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12월 7일(현지시간) 일본의 진주만 기습에서 살아남아 지금도 생존하고 있는 이는 22명에 이른다. 그 가운데 한 명인 미국 오레곤주 벤드에 사는 리처드 C '딕' 히긴스가 지난 19일 자택에서 10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AP 통신이 21일 전했다. 손녀 앤젤라 노턴은 할아버지가 자연사했다고 전했다.
고인은 두 자녀와 두 손주, 네 증손주를 남겼다. 가족들은 이날 고인이 군 시절 받은 훈포장들을 죽 펼쳐놓은 채 벤드의 한 교회에서 장례식을 치렀다. 그의 유해는 60년을 해로하다 2004년에 82세를 일기로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 위니 러스 곁에 안장되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옮겨진다. 손녀는 호스피스에 입소하기 전 고인이 “위니 러스를 볼 준비가 돼 있단다"라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히긴스는 83년 전 일본 전투기들이 새벽 야음을 타고 하와이까지 날아와 폭탄을 떨어뜨린 날, 해군 기지에 배속된 순찰대에서 통신병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2008년 텍사스주 프레데릭스버그에 있는 국립 태평양전쟁기념관과 구술 인터뷰를 통해 폭탄이 떨어졌을 당시 참호의 3층에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벙커 밖으로 뛰어나와 참호 끝까지 달려갔다. 그곳에 이르렀을 때 비행기 한 대가 참호 바로 위에 와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서 15m쯤 떨어진 곳에 비행기가 있었으며, 참호로부터는 30m 상공에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비행기 날개에 일장기의 붉은색 원이 “커다란 붉은색 미트볼"처럼 눈에 들어왔다고 덧붙였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손녀 노턴은 할아버지가 겸손하며 친절했다며 자주 학교를 찾아가 진주만, 2차 세계대전, 대공황을 주제로 얘기를 들려주곤 했다고 돌아봤다. 사람들에게 역사를 가르쳐 반복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뜻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자신에 대한 얘기는 절대 없었다. 집에 돌아오지 못한 영웅들 얘기를 했다."
히긴스는 1921년 7월 24일 오클라호마주 맹검 근처 농장에서 태어났다. 1939년 해군에 입대해 20년 뒤 전역했다. 항공기 제조사인 노스롭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다. 나중에는 노스롭 그루만에 취업했고, 다른 방위산업체들에도 근무하며 B-2 스텔스 전폭기 제조 일을 하기도 했다.
진주만 기습을 겪고도 지금껏 생존한 이가 22명에 이른다는 것은 '진주만 생존자 아들딸 모임'의 캘리포니아 책임자 캐슬린 팔리가 전한 것이다. 이 모임은 1958년 결성됐는데 생존자 모두가 진주만 생존자 협회에 가입한 것은 아니라며 자신에게 알려지지 않은 생존자가 있을 수 있다고 털어놓았다.
진주만 기습은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기습 당시 2400명의 병사가 목숨을 잃었다. 미 전함 애리조나호에서만 1177명의 해군 수병과 해병대원들이 몰살돼 전체 희생자의 절반 가까이가 됐다. 미군 역사학자인 J 마이클 웽거의 집계에 따르면 하와이 오아후 섬에 1941년 12월 주둔하고 있던 미군 장병은 8만 7000명가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