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22,20-26; 1테살 1,5ㄴ-10; 마태 22,34-40
+ 찬미 예수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유다 지도자들이 차례로 다가와 예수님을 시험하고 논쟁을 벌였는데요,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버리셨다는 소문을 듣고 이번에는 바리사이들이 모여 질문을 준비합니다.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당신이 그렇게 율법을 논하고 가르칠 자격이 있는지 테스트해 보겠다’는 질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해 매우 단순하게 두 가지 대답을 하십니다.
“첫째,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율법과 예언서는 구약성경 전체를 의미하는데요, 그러니까 구약성경의 모든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열 개의 계명을 주셨습니다. 이를 십계명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율법의 수를 점점 늘렸고, 예수님 시대에 율법은 613개나 되었습니다. 이 중 248개는 무엇을 하라는 계명이었고, 365개는 하지 마라는 계명이었습니다. 서민들이 이 계명을 다 지키는 것은 불가능했고 사실 외우지조차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랍비들은 계명들이 다 똑같이 중요하다고 말했는데요, 예를 들어 신명기에 “어린 새나 알이 있는 둥지를 보았을 때, … 새끼들은 잡아도 되지만 어미 새는 반드시 날려 보내야 한다.”(신명 22,6-7)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과 십계명의 제4계명 즉 “부모에게 효도하라”가 똑같이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둘 다 “그래야 너희가 오래 살 것이다.”(탈출 20,12; 신명 5,16)라는 구절이 뒤따른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바리사이는 예수님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인지” 질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첫째, 하느님 사랑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다’라고 말하고, 그것이 가장 큰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장 큰 잘못은 믿음이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부족한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는데요, 우리는 가족을 믿기에 사랑하고 있나요? 사랑하기 때문에 믿고 있나요?
사랑하기 때문에 믿고 있지요. 하느님께 대해서도 자꾸 믿음이 부족하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사랑을 키워나가면 믿음도 따라서 성장할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믿음이 부족해서 기도를 소홀히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부족하기에 기도를 게을리하는 것입니다.
율법학자는 가장 큰 계명을 물었는데 예수님께서는 두 번째 계명까지 말씀하십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떨어질 수 없다는 뜻입니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나 자신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는가?’라고 묻습니다. 물론 우리는 자기 자신을 올바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사랑이 완전하지 못하다고 해서 이웃을 덜 사랑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만일 우리가 부당하게 감옥에 갇혀 있다면, 우리는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우리 몸에 상처가 났다면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을 것입니다. 배가 고프면 무엇을 먹을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자신에게 이같이 베풀고 있습니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은 우선 이렇게 자기에게 하듯 남에게 베풀라는 뜻입니다. 고통받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해서, 배고파하는 형제들을 위해서, 사회 정의와 생태 정의를 위해서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내 이웃입니까? 이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이웃은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네가 이웃이 되어 주는 그 사람이 너의 이웃이다.”
오늘 1독서는 이방인, 과부, 고아를 이웃으로 대하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당시 가장 힘없고 약하고 억울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은 10.29 참사 1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작년 오늘 참으로 안타깝고 애절한 마음으로 뉴스를 보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사회적 참사로 희생된 분들을 추모하고 기도하며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것이 이웃 사랑의 첫걸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는 척도가 곧 하느님을 사랑하는 척도가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요한 1서의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누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그분에게서 받은 계명은 이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요한 4,20-21)
고통받고 있는 이스라엘 땅에, 특히 가자지구에 오늘 1독서의 말씀이 그 어느 때보다 장엄하게 선포되고 실현되기를 기도드립니다.
“너희는 이방인을 억압하거나 학대해서는 안 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가운데 참된 위로와 보람 누리시는 한 주간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