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오게된 용하초등학교
다음 해인 1971년 봄에 소생은 또다시 용하교에 돌아와 근무케 되었더랬습니다.
그러니까 나로선 1964년, 1968년에 이어 세 번째로 근무케 된 용하초교였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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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햇 동안은 어려운 경리/회계 업무를 맡게 되어 덕분에 4학년을 담임할 수 있었기에 얼마간 편히 지낼 수 있섰습니다.
이네들은 이태 후 6학년 때 재차 담임하여 제31회로 졸업시킨 이들이었습니다.
그 전 한 햇 동안 유배지나 다름없섰던 서호(西湖)에서 온갖 잡다한 일로 편할 날없이 마냥 바삐 지내오느라 그 고운 산하 다시 보기 어려운 절경을 제대로 한가로이 바라다 볼 겨를도 없이 한 해 내내 일에만 묻혀 지내왔슬 뿐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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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러다보니 어느새 서호마을과 그 마을사람들과도 적지 아니 정들었고,
또한 지난 해에 넉넉히 비축해 두었던 식량이나 신탄 등이 아직도 쓰여지지 않은 채 상당량 그대로 남아있섰던데다가,
기왕 교직을 사임하고 떠나가리라 작정까지 해둔 마당이니 몸과 마음 편하게 한 학기만 더 머물어 보리라는 생각이었더랬습니다.
3월 한 달은 물길이 여전히 위험했고,
4월이 되고나서야 비로소 해동되어 뱃길이 뚤리게 되었으며, 5월은 되어야 장배가 뜨게 되고, 그래도 아직 갈수기인 동안은 뱃길이 공수리 한참 아래에도 못 미치는지라, 하선해서도 양구읍까지 시오리는 더 되게 먼지 펄펄 이는 고대리 앞 대동리 벌을 걸어 건너질러가야만 되었었기에, 그래서 이 때까지는 차라리 뱃길보다는 월명리 고갯길을 걸어서 다니는 편이 훨씬 덜 불편하기도 했섰거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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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엇보다도 새 봄이면 파로호 주변 그 어느 곳 할 것없이 산과 골들이 온통 울긋불긋 연분홍 산꽃들로 물들어 가슴이 시리다 못해 몹시 저리어오도록 곱디고운 별천지로 바뀌었섰더랬는데 . . .
그런 이곳 산하를 좀더 느긋한 마음으로 다시 한 번 둘러보고 싶기도 했섰기에 더도 말고 딱 한 학기만 서호에 더 머물어 있으리라, 그리 여유를 갖고 차분히 준비를 해서는 그 다음 해에는 못다한 학업을 꼭 이어보리라, 파로호 물이 한 껏 차올라 뱃길이 양구읍 하리 턱 밑까지 이어져서 선편왕래가 아주 편할 때에 사임하여 가벼운 마음으로 이곳을 떠나가리라, 그리 마음먹고 있던 차에 뜻밖에도 안긍순교장선생님의 각별(?)하신 배려에 힘입어 그 해 새학기에 그만 또다시 용하교로 전근이 되었던 것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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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호분교와 같은 오지에서는 선생님이 부임해와서는 그저 한 해만 꼬박 채워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기 그지 없슬 터에,
일 년 동안을 내내 성심으로 학생들을 돌보는 한 편 밤낮으로 쉬임없이 학교 안팍의 일을 찾아내고 만들어내기까지 하면서 임했던 것이 그곳 주민들께 감명을 주었던가, 내가 그곳을 떠나 올 젠 많은 마을 분들이 배웅을 나와서는 내 이임을 무척이나 서운해했더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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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려나 내 뜻과는 상관없이 1971년 봄 용하초교에 다시 오게 되었고, 그럼으로써 인연이 그리 연분지어져 있섰던가 지금의 안사람(白貞姬)을 만나서는 귀한 부부의 연(緣)마저 맺을 수 있게 되었더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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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줄 좌로부터 차레로: 박재학, 이은수, 조갑묵, 백정희, 황해영,
가운뎃 줄: 이은숙, 김남일, 윤부영, 조현묵,
앞줄: 유영규(교무), 안긍순(교장), 이상배(교감), 신은희선생님이십니다.
사진은 1971학년도 학년초에 용하초교에 몸담고 계셨던 선생님들의 면면으로 대체로 젊으신 분들이십니다. 이 해에는 어인 일로 교직원사진을 학년초(3월)에도 마련해 놓았섰더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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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음 크게 장려됐었던 코스모스 꽃길조성 작업(용하릿길)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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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교내외 어딜 가나 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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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코스모스 꽃들로 가득 . . .
이 해 학기가 바뀌는 여름방학의 끝 무렵에 안긍순교장선생님께서는 원당초등학교로 전임해가셨고, 본교에는 그 후임으로 최영진교장선생님께서 새로 부임해 오셨더랬습니다.
2학기에 들어서자 교육환경 전반에 걸쳐 과감한 쇄신에의 의욕에 넘치셨던 신임 교장선생님의 노력에 힘입어 본교 안팍에는 많은 변화와 변혁이 일어나게 되었더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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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학부형님들의 노력을 동원해서는 좁았던 교문 앞길을 넓히고 굽었던 길을 곧게 펴는 자체공사(일컬어 ‘용하리고속도로'
건설공사)가 추진되어 학교의 면모가 크게 일신되기도 했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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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교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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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가 되기 전 한길 쪽에서 올려다 본 교문길이었습니다.
교문가로 키 큰 미류나무들과 좌측 신교사 쪽으로 선사시대 유물(巨石)들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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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교사의 서편 측면에서 바라다 본 구 본관교사 전면과 화단의 전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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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에 구 본관교사 뒷편으로 사택 한 동(棟)과 신관교사 다섯교실의 신축공사가 이뤄졌고,
이어서 동(東)편의 별관교사가 헐리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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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교사 뒷 편 경계로 심어놓은 관목들이었습니다.
언덕 아래로 용하리 마을이 내려다 보입니다.
이곳 가까이로 관사와 신교사가 들어섰더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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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린 별관교사 동쪽 산 기슭 아래의 실습지였습니다.
여름방학 내내 방치되어 있다보니 잡초가 무성하게 우거져 있군요.
이해 봄소풍 때와 1학기 중의 사진 몇을 더 올려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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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이발관(문기호장로댁) 딸(선우)과 작은아들(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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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해(1970년)에 신출발령을 받아온 신은희선생님,
이 분은 '부흥하숙'집서 한길 건너로 학교에 이르던 뒷길 초입새에 자리해 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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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면교회' 반주자여인댁에서 촌스럽던 이 아줌씨와 더불어 같이 자취를 했섰더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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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이발관 앞 길 건너에 살던 허만오와 그의 큰 누나 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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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백선생은 다음 해(1971년)에 이 허씨댁에 세들어 자취를 했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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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은누나 영순(그 전전 해에 내가 6학년을 담임하여 졸업시킨 . . .)과 그 이웃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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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남면교회 유목사님댁 딸 광옥 등은 2학년 때에 백정희선생이, 4학년 때엔 내가 담임했섰더랬는데, 전술한 바와 같이 6학년 때에도 재차 담임을 했섰던 인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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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로부터 조갑묵, 백정희, 안영선, 조현묵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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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숙, 박영자, 신은희, 백정희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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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처음 타보는 이 여선생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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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회계업무(경리와 육성회)일로 함께 업무볼 일이 많아 업무 처리 일로 서로 가까워졌섰더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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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에 들어서 이 이와의 약혼 이야기가 나오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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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모든 이들이 한결같이 전혀 뜻밖의 일로 반기면서 축하를 아끼지 않았섰더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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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발한 꽃밭 속에서 한껏 함박 웃음을 짓고 있는 이 여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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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웃음기가 가시어진 이 여인(安英善)의 표정이 얼마간은 대조되어 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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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려나 이해 여름방학 때 내 약혼식이 이루어졌섰고,
이에 행차하셨던 안(安肯淳)교장선생님, 내 외숙부님(청리), 그리고 내 중백부님(구암리)의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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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오금동(처가)서 조촐히 치뤄진 약혼식엔 내 사범학교 동기동창 친구(張洪境)가 왕림하여 축하를 겸해 약혼식의 사회를 보아주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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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함께하신 내 백모님과 어머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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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교장선생님 옆자리로 동석하신 내 장모님과 빙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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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안의 장손이신 6촌형님(구암리)과 나, 그리고 이 날의 주인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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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땡 잡은 기분'이 저럴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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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로는 철거민촌이었던 오금동 집 저편은 훗날 올림픽아파트가 들어선 자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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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뒷 편은 올림픽공원 자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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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던 허허벌판이 지금은 강남3구(江南三區)의 중심지가 되었으니 산천의구란 말이 무색하기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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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가을 소풍 자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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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짠한 삶이지만 아름다운 사랑을 꽃피운 용하초교 교정 홧팅
양구 남면 용하리 군생활하던 부대가 이곳 가까운 곳이라 그 때 자주 오가던 저하고도 인연 깊은 곳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