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 신라 적성비 국보198호
소 재 지;
성재산 적성산성 내에 위치한 신라시대의 비로, 신라가 고구려의 영토인 이 곳 적성을 점령한 후에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세워놓은 것이다. 1978년에 30㎝ 정도가 땅속에 묻힌 채로 발견되었는데, 비면이 깨끗하고 글자가 뚜렷하다. 비(碑)는 위가 넓고 두꺼우며, 아래가 좁고 얇다. 윗부분은 잘려나가고 없지만 양 측면이 거의 원형으로 남아있고, 자연석을 이용한 듯 모양이 자유롭다. 전체의 글자수는 440자 정도로 추정되는데, 지금 남아있는 글자는 288자로 거의 판독할 수 있다. 글씨는 각 행마다 가로줄과 세로줄을 잘 맞추고 있으며, 예서(隸書)에서 해서(楷書)로 옮겨가는 과정의 율동적인 필법을 보여주고 있어 서예 연구에도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단양 신라적성비(丹陽新羅赤城碑)는 높이93㎝, 윗너비107㎝, 아랫너비53㎝이며, 삼국시대에 신라가 죽령(竹嶺)을 넘어 단양 일대의 고구려 영토를 차지하여 국경을 넓히고 이곳의 백성들을 선무(宣撫)한 표적으로 세운 비다. 당시 진흥왕이 명하여 신라척경(新羅拓境)을 돕고 충성을 바친 적성인(赤城人) 야이차(也尔次)의 공훈을 표창함과 동시에 장차 이와 같이 신라에 충성을 바치는 사람에게는 똑같은 포상을 내리겠다는 국가정책의 포고 내용이 담겨 있다. 국왕의 교시를 받은 고관 10명의 이름이 나오고 있는데 이사부(異斯夫), 비차부(比次夫), 무력(武力) 등 당시의 관계로 보아 이 석비의 건립년대는 신라 진흥왕 6∼11년(545∼550)경으로 추정된다. 1978년 1월 6일 단국대학교 학술조사단에 의하여 발견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