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탐험사 100장면 85 - 세계 최고봉, 32년만에 오르다 초모룽마 등정한 에드먼드 퍼시벌 힐러리(195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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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4.04.30. 08:02조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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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탐험사 100장면
세계 최고봉, 32년만에 오르다
초모룽마 등정한 에드먼드 퍼시벌 힐러리(1953년)
요약 지상에서 가장 높은 산 초모룽마는 북극과 남극에 이어 제3의 극지라고 불리기도 한다. 1953년, 뉴질랜드 알프스에서 등반을 시작한 힐러리가 최초로 초모룽마를 올랐다. 32년 동안 수많은 영국인들이 도전한 8,848m의 초모룽마 등정에 영국 10차 원정대가 성공하는 데 47일이 걸렸다.
초모룽마
지상에서 가장 높은 초모룽마(8,848m)는 북극 · 남극에 이어 제3의 극지라고 불린다. 얼마 전까지 에베레스트라고 불린 이 산은 본디 티베트어로 초모룽마(초모랑마 · 세계의 여신), 네팔어로 사가르마타(눈의 여신), 중국어로는 추랑랑마(珠穆朗玛)라고 불렸다. 그것을 몰랐던 영국이 히말라야 측량에 공이 큰 조지 에베레스트 경을 기리려고 에베레스트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초모룽마 등정에 가장 집착한 나라는 영국이다. 영국은 1921년부터 1953년까지 32년 동안 열 번이나 도전했다. 티베트 정부가 입산을 금한 8년과 2차 세계대전 기간을 빼면 거의 해마다 원정대를 보낸 셈이다.
1921년의 1차 원정에서 조지 말로리는 티베트 쪽에서 서쪽 능선 6,000m 지점에 올라 안부(鞍部 · col;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 말안장처럼 우묵한 곳)를 발견했다. 노스 콜(North col)이라 불리는 이곳에서부터 능선을 따라 오르면 꼭대기에 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듬해 말로리 · 조지 핀치 · 찰스 브루스 세 사람은 8,225m까지 올라 역사상 맨 처음 8,000m를 돌파했다. 8,000m봉 최초 등정 기록(안나푸르나 · 8,078m)이 1950년에 이륙된 것에 비하면, 말로리는 그보다 147m나 더 높은 곳을 28년 전에 오른 셈이 된다.
거기서 핀치와 브루스는 8,326m까지 산소 마스크를 쓰고 올랐다. 이 일로 산소 마스크의 도움을 받는 것이 진정한 등반이냐 하는 논란이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1924년 3차 원정대가 떠나기 전 말로리는 '왜 에베레스트에 가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에베레스트가 거기 있기 때문에(Because it is there)'라는 멋진 말을 남겼다. 그 무렵 영국에서 가장 뛰어난 등산가로 존경 받던 그는 8,500m 지점 북쪽 능선에서 사라져 돌아오지 못하고 말았다.
6월 8일 아침 말로리와 앤드루 어빙은 제6 캠프를 떠나 정상으로 향했다. 그들을 지원키로 한 노엘 오델이 제5 캠프를 나와 7,925m에 이르자 갑자기 구름이 갈라지고 눈앞이 탁 트이면서 멀리 초모룽마 정상이 보였다. 꽤 멀었지만, 8,600m쯤 되는 곳 눈덮인 언덕 위에서, 그 위에 얹힌 듯한 봉우리를 향해 까만 점 2개가 올라가고 있었다.
오델이 지켜보고 있는 사이에 또다시 구름이 몰려와 시야를 가렸다. 그 뒤로 말로리와 어빙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9년이 흐른 뒤 그들이 썼던 산소 마스크와 피켈이 발견되었는데, 산소 마스크는 하나뿐이었다.
그들이 정상을 밟고 내려오는 길에 죽었는지, 올라가다가 죽었는지는 지금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많은 산악인이 요즘도 이 수수께끼를 풀려고 그들의 주검을 찾고 있다. 만약 내려오는 길에 죽었다면, 초모룽마에 맨 처음 오른 영광을 말로리와 어빙에게 돌려야 할 것이다.
3차 원정에서는 말로리와 어빙말고도 셰르파가 7명이나 눈사태로 죽었다. 그러나 에드워드 노턴이 산소 마스크 없이 혼자서 8,572m까지 올랐다.
1953년 5월 29일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영국 왕위에 오르는 대관식 전날이었다. 잔치 분위기로 들뜬 그 때, 영국대가 초모룽마에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온 나라가 환호와 감격의 도가니가 되었다. 영국 등반대는 국민과 새 여왕에게 가장 멋진 선물을 한 셈이다.
영국대의 성공은 한 해 전에 있었던 스위스 원정대의 덕을 보았다. 1949년 네팔 왕국이 등산대에게 입산을 허락하자 스위스대는 처음으로 티베트 쪽이 아닌 네팔 쪽에서 오르는 사우스 콜(South Col) 루트를 개척했다. 여기서는 초모룽마가 한눈에 보였다. 영국대는 이 길을 따라 정상을 밟았다. 이 루트는 오늘날도 등산가들이 제일 많이 거치는 코스이다.
하늘 아래 제일 높은 곳
승리를 나타내는 사진 가운데 인간이 초모룽마에 처음 올라 우뚝선 순간처럼 승리의 순간을 엄숙하고 장쾌하게 나타낸 사진이 또 있을까.
헨리 헌트가 이끄는 영국의 10차 원정대가 초모룽마 등정에 성공하기까지는 47일이 걸렸다. 그들은 등반 근거지로 삼은 당보체 마을에 도착하자 여러 팀으로 나누어 석 주일 동안 고산 적응 훈련을 했다.
그 다음은 빙하를 뚫고 탄탄한 길을 닦아 엄청난 장비를 제4 캠프까지 날랐다. 그리고는 스위스대가 개척한 길을 따라 제8 캠프까지 물자를 날랐다. 이렇게 빈틈 없는 준비를 갖추고 나자 비로소 힘을 아끼고 있던 마지막 공격조가 제8 캠프에 올라갔다.
1953년 5월 26일 제1대인 토머스 부르딜롱과 찰스 에번스가 공격에 나섰다. 그들은 8,754m까지 올랐으나 날씨가 갑자기 나빠져 물러섰다. 이 것은 초모룽마 정상에 오르기 전까지 사람이 오른 최고 높이였다.
5월 28일 제2대인 에드먼드 퍼시벌 힐러리와 네팔인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가 두 번째 공격에 나섰다. 그들은 스위스대가 올랐던 8,100m 바로 아래에 제9 캠프를 만들고 하룻밤을 지냈다.
5월 29일은 아주 맑았다. 아침 6시 30분쯤 텐트를 나선 두 사람은 좋은 컨디션으로 9시쯤 사흘 전에 1대가 올랐던 남봉 꼭대기에 닿았다. 그곳에서 조금 내려갔다가 다시 위로 이어지는 능선을 오른 지 2시간 남짓, 마침내 그들은 초모룽마 정상에 올라섰다. 오전 11시 30분이었다.
영연방 국가인 뉴질랜드에서 태어난 힐러리는 본디 양봉업자였으나 뉴질랜드 알프스에서 등반을 시작해 초모룽마에 오름으로써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그는 1955~1958년 영연방 남극횡단탐험대의 일원으로 남극 대륙 횡단에 참가해 1958년 1월 4일 남극점에 닿았고, 1977년에는 제트 보트를 타고 갠지스 강을 거슬러올라 히말라야에 있는 발원지까지 도달했다. 지금은 히말라야 보호운동과 셰르파 돕는 일을 하고 있다.
보통 초모룽마에 처음 오른 사람을 힐러리라고 말하지만, 첫발을 올려 놓은 사람이 힐러리인지 텐징인지는 누구도 모른다. 굳게 입을 다문 채 수십 년을 보낸 두 사람 중 텐징은 1984년에 세상을 떴다. 누가 첫발을 디뎠건 피켈을 높이 들고 8,848m에 우뚝선 인간의 모습은 참으로 장업하고 외경스럽고 자랑스럽게 기억된다.
▼ 관련 기록은 * 최다 등정···셰르파 앙 리타 9회(모두 무산소, 그는 초오유 4회, 다울라기리 4회, 칸첸중가 1회 기록도 있음) * 최고령 등정···라몬 블랑코(1993년, 60세) ▼ 우리나라의 관련 기록은 * 최초 등정···고상돈(1977년 · 세계 열네 번째) * 겨울 등정···허영호(1987년) * 2회 등정···허영호(1987, 1993년) * 1회 등정···1988~1995년 / 23명(여성 3명 포함) 등정(이 가운데 박영석 무산소 등정, 안진섭 추락사, 김영태 · 박정헌 세계 다섯 번째로 남서벽 등반. 세계 통계는 초등 이후 약 600명 등정) [네이버 지식백과] 세계 최고봉, 32년만에 오르다 - 초모룽마 등정한 에드먼드 퍼시벌 힐러리(1953년) (세계 탐험사 100장면, 2002.7.18., 이병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