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 천년 바위 효자>/구연식 사람들은 하루살이 같은 수명에 수수깡처럼 텅 빈 영혼을 묶어 놓기 위해 때로는 절대적인 신앙(信仰)에 의존하기도 한다. 종교를 불문하고 동서고금에서 성물(聖物)의 재료를 상징물로 정할 때는 만고풍상(萬古風霜)에도 불변하는 석물(石物)로 정하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돌은 우주의 생성에서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진화의 얼굴이기 때문이어서 그런가 보다.
어머니는 생전에 앉아서 기도하던 화강암 좌석대(座石臺)가 있었다. 그 좌석대는 둥글고 납작하여 부처님의 연꽃 좌대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굴삭기를 이용하여 부모님 산소 앞에 옮겨 놓았다. 자손들이 성묘할 때는 불문율이 있다. 좌석대에서 무릎을 꿇고 옷깃을 여미며 온몸을 조아리고 절을 한다.
이 세상에 꼭대기의 성인(聖人)이든 질곡(桎梏)의 불량자이든 어머니의 태반(胎盤)에서 먹고 자고 자라면서 태어났다. 그래서 어머니는 마지막 임종할 때 평소에 가장 가슴 아픈 자식을 찾기도 하며, 끝내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면서 모든 표현을 대신하기도 한다. 그러나 혹자의 아들은 부모를 잊어버리고 살아가기도 한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신앙의 초점이 맞지 않으면 종교를 여러 번 선택과 바뀜을 번갈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부모가 싫어도 자기 부모를 버리고 남의 부모를 선택할 수는 없다.
나의 인생 열차는 완행열차로 알고 살아왔는데, 어느 날 시골집 마루 기둥에 걸려있는 거울을 우연히 보니 어느 사이 급행열차로 달려와서 황혼의 역 플랫폼에 진입하고 있었다. 얼굴 곳곳에서 부모님의 몰골이 판박이처럼 뚜렷하다. 마당에 비친 나의 그림자에서 꾸부정한 자세로 휘우뚱 휘우뚱 걷는 모습도, 어눌한 말투도 부모님을 재현한 대역 배우와 똑같다. 그래서인지 자식들은 늘그막에서야 자기 모습에서 부모를 생각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오늘은 설날이다. 조금 일찍이 차례를 지낸 후 모든 가족이 자동차로 40여 분 거리에 있는 고향집 뒷산 세천비(世阡碑)가 안내하는 부모님 산소에 성묘를 갔다. 간밤에 기온이 급강하하여 지면의 수증기가 얼어서 서릿발이 황토를 머리에 이고 바늘처럼 쫑긋쫑긋하여, 밟고 싶은 호기심과 날카로움 때문에 망설여지기도 했다. 손자는 처음 보는 서릿발에 신기함과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길이 아닌 곳까지 밟아보거나 발자국으로 국화꽃 무늬를 그려 보는 등 신이 났다.
그렇게 부모님 산소에 도착했다. 부모님은 밤새도록 기다렸는지 벌떡 일어나셔서 양팔을 벌려 자손들을 껴안으면서 맞이한다. 간단히 준비해 간 주과포혜(酒果脯醯)를 상석(床石)에 올려놓고 잔을 올리면서 성묘를 드리니 무언의 표정으로 흐뭇해하신다.
산소 앞 어머니가 앉으셨던 좌석대(座石臺)는 서리 한 점 없이 깨끗하여 어머니가 방금까지 앉아 계신 것처럼 온기가 있는 느낌이다. 부모는 천년바위처럼 변함없이 자식을 위해 사셨고 돌아가신 후에도 자손 위해 기도하시는 천년바위가 되셨는데, 실속만 챙기는 아들은 푸석푸석한 잡석(雜石)도 못되고 먼지 같은 삶을 사는 것 같아 맑은 하늘이 두렵다.
전설의 고향 시절에는 부모상(喪)을 당하면 불효의 속죄로 3년간 부모 산소 옆에 작은 움막을 짓고 시묘(侍墓)살이를 했으며, 바깥 외출 시에는 하늘이 부끄러워 삿갓을 쓰고 다녔다고 한다. 참으로 심신을 흐트러짐 없이 불효를 속죄했던 길이였다고 생각된다. 나도 불효 스러움은 그들과 다를 바 없을 텐데 참으로 뻔뻔스러운 자신이 밉다.
그래서 흉내 내는 속죄를 하고 있다. 아버지 상(喪)이후에는 매월 제실(祭室)에서 음력 삭망(朔望) 일에 1년 동안 상식(喪食)을 올려드리며 참회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그 뒤로는 산소에서 초하루와 보름에 삭망 성묘로 속죄하면서 위안을 얻고 있다. 부모님 산소에는 둘레석(石) 망부석(望夫石) 석등(石燈) 비석(碑石) 상석(床石) 그리고 어머니의 숨결이 제일 많이 적셔진 좌석대(座石臺)와 입구의 세천비(世阡碑) 천년바위들이 사시사철 불철주야로 묘소를 지키고 있다.
석등의 등잔불 놓는 자리에는 비바람을 막아주며 옴폭하고 아담하여 영락없는 작은 둥우리이다. 오래전부터 산새들이 살고 있었는지, 둥우리의 흔적인 검부러기가 있고 그 위에 촛불의 눈물처럼 새똥이 소복이 쌓여있다. 아마도 불효자를 대신하여 밤마다 산새들이 지켜주어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터인가 삭망 성묘 후에는 마음이 가벼워졌다. 밤에는 석등이 낮에는 망부석이 부모님을 에워싸고 불 밝혀 보살핀다고 핑계 위로인지도 모른다. 참으로 천년바위보다 못한 불효자의 궤변이다. (2024.2.10. 음 정월 초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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