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연분이었는지. 유치한 치기로 방랑의 길을 다니던 시절이었다.
오색에서 대청봉을 넘어 용대리로 내려간 적이 있었다.
영시암 조금 지난 곳에서 스님 하나와 동행을 하게 되었다.
동행이라고는 하지만 처음 눈 마주쳤을 때 합장한 것 말고는 둘 다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의 뒤를 발맘발맘 말없이 걷는 게 다였다.
신기하게도 묵언이었지만 많은 대화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석양이 가까운 무렵이라 곧 어둠이 내리면 혼자 밤길 가는 게 걱정이더니 스님이 앞에서 걸어주니 천군만마 얻은 듯 든든했었다.
백담산장 쯤 왔을 땐 어둑신하게 땅거미가 내렸다.
“혹 사시다가 좀 버겁다 싶으면 관세음보살을 부르세요”
말마디 없던 우리 둘 사이에 느닷없이 일방적으로 건너온 말이었다.
생뚱스러웠다. 난데없는 관세음보살이라니! 난 불교도가 아니었다.
그리고는 방향을 틀어 홀연히 백담사 쪽으로 힁허케 내려갔다.
걷는 동안 내 육체에서 생활의 팍팍함이라도 풍겼던 것일까. 단순한 인사치레였을지도 모르지만 그 생뚱스러운 한마디가 오랜 날들이 지나도록 귀에 남았다.
착한 사람을 우리는 천사라고 한다.
기독교에는 천사가 있고 불교에는 보살이 있다. 프로야구 한화이글스 팬들은 자신들을 보살이라 자칭한다. 늘 지기만 하는 팀을 그래도 애정을 갖고 응원하는 자신들을 자조하는 의미다.
천사나 보살이나 지극히 착한 존재들이다.
불가에 여러 보살이 있고 그중에 우리에게 가장 친근하고 다정한 보살이 관세음보살이다. 이미 석가모니보다도 먼저 깨달은 부처였지만 부처가 되길 사양하고 보살로 남았다. 중생 가까운 곳에서 보살피겠다는 자비심에서다. 그래서 관세음보살은 자비의 상징이다. 기독교의 천사 라파엘이라 하면 적절할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 대중들에게 가장 대중적인 보살이 그래서 관세음보살이다. 불가에서는 일반 중생들에게도 보살이라고 높여 부르는 게 상식처럼 되어 있다. 남자인 나는 처사님으로 불리곤 한다.
한국의 사찰에 관음보살이 없는 곳이 거의 없다. 아예 부처보다 관음보살을 모시는 성지들도 부지기수다.
양양의 휴휴암도 대표적인 관음성지 중 하나다.
휴휴암 休休庵.
암자 이름이 그러하니 고단하고 버거울 때 쉬었다 가라는 것일까. 모든 짐 진 자들이 자비로운 관음보살을 알현하고 짐을 내려놓으면 좋겠지만.
막상 가 보면 암자답지 않게 호화스러운 풍물에 약간은 거부감이 일기도 한다.
해변에 위치한 암자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휴휴암도 사람들로 벅적이는 일종의 관광지다. 조용히 휴휴하기엔 그닥 적당하지 않다.
관음성지답게 대웅전엔 천수보살이 주불로 모셔져 있고, 바닷가 언덕에 지혜관세음보살이 서 있다. 관광객들의 대부분을 오게 만드는 거대한 관음보살 되시겠다.
크기가 지나치게 커서 다정다감한 관음보살이 아니고 우러러보는 높으신 분 같게 느껴져 영 친근하지가 않다. 전국의 유명한 해수관음보살들이 거의 다 이렇다. 하늘을 뚫을 듯 거대한 보살상이다. 바벨탑을 쌓아 하늘로 오르려던 인간들이 여호와의 노여움을 사 천추의 벌을 받은 창세기 이야기는 단순히 다른 쪽 종교 이야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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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삶이 버거울 땐 관세음보살을 부르라던 지나간 어느 가을날의 그 말은 먼지더께처럼 내 마음 한켠에 쌓여 있다가 무시로 생각나는 차에 이제 또 그 보살 앞에 서니 어린 중생은 머리를 숙이고 삼배합장한다. 나무아미 관세음보살.
방생?
생명을 잡아 가둬 놓고는 돈을 받고 판다. 어린 중생들은 물에 놓아주고는 그걸 원력으로 알고 자신의 불심을 흡족해한다.
때가 되면 휴휴암 앞 너럭바위는 목불인견의 난장판이 된다. 곳곳에 땡중들이 앉아 목탁을 치고 경쇠나 요령을 흔들어 가며 염불을 하는데 중생은 그 앞에서 내내 머리 조아리며 입으로는 무언가를 중얼거린다. 그 모양이 꼭 비난수 주워셍기는 박수무당과 다르지 않다.
향불의 매캐한 냄새도 싫고 접시 위에 놓인 떡과 과일들도 역겹게 느껴진다. 불교식 의식이니 차마 고기까지는 올려 놓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인지.
방생과 더불어 혐오스런 그들의 의식이다. 만약 부처가 있어 그 꼴들을 보면 무간지옥으로 밀어 넣지 않을까.
휴휴암에서 나와 지근거리에 있는 하조대로 오른다.
경개 좋고 바람 시원한 천하명승이다.바다와 바위가 만든 자연의 예술품이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시퍼런 물이 출렁거리고 바위에 부딪혀 하얗게 비말로 날아오른다.
“무서워라! 떨어질 거 같애”
아이와 함께 구경하던 젊은 엄마가 엄살로 언구럭을 떨자 아이가 말한다.
“괜찮아 엄마. 내가 손 꼭 잡고 있으니까 안 떨어져”
순간 나는 일곱 살쯤 돼 보이는 꼬마한테 심쿵했다.
아, 아들이란 존재는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구나! 저 엄마는 얼마나 듬직하고 사랑스러울까.
나는 이제껏 결혼과 가족 또 자식에 대해 갈급한 적이 없다. 때로 가지 않은 길이 궁금하긴 해도 동경은 하지 않았다.
가끔 공원길이나 산행길 등에서 아빠와 어린 아들이 손잡고 걷는 풍경이 보기 좋아 그럴 때 내게도 조만한 아들녀석이 있으면 행복하긴 하겠다고 생각한 적은 있다. 잠시뿐이지만.
하조대에서 나를 심쿵하게 만든 꼬마로 인해 좀은 긴 상념에 빠졌다.
그리도 미쁘고 예쁜 아들을 가진 그 젊은 엄마가 그때만은 진정 부러웠다. 참 잘 키웠다.
풍경도 좋지만 앞으로는 사람을 만나는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
휴휴암에서 휴휴 쉬는 한산함은 느끼지 못했어도 나를 심쿵하게 만든 어린 관음보살을 하조대 난간에서 만났으니 이 또한 만행(?)의 즐거움이요 나름의 의미가 된다..
하조대해수욕장
브람스 교향곡 3번
첫댓글 설리님 항상 길위에서 변함없이 지내시네요
설리님의 음악과 여행이야기는 저의 식어가는 방랑기를 깨웁니다
배낭 둘러매고 산천을 해매던때가 그립습니다 행복한 음악과 이야기 감사합니다
길에서 뵙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읍니다. 모아서
독립출판 하시죠. 저도 한권 주문하렵니다
독자가 돼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불교이야기에서 기독교까지 두루두루 다 섭렵하셨네요. 박학하신데다 사진, 글 솜씨까지, 못하시는게 뭔가요?
글을 읽으며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서 항상 정겹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