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1일 토요일, 흐리다 비.
문화재단에서 주최하는 “독서 인문학 연결고리 워크숍”이 7월 1일과 2일, 이틀 동안 청주에서 진행되었다. 올해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나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매주 주어지는 과제를 하느라 좋아하는 여행도 가지 못했다. 마지막 과제를 제출하고 방학이 시작되던 날, 우연히 워크숍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러 번 문화재단 워크숍 이야기를 들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았고, 가족들이 쉬는 주말에 집을 비우려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참석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용기를 내서 언니들과 함께 가기로 했다. 언니들이 자랑하는 워크숍이 궁금했고, 언니들과 오손도손 이야기 나누며 하룻밤을 보내고도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휴식이 필요했다.
7월 1일, 8시 40분에 동래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놀러 가기 좋은 날인지, 동래역 앞에는 관광버스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비소식과 함께 회색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었다. 비록 비소식이 있었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나는 길 떠날 때 날씨 덕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오늘도 다니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군위 근처에서부터 비가 오락가락하기 시작했다. 청주에 다다랐을 때는 구름 속에 가려진 속리산을 사진에 담느라 차내가 분주했다. 청주 문의면에 있는 “시골집”이라는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림과 자기류의 그릇들과 담근 과일즙으로 실내가 운치가 있었다. 음식도 깔끔하고 정갈해서 이곳까지 오느라 쌓인 피로를 잊게 해 주었다.
식사를 끝내고, 이종국선생님이 운영하는 “마불갤러리”로 이동했다. 갤러리로 가는 내내 눈길을 끄는 게 있었다. 예쁘게 꾸민 가게와 순 우리말로 정겹게 지어진 가게 이름들이었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건물외관도 다 다르게 지어져 있었다. 이름을 짓느라 고민한 흔적이 많이 보였다. “꽃이 피면”, “모네의 정원” 과 같이 온통 우리말이면서 예술과 문학의 향기 솔솔 나는 이름들이다. 길을 걸으면서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갖춘 도시로 변모하려는 청주의 꿈틀거림을 느낄 수 있었다.
이종국선생님과 사모님은 작년에 광안리에서 있었던 <책울타리>에서 만났던 분들이라 더 반가웠다. 그 때, 그 분들과 닥종이를 삶아서 만든 한지를 고운 채에 걸러 나비를 만드는 체험을 했었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천년이 넘어도 썩지 않는 우리 한지를 많이 사용하고 사랑하자는 다짐을 해 본다. 오늘 참가자들의 마음에 울림을 주었던 선생님의 한 마디가 있었다.
“우리 문화는 스며듦의 문화다!”
서양화가들은 종이에 물감(페인트)을 칠한다고 표현하지만, 우리는 색이 번져서 스며들게 한다고 표현한다. 선생님은 우리의 삶도 이와 같이 스며들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문의면을 떠나서 청주 시내로 들어갔다. 청주에는 작은 도서관이 주최가 되어서 다양한 문학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그 중심에 “상생충북”이라는 단체가 있었다. 도서관을 사랑하는 의원들 모임인 ‘도사모’가 후원을 하고, 작은 도서관이 주최가 되어서 다양한 문화행사를 하고 있는데 그들의 열정적인 모습이 보기 좋았다. 청주도 부산처럼 1년에 한 권의 책을 선정해서 시민들과 함께 읽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청주에 사는 작가들의 작품을 선정하기 때문에, 선정된 작가들은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진행하는 활동에 참여해서 시민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갖는다 한다.
다음으로는 청주에 문화를 꽃피우고 있는 “청주문화산업단지”의 변강섭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이 분 또한 대단한 열정으로 인문학 도시 청주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청주에는 “담배인삼공사”가 있었다고 한다. "KT&G"로 바뀌면서 사용하지 않는 담배 저장고를 리모델링해서 “문화산업단지”를 만들고, 담배창고는 낡은 모습 그대로 전시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특이했다. 마치 부산의 고려제강 f1963을 보는 듯했다. 역사와 문화가 도시 재생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알겠다.
입구에 있던 직지를 형상화한 철구조물이 기억난다. 직지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본이라는 증거는 근처의 흥덕사 기록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청주는 ‘직지’를 자랑스럽게 여겨서 ‘직지의 고장’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 “인쇄박물관”도 지었다.
식당으로 이동하다가 변창섭 선생님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고향이 초정이라고 했다. ‘초정리 편지’에 나오는 초정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한다. 늘 초정이 어디인지 궁금했는데, 청주에 있다는 게 신기했다. 말 나온 김에 부산 작가를 널리 알리고 싶어서, 배유안 작가를 한 번 초대해 달라고 부탁했다. 저녁은 “꽃이 피는~”이라는 식당에서 먹었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는 집집마다 대문 앞에 예술품이 만들어져 있었다. 어느 집 대문에 있던 탄 연탄을 이용해서 만든 귀여운 캐릭터들과 마당 한 켠에 안 탄 연탄으로 만든 할머니의 얼굴은 우리의 발길을 잡아 세웠다. 예술품을 보면서 우리의 삶이 풍성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저녁을 먹고 오늘의 마지막 일정인 충북 괴산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는 “숲 속 작은 도서관”을 둘러보았다. 늦은 시간까지 우리를 위해 문을 열어둔 주인 부부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이들은 도서관을 짓기 전에 유럽과 일본 등 여러 나라의 도서관을 둘러보고, 자신들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형태로 건물을 지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 온 인형이나 소품으로 예쁘게 장식도 했다. 마당에는 잔디를 깔고, 양쪽 뜰에는 아이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조그만 공간을 만들었다. 해먹도 설치해 두었다. 화단에는 예쁜 꽃들이 가득 피어 주인 부부의 세심한 손길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이 예쁜 도서관을 구경하고, 책도 사고, 주인장의 이야기도 들었다. 북스테이도 가능하다고 하니, 책과 함께 하룻밤을 지새고 싶다면 다시 한 번 이곳을 찾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산 속의 밤이 깊어갔다. 우리는 책 이야기를 가득 담고 숙소로 발길을 옮겼다. 사방이 칠흑같이 어두웠다. 우리가 머물 “여우숲 학교”는 생태를 전공한 교수님이 생태적으로 지어서 가로등이 없다고 했다. 선풍기도, 에어컨도 없다. 보면 볼수록 신기하고 불편한 곳이다.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며 가볍게 다과를 나누고, 드디어 방으로 이동했다. 어두운 밤길을 휴대폰 조명등으로 밝히며 올라가던 모습은 두고두고 기억날 명장면이다.
변기 하나 달랑 들어있는 화장실에서 최소한의 공간을 이용해 샤워를 했다.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공간에서 각자 씻고 나오면 뭔가를 보여주어야만 하는 쇼타임을 가졌다. 기다리는 사람들은 이야기꽃을 피우고, 말끔하게 변신한 사람들은 포토타임을 가졌다. ‘써니’를 연상케 했던 순임언니의 디스코 포즈와 미스코리아 세러머니를 한 선임언니, 마를린몬로 윤주언니……. 포즈를 취하는 사람도,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도 웃겨서 배꼽을 잡아다.
오늘, 처음으로 우리끼리 오붓이 보내는 시간이다. 피곤한 사람은 누워서, 덜 피곤한 사람은 동그랗게 둘러앉아서 언니들이 사준 따뜻한 망고맥주와 추억의 쫀디기를 먹었다. 처음 함께 밤을 새지만, 마치 친자매처럼 편안했다. 잠자리에 누웠을 때는 순임언니가 비와 관련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함께 흥얼거리다가 한 명씩 잠이 들던 모습이 떠오른다. 나지막하게 코를 고는 소리와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 언니들과 함께 보내는 이 시간이 너무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노래를 부르다 나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었다.
산책을 하려고 형주씨와 밖에 나갔더니 여우숲 회장님이 모닝커피를 내려 주겠다고 했다. 워크숍에 참석한 분들이 하나둘 모이자 다함께 숲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아침에, 순임언니가 계단을 내려오다 미끄러져서 다쳤다. 놀라서 누워있는 언니를 보니 마음이 아팠다. 저녁에 내린 비로 계단이 미끄러웠고, 양 옆에는 난간손잡이가 없었다. 자연을 위해 생태적으로 짓는 것은 좋은데, 안전까지 생각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아침을 먹고 나서는 동네를 돌아볼 시간이 있었다. 어제는 어두워서 보지 못했던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독일마을처럼 예쁘게 생겼다. 비슷한 구조의 집들이 나란히 늘어 서 있었고, 각자의 취향에 따라 정원을 아름답게 꾸몄다. 누구는 꽃을 심고, 누구는 대문에 포도덩굴을 늘여놓았다. 인숙언니는 누군가의 집에서 탐스러운 블루베리를 한 가득 얻어왔다.
9시에 괴산을 출발해서 왜관에 있는 “구상문학관”에 도착했다. 이곳은 작년에 명장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탐방 때 들렀던 곳이라 더 반가웠다. 구상선생님의 목소리로 들었던 <세인트 폴의 강>은 얼마나 감동적이었던가?
이곳에 들르니 구상선생님과 서영옥여사의 사랑이야기가 떠오른다. 구상선생님은 서영옥여사를 소개받았다. 다시 만나기로 했는데 앓고 있던 폐렴이 심해지자, 선생님은 서여사에게 알리지 않고 다른 지방으로 요양을 떠났다. 아픈 사람을 만나 서여사가 불행해질까 걱정하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서여사는 선생님이 요양간 곳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평생 선생님을 간호하면서 살겠다고 했다 한다. 결국, 두 사람은 결혼을 했고, 이곳에 ‘순심의원’을 열었다.
선생님이 기거하며 글을 쓰던 “관수재”는 ‘관수세심’이라는 말에서 따온 말이다. ‘물을 바라보며 마음을 닦는다.’ 다양한 문인들과 화가들이 이곳을 다녀갔다. 화가 이중섭이 그려준 “K씨의 가족”은 유명한 그림이다. K씨 가족의 행복한 모습을 바라보는 이중섭이 얼마나 쓸쓸해 보이던지, 멀리 있는 가족을 그리워하는 모습이 느껴져 코끝이 찡해 왔다.
구상선생님은 강을 사랑했다. 서울에 머물 때도 한강 옆에 살았다고 한다. 강을 사랑하고, 강을 바라보며 시심을 노래했던 선생님의 시는 두 번이나 노벨문학상 후보로 선정되었었다.
‘오늘 흐르는 이 강은 어제의 강이 아니며, 또 내일의 강도 아니다.’
왜관나루터에서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을 바라보는 것이 장관인데, 강을 보지 못해서 아쉬웠다.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던 구상문학관을 뒤로 하고, 이번 워크숍의 마지막 목적지인 칠곡 금남리로 향했다.
금남리는 꽃과 오이로 이름난 곳이다. 마을의 체험관에서 ‘압화 책갈피 만들기’ 체험을 했다. 예쁜 꽃들과 오이로 책갈피를 만드는 동안, 마을 어르신들이 맛있는 점심을 준비해 주었다. 직접 만든 나물 반찬과 이 지역 특산물인 오이장아찌가 입맛을 돋우었다.
식사를 마치고는 금남리의 이은수이장님을 만나러 갔다. 금남리는 2004년 정보화마을로 선정되었고, 지금은 인문학 마을로 참여하고 있다. 이 마을 주민들은 요가, 댄스, 요리 등 인문학 강좌를 수강하고 발표회도 가진다. 풍등을 날리는 ‘강바람축제’에는 한번 참여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마을이 살기 좋은 마을이 되기까지는 이장님의 역할이 컸다. 이제 오십 중반쯤 되어 보이는 이장님은 이장을 맡자마자 마을회관부터 건립했다한다. 그리고는 마을사람들이 제일 필요하다고 하는 목욕탕을 만들고 누구나, 언제든지 이용하게 했다. 마을을 위해 모두가 한 가지씩 역할을 하게 되면서 주민들은 더 사이가 좋아졌다.
이 마을에는 어른들이 돌아가시면 마을 이름으로 화환을 보낸다. 그런데 화환에 쓰는 글귀가 굉장히 멋졌다.
“당신의 삶은 아름다웠습니다. 함께 해서 행복했습니다.”
나는 여지껏 상갓집에서 이런 글귀를 본 적이 없다. 떠나는 고인의 삶과 고인을 생각하는 주민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말인 것 같다.
금남리 이장님을 만난 후, 한 마을을 이끌어가는 리더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알겠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화합시키는데 리더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겠다. 대표는 헌신과 열정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장은 허브 역할로 마을에 관계된 것은 모두 알고 있어야 한단다.
이곳에서 만난 또 하나의 만남은 할머니 시인 조덕자선생님이다. 흔히들 《사람책》이라고 한다. 그 사람의 인생이 곧 한 권의 책이다. 할머니의 시 <영감>은 할아버지와의 정겨운 모습이 그려진 시다. 얼마 전,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다 해서 마음이 아팠다. 젊어서는 놀러도 잘 가고, 노는 것도 좋아하더니 나이가 들어서 바깥 거동이 어려워지자 할머니가 제일 좋다고 하더라는 내용인데, 시를 들으면서 웃음도 나고 측은한 생각도 들었다. <아버지 호주머니 속 떡 하나>는 사람들을 울리고야 말았다. 쌀이 귀하던 시절, 아버지가 이웃집에 부조를 하고 나서 호주머니 속에 떡을 하나 가져 왔다. 그런데 담배가루가 너무 많이 묻어서 못 먹고 버렸다 한다. 요즘은 좋은 시절이지만, 그 당시는 떡이 참 귀했다. 귀한 떡을 못 먹고 버릴 때 마음이 많이 아팠다고 한다. 아버지 여행 못 보내드리고, 양말 하나 못 사드린게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는 할머니 말에 우리는 펑펑 울고 말았다.
금남리 마을 방문을 끝으로 이번 문화재단 “독서 인문학 연결고리 워크숍”은 막을 내렸다. 아름다운 청주에서는 문화로 새롭게 태어나려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도시를 떠나 숲 속에 도서관을 만든 용기있는 주인 부부도 만났고, 가로등을 찾을 수 없는 여우숲학교에서 우리가 얼마나 편리함에 길들여져 있는지를 생각했다. 가장 많은 친필 도서가 있다는 구상문학관과 사람 사는 냄새 묻어나는 금남리 마을!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게 되어 행복했다.
언니들과 여름밤을 추억으로 물들이던 이번 워크숍은 잊지 못할 이야기가 될 것이다. 짧은 일정 속에서도 많은 곳을 보여주고,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려던 문화재단에게도 감사드린다.
첫댓글 그때의 감정이 다시 살아나 미소가 번집니다. 점영씨 사진과 함께 기록도 정말 잘 하셨어요. 신문 기자보다 나아요
감사합니다, 회장님~~
점영씨가 언제나 이렇게 우리들의 기억을 저장해 주네요~~참 고마운 정영씨~~♥️👍
노래로 추억을 만들어 주는 음악 선생님, 비 노래 너무 좋았어요~감사합니다!
점영씨의 여행기를 이제야 보네요. 무엇 하나 함부로 흘려보내지 않고 따뜻한 눈으로 살뜰히
담아낸 점영씨가 참 좋습니다.
점영씨 덕분에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이렇게 꼼꼼하게 담아주셔서 다시 다녀온 느낌입니다.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