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천을 위해 짐은 내려놓고 힘은 뺍시다.> 주님 승천 대축일(마르16,15~20)
오늘은 부활 제7주일이며 주님 승천 대축일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다음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마르16,19).” 라고 승천에 대해 묘사합니다.
그리고 제2독서에서는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능력을 펼치시어,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시고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에페1,20).” 라고 전합니다.
오늘 전례의 말씀과 기도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키워드는 ‘하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하늘은 가장 높은 곳을 상징하고
하느님께서 계시는 거룩한 공간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늘은 구원의 표징으로서 인간이 바랄 수 있는 모든 행복과 사랑,
희망과 이상, 자신의 고유함과 자기다움이 궁극적으로 실현되는 곳입니다.
즉 하느님의 창조 의지가 실현되고,
이미 시작된 하늘나라와 만물이 완성되는 곳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승천하셨다는 고백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벗어나서
신적 자유의 영역으로 들어가셨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승천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태초부터 지니셨던 초월적 영광에로 드신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아니 계신 곳 없이 모든 곳에 다 계시고,
아니 계신 시간 없이 모든 시간 속에 다 현존하십니다.
예수님의 귀천(歸天), 즉 승천은 우리 곁을 떠난 것도 아니며 이별도 아닙니다.
영원히 우리와 소통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인 우리 곁에 함께 계십니다.
특별히 오늘 제1독서에서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는 동안
천사들이 제자들에게 건넨 말을 전합니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사도1,11)”
이 말씀은 얼핏 보기에 원인을 묻는 하나의 질문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답을 묻는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엄청난 요구를 담고 있는 명령의 말입니다.
이 말은 이제부터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을 것이 아니라
승천하는 삶을 살라는 명령의 말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승천하는 삶이란 무엇입니까?
하늘나라란 하느님의 왕권과 통치가 실현되는 나라이고
승천의 삶이란 바로 이 하느님의 주권을 체험하는 삶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힘들게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과 고통, 저주와 수치를 인내하고 견디고 참아냈습니다.
우리 역시 하느님의 통치권에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고
세상의 고난과 환난을 감내하고 견디어 내는 바로 그것이 승천의 지상적 체험입니다.
부귀와 영광을 누리는 것이 하느님의 주권에 참여하거나
하느님의 통치에 순응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지고 참기 힘든 모욕과 고통을 견디어 내고 승화하는 것이
바로 하늘에 오르는 승천의 일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승천의 체험은 우리들도 이 땅에서 참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돌아왔을 때,
몸은 힘들고 피곤하지만 마음만큼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매우 큰 희열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또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했을 때,
혹은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원수를 사랑하리라고 마음먹었을 때 등등,
이때에 어떤 말이나 글의 표현으로는 형언할 수 없는 큰 기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바로 이때 하늘나라의 통치권이 나의 일상에 피투 되어 들어온 것이고
내 자신이 하늘나라에 오르는 순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늘에 오르는 “승천”의 성스러운 사건은
지금 여기에서 십자가의 고난을 감내하고 고통을 견디는 일이며,
그러하기에 승천은 주님 십자가 왕국의 통치권에 순종할 때 주어지는 선물인 것입니다.
승천은 자기 비움과 십자가의 극심한 고난을 겪은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입니다.
승천을 위해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고 움켜진 짐들은 내려놓고 힘은 뺍시다.
우리와 마지막 순간까지 동행하는 것은 돈도 명예도 권력도 아니고,
친척이나, 친구나 연인도 아니며, 선업(善業)뿐입니다.
믿음이 없는 이에게는 스카이(sky. 하늘·창공)의 하늘만 있고,
신앙인에게는 헤븐(heaven. 하늘나라·천당)의 하늘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하늘을 바라보고 살고 있습니까?
주님 승천 대축일을 지내며 우리들의 삶의 태도를 진지하게 돌아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