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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4문장의 구성(構成). 구성을 짜면 시의 절반을 쓴 것이다. 처음 들어보는 시창작법!
☉ 들어가기 전에
언급한 적이 있지만, 시창작의 한 기술은 ‘낯설게 하기’와 ‘침묵의 기법’ 그리고 ‘긴장의 기술’이다. 상상은 활발히 하되 시를 맛있게 하기 위해서 시에는 낯설게 하기와 침묵과 긴장이 있어야 한다.
영화를 보더라도 밋밋하면 재미가 없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긴장이 있어야 몰입이 된다. 다른 말로 하면 시는 끌림이 있어야 한다. 낯섦이나 반전이나 침묵이 있어야 끌리는 것이 생긴다. 낯섦과 끌림은 시의 맛이고 매력이다. 침묵은 어디서 생기는가? 생략에서 생긴다.
산문에서 설명을 덜어낼 때 시가 만들어진다. 역으로 시에 설명이 있으면 산문이 된다. 다른 말로 하면 말과 말 사이에는 계단이 있어야 시가 된다. 행과 행 사이에는 알 듯 모를 듯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털거덕거리는 길처럼 친숙해 보이던 것이 낯설게 보일 때 시가 된다. 끌림은 낯설게 보일 때와 시선을 멈추게 할 때 생긴다.
시를 지을 때는 메시지 전달에 주력하지 말라. 이미지화에 더 높은 화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또한 묘사에 치중해서 글을 쓰도록 하라. 사물을 묘사할 때는 입체적으로 풀어나가라. 그래야 독자가 호기심을 갖고 따라 들어온다. 예를 들면, ①‘봄은 고양이를 사색하게 한다’ 보다는 ②‘봄은 고양이 눈 속으로 들어간다’라고 해야 훨씬 입체적이 되고 시의 맛이 난다. 詩는 설명적으로 나열하는 과정이 아니고 순간적 느낌을 포착해서 새로운 시어를 표현해야 한다. 문학文學은 사고思考의 천착穿鑿이다. 천착이란 구멍을 뚫는다는 의미로 생각을 뚫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게 뭐지 하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이번 ‘시론(詩論) 9’에서 포커스는 시의 구성을 어떻게 짤 것인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詩는 言(말) +寺(절)이다. 다시 말하면 시는 말로 집을 짓는 것이다. 말로 어떻게 집을 지을 것인가? 이것은 구성(plot)의 문제이다. 그래서 구성이 중요하다. 집을 지을 때 반석과 기둥과 지붕을 만들면 나머지는 내부 시설과 외부 마감이다. 구성이 짜지면 벽돌을 쌓듯이 하나씩 쌓아 올려 집을 짓는 것이다. 집은 기초와 설계를 어떻게 하는가에 달려 있다. 구성을 완성하면 나머지는 꾸밈이다. 시도 마찬가지 과정을 거쳐서 완성된다.
☉ 시의 구성을 어떻게 짤 것인가
구성(plot)은 이야기 줄거리에 나오는 여러 사건을 하나로 짜는 作業과 그 手法이다. 간단히 말하면 구성은 ‘줄거리’라고 부를 수 있다. 작가가 취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선택 가능성을 정제해 내는 중심역할이다. - 지식백과
발견에 의하면, 詩는 4 문장의 구성이다. 지금부터는 시론 冊에 없는 제 생각을 詩論으로 말하기로 한다. 시를 한 문장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한 문장이기도 하고, 한 연이기도 하고, 한 덩어리이기도 함을 의미이다. 여기서 논하고자 하는 것은 기⦁승⦁전⦁결(起⦁承⦁轉⦁結)의 漢詩에 기본을 둔 4 문장의 詩를 말한다. 이것은 四界(봄⦁여름⦁가을⦁겨울)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여기에 首尾相關의 기법을 더해서 생각하기로 한다. 내가 발견(發見)한 구성의 기본은 ‘詩는 4 문장(네 연 혹은 네 덩어리) 구성’을 가진다.
다시 말해 詩는 네 문장으로 구성된다. 첫 문장은 사람의 입에 해당되는 入口. 둘째와 셋째는 몸통이며 출구로 가는 통로 내지 잠시 수다를 떠는 쉼터 같은 간이역이다. 네 번째 문장은 사람의 항문에 해당되는 出口. 그래서 수미상관을 덧붙여 설명하기로 한 이유다.
결론적으로 시는 네 문장이다. 따라서 시를 쓸 때 네 문장을 쓰면 된다. 다르게 쓸려면 거기(네 문장)에서 줄이고 더하기를 하면 된다. 또 행갈이를 하다가 붙이기를 한다. 산문시는 행갈이를 먼저 하고 됐다 싶으면 죽 이어 쓰면 된다. 그래서 시 쓰기는 네 문장이라 생각하면 쉬워진다. 4 문장의 詩를 쓰면 한 편의 詩가 구성된다. 구성을 짜면 시 쓰기의 절반을 한 것이다. 그리고 시는 말로 집을 짓는 것이기에 말로 맛있게 마감하면 된다. 항상 가장 적절한 단어 선택은 기본이다. 가장 적절할 때 기막힌 시어가 탄생하고 우리는 그것을 좋다고 평한다.
한 편의 시는 네 문장의 시가 기본이라 부르지만, 앞으로 논할 것들은 한 문장의 시에서 여러 문장의 시까지 두로 살펴보기로 한다.
1. 한 문장으로 구성된 시
詩는 한 문장(한 덩어리, 한 연)으로도 좋은 시가 된다. 다만 시가 짧으면 짧을수록 절정과 긴장이 있어야 한다.
섬 ― 정현종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생각]
이 시는 한 문장의 시다. 유치환의 시 「낙엽」은 ‘너의 추억을 나는 이렇게 쓸고 있다.’ 말라르메의 시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를 보더라도 시는 반드시 길 필요는 없다. 짧을수록 침묵이 깊다. 얼마나 감동을 실어 짧게 표현하느냐가 관건이다. 이 시의 구성을 한 문장이라고 해도 되고, 두 문장의 시라고 해도 괜찮다. 한 문장을 두 문장으로 행갈이 한 것이라 생각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시인은 길게도 쓸 수 있어야 할 뿐이다. ‘섬’(정현종)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산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내 이익을 내려놓고 다가오는 사람도 있고 내 이익을 좇아 다가오는 사람도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그곳에 가고 싶다. 그곳은 무척 좋은 곳이겠지요?
수국 ― 장옥관
그를 찾으러 꽃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자주와 보라와 하양 그리고 둥긂, 물방울이나 무지개 그 속에 갇혀 나 한나절 헤매고 다녔으니 유혹하는 헛꽃처럼 냄새만 흩어놓고 그는 사라졌고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아비 어미의 어처구니를 감싸며 저무는 노을은 이 색에서 저 색으로 번지며 한사코 저를 숨겼다 그는 내가 찾아다니는 것보다 숨는 속도가 늘 빨랐으며 그 작은 나비들이 뭉쳐 빚어 놓은 허망한 빛 숭어리, 이윽고 한숨처럼 연기처럼 흩어져 날아가는 나비 동작 속에 우리는 지워지고 망연한 눈길 속에 꺼졌다 사라진 어제가 있었다고 언제나 믿고 싶었다 ― (상상인. 2023. 1월. 통권5호)
[생각]
한 덩어리의 시를 한 문장이라 명명한다. 따라서 이 시도 한 문장 詩다. 아마 행갈이를 하다가 죽 이어 쓴 산문시가 더 좋겠다고 시인은 생각했을 것이다. 세 번 이상 읽으면서 작가의 의도와 감정을 탐하는 것도 시 감상의 한 방법이다. 이 시에서 눈에 띄는 시어는 ‘헛꽃, 어처구니, 숭어리’이다. 이 시를 읽고 나도 수국을 다시 보았다. 우리는 ‘그’를 찾아 한평생 헤매는 일인가요?
2. 두 문장으로 구성된 시
서시 ― 이성복
간이식당에서 저녁을 사 먹었습니다
늦고 헐한 저녁이 옵니다
낯선 바람이 부는 거리는 미끄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당신이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사방에서 새소리 번쩍이며 흘러내리고
어두워 가며 몸 뒤트는 풀밭,
당신을 부르는 내 목소리
키 큰 미루나무 사이로 잎잎이 춤춥니다
[생각]
나는 좋은 시를 만나면 시를 출력해서 액자에 넣어 한두 달 동안 내 책상 앞에 놓아둔다. 이 시도 그중에 하나였다. 내 눈에 스며들 때까지 읽은 시다. 두 문장의 시다. 어떻게 해서 두 문장이냐고 따지면 곤란하다. 이기호의 발견일 뿐이다. 위 시에서 고딕 부분 ‘헐한, 낯선, 정처, 번쩍이며, 몸 뒤트는, 춤춥니다’ 이들 시어가 좋다. 이 시는 시간의 순서가 있다. ①‘늦고 헐한 저녁이 옵니다’, ②‘당신이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③‘당신을 부르는 내 목소리’가 그렇다. 이 시는 ‘나는 정처 없습니다’를 반복하면서 리듬뿐만 아니라 연결하는 맛을 지닌다. 당신은 키 큰 미루나무 사이로 잎잎이 춤추고 있습니까?
3. 세 문장으로 구성된 시
산에 사는 날에 ― 조오현
나이는 뉘엿뉘엿한 해가 되었고
생각도 구부러진 등골뼈로 다 드러났으니
오늘은 젖비듬히 선 등걸을 짚어 본다
그제는 한천사 한천 스님을 찾아서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물어 보았다
말로는 다할 수 없으니 운판 한 번 쳐보라, 했다
이제는 정말이지 산에 사는 날에
하루는 풀벌레로 울고 하루는 풀꽃으로 웃고
그리고 흐름을 다한 흐름이나 볼 일이다
[생각]
이 시는 세 문장의 시다. 이백의 <산중문답>을 떠오르게 하는 시다. ①해가 지는데 젖비듬히 선 등걸을 짚은 사람이 있다. ②한천사 스님을 찾아 운판 얘기를 나눈다. ③산에 사는 날엔(더우기 삶과 죽음이 가까운 날엔) 흐름을 볼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의 흐름은 빠르다. 흐름을 볼 정도다. 이 시에서 ‘젖비듬히, 한천사 한천 스님, 풀벌레로 울고, 풀꽃으로 웃고’는 좋은 시어들이다. 백담사 공양실에 가면 흰 벽면에 오현 스님의 시구가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전거가 서 있는 밭 ― 이기호
처서가 지난 하늘은 뭉게구름이 부드럽다 이 모양 저 모양 그림을 그린다 그 그림의 이름을 다 불러낼 수 없는 하늘 아래서
산 능선이 지나가고 숲이 우거져 있다 주인이 누구인지 명패 없는 텃밭을 지나는 작은 길 위에서
오도카니 서 있는 자전거처럼 나는 자전거 바퀴를 물끄러미 본다 굴러온 시간이 바퀴의 지문에 문드러져 있는 그곳에 저녁노을이 번진다
[생각]
이 시는 시집 『슬픔을 밀어내는 시간』에 실린 시다. 둘레길을 걷다가 문득 사진 한 장을 찍었다. 그리고 어느 날 집에서 그 풍경을 그리면서 세 문장으로 시를 구성한 시다. 한 시인으로부터 중앙대 문예창작전문가과정에서 사진 한 장을 가지고 시를 쓰는 과제가 있었다는 것을 들었다. 이 방법은 좋은 훈련 중에 하나로 생각한다.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지나가고, 명패 없는 텃밭을 지나고, 굴러온 시간이 … 저녁노을이 번지는 풍경에서 한 순간 느낀 인생을 그린 시. 당신도 바퀴에 문드러진 지문처럼 인생을 느껴십니까?
4. 네 문장으로 구성된 시
― 네 문장은 시 구성의 기본이다.
여승(女僧) ― 백석
여승(女僧)은 합장(合掌)하고 절을 한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넷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平安)도 어늬 산(山) 깊은 금점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女人)은 나 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十年)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山)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山)절의 마당귀에 여인(女人)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생각]
내가 좋아하는 백석 시인의 시들 중에 특히 좋아하는 시 세편이 있다. ‘흰 바람벽이 있어’ ‘수라(修羅)’ ‘여승(女僧)’. 여기서는 ‘여승(女僧)’ 시를 공부한다. 이 시는 4 문장의 시다. 첫째와 마지막 문장이 수미상관이다. 첫 문장이 ‘절에서 절하는 쓸쓸한 낯이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마지막 문장이 ‘섧게 울은 슬픈 날에 머리카락이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다.’는 서로 관련이 있다. 옛날에는 여승이 된다는 것은 아프고 슬픈 사연이 있다고 대체로 생각하였다. 다만 이 시를 줄거리의 흐름으로 보면 4,1,2,3의 시간적 순서 이다. 여승처럼 슬픈 사건이 있는가요?
5. 다섯 문장으로 구성된 시
배를 밀며 ― 장석남
배를 민다
배를 밀어 보는 것은 아주 드문 경험
희번덕이는 잔잔한 가을 바닷물 위에
배를 밀어 넣고는
온몸이 아주 추락하지 않을 순간의 한 허공에서
밀던 힘을 한껏 더해 밀어 주고는
아슬아슬히 배에서 떨어진 손, 순간 환해진 손을
허공으로부터 거둔다
사랑은 참 부드럽게도 떠나지
뵈지도 않는 길을 부드럽게도
배를 한껏 세게 밀어내듯이 슬픔도
그렇게 밀어내는 것이지
배가 나가고 남은 빈 물 위의 흉터
잠시 머물다 가라앉고
그런데 오, 내 안으로 들어오는 배여
아무 소리 없이 밀려 들어오는 배여
[생각]
이 시는 다섯 문장의 시다. 바닷가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배를 밀어 조개, 망둥어, 낙지를 잡는 바다 사람들을 본다. 「배를 밀며」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을 배를 미는 행위에 빗대어 표현한 작품이다. 아마 이런 풍경을 보고 시인은 ‘사랑’과 ‘이별’을 연결하여 쓴 은유시다. 이 시에서 ‘배를 밀어 보는 것’과 소리 없이 밀려 들어오는 배여‘를 보면,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 시의 입구와 출구 역할을 한다. 그 사이는 몸통에 해당되고 사랑과 이별에 대한 줄거리이다. 배를 밀어 본 경험이 있습니까?
6. 여섯 문장 이상으로 구성된 시
마음의 고향⦁6 ― 이시영
내 마음의 고향은 이제
참새떼 왁자히 내려앉는 대숲마을의
노오란 초가을의 초가지붕에 있지 아니하고
내 마음의 고향은 이제
토란 잎에 후두둑 빗방울 스치고 가는
여름날의 고요 적막한 뒤란에 있지 아니하고
내 마음이 고향은 이제
추수 끝난 빈 들판을 쿵쿵 울리며 가는
서늘한 뜨거운 기적 소리에 있지 아니하고
내 마음의 고향은 이제
빈 들을 길어 걸어 흰옷자락 날리며
서울로 가는 순이 누나의 파르라한 옷고름에 있지 아니하고
내 마음의 고향은 이제
아늑한 상큼한 짚벼늘에 파묻혀
나를 부르는 소리도 잊어버린 채
까닭 모를 굵은 눈물 흘리던 그 어린 저녁 무렵에도 있지 아니하고
내 마음의 마음의 고향은
싸락눈 홀로 이마에 받으며
내가 그 어둑한 신작로 길로 나섰을 때 끝났다
눈 위로 막 얼어붙기 시작한
작디작은 수레바퀴 자국을 뒤에 남기며
[생각]
이 시는 여섯 문장의 시다. 행갈이를 하지 않고 붙여 쓴 시다. 행갈이를 한다면 ‘내 마음의 고향은 이제’부터 행을 가르면 여섯이 된다. 행갈이와 상관없이 몇 문장으로 구성되는지 그것이 중요하다. ‘∼ 아니하고’로 시를 진행하다가 마지막 “내 마음의 고향은 이제”에서 고향의 정의를 내린다. “싸락눈 홀로 이마에/ 내가 그 어둑한 신작로 길로 나셨을 때 끝났다”. 이 시는 비슷한 것이 나열되다가 마지막에 반전이 일어나는 시다. 우리의 마음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만들고 싶은 고향은 어떤 모습입니까?
내 살던 뒤안에 ― 정양
참새떼가 요란스럽게 지저귀고 있었다
아이들이 모여들고 감꽃들이
새소리처럼 깔려 있었다
아이들의 손가락질 사이로
숨죽이는 환성들이 부딪치고
감나무 가지 끝에서 구렁이가
햇빛을 감고 있었다
아이들의 팔매질이 날고
새소리가 감꽃처럼 털리고 있었다
햇빛이 치잉칭 푸리고 있었다
햇살 같은 환성들이
비늘마다 부서지고 있었다
아아, 그때 나는 두근거리며
팔매질당하는 한 마리
구렁이가 되고 싶었던가
꿈자리마다 사나운 몰매 내리던 청춘을
몰매 속 몰매 속 감는 틈을
구렁이가 사라지고 있었다
햇살이, 빛나는 머언 실개울이 환성들이
감꽃처럼 털리고 있었다
햇빛이 익는 흙담을 끼고
구렁이가 사라지고 있었다
가을 타는 보리밭 둔덕길을 허물며
팔매질하며 아이들이 따라가고 있었다
감나무 푸른 잎새 사이로
두근거리며 감꽃들이 피어 있었다
[생각]
이 시는 일곱 문장의 시다. 첫째와 둘째 문장이 입구에 해당되고 일곱 번째 문장은 출구에 해당된다. ‘감꽃들이’로 시작해서 ‘감꽃들이’로 끝을 맺은 시다. 시의 몸통 부분에는 감나무 가지에 있는 구렁이에게 팔매질하면 구렁이가 흙담을 넘어간다. 이것을 줄거리로 잡고 있다. 누구나 인생의 뒤안길은 있다. 내 살던 뒤안길에는 어떤 일이 있었나요?
포도주를 마시며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그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러곤 내게 ‘아름다움’을 부여한다.
나는 그 아름다움이 마치 내 것인 양 당연히 받아들인다.
별을 꿀꺽 삼켰으니 행복하기 그지없다.
그의 눈에 비친 누군가의 잔영에서
내 자신의 그림자를 발견하도록
스스로에게 허락한다.
나는 춤을 춘다. 춤을 춘다.
느닷없는 날갯짓에 온몸을 전율하면서.
탁자는 탁자, 포도주는 포도주다.
술잔은…… 술잔은 뭐더라?
술잔은 탁자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나는…… 몽상적인 환영이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추상적이고,
뼛속까지 비현실적이다.
하고 싶은 말을 그에게 전부 털어놓는다.
수과(瘦果)의 별자리를 타고나서
사랑에 목숨을 거는 개미들에 관해서.
맹세하노니 붉은 포도주가 흩뿌려진
새하얀 장미가 노래를 부른다.
웃음을 터뜨리며 조심스레 머리를 숙인다.
위대한 발명품을 재차 확인하고 점검하듯이.
나는 춤을 춘다. 춤을 춘다.
내 외양을 빚어내고, 내 존재를 품어준
피부 거죽이 경악할 정도로 아름답게.
갈비뼈로 빚어낸 이브, 거품으로 만들어진 비너스,
주피터의 머리에서 나온 미네르바가
나보다 오히려 더 사실적이다.
그가 나를 바라보지 않는 틈을 타
나는 벽에 비친 그림자를 찾아 헤맨다.
순간 내 눈에 들어오는 건,
그림을 떼어낸 자리에 뾰족하게 튀어나온 쇠못 한 개.
[생각]
이 시는 여러 문장으로 구성된 긴 시에 해당된다. 화자는 포도주를 마시고 바라보는 주체이지만 오히려 포도주인 “그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그이 눈에 비친 누군가의 잔영에서/ 내 자신의 그림자를 발견하도록/ 스스로에게 허락한다.” 이때 비로소 나는 몽상의 환영에 불과하다. 이 시는 나와 그(포도주)가 생각을 나누는 줄거리이다. 첫 문장은 “그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마지막 문장은 “그가 나를 바라보지 않는 틈을 타” 이들이 시 구성의 입구와 출구 역할을 하고 그 사이는 몸통에 해당되는 줄거리이다. 포도주인 그와 나의 관계에서 그가 바라보고 나는 상상력을 발휘한다. 춤을 추다가 그가 나를 바라보지 않는 틈을 타 정신을 차렸는지, “그림을 떼어낸 자리에” 순간 “쇠못 한 개를”를 본다. 우리가 취하는 것은 순간인가? 취한 모습이 진짜 우리의 모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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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의 시집 『슬픔을 밀어내는 시간』
… 牙虎의 詩論 9. 2023년 2월에 쓰다.
詩는 모름지기 ‘말씀의 寺院’이다. 시 쓰기는 신을 만나는 마음으로 쓰는 것! 진솔하고 진실하며 절실하고 간절하며 절박한 그 어떤 것이어야 한다. 詩를 어떻게 쓸 것인가를 지난겨울 내내 생각하였다. 시의 구성에 대한 그 소고(小考)를 정리하였다. ‘구성’은 ‘줄거리’이다. 이기호의 [생각]을 각 詩에 덧붙였다. 그러나 아직 나는 잘 모르겠다. 이제 봄이다. 활기차게 살아야겠다. ― 이기호 시인.
[출처] 이기호의 시론(詩論) 10 : 시의 구성(plot)을 논하다|작성자 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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