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대중을 알면 광주5.18이 보이고 대한민국이 보인다 🐥🐥
♥ 머릿말
대한민국은 우리 세대 선대분들의 피와 땀, 눈물과 기도로 세우고 지켜서, 최빈국에서 최단기간에 당당한 세계 10위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 최악의 독재국가인 북한의 70년 대남공작에 걸려, 이념 내분으로 인한 천문학적 국력이 소모되고 국가운명 또한 예측이 불가하다.
이 이념분쟁의 핵심 중 하나이기도 한 5.18은 아직도 전국민이 공감할 수있는 사건 정의조차 못내리고 있으며, 엄청난 의혹과 정치화까지 겹쳐 내분은 더욱 심화되어 가고있다.
그이유는 이미 판결난 사건임에도 김영삼의 권력남용 행사로 사건은 더욱 꼬였다.
이는 사건의 본질은 덮어둔 채 그 피해만 가지고 사건을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니 관련자나 진범들은 의인이 되도록 모두 숨겨야하고, 엉뚱한 인물을 제물로 만들어 풀자니 진상 규명은 계속 겉돌아 그 의혹과 국민 불만은 커져만 왔다.
특별법까지 만들어 진실을 덮으려 하나 완전히 속이기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이사건의 실체를 아는 사람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고, 모든 국민이 사기를 당하는 것이므로 분노 또한 당연하다.
그러므로 진실된 해결이 없으면 그 갈등으로 국민은 양분되고, 정체성까지 무너진다.
그래서 이러한 괴리와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모든 국민들은 이 사건을 일으킨 자가 누구이며, 어떻게, 왜 일어났는지를 명확히 알아야만 한다.
과거 재판에서 밝혀진대로 이 사건에 직·간접 주동자의 한사람으로 주목 받아왔던 김대중이란 인물과 관련한 여러 사건들을 위주로 거슬러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이 약간 길기도 하지만, 끝까지 읽어본 독자 여러분들 각자가 냉철한 결론을 내리길 바라며,
이미 떠난 분들의 책임을 바꿔치기 하겠다거나, 필자의 주장만을 내세우는 색깔론적 풀이가 아닌,
또 일방 조사가 아닌, 사실에 근거한 공정한 방법으로 재조사하여 대한민국의 역사가 올바로 기록되고, 국기가 제대로 세워지길 간절히 바란다.
💝 주제
■■ 광주5.18은 왜 발생했고, 그 진실은 어디까지이며, 어떻게 풀것인가
☞ 5.18과 김대중, 김대중과 5.18의 관계는
· 별개인가?
· 한몸인가?
☞ 만약 김대중이 휴전상태인 대한민국에서 주적인 김일성의 공작금과 인(병)력, 이들이 양성한 주사파 운동권 학생과 연대해 계획적으로 5.18 무장폭동사건을 일으켰다면
· 민주화 운동인가?
· 무장 봉기인가?
· 적과 내통한 반란인가?
☞ 5.18사태 모의자나 적극 가담자, 관계자와 옹호자가 진상규명 조사와 유공자 심사까지 한다면 합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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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론
얼마전 국제적 관심사로 떠오른, 10조여 원에 달한다는 김대중 전대통령의 비자금이 미국 은행에서 발견되어 CIA가 한국정부 기관에 통지했고, 확인 결과 수표의 주인은 김대중의 아들로 되어있고, 그돈의 방향은 북한이라고 전한다.
당시 문재인정부는 이를 조사하는 국정원 관계자들이 수사 비용을 많이쓴다는 웃지 못할 이유로 모조리 감방에 보냈다고한다.
또 고령의 이희호 여사가 생전에 중국 베이찡을 수십차례나 다녀왔다는 이야기는 결코 이 돈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한편 5.18 진상규명 조사위가 금년 말경에는 조사 결과를 발표해 확정지으려 서두르고있다.
하지만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진상규명조사위 구성시 국힘당이 추천한 전문위원은 모조리 부적격자라 배제한 채 더민당 추천자 위주로만 조사하고 있다는데 있다.
당별 조사위 구성은 제척사유가 없는 한, 정해진 숫자대로 각당의 전문인을 추천받아 사실과 증거대로 입증하고 규명하면 되었다.
그러나 문전대통령이 추천자 임명권을 쥐고 거부했다거나 다수당이라는 이유로 상대당 추천자를 거부하고 단독조사를 강행한다는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여기에 더민당이 추천했던 위원들 대부분이 전남대출신 유관 동문들이고, 특히 조사위원장이 5.18 직접 가담자라면 생선가게를 고양이에게 내맡긴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다.
그 진상규명조사 위원장은 다름아닌 5.18사태당시 전남대 복학생으로 5.18사태 1주일전(김대중이 처음으로 무력봉기를 암시한 정읍연설싯점) 죽창으로 무기고와 방송국을 탈취하겠다는 무력봉기 계획의 자유노트를 기록했던 장본인이자 5.18유공자로 지목받고있는 송선태 위원장이다.
더민당은 제척 사유가있는 이런 인물을 추천했고, 문재인이 임명하면서도 5.18과 무관한 국힘당 추천인은 이해관계가 없음에도 입맛에 안맞다고 모조리 거부했다.
진상조사를 합동으로 시작하면서 조사인원 구성시 일방적 차별을 둔다는것은 공정하게 조사를 하지않겠다는 의도이기 때문이다.
유공자선정 또한 인우보증이란 비상식적 방법으로 국가 보훈부도아닌 전남대 주사파 운동권출신의 강기정이 시장으로 있는 광주시가 40여년이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안방심사로 양산을 하고있다.
심지어 광주에 가보지도 않은 당시 10대에 불과했던 정치인까지 가짜유공자는 셀수도없다.
이렇게 계륵이된 5.18의 국민적 의구심은 커져만 가는데도 오해를 풀기는커녕, 특정세력은 그들만의 울타리를치고 일방적 바벨탑을 쌓아가고 있는 현실이다.
주도권을 쥔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당 추천자가 자신들의 입맛에 안맞다고 거부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몰래 부적격자들로 구성하여 일방적 진상조사를 해왔다는것은 부당하므로 그정당성은 이미 상실되었고 무효이다.
설사 정치권에서 양진영이 합동으로 진상조사를 한다 할지라도 이는 상호 결탁으로 마무리 될수밖에 없어 올바른 진상규명조사나 마무리는 기대할수가 없는 구조이다.
그러므로 5.18사건의 직.간접 관계자를 배제한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진상규명조사는 필수이고 시급하다.
💝 먼저 5.18사태가 시작된 경위와 진행과정 등을 다각도로 조사해
민주화 운동인지,
적과 내통한 정권찬탈 목적의 반란인지,
적의 공작에의한 국가전복 외침사건인지 부터 명확히 구분해 정의할수 있어야한다.
아울러 피해자에 대한 타사건과의 형평성대우, 피해당사자(유공자)의 명단과 피해(공적)공개, 위헌적 소지가있는 특별법으로 인한 일반국민들의 기본권 침해가 있는지도 확인되어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과연 그당시 5.18이 어떻게 시작되고 전개되었으며 무슨목적으로 일어났는지, 각종기록과 증언등으로 다양한 각도에서 먼저 살펴보는것 또한 순서일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5.18 주동인물로 가장 주목을 많이 받아왔던 김대중 전대통령의 과거 좌익활동도 먼저 살펴볼 필요가있다.
그는 해방직후인 1946년 좌익당의 목포조직부장, 1971년 7대 대선후보시 공약1호로 내세워 주목받던 향토예비군폐지, 1973년 해외망명중 북한조종의 조총련 대남공작의 반한단체인 한민통 초대의장(수괴)지정등 좌익 친북행적은 많다.
북한개입으로 의심받고있는 5.18사태또한 그가 중심에 있었음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다.
1980년 5.18사태의 단초가된 1979년 10.26사태이후 이른바 서울의 봄이라는 1980.3월 김대중의 본격적 대권행보와 세결집은 80.3.26 YMCA강연부터라 할수있다.
곧이어 80.4.16 한국신학대학과 4.18 동국대학강연, 1주일후열린 관훈클럽 토론회등 가는곳 마다의 주제는 "10.26사태는 독재에 항거한 전국민 혁명이며, 탄압을 받더라도 저항하면 성공한다"는 선동성 강연이었다 한다.
또 "10.26사태는 민중이 주체인 동학농민혁명, 민족주체인 3.1운동, 혁명주체인 4.19혁명을 계승한 민중, 민족, 민주의 국민적 의지의 집약적 표현이며 투쟁의 결과이고 이는 국민투쟁의 시작이지 결코 완결이 아니다" 라고 강한주장과 선동을 반복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낮설은 용어들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용어들이다)
그뒤 윤봉길의사 48주기 추모제 참석시 기자회견에서는
1.계엄령 해제
2.정부 개헌작업포기
3.정치일정 단축
4.년내 정권이양을 위해 민주화촉진 국민운동을 전개하겠다고 선언한다.
그의 측근 H씨는 김대중이 80년 5월을 민중운동의 결정적 시기로 보는듯했던 이유로는
1.장기표 심재권 조성우 이현재등 학생운동권 출신들에게 학생운동 임무를 부여하고 결행시기를 5월중순으로 결정한점.
2. 정부전복후 과도내각을 맡게될 "한국 민주제도 연구소"의 구성을 서두른점 등이었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