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평등의 역사와 당면 과제]
인류가 수렵생활에서 농경사회를 거쳐 산업사회를 거치는 초기까지는 남성중심적 사회를 유지해 왔었다.
중국어의 남(男)은 밭(田)에서 힘(力)을 쓰는 상징이고, 여(女)는 젖을 주는 형상을 표현한 것처럼 여자는
경제 책임을 지지 않았다. 경제적인 책임은 전적으로 남자의 몫이였다.
여자는 남자가 벌어오는 먹거리를 적절히 보관하여 알뜰히 관리하고, 자식을 낳아서 잘 키우면 여자의 역
할은 다 하는 것이다. 1800년 대 초까지만도 귀족이나 부유한 집의 여성들도 읽기, 쓰기, 식료품을 사고
거스름 돈을 계산할 수 있는 간단힌 셈하기 정도의 교육만 허용되었다.
여성은 "우아함과 정숙, 검소함과 사랑스러움"이 있어야 매력이고 순결과 수동적 태도가 여성스러움을 더
해준다고 주장했던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은 먹거리를 획득하는 경제 수단이 바뀌면서 점차 변해갔다.
1429년 10월 이탈리아의 탐험가 콜럼버스가 스페인 정부의 지원으로 산타마리아호 등 3척의 배를 타고
항해한 끝에 미대륙을 발견하면서 신대륙으로의 진출이 본격화 된다. 이 후부터 유럽인이 신대륙 미국을
개척하면서 여성들의 과거 전통적인 이미지가 변화하는 계기를 맞는다.
아직은 아름다운 여성미를 뽐내기 위해서 거추장 스럽지만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채로 거친 남성들과 함
께 역마차를 타고 황야를 달리며, 말을 타고 인디언들에게 총을 쏘고, 청바지를 입고 유전을 개발했으며, 거
친 황무지 땅을 밭으로 개발하고, 산업 현장에서 생산성 향상을 위한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1908년 3월 8일 15,000 명의 여성 섬유 노동자들이 뉴욕의 "러트거스(Rutgers)" 광장에 모여서 10
시간의 노동제와 작업환경 개선, 참정권 등을 요구하며 최초의 여권 신장을 위한 시위를 한다. 이후 3월 8
일은 세계 여성의 날로 지정된다.
그리고 미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1886년에 세운 "자유의 여신상"이 30년이 지난 1920년에 드디어 여성
참정권 운동이 결실을 맺게 된다. 이러한 흐름은 1960년 대에 들어 여권운동(페미니즘)의 절정기를 이루게
되고, 이 후 여성은 사회 각 분야에서 동등한 지위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1963년에는 케네디 대통령의
남녀 동등지불법(Equal Pay Act)이 선포되고, 1971년에는 소수자 우대정책 (Affirmative Act)을 제정하여 여
성도 이 정책의 혜택을 받게 된다. 이 정책은 흑인, 소수 민족, 여성이 취업이나 대학을 입학할 때 일정한 혜
택을 부여 받는 정책이다.
산업에서도 흑인, 남미인, 동양인 등 소수민족도 대거 취업할 수 있게 되었고, 실력으로 불가능한 유명대학
의 교수 자리에도 앉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정책 덕택으로 영어 한마디도 못하는 한국인들도 소수민족
이라는 이유로 유명대학에 대거 입학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도 했다. 한 때는 이러한 정책으로 다수 집단인
백인이 역차별을 받는다는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런 결과로 1970년대 중반에는 가정을 가진 기혼 여성들의 절반이 직업을 갖게 되었으며, 학사 학위를 소
지한 여성의 90%가 취업 자리를 갖게 되었다. 이 후로 많은 여성들은 결혼할 때 남성의 성을 따르는 것을
거부했으며, 여성들의 결혼신분을 표시하는 부적절한 미시스(Ms)나 미스(Miss) 대신에 미즈(Ms)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남성을 상징하는 용어인 체어맨(chairman) 대신 체어퍼슨(chairperson)이라는 중성적인
단어를 쓰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이 처럼 여권신장이 크게 발전하고 있었지만, 유럽은 제1차 산업혁명을 거치고도 아직도 전통
보수적인 남성관이 우세했다.18~19세기의 1차 산업혁명을 통해 여자도 산업현장의 역군으로 참여할 수 있
게 되었지만 산업사회가 보는 여자의 시선은 여전히 냉랭하기만 했다. 여전히 여성은 한 송이 예쁜 꽃에 불
과했기 때문에 집과 회사를 예쁘게 꾸미는 장식품이란 개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전통적
인 여성관은 미국의 여성평등 운동이 빠르게 유럽으로 전파되면서 유럽도 여성운동이 급격히 발전하게 된다.
우리의 경우 고대 삼국시대에는 모성중심 경향이 강했던 시대이기 때문에 보통은 남자가 여자 집으로 장가
를 갔다. 농경시대였기 때문에 여자 쪽에는 귀한 노동력을 무료로 확보하는 셈이 된다. 재산도 딸들이 중심
이 되어 상속을 받았고, 자식을 낳아도 여자 쪽인 외갓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는 것이 관례였다. 당시 모성
경향이 강한 노동중심의 경제 특징이다.
처가살이가 무척 힘들어 쌀도 아니고 보리도 아닌 거치른 "겉 보리 서말이면 처가살이를 안한다", 처가집 말
뚝 보고도 절을 한다"라는 속담도 생겼다. 신라에서는 여왕도 3명이나 즉위한 것으로 보아 여성의 평등을 짐
작할 수 있다. 한국학의 대가로 위안부에 관해서 비양심적인 논문을 발표한 미국 하버드 대학교 로스쿨대학
의 램지어(John Mark Ramseyer) 교수를 비판하고 있는 미국 브리검 영(Brigham Young) 대학의 동양학과 피
터슨(Mark Peterson,1946) 명예교수 주장에 따르면 한국은 삼국시대 이 후부터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까지는
남녀가 차별 없는 균분상속을 받았고, 아들 딸 구분 없이 태어난 순서로 족보에 기록을 했었다.
부계 못지 않게 모계 혈통도 매우 중요시 했다는 증거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이전까지는 성(性)을 사용했
다는 기록도 없으니 혈통 문제에서도 여성성이 무시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관습은 지금으로부터
불과 300여년 전까지 이행되었다.
그러나 이른바 "주자가례(朱子家禮)"로 대표되는 성리학의 질서가 일반화 되면서 남녀를 구분하려는 강력한
규범들이 자리 잡게 되었다. 이는 남녀 불평등을 불러 일으키는 사상적 기반이 됐다. 교조적으로 변해 버린
이러한 유교적 관습으로 지금까지도 여성들은 뒤에서 음식만 준비할 뿐이고 제사 때에는 아들과 친손들의
제례의식을 그냥 물끄러미 바라만 봐야 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이제는 여자가 남자 집으로 시집을 오게 되
었고, 여자는 가정을 돌보는 일 외에 특별한 노동력이 필요없게 되었다. 남자가 장가 잘 갔다는 말은 살림 잘
하면서 아이도 잘 키우는 여자가 시집 왔다는 뜻이고, 시집 잘 갔다는 뜻은 신랑의 배움이 많아서 사회적 지
위가 높거나 부잣집으로 시집 왔다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이런 시대를 살면서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는 속설이 생겨나게 되었다. 뒤웅박은 박의 꼭지 근처만 도
려내고 속을 파낸 바가지로, 꼭지 부근에 끈을 달아 벽에 걸어두고 그 속에 씨앗이나 일용품을 담아 두는 그
릇으로 사용했다.부잣집에서는 주로 쌀과 같은 곡식을 담고, 가난한 집에서는 여물이나 잡곡 등을 담아 끈을
매달아 벽에 걸어 두었다 한다. 이처럼 "뒤웅박" 속에 무엇을 담아 두느냐에 따라, 그리고 뒤웅박 끈을 어디
에 매다느냐에 따라서 뒤웅박의 운명이 결정된다. 여자가 부잣집에 시집을 가느냐 가난한 집으로 시집 가느
냐에 따라서 팔자가 결정되기 때문에 여자 팔자는 남자에게 달려 있다는 뜻을 비유해서 하는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 문제에 눈을 뜨기 시작한 최초의 운동은 1899년 4월에 50여 명의 여우회(女友會)가 주
축이 되어 덕수궁 앞에서 1주일 동안 축첩반대 연좌시위를 주도한 일이다. 긴 장대에 "한 지아비가 두 아내
를 두는 것은 윤리를 거슬리는 일이며 덕과 의를 잃는 행위"라는 구호를 내걸고 시위를 벌려서 결국 고종의
윤허까지 받아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여성들의 권리를 처음 주장한 것은 1980년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
다. 이화여자대학에서 한국 최초로 여성학 강좌를 개설한 해인 1980년을 한국 페미니즘이 출발한 날로 보기
때문이다.
이후로 우리 나라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게 된 통계자료를 보면 지금이 역대 최고 수준에 이른다고 한다.
2019년 6월 기준으로 전체 취업자 수 2,750만 명 중 1,120만 명이 여성 취업자로 전체 취업자 중 45.1%를 차
지하고 있다. 그러나 고용의 질을 고려하면 여성의 취업 현황은 매우 열악하다. 비정규직인 안정성이 매우 떨
어지는 일자리에 여성이 집중되어 있어서 전체 여성취업자 중에 30% 정도가 비정규직에서 근무한다. 경력단
절과 유리천장이라는 장벽까지 거론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 진다.
아직 우리의 가족법이나 상속법 등에서 출생 순위나 남녀에 대한 성 차별은 인정하지 않지만 실질적인 사회
적 통념은 아직 장남 중심으로 재산이 상속되고 출가한 딸들에게는 상속 지분이 행해지지 않고 있다.
그 대신에 남자들은 결혼 비용과 주택 등 사회 생활에 필요한 비용을 모두 책임져야 한다. 이번에 MZ세대라
고 부르는 20대 남자들이 정부 정책에 대한 지지를 철회해서 충격이라고 한다. 힘들게 학업을 마치고 병역의
의무도 끝내야 하지만 취업도 하고 결혼도 해야 한다.
그러나 정규직의 취업은 하늘의 별 따기이고, 내집을 마련해야 하지만 현실은 꿈만 같아 평생 저축해도 희망
이 없다. 서울의 아파트 평균 가격이 11억 원이라 한다. 그러니 이들은 결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수 없다.
그래서 미혼(未婚)과 비혼(非婚)에 대해서 매우 긍정적이다. 살아가는 최고의 삶은 지금 현재를 마음껏 즐기
는 것이다. 이들은 분명히 동년배 여성에 비해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는 것 같다. 가족을 부양해야 할 경제
력과 주택, 자녀교육비 까지 모두 남자 스스로 준비해야 할 몫이기 때문에 어깨가 늘어진 것이다.
여자들은 백마를 탄 남자를 찾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은 무겁게 짐을 나르고 있는 망아지로 전락해 버린 자화
상을 보며 현실을 슬퍼하는 듯하다. 주택 구입과 자녀 교육비 문제는 가장 수입이 왕성한 40대에게서도 심각
하다.
하나은행 100년 행복연구센터가 서울 및 4대 광역시를 대상으로 조사한 통계 자료(2021년)에 의하면 이들 중
에 44%는 아직도 내집 마련을 꿈꾸는 무주택자들이다. 평균 소득 468만 원(세후)이지만 이 중에 107만 원을
자녀 사교육비로 지출하며 61%가 이를 부담스럽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런 청년들을 위한 단기 정책과 국가 미래를 위한 장기적 계획을 위해서 해결해야 할 사회
적 문제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마련하고 내집을 보다 안심하고 쉽게 마련할 수 있는 부동산 정책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래야 미래를 위한 안정적인 출산 정책도 유도할 수 있다고 본다. 남녀 평등의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
결할 수 있는 정책은 다음과 같은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국가의 미래가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
러한 문제는 장기적인 계획 검토와 함께 과감한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첫째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젊은 세대를 위한 안정적인 일자리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러한 직업 기회
는 남녀 모두에게 제공되어야 한다.가정 경제를 위해 남녀가 함께 맞벌이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폐기 되어왔던 여성의 능력과 재능도 활용되어야 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맞벌이 가구현황"
자료를 보면 전체 취업자 중 절반에 가까운 46.3%인 567만 5천가구가 맞벌이 부부로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
다. 그러나 그들의 절대수인 86%가 농어업과 영업직으로 생계유지와 내조형이며, 14%만이 자아실현과 여가
활용을 위해 일을 한다.
둘째는 젊은이들이 살아 갈 집을 안정적으로 구입할 수 있는 부동산 정책이 실현되어야 한다. 지금은 내 집 마
련을 위한 계획조차 세울 수 없을만큼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다. 이들을 위한 대폭적인 금융정책을 마련하는 등
특단의 조치가 시급한 때다. 셋째는 육아를 위한 탁아 시설의 질적 양적 확충이다. 맞벌이 취업과 관련된 활동
을 위해서 누구나 쉽게 안정적으로 육아를 할 수 있는 탁아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넷째는 사회적 통념의 평등의식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남녀가 공동으로 결혼, 주택문제, 사회활동 준비 등을
마련하는 사회적 통념이 확립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경제적 문제를 남자가 책임지는 사회통념은 이제 정당하지
않다. 남녀의 균등한 역할이 실행되어야 한다.
다섯째로 자녀들의 교육 내용을 확장하는 일이다. 지나친 지식중심 학과 교육에서 노동의 가치, 감사의 마음도
함께 느끼게 하는 실용적인 교육으로 확장해야 한다. 맞벌이 가정을 위해서도 가정에서 부모와 함께 가정을 관
리도 하면서 요리와 청소도 하는 협동정신을 배양해야 한다.
여섯째는 일-가정관의 가치관에 대한 평등의식이 확립되어야 한다. 남자는 경제를, 여자는 가정관리를 책임진
다는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사회적 통념을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 남녀의 책임 경계선을 허물고 필요에 따라서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함께 협동하는 가치관이 필요하다. 남녀의 일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고 "너와 나, 우리"가 함
께 살아가는 평등의식이 확립되어야 한다.
서양에서 여성의 평등할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 1908년이고, 우리가 공식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한 것이
1980년이라면 서양권은 이제 겨우 110년, 우리는 이제 겨우 40년 정도로 짧은 역사다. 남녀의 평등권 문제는
논의 출발점에 있을 뿐이다. 인류가 수백만 년의 진화를 거치며 남성중심의 성역할로 고착되었다.
그러나 정보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서서히 여성의 적성과 잠재능력이 필요하게 된다. 지식중심의 AI에서 감성
중심의 AI시대가 오기 때문에 남성적인 힘보다는 여성적인 특유의 섬세함과 감성이 중시 되는 시대로 변해 갈
것이다. 이렇게 여성중심의 세상으로 뒤바뀌게 되면 조연으로 추락하는 남성들의 권리도 보호해야 한다는 세
상으로 변하게 될지, 또는 미래학자들의 예측처럼 아예 남성 무용론까지 제기될 것인지 궁금해 진다.
수 백만 년을 거치며 형성된 성고정 개념, 즉 남자는 먹거리를 책임지고 여자는 가정을 관리하는 고정 개념에서
아이를 낳는 역할을 제외하고 모든 것에서 평등하려는 운동이 시작되고 있다. 생물학적인 본능적 프로그램에 인
간이 도전장을 냈다. 어떻게 변화하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출처 : 전남대 이종목 명예교수
첫댓글 장마철도 아닌데 비가 자주 내리는 날씨지만 틈새 걷기에는 더욱 싱거런 초록이 함께 합니다. 전철 한 정거장쯤 먼저내려 탄천변을 걷는 기분이 상쾌 합니다. 많이 걸으시며 즐거운 하루 맞이 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