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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보쓰기- 신은선
1968년~2022년
년도 | 나이 | 내용 |
1968년 | 1세 | 1968년음력 9월2일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용암리814번지에서 1남 4녀의 둘째, 평산 신가 신숭겸 할아버지의 36대손으로 태어남. |
1969년 | 2세 | 인간이 달에 첫 발을 디딘 역사적인 해 |
1970년 | 3세 | 어렴풋하게 기억나는데 햇살이 재봉틀 다리에 묶인 나를 따스하게 감싸 줌(훗날 어머니께서 과수원에서 일하시면서 마루에 떨어지지 않게 재봉틀 다리에 묶어 놓았다고 하심) |
1971년 | 4세 | 타일로 된 부엌앞에서 사촌들과 사진을 찍음. 할아버지께서 갓을 쓰시고 삼베 옷을 입으시고 흰 수염을 쓰다듬으시며 웃으셨던 기억 |
1972년 | 5세 | 장터 큰집 마당에 꽃상여가 놓여 있고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렸던 기억이 남(할아버지 돌아가심). 작은큰아버지 농약사옆 냇가에 큰비가 내려 돼지가 떠내려가는 풍경이 기억남. |
1973년 | 6세 | 아버지께서 비가 오면 먼 산을 바라보시면서 노래하심. 큰아버지께서 내가 순하고 착하다고 “순덕이”라는 이름을 지어 불러주심. |
1974년 | 7세 | 작은 보자기에 옷 몇가지 넣어 머리에 이고 신작로 길을 걸어 장터에 있는 큰집으로 살려감. 큰엄마께서 반겨주심. 이때부터 큰집에서 살았던 것 같음.(큰집에는 독자인 오빠 한분밖에 없어서 내가 귀여움을 많이 받음) 큰아버지께서 마작을 치시고 밤에 돌아오시면서 누런 봉투에 따끈한 설탕이 뿌려진 찐빵을 사 오심. |
1975년 | 8세 | 부석국민학교에 입학을 함. 장터 장미꽃 울타리가 예쁜 과수원 2층집 딸로 친구들이 기억함, 큰엄마께서 분홍색 원피스를 만들어 주심. 오빠 대학교 친구들이 농활을 와서 이층소파에 모여 기타를 치고 노래하던 모습이 떠오름. |
1976년 | 9세 | 큰아버지 친구분께서 담임을 하셔서 귀여움을 독차지함. 오빠의 여자친구로부터 영문과 한글로 된“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책을 처음으로 선물 받음. 큰아버지 드시라고 작은 항아리에 쇠고기 장조림을 만들어 놓은 것을 몰래 먹었던 일 |
1977년 | 10세 | 초임이신 담임선생님과 방과후에 급식 곰보빵을 먹던 기억 처음으로 큰엄마와 기차를 타고 오빠가 다니는 경북대학교를 구경함. 친구들이 우리집에 놀러 오고 싶다고 조르던 기억. 할머니께서 치매로 옷을 자주 버려 엄마가 가끔씩 오셔서 빨아 주시던 모습이 기억남. |
1978년 | 11세 | 4학년 담임선생님(김동택) 이름으로 동태탕 끓이는 그림으로 야단을 맞음. 치매이신 할머니를 놀리고 할머니께서 모아 놓은 동전을 주머니에서 몰래 꺼내서 과자를 사 먹었던 일. 큰아버지께서 제2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으로 당선되심. 선거 운동하는 모습과 당선되니 많은 사람들이 선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집으로 왔던 것으로 기억함. |
1979년 | 12세 | 큰집 사촌오빠가 풍기 고등학교에 재직하면서 결혼을 해서 새언니가 생김. 최초로 피아노가 있는 집이 됨. 가정환경조사를 할 때 손을 많이 들어 우쭐했던 기억 |
1980년 | 13세 | 언니가 써 준 반공대회 원고로 웅변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음. 불장난을 하다가 오른손화상을 입고 붕대를 메고 수학여행으로 경주 불국사를 다녀옴, |
1981년 | 14세 | 중1때 담임 선생님과 먹으라고 내 생일날 큰엄마가 담장 너머로 따끈한 미역국과 불고기 잡채 등을 싸주셔서 맛있게 먹었음. 학교가 과수원 앞에 있었음. 아이들이 부러워함. |
1982년 | 15세 | 웅변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아 학교 대표로 영주시 대회에 참가함. 치매로 고생하셨던 할머니께서 돌아 가셔서 친구들과 이층에 모여 습자지로 상여에 장식 할 꽃을 만들었음. |
1983년 | 16세 | 고입연합고사를 침. 큰아버지께서 고혈압과 심근경색으로 쓰러지셔서 돌아가심. 동생을 데리고 사촌들이 유학해서 살고 있는 서울을 처음으로 가봄. |
1984년 | 17세 | 부석에서 명문 영주여고에 합격하여 다니면서 자취를 시작함. 큰엄마께서는 오빠가 대구 경원고등학교에 재직하면서 조카들 봐준다며 과수원을 세놓고 대구로 가시고 나는 드디어 용암리 집으로 돌아감.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였으며 성적도 잘 나오지 않아 방황을 함. 학교는 다르지만 친하게 지낸 친구가 자취를 하다가 연탄가스로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길로 여행을 떠남. |
1985년 | 18세 | 집에서 엄마가 싸주시는 도시락을 가지고 오는 친구들이 부러웠음. 야자를 하고 자취방에 오면 연탄불이 꺼져 있고 불을 피우려면 주인집 눈치를 봐야 했음. 그래서 그냥 두꺼운 옷들을 깔고 이불을 머리까지 쓰고 추위에 떨면서 잠을 잠. “별이 빛나는 밤에”사연을 보내 소개되기도 했음. |
1986년 | 19세 | 고3으로 아침 7시에 학교에 가서 밤늦게까지 공부를 함. 커피믹스를 가루째 털어 넣으며 잠을 떨치기도 함. 대학입학 학력고사를 잘 보지 못해서 실의에 빠짐. |
1987년 | 20세 | 주변에 권유로 재수를 시작함. 새언니 미술학원에 딸린 방에서 단과 학원을 다님. 서울로 간 친구들은 데모를 한다고 난리였고 대구서도 동성로 주변이 체류탄 냄새로 난리였음. |
1988년 | 21세 | 재수에 실패하고 서울로 도망가려고 했는데 큰엄마에게 잡혀서 억지로 유아교육학과에 들어가게 됨. 장학금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열심히 다니는데 교수님 눈에 띄여 교수님 아이들 두명을 지도하게 됨. 한겨레 신문 창간(88년 5월)과 함께 새벽신문배달을 함.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착한 남자친구를 사귀게 됨. 친구4명과 크로마 하프를 사서 배우기 시작함. 차츰 공부가 재미있어짐. |
1989년 | 22세 | 남자친구가 수도방위사령부에 입대함. 친한 친구와 지리산 종주와 강원도 일주하고 마지막으로 관악산 수방사에 면회를 갔는데 친구가 헌병들이 멋있다고 소개를 해달라고 함. 교육열이 높으신 부모님께서 대구에 아파트를 사서 초등학교에 다니던 남동생을 유학 보냄. 언니는 대학교에서 학생회장을 하게 되면서 너무 바빠서 내가 동생 밥을 해주고 도시락도 싸주기 시작함. |
1990년 | 23세 | 교수님 추천으로 유치원에 근무를 하게 됨. 첫 월급을 타서 인켈 전축을 삼(LP판을 모으기 시작함). 피아노를 할부로 삼. 한 밤 중 보초를 서다가 눈온다고 남자친구가 관악산을 벗어나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함(탈영?) |
1991년 | 24세 | 걸프전이 터져서 남자친구 제대가 미뤄짐. 언니가 선을 봐서 결혼을 함. 아버지와 언니가 식장에 걸어들어 가는 연습을 함. 아버지의 자식 사랑하는 마음을 알 수 있었음. 엄마에게 돈을 빌려 경산 하양에 조그마한 학원을 개원함.(돈을 다 갚지 못하고 결혼함) |
1992년 | 25세 | 흰눈이 펑펑 내리는 날 긴 연예 끝에 남자친구와 결혼을 함(경주이가 종손으로 문중 어르신들의 성화에 일찍 결혼하게 됨). 부석에서 관광차가 오다가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예고개를 넘지 못하고 돌아감. 부모님께서는 전날 오셔서 다행이 였음. 남편이 친구 중 첫 번째로 결혼을 하게 되어 친구들이 정장을 빌려 입고 난리였다고 함(사진을 보면 옷차림이 모두 촌스러움). 신혼여행을 설악산으로 가서 기차를 타고 롯데월드를 구경함. 기차 안에서 폐백 할 때 받은 돈을 세면서 감(다리 아프게 절한 보람이 있었음-상당한 액수였음). 강릉으로 가는 신혼여행팀들 중 남편이 노래를 잘 불러 상을 탐. 기다리던 첫딸이 태어남.(몇날 며칠을 세워 가며 이름을 지음: 밝을 예(叡)총명할 민(慜)) -너무 예민하여 잠을 잘 자지 않아서 키우기가 힘들었음(훗날 채연으로 새 이름을 지어줌) |
1993년 | 26세 | 딸이 현관 문 앞에서 떨어져 얼굴을 갈아 상처가 남. 어머니께서 봐주시다가 다쳐서 당황하심. 첫 친손주라 엄청 이뻐하심. 학원이 너무 잘 되어 남편과 함께 확장하게 됨. |
1994년 | 27세 | 운영하고 있던 에덴주택 상가에서 분양을 한다고 해서 아버님께 대출을 부탁드리니 선 듯 큰 돈을 대출 해주셔서 그 돈을 들고 비오는날 둘째를 임신한 나는 첫째 딸을 업고 불로동 에덴주택에 가서 계약서를 작성하고 분양을 받음, 둘째딸이 태어남. 친정 엄마께서 병원에 오셔서 눈물을 흘리시며 엄청 섭섭해 하심 |
1995년 | 28세 | 친정아버지께서 쓰러지셔서 동산병원으로 오심. 퇴원 후부터 신장 투석을 시작하심. 둘째딸이 대구 친정집에 석 달간 가 있었음(엄마 말씀에 아버지께서 지민이의 재롱에 웃음을 지으시며 좋아하셨다고 하심)) |
1996년 | 29세 | 중학교옆 건물을 임대하여 최신식 방송시설, 강의실을 갖춘2.3층 입시학원을 남편이 운영하게 됨. 친정아버지 신장 투석중 합병증으로 돌아가심. |
1997년 | 30세 | IMF 외환위기로 인해서 학원 운영이 점차 어려워짐. 적자가 누적되어 보증금을 거의 다 까먹음. 아이들이 유치원 마치고 학원에 와 자판기에 율무차를 뽑아 먹는 것을 좋아했음. |
1998년 | 31세 | 누적되는 적자로 힘들었지만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침. 대구에서 유명한 영어 강사를 비싼 월급을 주면서 모셔 오기도 함. 아이들과의 많은 에피소드가 있음. |
1999년 | 32세 | 입시학원을 큰 손해를 보고 폐원하게 됨. 종합학원도 권리금을 받고 넘김. 놀 수가 없어서 남은 봉고차를 개조하여 포장마차를 함. 재료비를 아끼기 위해서 이른 새벽에 칠성시장에 가서 원재료를 사 와서 손질하여 오후에 장사를 함.많이 바쁘지 않을 때 신서동 반 지하 봉제공장에 인형 솜 넣고 눈알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함. 12월 날씨가 너무 추워서 잠시 휴점에 들어가면서 벼룩시장을 보다가 시지에 작은 어린이집이 싸게 나와서 운영을 시작함. |
2000년 | 33세 | 차츰 어린이집이 안정이 되고 빚도 조금씩 갚아나감. 셋째 딸인 밀레미엄 베이비 수빈이가 태어남.(시어머니 머리 싸매고 누워 계셨다고 함). 첫째와 둘째는 봐주셨는데 셋째는 봐주지 않으셔서 운전석 옆에 태우고 시지로 함께 출퇴근함.(브레이크를 밟을 때 여러번 바닥으로 뒹굴어 가슴이 아팠음). 첫째를 욱수 초등학교로 전학시킴. |
2001년 | 34세 | 둘째딸이 아빠 자전거 뒤에 타고 가다가 발 뒷꿈치를 많이 다쳐서 아직도 융터가 있음. 아버님께서 밭에 가셨다가 개구리 참외를 따오셔 나만 먹으라고 슬며시 건네주심. |
2002년 | 35세 | 2002월드컵을 보기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영남대에 갔다가 셋째를 잃어 버릴뻔함. 시지에 어린이집을 정리하고 진량에 작은 어린이집을 운영함. 남편은 영수학원을 다시 운영함. |
2003년 | 36세 | 넷째 기다리던 종손이 태어남(아버님께서 철학관에 가셔서 그날 바로 이름을 지어 오시고 어머니께서는 비싼 미역을 사셔서 한솥 끓여놓으심.) 백일도 안된 아들을 안고 온 동네를 돌아다니심. 문중에서도 난리가 났음(귀한 종손이 태어났다고 좋아 하심) 어머니께서 아들을 봐주셔서 편하게 일을 함 |
2004년 | 37세 | 학원이 안정되고 수강생들도 많아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열심히 일을 함. |
2005년 | 38세 | 보국아파트가 입주를 시작하여 분양을 받아 가정어린이집을 하나 더 운영하게 됨. 막내 아들이 어린이집 미끄럼틀에서 눈가를 다침(어린이집 아이가 다치지않고 우리 아들이 다쳐서 다행이라고 생각함). |
2006년 | 39세 | 어린이집 연합회에서 해외 연수로 싱가폴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를 다녀옴, 멀라이언 동상과 유람선. 원주민들 마을이 인상 깊었음. |
2007년 | 40세 | 원장님들과 대만을 여행함(대만의 협곡을 아슬아슬하게 달리던 운전사가 기억남). 셋째를 데리고 가서 견문을 넓혀줌.(딸이 식당에서 먹고 싶은 것을 영어 주문을 못해서 난감함을 겪음). |
2008년 | 41세 | 학원 건물이 경매에 넘어가게 되어 경매를 받으려고 했는데 사정상 무산이 되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까봐 걱정을 많이함.(몇 년 뒤 돌려 받음). 남편과 셋째, 넷째만 데리고 일본 여행(눈을 맞으며 온천을 즐기고 기모노를 입어봄, 친절한 일본 사람들의 편견을 버리게 됨) |
2009년 | 42세 | 어머님이 대장암 3기로 진단받음. 대구사이버대 특수교육학과에 편입함.(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아이들을 위해 전문가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함).남편이 학원을 접고 황제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함. 어린이집연합회 일본 연수(본받을 민족성은 본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음) |
2010년 | 43세 |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함(도룡농 잡으러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학교가 발칵 뒤집혔음). 어머님 병원에 계실 때 대학에 다니던 첫째딸이 간호를 한다고 고생을 함.(집에 어린아들과 연세드신 아버님을 바라지해야 했음) |
2011년 | 44세 | 대장암으로 고생하시던 어머님이 돌아가심(장례를 전통식으로 치름) 영남대 교육대학원 교육학과에 입학함. |
2012년 | 45세 | 경산시장 상을 받음. 어머님 돌아가시고부터 조금씩 아버님 치매증상이 보이기 시작함. 남편과 막둥이만 데리고 북경 만리장성을 다녀옴(자금성안에서 아들을 잃어버려 두 시간동안 찾아 헤매고 다님) |
2013년 | 46세 | 어린이집을 인수해주고 발달재활 심리치료센터를OPEN운영함. 자기주도학습 강사 자격증을 땀. 아버님의 치매증상이 심해져서 하루에 옷을 몇 번이나 갈아 입혀야 했음. 집을 나가셔서 경찰이 오고 난리가 한두번이 아니였음. 사회복지사 자격증과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땀. |
2014년 | 47세 | 영남대를 졸업함. 키즈&맘 발달 심리 센터를 운영하면서 여러 가지를 배움. 장애를 가진 부모님들의 입장을 이해함 . 대구한의대 교수님들과 공자님의 유적지를 탐방함-초등생 아들을 데리고 가서 태산에 올라가 호연지기 뜻과 공자님의 기를 받아 옴. 첫째와 서유럽을 여행함(고흐가 작품활동을 하였고 동생과 나란히 묻혀있는 프랑스의 작은 마을 오베르 쉬르와즈가 인상 깊었음) |
2015년 | 48세 | 파티마병원에서 희귀난치성병을 진단받음.(주치선생님께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된다고 함) 전문가로서의 부족함을 느껴 다시 대구대 특수교육학과 학습장애전공으로 박사과정을 시작함. 셋째와 동유럽을 12일 동안 여행함(폴란드의 아우슈비츠를 둘러보고 버스 안에서 본 “피아니스트”영화가 오래 기억됨) |
2016년 | 49세 | 아버님을 요양병원에 모시고 남편과 죄책감으로 힘들었음. 중1 아들이 학교서 싸워 다쳐 놀람(상대어머니의 사과로 학폭위를 무산시킴). 4월에 태국여행을 함(새를 사라고 하던 슬리퍼를 끌고 버스까지 쫓아오던 소년이 생각남). 5월에 둘째와 홍콩, 마카오를 여행함(장국영이 사망한곳과 야경이 인상적임). 6월에 대학친구들과 필리핀 보라카이로 바캉스를 떠남(해변2층 스타벅스에서 혼자서 사람구경을 몇 시간동안 함)). 8월 방학에 아이들4명을 모두 데리고 상해에 김구선생님 발자취를 탐방함) 11월에 페키지로 스페인과 포루투갈을 혼자 다녀옴(많은 건축물과 유적지 협곡이 멋진 론도와 누에보 다리에서 일행을 놓쳐서 당황함.) 리스본은 꼭 다시 가볼 예정임.("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읽고 생긴 버킷리스트) |
2017년 | 50세 | EBS교육방송 눈맞춤이라는 프로그램에 아버님과 출연함(가슴이 뭉클해서 눈물을 많이 흘림) 1월 방학동안 원장님들과 라오스를 여행함(사탕과 문구류를 나누어주니 순수한 웃음으로 답을 해주던 소년들이 생각남) 6월 둘째가 어학연수하고 있는 필리핀 세부로 여행을 함(첫째와 막내를 데리고 감) 8월 대구한의대 교수님들과 샤먼대학을 탐방함(중국의 일반인들의 삶을 볼 수 있는 기회였음) 12월둘째 다시 호주로 워킹을 떠남-걱정이 되어 겨울방학을 맞아 남편과 호주를 다녀옴(원 데이 투어를 하면서 호주에서의 일주일을 즐김) 교수님의 추천으로 대구대 특수교육연구소에서 근무를 시작함. |
2018년 | 51세 | 대구대 박사과정을 수료함. 아버님께서 2년 넘게 요양병원 계시다가 돌아가심. 1월 베트남 다낭을 다녀옴(프랑스의 식민지였지만 베트남인의 유연성이 부러움) 5월 스위스 이탈리아를 여행함(스위스의 자연풍경과 이탈리아의 문화 유적지에 감탄이 저절로 남) 8월 원장님들과 블라디보스토크를 다녀옴(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애쓰신 분들을 위한 기념관과 탑이 있어 참배함). 9월 터키 동서양의 문화를 느끼고 싶어 떠난 여행(역시~) 10월에 다섯째 용복이(도베르만종)를 아들이 입양해서 키움. 딸들이 준비한 리마인드웨딩촬영을 함(세월의 무상함을느낌) |
2019년 | 52세 | 1월 셋째와 베트남, 캄보디아 여행을 다녀옴(7~8살 정도 보이는 남자아이가 1달러를 벌려고 어깨 등을 맛사지 해주는 모습이 짠함. 나만의 카렌시아로 농막을 지음(혼자만의 공간이 생겨 너무 좋음). 논문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음(소논문 두 편이 학회에 발표됨-본논문 발표 자격이 주어짐) 7월 중국 장가계를 다녀옴(천하의 절경을 눈과 가슴에 담아옴) 8월 지중해연안 발칸 여러나라를 페키지로 다녀옴(보스니아. 세르비아. 불가리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등(각나라가 비슷한 듯 다름) 11월 남편과 이사회임원들 부부동반으로 하와이 연수를 다녀옴(원주민의 애환을 담은 포퍼먼스를 보면서 가슴이 찡함.하와이의 무지개와 와키키해변이 대박이였음) |
2020년 | 53세 | 2월 인도여행을 예약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취소함 8월 논문심사통과로 박사학위(대구대는 특수교육학과는 문학박사학위를 줌) 취득함. 농진청 교육체험농장 심사위원을(전국30여명) 뽑는데 서류를 내서 합격하여 전국으로 교육체험농장 심사를 다니고 있음 대구대 특수교육 연구소 연구교수를 그만두고 경산시 농업기술센터에서 귀농귀촌 교육을 받음. 자부담 50%와 경산시보조금 50%로 비닐하우스 3동을 지음 첫 농사로 깻잎 씨를 뿌려 수확을 함(가슴이 벅차고 생명의 신비로움은 있지만 몸은 힘듬- 깻잎이 푸른 지폐로 보이기도 함). |
2021년 | 54세 | 경산교육청에 홈페이지에 학습코치 모집이 떠서 1차 서류를 내서 합격하고 2차 면접,질문에서 최종합격하여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음(깻잎만 따고 혼자 있으니 사회적 관계가 필요할 것 같았음). 주말과 시간 날 때 짬짬이 깻잎을 땀. 제1회 치유농업사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대가대 양성기관에 서류를 내 합격하여 교육을 받음. 12월에 큰딸 앞으로 산 아파트를 처분하여 남편과 반반씩 나누어 서로 터치하지 않고 쓰기로 함. |
2022년 | 55세 | 제1회 치유농업사 2급 시험에 1차, 2차에 합격하여 자격증을 취득함. 막내아들이 재수하지 않고 국립대에 합격하여 걱정을 덜음. 아파트 판 돈으로 1층을 완전히 개조를 해서 우리 부부가 살고 2층은 아이들이 살도록 함. 남편이 센터를 운영하면서 복숭아농사를 시작함. 변미순박사님과 인연이 되어 수필문학관에서 수필교육을 수강하게 됨(홍억선원장님께서는 우리집 아이들4명이 다녔던 학교에 재직하심-인연이 있는 분이라 더욱 반갑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함) 2학기 19기 수필아카데미 수강을 기대하고 있음. 대학교1학년 아들과 7월10일 그리스로 떠나는 여행을 예약하고 설레는 일상을 보내고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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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알토랑같은 연보.
토시 하나 빠뜨리지 않고 읽고 또 읽어봅니다.
멋진 인생! 아름다운 생을 스스로 일구워 내신 모습에
그저 감탄합니다.
함께 공부하는 인연으로 만나 기쁘네요.
아이를 잃어 버릴뻔 한 것과
별이 빛나는 밤에 엽서.
저도 고운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은선샘!♥~'
선생님.
지루하고 미흡한 이야기 끝까지 읽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ㅎ
늘 건강과 행복 가득하시길 바래요.
편안한 밤 되세요.^^~
신은선 문우님! 주옥같은 연보로 사려되어 집니다. 저는 58년 개띠입니다. 저도 이 나이에 대구사이버대 사회 복지학과 3학년에 편입학하여 열공 중에 있답니다. 문우님의 용광로와도 같은 끈질긴 생의 투지에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를 보냅니다.또한 이토록 진지한 삶을 영위하고 계심에 저절로 존경의 마음 우러나기도 하는군요. 해외 여행도 무척이나 많이 다녀오셨는가 봅니다. 저는 좀 부끄러운 얘기지만 심한 고소 공포증이 있어서 변변하게 해외 여행을 제대로 갔다 온 적이 없어요. 그런 점에서 부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6월20일(월) 종강때 뵙겠습니다.
멋진 연보입니다. 복숭아가 열리면 복숭아를 보고싶네요.
장하십니다. 신은선 님의 수필 소재가 연년마다 가득하네요. ~~~ 저는 연보쓰기 아직도 미완성인데 ㅎㅎㅎㅎㅎ
연보를 보니 어안이 벙벙합니다. 정말 열심히 사셨군요.
많은 곡절도 있었겠지만 아주 행복한 여정을 밟아오신 것 같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