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학자 강성위의 『한시로 만나는 한국 현대시』(푸른사상 교양총서 16).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시인들의 작품을 한시(漢詩)로 옮겨 시를 이해하는 색다른 관점을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한역한 시를 다시 한글로 직역하면서 그 의미를 곱씹게 하는 이 책은 낯설게만 느껴졌던 한시를 새로운 방식으로 감상하는 묘미를 전해주고 있다.
2022년 4월 5일 간행.
■ 저자 소개
자는 백안(伯安), 호는 태헌(太獻) 또는 홍산(鴻山)이다.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희대 연구박사, 서울대 중국어문학연구소 책임연구원, 안동대 퇴계학연구소 책임연구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조그마한 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한시(漢詩) 창작과 번역을 지도하는 한편, 모교인 서울대에 출강하여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다. 월간 『우리詩』와 한경닷컴 “The Pen”에 「한시공방(漢詩工房)」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연재 중이다. 30권이 넘는 저서와 역서가 있으며, 창작 한시집으로 『술다리[酒橋]』 등이 있다.
■ 책머리에 중에서
이 책은 전체적으로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 4부까지는 시인들의 원시에 나타난 계절이나 칼럼 발표 시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부를 편성하였으며, 각 부 안에서는 시인의 한글 이름 가나다순으로 작품을 배열하였다. 시인 한 명당 한 수씩 수록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 각 부마다 16수씩 도합 64수를 수록하였다. 4부까지의 모든 칼럼은, 일률적으로 “원시”를 앞에 두고, 그 다음에 저자의 “한역시”와 그에 대한 “주석”을 곁들였으며, 마지막에 저자의 한역시에 대한 직역(直譯)인 “한역의 직역”을 첨부한 뒤에 “한역 노트”라는 이름으로 해설을 적었다. 5부는 저자의 자작 한글시 1편을 시인들의 시처럼 칼럼으로 엮은 한 꼭지와 자작 한시를 칼럼으로 작성한 여섯 꼭지로 이루어졌다. 말하자면 5부는 저자의 작품만 따로 다룬 부록(附錄)이 되는 셈이다.
우리 현대시를 한역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원시에는 없는 말이 더러 보태지기도 하였고, 원시에는 있는 말이 더러 빠지기도 하였다. 또한 한글과 한문의 언어 생리가 다른 탓에 시구(詩句)의 순서가 더러 바뀌기도 하였다. 이 점 두루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 추천의 글
태헌! 자넨 천생 시인이야. 그래서 “부도창상구변공(賦到滄桑句便工)”이 허언이 아님을 절실히 느끼게 돼. 자넨 천생 겸손한 사람이기도 해. 타고난 문기(文氣)로 현대시를 써서 시명(詩名)을 드날릴 수도 있지만 ‘나보다 더 잘 쓴’ 시를 한역(漢譯)하여 중국에도 널리 알리는 공전(空前)의 창거(創擧)를 하고 있으니 말야. 그런데 말야.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시 한역은 우리말의 감칠맛을 빠트리는 부분이 많아. 한시를 우리말로 옮겨도 그 웅숭깊은 느낌을 잃어버리게 되고… 그 간극을 줄이고 줄여 마침내 혼연일체가 되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난 태헌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어. 안녕! ― 김언종(고려대학교 한문학과 명예교수)
우리 현대시를 한시로 번역하는 것은, 그 표현 방식의 차이 때문에 무모하다 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어서 누구도 시도한 적이 없었는데, 저자는 이를 원만하게 해내었다. 한시와 현대시에 두루 깊은 이해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다만 압운(押韻)과 조구(造句) 등에서 전통적인 방식을 떠나 파격을 구사한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점은 저자가 한시를 현대화하고 대중화하기 위해 새롭게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번역 대상으로 시인 당 한 수씩의 시를 선정한 덕분에 독자는 여러 시인들의 대표작을 두루 읽는 행운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인생사를 돌아보게 하는 뜻 깊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낸 작품 해설도 책을 읽는 즐거움을 오롯이 더해준다.
― 이영주(서울대학교 중문학과 명예교수)
강성위 시인이 한국 현대시를 한시(漢詩)로 옮긴 이 작업은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학계나 시단에 없었고 앞으로도 나오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강 시인은 시를 사랑하는 마음이 크고, 학문이 깊으며, 한시 해설에서 보듯이 이 세계를 끌어안는 자세가 진지하고도 넓다. 이 엄청난 성과물이 국내에만 머무르는 것은 아깝다. 우선 중국어로 번역되어 중국 독자들과 함께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응원한다. ― 맹문재(시인·안양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 책 속으로
풀꽃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태헌의 한역
草花(초화)
細觀則娟(세관즉연)
久觀應憐(구관응련)
吾君亦然(오군역연)
✾ 주석
·草花(초화) 풀꽃. ·細觀(세관) 자세히 보다. ·則(즉) ~을 하면. ·娟(연) 예쁘다. ·久觀(구관) 오래 보다. ·應(응) 응당. ·憐(연) 어여삐 여기다, 사랑하다, 사랑스럽다. ·吾君(오군) 그대, 너. ·亦(역) 또, 또한. ·然(연) 그러하다, 그렇다.
✾ 한역의 직역
풀꽃
자세히 보면 예쁘다
오래 보면 사랑스럽다
너 또한 그렇다
✾ 한역 노트
이 시는 어쩌면 나태주 시인의 시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지고 가장 사랑받는 시가 아닐까 싶다. 시인의 공로를 기리기 위하여 시인의 고향인 공주에 설립한 문학관 이름이 “풀꽃”이고, 시인을 “풀꽃” 시인으로 칭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이 시를 시인의 출세작(出世作)으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풀꽃”을 소재로 한 이 시가 대상을 ‘보는 법’에 대하여 얘기한 것이기 때문에, 역자는 최근에 접한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라는 책에서 다룬 소로(H. D. Thoreau)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미국의 사상가이자 문학가인 소로는 기존의 이념을 초월하여 ‘보는 법’을 강조했는데 인식의 실재보다 자연의 실재에 더 큰 관심을 가졌고, 지식보다는 ‘보는 힘’을 중시하였다. 소로가 새롭게 보는 법으로 제시한 것이 마음의 렌즈를 닦고 스캔하듯이 지혜를 보는 것이라면, 나태주 시인이 제시한 보는 법은 돋보기를 대고 가만히 응시하듯 지혜를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세히, 그리고 오랫동안 보면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이 시인의 생각일 듯하다. 그러한 시인의 뜻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를 알게 하는 글자는 바로 “너”라는 글자 뒤에 붙은 조사(助詞) “도”이다. 사실 이 조사가 아니라면 이 시는 멋있지만 다소 단조로운 시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시가 짧으면서도 단조롭다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시인은 원숙한 대가(大家)답게 단 하나의 조사로 독자의 마음을 송두리째 사로잡았다. 이 시에서의 “너”는 당연히 풀꽃이므로 조사 “도”로 추정하건대 또 다른 존재 역시 풀꽃과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또 다른 존재’는 누구일 수도 있겠고, 무엇일 수도 있겠다. 시인이 시시콜콜하게 다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가 비록 짧아도 독자의 상상력에 의해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분명 시인이 의도한 시의 탄력성이다. 그러니 역자가 역자의 생각을 다 말하지 않는 것 역시 시인의 뜻에 공감하는 표현이 될 것이다.
‘대충’, 그것도 ‘잠깐’ 보고 나서 누군가를 다 파악한 것처럼 자신만만하게 얘기하는 자들이 가끔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역자는, ‘당신 역시 타인에게 그렇게 평가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경고의 말을 들려주고 싶었지만, 역자 역시 그러지는 않았나 싶어 운을 떼지 못한 적이 적지 않았다. 주관적인 선입견을 배제하고 성급한 판단을 내리지 않는 것이 누구에게나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 시는 바로 그런 오류에 대한 질책의 뜻으로도 읽힌다. 일찍이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만 적용시키거나 강요하는 것은 비겁을 넘어 이미 죄악이 될 수 있다. 세상에 넘쳐나는 ‘내로남불’에 역자가 도저히 수긍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장미는 대충 보아도 예쁘지만, 풀꽃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장미는 잠깐 보아도 사랑스럽지만, 풀꽃은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사람들은 장미꽃 같은 아름다움에 익숙하기 때문에 풀꽃 따위에는 그다지 관심도 두지 않는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세상의 모든 꽃이 장미일 뿐이라면 장미가 장미겠는가? 장미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것은, 금방은 보이지 않는 풀꽃 같은 아름다움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개 들어 장미만 볼 것이 아니라, 허리 굽혀 풀꽃도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역자는 연 구분 없이 5행 25자로 이루어진 원시를, 3구의 사언시(四言詩)로 재구성하였다. 매구마다 압운을 하였으므로 이 한역시의 압운자는 ‘娟(연)’·‘憐(연)’·‘然(연)’이 된다.
(34~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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