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대승폭포 |
강원 인제군 북면 한계리 산 1-67 |
대승폭포가 위치한 남설악지역 대부분은 중생대 백악기에 관입한 화강암류가 분포되어 특히 주변에는 인제와 원통, 양양을 잇는 단층선을 따라 발달한 폭포중의 하나로 성인별로는 단층 폭포, 유형별로는 수직낙하형 폭포에 속하며, 형성된 급사면과 단애에 크고 작은 폭포가 분포하고 암석들이 풍화작용과 침식작용을 받아 형성되어 수려한 경관을 보여준다. 해발 740m 폭포, 높이 약 88m의 웅장한 폭포로서 금강산의 구룡폭포, 개성의 박연폭포와 함께 한국 3대 폭포의 하나이다. 곡운(谷雲) 김수증(金壽增: 1624-1701)의 곡유연기(遊曲淵記), 김창협(金昌協: 1651-1708)의 동정기(東征記), 조선말기의 여류시인 금원 김씨(錦園金氏: 1817 ~ 미상)의 호동서락기(湖東西洛記), 조선후기의 문신인 해좌 정범조(海左丁範祖) 등이 설악산을 유람하며 대승폭포에 대한 경치를 극찬하고 있다. 대승폭포에 대한 한시(漢詩)로 이명한(李明漢: 1595~1645)의 寒溪瀑布 贈玉上人(한계폭포 증옥상인) 등 11명의 11수가 전해져 역사 경관적 가치를 높여주고 있다. |
구천 하늘 띁에 걸린 은하수, 대승폭포 사람은 누구나 굴곡 있는 삶을 산다. 높은 곳을 향해 열심히 올라 꼭대기에 서고 나면 다시 저 아래 낮은 곳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내려온 후에 또다시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산을 오른다. 인생이란 한 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산 정상을 목표로 온 힘을 다 바친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쩔 수 없이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오르는 길이 가파를수록 하산하는 길은 더욱 힘들고 허무할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인생을 관조하는 눈이 생기면 내려가는 길이 그리 허전하지만은 않다. 가수 양희은이 부른 <한계령>의 노랫말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하는 산의 소리가 그토록 처연하게 들리지는 않으리라. |
한계령은 인제에서 양양을 잇는 국도가 설악산 남쪽의 산등성이를 넘는 곳에 자리한 고갯길이다. 높이가 1,004m로 영동과 영서 지방을 연결하는 백두대간의 차도 중에서는 가장 높은 고갯길이다. 인제에서 양양 방향으로 한계령을 넘어가는 길은 한계리 마을을 지나 옥녀탕계곡으로 접어들어야 비로소 설악산의 정치를 느낄 수 있다. 옥녀탕 계곡을 지나 1.5km 정도 올라가면 장수대에 다다른다. 장수대는 옛날 한계사가 있던 자리에 붙은 지명이다. 1959년 인제군에 주둔한 국군 제3군단 군단장이 한국 전쟁 중 설악산 전투에서 전사한 병사들의 명복을 빌고 넋을 달래기 위해 지은 산장을 ‘장수대산장’으로 명명한다. 그 후 세월이 흐르면서 산장의 이름이던 장수대는 이 지역을 가리키는 지명이 되었다. 장수대 지역은 내설악에서도 기암절벽이 매우 아름답게 펼쳐지는 곳이다. 장수대가 바로 대승폭포로 오르는 산길이 분지되는 곳이다. 장수대에서 대승폭포까지는 거리상으로는 1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경사가 가파른 지형을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1시간쯤 걸린다. 지금은 목재로 만든 계단을 설치해 놓아 오르기가 훨씬 쉬워졌다. 대승폭포는 수직의 절벽으로 90m에 달하는 긴 물줄기가 떨어지는 비폭으로 금강산의 구룡폭포, 개성의 박연폭포와 함께 한국 3대 폭포 중 하나로 꼽힌다. 대승 폭포는 거대한 수직 절벽으로 떨어지는 폭포수의 물보라와 운무의 어린 무지개가 영롱한 아름다움을 자아내 신비스러운 비경을 연출한다. 대승폭포의 경관이 가장 절정에 이르는 시기는 7월 하순이다. 장마가 끝난 후 폭포의 물줄기는 웅장한 모습으로 변한다. 풍부해진 수량은 시원한 순백의 거대한 물기둥을 이루어 폭포 아래로 내리꽂히며 굉음을 토해낸다. 대승 폭포에는 아래쪽에 중간 폭포가 있는데, 이는 대승 폭포의 경관을 한층 더 아름답게 만든다. |
설악산에는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는 곳이 수없이 많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빼어난 8개소를 선정해 ‘설악팔경’으로 부른다. 설악팔경 중에는 대승폭포의 아름다운 경치를 비유할 수 있는 것은 용비승천(용비승천)과 칠색유홍(칠색유홍)이다. 용비승천이란 폭포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용이 올라가는 듯한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대승폭포 경관에 가장 잘 어울리는 묘사라 할 수 있다. 또 칠색유홍은 폭포에서 생기는 물방울이 햇빛에 반사되어 영롱한 일곱 빛깔 무지개가 펼쳐진 모습으로 무지개가 피어난 대승폭포의 풍광을 뜻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설악의 비경을 대표하는 대승폭포에는 애절한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한계리에는 대승이라는 총각이 살고 있었고 부모를 일찍 여기고 홀로 살아가던 그는 설악산에서 버섯을 따다 팔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폭포 절벽에 밧줄을 매고 버섯을 따던 총각은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절벽 위에서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대승아, 대승아~” 하는 소리에 놀라 정신없이 올라가 보니 어머니는 간데없고 커다란 지네가 동아줄을 갉아 먹고 있었다. 어머니의 목소리 덕분에 총각은 가까스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후 사람들은 죽어서도 아들의 생명을 구해준 어머니의 외침이 폭포에서 들리는 것 같다고 하여 대승폭포라 부르기 시작했다는 전설이다. 대승폭포는 신라시대 말렵의 경순왕이 피서를 다녀간 곳으로도 전해진다. 장수대에서 출발하는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대승폭포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에 다다른다. 대승폭포 맞은편 언덕에 자리한 전망대에는 넓은 반석이 놓여 있다. 이곳에는 조선 선조 때 양사언이 쓴 ‘구천은하(九天銀河)’라는 글씨가 세로로 새겨 있다. 대승 폭포의 풍광에 매료되어 크게 감탄한 양사언은 구천 하늘 끝에 걸린 은하수로 대승폭포의 선경을 비유하고 있다. 대승폭포의 아름다움에 한껏 취한 문사의 감동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문구라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양사언은 금강산 만폭동 , 묘향산 상원암에도 글씨를 남긴 서예가다. 대승 폭포에 오르면 건너편으로 멀리 높은 봉우리들이 보인다. 한국의 마터호른이라는 별명을 가진 가리봉, 주걱봉, 삼형제봉이 만들어내는 풍광이 눈앞에 전개된다. 산 아래로 길게 형성된 장수대계곡은 한계령을 분수령으로 하여 북한강 수계로 흘러가는 물줄기가 발원하는 곳이다. 이 계곡은 소승폭포에서 흘러내린 물이 대승폭포에서 쏟아져 내린 물과 장수대에서 하나가 된 후 옥녀탕 계곡을 지나 인제의 소양강으로 합류한다. |
폭포는 지형의 침식윤회(浸蝕輪廻)에 따라 유년기의 계곡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데, 대승폭포 같은 낙차가 큰 폭포는 장년기 계곡에서 절정에 이르렀을 때 나타난다. 이러한 폭포는 오랜 세월 침식이 진행됨에 따라 점차 쇠퇴하다가 노년기의 지형이 되면 더욱 퇴화해 높이가 점점 낮아져 결국 사멸한다. 폭포는 지반의 형태와 지질에 따라 모양이 바뀌기도 한다. 단애를 따라 하상(河床)에서 떨어지는 폭포, 급류 또는 급단(急湍)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느린 경사 위에서 미끄러지듯 떨어지는 폭포, 1단부터 몇 단으로 나뉜 폭포까지 여러 종류의 폭포가 있다. 폭포는 그 아름다움과 신비스러운 모습 덕분에 관광 자원으로 활용되는 경관 요소다. 폭포가 지닌 지질학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폭포는 경승적 가치가 더 많은 자원이다. 지질학적 관점에서 학술적 가치에 무게를 두어 천연기념물로 지정할 수도 있고, 그 아름다움과 신비스러움에 중점을 두어 명승으로도 지정할 수 있는 자연유산인 것이다. 우리나라 곳곳의 자리에 신비로운 자태를 뽐내는 폭포들 그중에서도 은하수가 쏟아져 내리는 듯한 비경을 품은 대승폭포는 내설악 폭포의 대표라 부를 만한 아름다운 명승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