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왕부지의 기철학에서는 앎은 감각기관의 활동으로 시작되어 진행되고 발전할 수 있는 ‘행선지후(行先知後)’를 주장하였고, 주희의 성리학에서는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고, 오랜 시간 사물을 관찰하는 앎이, 실천보다 먼저라 하여 ‘선지후행(先知後行)’을 주장하였으며, 왕수인의 양명학에서는 앎은 실천의 시작이고 실천은 앎의 완성이기에 앎과 실천은 한 몸이라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주장한다.
행선지후, 선지후행, 지행합일 중 어느 것을 지지하는가?
저는 왕수인의 지행합일을 주장합니다.
행선지후는 행동으로 실천하여 이후에 지식이 생긴다는 입장이고, 선지후행은 지식을 습득하여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욕구라는 예시는 이를 반증하는 매개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동물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욕구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행동으로 표출될 수 있는 욕구를 표출하여야만 그 행동에 의미부여가 되어 지식이 생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욕구는 논리적으로 지식을 학습하고 실천으로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선험적으로 지니고 있는 것이라고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행동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바라볼 수 없고, 알면 행동하지 않을 수 없다라는 점입니다. 뱀의 시작이 머리고, 끝이 꼬리라고 하지만 이 둘이 하나로 연결되서 뱀 한마리가 완성되는 것처럼, 지와 행도 하나를 그 시작과 나중으로 나누어 부를 뿐, 별개의 것이 아니므로 합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