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온(五蘊) - 무아(無我)
5온이론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 존재란 5개의 요소로 이루어져 있고, 이 각 요소들은 모두 비실체(非實體) 적인 것이므로, 이와 같은 요소들로 이루어진 인간 존재 역시 비실체적이라는 것이다. 거기에는 고정 불변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것을 여러 경전에서는 비유를 들어 색色은 거품덩어리 같고, 수受는 거품 방울 같고, 상想은 신기루 같고, 행(行)은 바바나줄기 같고, 식識은 허깨비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거품덩어리, 거품방울, 신기루, 바바나 줄기, 허깨비들은 어느 것 하나 실체적인 것이 아니다. 이들 실체적이 아닌 요소들로 이루어진 존재가 실체적인 것일 수 없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무아無我라고 표현한다. 이 ‘무아無我’라는 말에서 ‘아’란 ‘고정불변 하는 실체적實體的인 아我’를 의미한다. 인간 존재에는 그와 같은 ‘아我’는 없다는 것이고, 역시 인간은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非我). 결국 인간은 “무아無我적 존재”인 것이다.
이 5온이론, 즉 무아無我anatman이론은 초기불교에서 후기불교까지 전 불교사상사를 통해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역시 불교를 다른 종교 및 사상과 구별 짓게 하는 가장 독특한 교리이기도 하다. 경전에서 붓다는 이 무아이론을 수없이 말하고 있다. 그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이 고苦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붓다에 의하면 고는 욕망 때문에 생기고 욕망은 ‘내가 존재한다는 생각’ 때문에 발생한다. 따라서 ‘내가 존재한다는 생각’은 고의 근본 원인이다. ‘내가 존재한다는 생각’이 제거되지 않는 한 고는 계속해서 발생하게 된다. “마치 뿌리가 다치지 않으면 나무는 설사 (윗부분이) 잘리더라도 원기 왕성하게 다시 싹이 돋아 나오는 것처럼” 고도 계속 발생하게 된다”고 법구경法句經에서는 비유로 설명하고 있다.
‘내가 존재한다는 생각’은 우리 존재 속에 소위 말하는 영혼과 같은 고정불변하고 실체적인 ‘내’atman가 있다고 믿는데서 생긴다. 따라서 그와 같은 존재가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이해할 때 그 믿음은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이 5온-무아(五蘊-無我) 교리는 인간 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을 하나하나 분석하면서 우리 존재가 ‘무아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나(아我)도 없고 나의 것(아소我所)도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이해할 때 우리들은 무엇에 집착할 것이며, 누구에게 분노를 품을 것이며, 무엇에 두려움을 느끼겠는가. 이것은 붓다와 띳사비구 사이에 있었던 문답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붓다는 띳사Tissa비구에게 “만일 색(色, 육체)에 대해서 탐냄을 떠나고 욕망을 떠나고 생각을 떠났는데도 그 색이 변하거나 달라지면 그때 너는 근심, 슬픔, 번민, 괴로움이 생기겠느냐” 라고 묻는다. 띳사는 “아닙니다”라고 대답한다. 수, 상, 행, 식등 다른 4온에 대해서도 같은 문답을 한다.
“내가 존재 한다”는 생각이 깨트려지면 우리는 우리 존재가 변해도, 그리고 외부세계가 변해도 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숲 속의 나무들을 베어서 가져가도 우리들이 근심하거나 슬퍼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나무들은 ‘아我도 아니고 아소我所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함경에서는 무아이론을 불에 비유하고 있다. 불이 모든 초목을 태워 사라지게 할 수 있는 것처럼 무아이론은 욕망과 고苦를 사라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붓다는 제자들에게 무아이론을 실천하라고 되풀이해서 말하고 있다. 경전에서는 때로 그것을 과격한 표현을 사용해서 나타내기도 한다. 붓다의 가장 큰 제자였던 샤리뿌뜨라는 야마까Yamaka비구에게 오온[인간존재]에 대해서 “그것은 病과 같고 종기와 같으며 가시와 같고 죽음과 같으며 무상하고 괴로우며 空이요 내(아我)가 아니며 내것(아소我所)이 아니라고 관찰한다. 그래서 거기에 집착하지도 않고 그것을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라고 가르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내가 존재 한다는 생각”을 보다 효과적으로 사라지게 할 수 있고 그 결과 욕망을 없앨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고苦를 제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무아이론에서 유의해야 할 점은 ‘아我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해서 상식적인 차원에서 말하는 ‘나’ 또는 ‘자기’와 같은 존재까지도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태어나서 성장하고 한 생을 살다가 죽는 ‘나’는 인정한다. 단지 이와 같은 존재를 영원한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일상적으로 말하는 ‘나’란 비실체적인 몇 가지 요소들이 모여서 일시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임시적인 존재’일 뿐이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가짜 나’(가아假我)라고 부른다. 이 ‘가짜 나’의 존재는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
|
첫댓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관 세 음 보 살 _()_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
관 세 음 보 살 _()_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 ()
관 세 음 보 살 _()_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
관 세 음 보 살 _()_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
관 세 음 보 살 _()_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
관 세 음 보 살 _()_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 세 음 보 살 _()_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 세 음 보 살 _()_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