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2월 이달의 작품 [산문/수필]
[수필]
당황하셨어요?
이하재
하루 동안에 받는 많은 문자메시지 중에서 내게 필요한 문자는 거의 없다. 대부분이 일면식도 없는 모르는 사람들이 보내는 광고성 메시지와 영업사원들의 끈질긴 구애 메시지로 내 삶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다. 요즘은 사적인 대화는 카톡으로 주고받고 문자메시지는 거의 쓰지 않는다. 문자는 꼭 답을 할 필요 없는 일방적인 알림이 많다. 광고는 무시해도 되지만 공공기관에서 보낸 문자는 자칫 피해를 볼 수도 있어 몇 번 확인하게 된다.
찬바람이 햇볕을 몰고 가는 오후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내 명의로 전화가 개통되었으니 본인이 아니면 엘지유플러스에 확인하라는 내용이었다. 메시지를 읽고 순간 당황스러웠다. 전화를 신청한 적이 없고 더군다나 엘지유플러스라니 나는 케이티의 고객으로 전화기를 교체한 지 일 년도 되지 않았는데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전화기를 바꿀 일도 번호를 변경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필시 사기 문자이다. 나의 신상정보가 범죄자에게 노출되어 이런 문자가 온 것이다. 문자에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면 엄청난 요금이 청구되거나 사기에 걸려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 확인 절차가 허술해 타인 명의로 개통한 대포폰이 범죄에 이용된다는 뉴스를 들었었다. 그 통신사가 엘지유플러스였던 것 같았다. 의심은 의심을 불러와 별의별 생각을 하며 손님을 목적지에 내려드리고 케이티에 전화했다.
감정 없는 목소리의 안내에 따라 번호를 누르고 상담원과 연결이 되기까지 20분이 더 걸렸다. 문자의 내용을 설명하고 어떻게 확인하느냐 물었다. 케이티에서는 확인이 안 되니 엘지유플러스로 연락하라고 했다. 참으로 간단명료한 답변이었다. 짧은 답변을 듣기 위해 기다린 시간이 너무 길어 짜증이 났다. 상담원이 가르쳐준 101번으로 전화했다. 안내에 따라 3번을 누르니 ‘엘지유플러스 고객이 아닙니다’라는 말과 함께 전화가 끊겼다.
상담원과 통화하고 싶었으나 못했다. 기계(AI)하고의 대화는 인정머리가 없다. 계속 이어갈 수가 없다. 암튼 엘지유플러스의 고객이 아니라는 대답은 들었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신청하지 않았는데 무슨 전화가 개통되었단 말이냐 무시하고 문자도 지웠다. 뒤늦게 알았다. 엘지유플러스의 고객이 아니란 말은 전화를 건 내 번호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번호가 케이티의 고객이지 엘지유플러스의 고객이 아니란 뜻이라는 것을 알았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우리은행에서 보낸 한 통의 문자가 왔다. 엘지유플러스의 문자를 받고 일주일이 지난 뒤였다. 고객님의 우리은행 계좌에 ㈜엘지유플러스의 자동이체가 신청되었으니 신청한 적이 없으면 엘지유플러스나 해당 금융기관으로 문의하라는 내용이다. 구체적이고 친절한 안내 문자가 심장을 쿵쾅거리게 하였다. 당장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갈지도 모른다. 초조해졌다.
우리은행에 전화하였다. 통과의례를 거치고 상담원과 연결이 됐다. 자초지종을 더듬더듬 설명하고 어떻게 해야 좋으냐고 물었다. 많이 걱정되시죠. 자동이체 신청된 것이 3건 있는데 직접 은행에 방문해서 자동이체 신청 건을 해지하라고 했다. 마음이 급해졌다. 빨리 은행을 찾아가서 설정된 자동이체를 해지해야만 한다. 손님을 모시고 운행하면서도 은행 간판만 보였다. 그 많던 은행은 드문드문 보였고 주차할 곳이 마땅찮았다.
강남구 도곡동에 있는 우리은행을 찾았다. 번호표를 뽑고 한참을 기다린 후에 직원과 마주 앉았다. 신분증과 함께 은행에서 보낸 문자를 보여주고 자동이체를 해지해달라고 했다. 나는 엘지유플러스에 간 적도 전화를 개통한 적도 없는데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나보다고 설명했다. 직원은 신분증을 촬영해서 어딘가로 보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인터넷을 하며 본인 인증을 받기 위해 주민등록 번호를 전송한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도 같고 아리송했다.
은행직원은 모니터 화면을 보며 친절하게 설명하였다. 2건은 해지할 수 있는데 하나는 은행에서 해지할 수 없고 엘지유플러스에서 알아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은행에서도 해지가 안 된다면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나는 범죄집단의 손아귀에 단단히 걸려들었구나, 하는 생각에 통장을 해지하고 싶어졌다. 통장 하나를 해약한다고 완전히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모든 금융거래를 못 할 수도 있겠다는 불길한 상상을 하였다.
자동이체를 신청했다는 엘지유플러스에 알아봐야 한다. 케이티에서 알려준 101번이 아닌 다른 번호를 찾아 전화했다. 상담원과 연결이 되었다. 구세주를 만난 듯 반가웠다. 엘지유플러스에 가입한 적도 없고 전화를 개통한 적도 없는데 은행에 자동이체 설정이 됐다고 따져 물었다. 상담원은 차분하게 나의 이름 철자를 확인하고는 나의 직업을 물었다. 생뚱맞은 질문이었다. 나는 당당하게 택시 기사라고 말했다.
기사님! 엘지유플러스 전화를 개통하신 거 맞고요. 자동이체 신청한 것도 맞습니다. 더 이상의 해명은 필요 없었다. 수수께끼가 풀렸다. 한 달 전쯤 미터기를 바꾸었다. ‘티머니’ 사에서 제공하는 신형 미터기로 교체하였다. 동시에 통신사도 SK에서 LG로 바뀌었다. 나는 오해가 풀렸다며 상담원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또 해지한 자동이체를 다시 신청하라고 했다. 우리은행에서 3건 모두 해지할 수 없었던 까닭은 공룡처럼 비대한 ‘티머니’ 사였기 때문이었다.
통신사만 바뀌었지, 전화번호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전화기는 구경도 못 했다. 전에도 그랬다. 꼬박꼬박 통신비라는 명목으로 달마다 5,000원씩 인출이 되었고 서울시의 통신비 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입금되곤 하였다.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통신사를 선택하거나 통신비를 조정할 수 없는 나는 한없이 작은 존재일 뿐이다. 통신사가 변경된다는 사실은 미터기 교체할 때 설명을 듣고 여러 서류에 서명하였었다.
한 달이 채 안 되었는데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벌써 치매 환자가 되었는가. 조바심을 내며 안달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엘지유플러스에서 보낸 메시지에 ‘택시’나 ‘미터기’라는 단어가 들어 있었다면 나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의문은 의심을 낳고 불신은 정상적인 사고를 방해하며 당황스럽게 한다. 예전 개그콘서트에서 어설픈 보이스피싱 범죄자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고객님! 당황하셨어요?” 그렇다. 나는 당황하고 있었다.
첫댓글 이하재 작가님,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카페 활동을 많이 못해 죄송한 마음입니다.
이하재 작가님 축하드립니다
글이 아주 재미 있어요
저도 그런적이 몇번 있어서요~^^
어리숙했던 행동이 행운을 가져왔나 봅니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어처구니없는 일도 더 많아지겠지요.
감사합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ㆍ축하드립니다ㆍ
감사합니다.
하시는 일마다 축복이 있길 빕니다^^
이하재 작가님,
이달의 작품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시길 빕니다^^
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이런적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