다. 고추, 배추, 무, 딸기, 수박, 콩, 참깨, 들깨 등이 4000평 비가림 하우스 19동에서 철저히 돌려짓기하며 길러진다. 올해는 9000만원 정도 조수입을 올렸다. 2001년에 폭설이 내려 하우스가 주저앉아 그때 빚을 졌는데 올해만큼만 하면 몇 년 안 가 빚을 다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선생은 고등학교 다니면서부터 농사를 지었다. 농촌 부흥에 대한 꿈을 키우며 4H 활동을 하면서 점차 농민 현실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 도연합회장, 중앙자치회장을 하면서 그때까지만 해도 농촌도 열심히만 하면 뭔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크리스천아카데미 교육을 받으면서부터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자신이 가야할 길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고 농업 문제를 뚜렷하게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농촌 전체가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사서 한 고생이 지금 돌아보니 그리 후회스러운 것은 아니었다고 회고한다.
그러다가 86년에 지역에서 생협이 정식 출범되고 생협중앙회 이사, 감사를 거치는 와중에 생협이 분화되었고 지금의 생협연대가 결성되어 생산자회 회장까지 오게 되었다.
생협 직거래운동은 전체 한국 농업의 대안일 수는 없지만 다국적기업이 판치는 현실 속에서 완충 역할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생협이 위기의 격랑을 헤쳐나가는 불씨 같은,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선생의 희망은 멀리 앞을 내다보며 자신의 품을 더욱 넓힌다.
의식과 준비 없이는 몇 년 내 환경 농업판도 된서리를 맞게 될 것이라고 진단한다. 벌써 거품이 많다는 것이다. 돈이 좀 된다고 하니 의식 없이 너도나도 환경 농업을 하겠다고 달려들어서는 언젠가는 거품이 걷힐 날이 올 것이라는 진단이다.
선생에게 농사짓는 의미는 어떻게 다가올까.
"사람은 사는 한 먹어야 합니다. 대놓고 외국 식량을 먹을 수는 없습니다. 자존심 같은 농업과 먹을거리를 지키는 노력은 민족의 주권을 지키는 일입니다. 그런 생각으로 농업을 보호하고 보존해야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살릴 수 있습니다."
농업은 결코 희망 없는 산업이 아니라고 목청을 높이는 선생은 급식문제 등 시스템을 바꾸어나가면 우리 농업도 살아나갈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단언한다. 농업이 붕괴되면 한국 사회 전체의 위기가 올 것은 자명하니 유럽처럼 공익적 기능을 가진 농민에 대해 배려하고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는 직불제를 다양하게 연구하고 시행하라고 대안을 제시한다.
후배 농민들에게도 한마디 잊지 않는다. 친환경농업도 좋지만 환경친화적인 생각이 먼저라고 말씀하신다. 농사는 돈은 안되지만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 수는 있으므로 가치있고 뜻있게 살려는 사람들이라면 보람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다. 역시 농사기술보다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말씀.
지금 선생의 마을은 녹색농촌 체험마을을 만들기 위한 준비 작업이 한창이다. 선생은 마을에 있는 하당초등학교를 도시 아이들이 내려와 시골을 체험해 보는 장소로 이용하길 원한다. 우선 가을운동회 때는 도시 아이들과 주부들도 함께 참여하게 해 지역 축제가 되게 할 생각이다. 도시 아이들이 시골학교에서 1년 정도를 지내거나 서로 학생들을 교환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단순한 관광, 휴양은 대안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생산자는 생활을, 소비자는 생명을 보장하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연 그대로의 농업이 볼거리가 되는 공간, 도시 소비자들이 정신적인 안정을 찾고 삶의 활력을 찾는 도시인의 제2의 친정, 제2의 외갓집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결심이다.
지금 선생은 수천, 수만의 외가 식구들이 생긴다는 꿈에 오늘도 농장일을 마치고 돌아와 컴퓨터 앞에서 계획을 설계하느라 밤잠을 잊는다. 부인 이민자(51) 여사는 천상 상농군이다. 남편이 자주 출타를 하니 농사일의 대부분은 부인의 몫이었던 것. 교장으로 정년퇴임한 시부모까지 함께 모신다.
그러나 지금까지 성 선생 스스로 부인의 속옷을 살 일이 없었을 정도로 생협 조합원들의 정나눔도 속이 깊다. 푸성귀를 나누면서도 담겨있는 정을 함께 나누니 힘들어도 함께 가야한다고 두 분 모두 환하게 웃는다. 선생은 이제 부인의 고생을 덜어주려고 작부 체계를 다시 연구중이다. 하우스 가장자리에 콩을 심던 것을 다년생 작물이나 꽃을 심어 밭 주위를 공원화하려고 한다.
선생은 슬하에 2남1녀를 두었는데 장남은 생협에서 근무한다. 생각이 있으면 언젠가는 지역에 와서 선생의 일을 이어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안정성 있는 틀을 만들어놓겠다고 선생은 말한다. 자식이 아니라도 다른 누구라고 다양하게 함께 농사지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농장을 제공하겠다고.
성기남 선생의 고추 유기재배
농관원에서 유기재배 인증을 받은 선생의 포장은 농장을 3구역으로 나누어 3년 주기로 돌려짓기(고추-콩- 딸기/수박/배추/무)한다. 또 고추+감자, 딸기+무, 수박+참깨 등으로 사이짓기도 한다. 3년에 한번은 꼭 콩을 심어 땅심을 높인다.
토양관리는 매년 농업기술센터의 토양검정을 바탕으로 정식 1개월 전에 석회나 패화석 분말 100~200kg을 시용한 후 갈아준다. 정식 15일 전에 볏짚과 부산물(콩짚, 깻짚)을 1~2톤, 퇴비 3톤, 흙나라균배양체 1톤을 뿌린 후 로터리 작업을 한다.
육묘는 전열 온상에 1월 10일~20일 경 200구 트레이에 틔운 종자를 맥반석 분말에 묻혀서 파종한다. 파종 후 20~25일 본엽이 1매일 때 16공 포트에 가식한다. 80~90일 정도 육묘하여 날씨를 보아가며 4월 10~20일 사이에 정식한다. 활착을 돕기 위하여 맥반석, 빛모음, 당밀과 함께 물을 충분히 주면서 심는다.
고추의 쓰러짐을 방지하기 위하여 두둑하게 폭 1.2m 두 줄로 지주를 세우고(2.5~3m간격) 오이망처럼 생긴 고추망을 씌운다(생육 상태에 따라서 3~4단).
5~7일 간격으로 관수를 하며 관수와 함께 흙살림 액비를 공급한다. 액비는 흙나라+혈분+골분+당밀+광합성균 등을 1주일 이상 발효시킨 것을 쓴다. 관수와 추비를 동시에 하므로 노력도 절감되고 건실한 생육을 나타내고 있다.
비가림 하우스에서는 탄저병은 없으나 역병과 흰가루병 등이 발생한다. 역병은 흙살림균배양체(역병 길항균 함유)를 사용하면 거의 발생하지 않으며 관수할 때 잎살림 1을 200배로 2~3회 동시관수해 준다. 흰가루병의 예방을 위하여 건조하지 않도록 관수에 유의하고 잎살림1+목초액+빛모음 등을 200~1,000배액으로 뿌려준다.
비가림 재배시 가장 큰 문제가 진딧물과 담배나방이다. 진딧물은 잎살림3+님오일 100배액이 상당한 효과가 있다.
완숙된 빨간 고추는 따서 1~2일 정도 후숙시킨다. 고추 세척기로 세척하여 고추 건조기에 8~12시간 정도 숨을 죽인다. 건조용 비닐하우스 시렁에서 4~5일간 말린 다음 자갈 마당에서 2~3일간 말린다. 잘 마른 고추를 선별하여 6kg(10근)씩 종이 박스에 포장한다(비닐 포장은 하지 않음).
<흙살림신문>에 함께 실렸습니다.
흙을 직접 먹기도 하는 유기농업의 맏형같은 분입니다. 우리나라 생협운동사에 제일 먼저 기록될 분이기도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