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제목과 주제의 통일감
김홍은
시작하며
어떻게 수필을 써야 독자들로부터 관심을 받는 글이 될 수 있을까. 작가라면 누구나 글을 쓰면서 고민하는 점이다. 어떤 생각을 가져야 균형이 이뤄진 짜임새 있는 좋은 수필이 될까. 수필집은 왜 독자들로부터 손에서 점점 멀어져 읽히지 않는 책으로 밀려나고 있을까.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수필가라면 한 번쯤은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수필집을 펴내도 작가들끼리만 주고받고 읽는 책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문학지의 편집위원은 작가를 선정하여 원고 청탁을 하게 된다. 작가를 믿고 충분히 좋은 작품을 써 주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원고를 받는다. 책을 펴내게 되면 주제도 똑바로 세우지 못한 신변잡기의 글을 읽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러다 보니 문학지를 사서 글을 읽는 독자도 줄고, 책을 서점에 펴내도 팔리지도 않는다.
양적으로 수필가를 양산한 잡지사도 문제이고, 추천한 심사위원도 공동 책임이 있다. 수필가 지망생은 몇 작품 쓰고 작가로 등단하면 수필 공부는 이것으로 끝인 줄 안다. 작가는 이제부터 책임이 따라짐을 모른다. 모든 예술은 10년이 기초라고 한다. 수필가다운 좋은 글을 발표하는 수준에 이르도록 공부를 꾸준히 해야 할 것이다.
수필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점은 수필 제목과 주제 의식이다. 이에 따르는 수필다운 문장으로 엮어야 우선 자연스럽게 글이 읽혀 지게 마련이다. 글은 주제를 함축하여 놓은 내용이 제목이다. 제목과 주제도 맞지 않는 글에다가 짜임새도 없이 마구잡이의 신변잡기로 늘어놓아 읽다 보면 어리둥절해진다.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쓰는 가장 쉬운 글로 알지만, 붓 가는 대로 쓰려면 지각知覺의 노련함이 있어야 할 수 있다. 수필은 문학 장르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분야이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겠지만, 수필의 형식을 보면 서간수필, 자전적수필, 생활수필, 기행수필, 생태수필, 테마수필, 수화수필, 퓨전수필 등 다양하여 내용에 따라 느껴져 오는 감상도 다르다. 제아무리 형식이 많다고 해도 나름대로 글맛이 다르며 작품마다 주는 의미가 담겨있다. 구성이 뒤틀려 주제 의식이 어긋나면 어색하게 느껴지고, 유식한 이야기나 연결했다고 좋은 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수필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체험에다 지식과 사상의 철학이 함유되어있고 담백하면서도 순수한 서정이 담겨져 있어야 한다. 아무리 최첨단의 산업화를 달리는 시대라 해서 수필문학을 단순한 퓨전수필이라 잘못 이해하고 문장이나 ,작품구성을 뒤범벅되게 해서는 안 된다. 수필은 어디까지나 주제의 문장융합으로 함축적 통일감이 이뤄져야 한다.
문학미디어 2024년 봄호에는 신작수필 11편이 게재되어 있다.
송보영의<가을 소리>는 김홍도필추성부도金弘道筆秋聲賦圖의 시의도詩意圖 그림을 감상하며, 화자는 ‘추성의 때를 지나 삭풍의 중심에 서 있다.’ 면서 자신이 살어온 발자취를 돌아보며 들려주는 수필로 화자의 朔風文이라고나 할까?
서두는 이미 미술사에서 잘 알려 있는 김홍도추성부도 그림을 보고 감성을 표현하였으며, 구양수의 추성부秋聲賦글을 인용하여 놓았다.
작품의 주제는 여름 막바지에 어느 수집가의 초대전에서 마주한 산수화 한 점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내게로 와 발길을 붙잡는다며 그 감성을 이렇게 들려준다.
‘화폭을 직시한다. 시인과 화공의 심회心懷를 되새긴다. 나의 시선은 휘어지고 구부러졌을지언정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고 버텨내는 나목들에 닿는다. 성근 수풀들이, 구불구불한 고목들이 토해내는 곡진한 소리를 듣는다. 왠지 그 부르짖음이 고통의 소리를 넘어 처연하지만 아름다운 소리로 환치되어 들림은 어떤 연유일까.’
화중문 문중화畵中文 文中畵라고 그림속에는 글이 스며있고, 글 속에는 그림이 담겨져 있다고 하지 않던가. 화자는 산수화 한점을 바라보고 화폭에 담겨져 있는 자연을 감상하며 시인과 화공의 심회를 나름대로 토로하였다. 그림에 담겨있는 내용물 중에서도 ‘구불구불한 고목들이 토해내는 곡진소리를 듣는다’ 함은, 만고풍상을 겪으며 자라났을 고목들로부터 느껴오는 남다른 고통의 감성을 교감하고 있다. 화폭에 담아낸 하나하나의 모습들을 시각적인 감상을 넘어 감각에 머물러 심안心眼을 이룬 듯 독자의 마음까지도 끌어들이고 있다.
화자는 구양수의 추성부를 담아낸 산수도를 감상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살아온 인생 회상을 화폭에 투영시켜 삭풍도를 그리듯 쓸쓸히 이렇게 들려주고 있다.
‘나는 지금 추성의 때를 지나 삭풍의 중심에 서 있다. 생의 터널을 지나는 동안 수많은 계절이 내 안을 훑고 지나갔다. 내게 허락된 사계 중 심고 가꾸고 열매를 맺는 뜨거웠던 날들은 이미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더러는 알곡을 거둘 때도 있었고 쭉정이가 많을 때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름, 삶의 기본 원칙을 벗어나지 않으려 애써온 날들이었지만, 삶의 뒷면을 보면 소낙비와 우레를 견뎌내느라 상처로 얼룩진 곳이 너무 많다. 지워버리고 싶어 몸살을 앓았던 벌레 먹은 흔적들로 구멍이 숭숭 나 있는 곳도 있다. 지고 갈 수 없는 짐을 지고 가느라 휜 등은 여전히 아프다. 이런 나를 어찌할 것인가.’
화자의 삭풍문朔風文을 화가가 그린다면 어떻게 구상을 두고 그릴까? 화공이 되어 화선지를 펴놓으며 이렇게 화도를 잡아두지 않을까?.
1. 추성의 때를 지나 삭풍의 중심에 서 있다.
2. 인생의 터널을 지나오는 동안 수많은 계절이 내 안을 훑고 지나갔다.
3. 사계중 심고 가꾸고 열매를 맺는 뜨거웠던 날 들은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4. 더러는 알곡을 거둘 때도 있고, 쭉정이가 많을 때도 있었다.
5. 삶의 기본 원칙을 지키려 애쓴 날들의 삶의 뒷면은 소낙비와 우뢰를 견뎌낸 얼룩진 상처로 몸살을 알았던 흔적들로 구멍이 숭숭나 있는 곳도 있다.
6. 지고 갈 수 없는 짐을 지느라 아픈 휜 등의 나를 어찌할 것인가.
인생사를 돌이켜보면 저마다 살아온 삶들이 가련하다. 아니 누구나가 다 그렇지도 않다. 사주팔자가 좋아 행복에 겨워 살아가는 사람, 부모 잘 맞나 고생없이 살아가는 사람, 목장패 인장덕木長敗 人長德이라고 인연으로 사람을 잘 만나 고생없이 사는 사람들….
그래도 인생이라면 농심農心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야 말로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알면서 천복天福으로 타고 나서 순탄하게 평심을 유지하며 사는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톨스토이의 ‘인간이란 무엇인가’에서 보면, 어떤 나그네가 길을 가다가 숲 속에서 나온 사자을 만났다. 다급해지자 나그네는 샘 벽에 자라고 있는 칡덩굴을 잡고 샘 속으로 들어가 위험을 피했다. 샘 중간에 매달려서 아래를 보니 바닥에는 독사들이 우굴거리고 있고, 위에서는 사자가 내려다보며 기다리고 있다.나그네는 칡덩굴에 매달려 겨우 목숨을 지키고 있는 처지다. 순간 샘 벽에서 흰쥐와 검은 쥐가 니그네가 의지하고 있는 칡덩굴을 갉아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그네는 이런 절박한 위기를 맞고 있는 처지에 하늘을 올려다보니 높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벌집에서 샘 안으로 꿀이 뚝뚝 떨어지고 있어 나그네는 이 꿀을 받아먹으며 죽음이 곧 닥쳐오는 상황을 잊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네 인생이라 하지 않던가.
화자는 ‘지고 갈 수 없는 짐을 지느라 아픈 휜 등의 나를 어찌할 것인가.’의 고민에는 그 누구도 무엇으로 답을 할 수가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고뇌하며 살아온 삶은 아름답지 않는가.
솔로몬도 전도서에서 그랬다. 인생을 회고하면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하였다.
인간은 젊어서는 잘난 척 으쓱대고 남을 얕잡아 보지만, 늙어서는 그제야 자신의 처신을 원망하며 사는 게 인생인 듯싶다. 인생이란 행복만 허덕대며 추구하다 눈을 감을 때 그제서 후회한들 소용없고 또한 후회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작가는 멋대로 쓰고 싶은 문장을 다 늘어놓아도 상관이 없는 게 아니다. 주제에 맞는 이야기로 호응에 적정해야 한다.
서두는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문장기법도 귀납법을 이용하여 기교를 부리려 함보다는 차라리 어울리게 순수함에 짜인 문장으로 읽혀감이 자연스럽게 쓰는 게 좋을 듯싶다. 제목, 전개, 절정, 결말의 어울림으로 볼 때 끝맺음의 문단은 제목으로 보아 <가을 소리> 이긴 하지만 주제와는 애매함이다.
김 은 혜<코코넛>은 가족과 여행을 가서 코코넛을 먹은 이야기로부터 코코넛에 대한 애호가로 그 맛을 느끼게 하고 있다. 글을 함축하여 연결로 읽어 보면 이런 내용이다.
‘둘째 아들 가족과 보라카이에 갔다. 석양을 보기 위해 일찌감치 바닷가 카페에 자리하고 앉아서. 음료 주문에 화자는 “음료 중의 제일 좋은 음료가 코코넛이야.” 라고 한다.
필리핀을 여러 번 방문했다. 갈 적마다 열대 과일의 별난 맛에 반한다. 그중에 맹물 같으면서도 청순하고 순수한 코코넛의 맛에 매료된다. 맛을 굳이 설명하라면, 맹물에 설탕 조금 첨부했다고 할까. 달달하지도 새콤하지도 않은 좀 밍밍한 맛이지만 나는 그 맛이 좋다.
코코넛 과즙 맛을 담백하다고 하는 내게 나의 절친 이 작가는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그저 무덤덤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나는 왠지 맛이 부드럽고 순한 것이 참 담백해서 좋다. 열대지방 특유의 습하고 무더운 날씨에 시원한 코코넛에 빨대를 꽂아 쭉 들이켜고 나면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처럼 시원하다.
여인의 몸도 여성으로 형성되는 순간부터 아기씨를 받을 방이 준비되어 있다.아기씨를 받으면 그 방은 아기가 자라는 만큼 아기집이 커진다. 아기집이 늘어나는 동안에 여인의 몸은 여러 증상을 체험한다. 코코넛도 매일 한 방울 한 방울 음료를 받아 품는 동안 방이 조금씩 커나가는 과정에서 몸피도 키워질 게다. 액즙을 받아 저장하는 동안에도 여인처럼 이런저런 현상을 겪으면서도 물의 부피만큼 기쁨도 커가지 않았을까 싶다.
코코넛은 참 쓸모가 많다.
언젠가 동남아 여행 중 코코넛 과육으로 만든 떡을 먹은 적이 있다. 인공적인 맛을 첨가하지 않은 부드럽고 달달한 것이 얼마나 맛나던지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바닷가 해변 야자수 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코코넛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코코넛에 대한 관심이 끌리게 하고 있다. 해외 관광을 가면 코코넛 음료를 마셔 보도록 은근한 표현들이 자연스럽게 읽혀간다. 무엇보다도 코코넛 사물을 인간생명의 탄생에다 비유함이 인상적이다.
최 승 옥<비오는 날의 풍경>은, 수필교실에서 알게 된 20년 지기 친구와 비오는 날 나들이를 한 이야기다.
오늘은 빗물 때문인지 더 짙은 색을 띠고 있다. 간간이 내리는 비와 자박자박 발맞춤을 하며 걷는 박자가 음률이 된다. 빗물이 떨어져도 저수지는 조용하다.물오리 한 쌍이 사분사분 한가롭게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한 마리가 먹이를 찾아 방향을 돌리면 다른 한 마리도 뒤따른다. 아마 저들은 사랑하는 사이임에 틀림이 없을 것 같다며 비오는 날의 호수의 전경을 느끼게 하고 있다.
친구인 K와 알고 지낸 세월이 벌써 이십여 년이 조금 넘는다. 그동안에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다. 수필 교실 강의실에서 처음 만났는데 K와 나는 비오는 날이면 이렇게 엉뚱한 산책을 즐긴다. 같이 산책을 하고 소소한 정을 나눌 수 있는, 마음이 통하는 이가 있다는 건 큰 축복이라며 우정의 심성을 내비쳤다.
수필문장은 나름대로의 간결하고 함축성 있을 적에 정감에 이끌리며 문장의 미적 감동을 가져온다. k와의 이외 심정 내통의 지정의를 담아내 주었더라면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문장에서 시끌벅적한 빨간 관광버스 이야기는 ‘비오는 날의 풍경’으로 느껴져 오지만 군더더기의 문장으로 사족같다.
이 혜 숙<베수비오 화산>은 ‘폼페이 최후의 날’의 영화도 감상하고 폼베이의 화산 공원을 다녀온 기행수필이다. 자연재해 앞에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한없이 초라한 무력뿐이다라며 화자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땅속에 묻혀 있어 도시가 있었다는 사실조차도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도시. 화산 폭발 후15세기까지 폼페이의 존재는 사람들에게서 잊혔다. 그러다가1592년 이탈리아에서 수로 건설을 목적으로 땅을 파다가 폼페이의 유적이 발견되어 당시의 모습이 세상에 나왔다.
폼페이에는 광장, 공중목욕탕, 신전, 원형극장, 의사당, 매음굴을 볼 수 있었고, 발굴된 도로는 지금도 그 시절 모습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줬다. 그 시대에 수도시설이 있었고, 술집이 있었으며 귀족들이 마차로 다녀 팬 길도 그대로 있다. 얼마나 견고했는지를 하나도 손상이 되지 않은 모습이다.
화산이 폭발하기 전에 지진이 있었다. 그로 인해 사람의 화석(?)이 고스란히 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사람의 모습이 흔적도 없고 구멍을 보여 석고를 부어 꺼냈더니 사람의 모습이었단다. 현재3개의 석고상이 유리관 속에 넣어져 관광객을 맞는다. 그 모습에 온몸이 전율하는 것 같았다.
대단한 건 수도시설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수도관이 납으로 되어있어 납 중독된 사람도 많았다. 그렇더라도 그 옛날 수도시설을 만들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는 회상을 들려주었다.
화자는 BC 79년 8월 24일 베수비아 화산의 분화로 인해 18시간 만에 완전히 잿더미가 되어 오랫동안 역사에서 잊혀진 도시 폼페이를 시각적, 감각적, 감성으로 전해주었다.
맺으며
독자는 왜 수필을 읽는가?
수필작품을 읽고 나면 울림이 있는 글은 저절로 즐거움이 가슴으로 스며들어 오랫동안 기분이 상쾌하다. 깊고 의미 있는 글은 읽으면 여운이 오래간다. 수필은 체험을 바탕으로 서정과 감동의 지적 사유思惟를 들려주는 특성이 있어 독자는 작품성에 따라 공감을 하게 되고 흥미를 갖게 된다.
수필은 체험을 바탕에 둔다고 해서 재미도 없는 자기만의 넋두리나 늘어놓는다면 그 글을 누가 읽겠는가. 서정적 감미로운 리듬의 표현으로 감칠맛 나는 문장이라면 누구나 덩달아 흥에 겨우리라. 지적인 작품이 안되면 차라리 웃음거리라도 들려줬으면 좋겠다.
좋은 글을 쓰고 싶으면 우선 수필작법을 공부하고 그 기법을 알아야 한다.
가장 쉬운 작법은 과일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고 가꾸면 바로 안다.
정성을 들이면 3년이 지나 원줄기에서 가지를 뻗고 꽃이 피어 가을이면 열매를 맺게 된다. 이런 방법이 기법이고 이 나무가 바로 좋은 수필이다.
이외 작품 중에서도 이창옥<놓아버린 기억>, 김미숙<첫 월급의 기억> 두 작품은 문장을 함축하고, 보다 주제를 세워놓는다면 독자의 주관성이지만 현재의 작품보다는 훨씬 좋은 글이 될 것으로 아쉬운 마음이다.
첫댓글 수필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점은 수필 제목과 주제 의식이다. 이에 따르는 수필다운 문장으로 엮어야 우선 자연스럽게 글이 읽혀 지게 마련이다. 글은 주제를 함축하여 놓은 내용이 제목이다.
환갑 넘어 할 예정인 수필을 7여년 땡겨 맛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기쁘고요 교수님의 날카로운 평도 한 학기 보내며 정감있게 들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