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홍의 나쁜 생각727 - 겨울비
김종서의 노래 <겨울비>를 몹시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그녀는 비만 오면 차를 몰고 거리를 헤맨다. 그녀는 하나뿐인 아들이 태어나기 직전에 일생에 하나뿐인 사랑을 빗길에 잃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하나뿐인 아들이 이 노래를 아주 잘 부른다고 들었다. 그녀는 지금 그 아이를 군대에 보내고 많이 힘들어 한다. 외면적으로 부족함이 전혀 없는 그녀는 늘 웃고 밝고 명랑하지만 비만 오면 비속을 헤맨다. 그녀는 전업 화가이다. 예술가라서 그런 감성을 지녔다고 이해하려는 사람들을 보면 난 답답하다. 무엇이든 어떤 틀로 규정지어야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들. 젊어서는 이들에게 일종의 거부감까지 가졌었다. 나의 이런 성향이 그들에게도 숨길 수 없는 거부감으로 다가갔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친구가 별로 없디.
시방 겨울비가 내리고, 겨울비가 내리면 제일 먼저 어딘가 헤매고 있을 그녀가 떠오른다. 헤맬 수 있다는 것도 쉽게 가질 수 없는 일종의 용기이다. 물론, 상황과 타고난 기질에 따라 그 강도가 다르겠지만.
입만 열면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떠들거나 혹은 득도한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말을 함부로 지껄이는 사람들을 보면 쓸쓸해진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엔 그런 사람들로 가득 차 보인다. 오늘은 모처럼 인사동 근처 자주 가는 악기점에 볼 일이 있어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에 겨울비가 내렸다. 난 겨울비 속을 걷다가 너무 추워 걷기를 포기할 때쯤 영락없이 감기 기운이 몸을 뎁히고 있었다.
이번 겨울비는 밤새 내릴 기세이다. 다음에 또 겨울비가 내리면 나도 차를 끌고 헤매 볼 작정이다. 내 낡은 차에 기름을 가득 넣고 악마의 유혹(커피) 다섯 캔, 제주 삼다수 열 병, 담배 다섯 갑 챙겨서 길이 닿는 대로 헤매겠다. 지금은 겨울방학이고 나의 생업은 교사이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겨울방학이 올까. 헤아려 보니 몇 번 안 남았다.
위험한 레스토랑 / 에리히 캐스트너
나는 얼마 전 내 단골 식당이
어느 섬의 야자수 나무 아래에 있는 꿈을 꾸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곳은 바르레뮌데뿐이지만,
꿈을 멀리 해외로 가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나는 창가에 말 없이 앉아 있었다.
56번 버스는
원시림이 펼쳐진 곳에 정차했다.
오랑우탄들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었다.
언제부터 이곳이 이런 모양이었을까?
이렇게 쉽게 지도가 변하다니!
내가 오기 전 이곳은 프라하 거리였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벌써 수마트라다.
웨이터에게 물어보려고 했지만,
무슨 소용이 있으랴.
웨이터 우르바네크 씨인들
딱히 뭐라고 할 말이 있을까?
그때 문이 열리고 울Uhl 박사가 등장했다.
검은 표범과 함께였다.
표범은 나와 아는 사이라도 되는 듯이
내 식탁의 빈자리에 앉았다.
나는 당황해서 표범에게 흡연을 하는지 물었다.
표범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식당 주인이 직접 나타나
이 진기한 손님의 배를 간질였다.
완두죽과 베이컨을 내온 웨이터는
크게 겁을 먹고 슬금슬금 뒷걸음쳤다.
표범은 음식은 내버려 두고
웨이터를 먹어 치웠다. 불쌍한 우르바에크 씨!
위층에서는 당구공 소리가 들렸다.
검은 표범은 여전히 식사 중이었다.
나는 아연실색한 채 내 단골 식당에 앉아 있었다.
나는 원시림만 보았고 버스 정거장은 보지 못했다.
누군가 내게 전화를 걸었고
(한 고객이 사업 건으로 나와 통화를 하고 싶어 했다.)
나는 갑자기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다시 돌아왔을 때, 나는 잠에서 깨어 있었다.
세입자의 멜랑콜리 / 에리히 캐스트너
원하는 대로 잠을 잘 수 있는 사람은 많다.
누구나 당연히 그렇게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하늘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벌을 내려
세입자로 만든다.
하늘은 이들을 찡그린 주인아주머니에게 보낸다.
여인숙 또 때로는 하숙집으로,
볼품없는 그림들은 액자에서 튀어나오려 하고
가구들은 묵묵히 서 있다.
수건조차도 깨끗하게 있고 싶어 한다.
기침 세 번이면 벌금으로 1마르크를 내야 한다.
낡은 성냥갑 같은 방을 묘사하기에는
아무리 심한 말도 지나치지 않다.
피아노, 술잔, 의자는
자신만만하게 언제나 먼지투성이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세입자에게 허용되지 않는다.
그들은 인형처럼 고개만 끄덕인다.
입이 서서히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세입자는 가족이라는 제국의
점령군 부대이다.
허용되는 모든 것이 금지되어 있다.
섹스를 좋아하는 자는 숲으로 가야 한다.
아니면 자신의 남성을
묶어 버리는 편이 좋다. 그것도 당장.
전 세계의 세입자들은
자신의 방에서 낯설어 하며 말 없이 지낸다.
결혼만이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다.
(하지만 결혼이야말로 훨씬 더 나쁜 상황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