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홍의 나쁜 생각729 - 가훈
마음 한 자락 누일 곳이 없을 때, 마음 여기저기 구멍 숭숭 뚫리고 여기저기 왕왕거리는 소리 들락거릴 때 난 에릭*을 듣는다. 쉰 듯한 목소리, 진지하고 때론 느리지만 격렬한 그의 기타 애드립을 따라가다 보면 만사를 잊어버리곤 하기 때문이다. 물론 순간이지만, 난 그 시간을 사랑한다. 도통 사람들이 싫어질 때 난 라틴 보사노바 재즈를 듣는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과 스탄케츠, 이들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음악가들이다. 나의 목소리로는 흉내 내기도 힘든 소리 들을 좋아하는 것이다. 내겐 결코 없는 것들. 그걸 난 그리워했던 것일까.
난 시를 쓰지만, 훌륭한 시인은 못되고, 음악을 좋아하지만 음악가는 못 된다. 하지만 시와 음악이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필자는 귀가 예민하다. 이는 음악 듣는 귀뿐 아니라 사람들의 말과 소리에도 아주 예민하다. 그러니까 들리는 것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들이 함부로 말하는 것들에 깊이 상처를 받는다는 뜻도 된다. 그래서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과 습관성 떠벌이들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저항감을 느낀다. 물론 필자도 말실수도 하고 떠벌릴 때도 있지만. 그런 날은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으로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들리는 소리는 눈으로 보는 이미지 보다 필자의 경우에는 더 폭넓은 상상력을 자극해서 어떤 말이나 소리가 그림자처럼 거느린 정서들이 동시에 느껴지곤 한다. 그래서 그런지 필자는 음악을 사랑한다. 솔직하게 말하면 필자의 이런 성향이 필자도 싫다. 왜냐하면, 살아가는 데 별 도움이 안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관관계가 그다지 편하지 않다는 말이다. 요즘은 귀를 막는 수련을 하는 곳이 있거나 소리를 골라 들을 수 있는 효과적인 수행법이 있다면 열심히 수행하고 싶기도 하다. 세상은 어차피 소음 없이는 굴러가지 못하기 때문에 필자가 좀 더 편하게 살려면 이들을 차단하는 테크닉을 지금부터라도 터득해야 할 듯하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 아직 가훈이 없다. 그래서 난 가훈을 "말을 함부로 하지 말자" 혹은 "소리는 골라 듣자"라고 정할까 말까 고민 중이다.
*Eric Clapton(1945~) 영국 가수, 기타리스트, 작곡가
냉이꽃 / 송찬호
박카스 빈 병은 냉이꽃을 사랑하였다
살다가 버려진 슬리퍼 한 짝도 냉이꽃을 사랑하였다
금연으로 버림받은 담배 파이프도 그 낭만적 사랑을 냉이꽃 앞에 고백하였다
회색 늑대는 냉이꽃이 좋아 개종을 하였다 그래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긴 울음을 남기고 삼나무 숲으로 되돌아갔다
나는 냉이꽃이 내게 사 오라고 한 빗과 손거울을 아직 품에 간직하고 있다
자연에서 떠나온 날짜를 세어본다
나는 아직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울부짖는 서정 / 송찬호
한밤중 그들이 들이닥쳐
울부짖는 서정을 끌고
밤안개 술렁이는
벌판으로 갔다
그들은 다짜고짜 그에게
시의 구덩이를 파라고 했다
멀리서 야생의 개들이
퉁구스어로 사납게
짖어대는 국경의 밤이었다
지금까지 어떻게 용케 살아남았는지
이제 너의 안으로 은밀히
지나가는 사물들
세계들을 고백해봐
점점 증가하는 밀입국자들
처형을 기다리는
발화하는
수런거리는
깊은 구덩이가 되는!
그래서 이렇게 파묻으려는 거지
벽 너머에서도
어두운 물 속에서도
감자가루 속에서도
이쪽으로 넘어와
끊임없이 초록의 말로 중얼거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