片帆孤客晩夷猶(편범고객만이유)-조각배에 외로운 나그네 늦도록 머뭇대니
紅蓼花前水驛秋(홍료화전수역추)-여뀌꽃이 피어 있는 나루터의 가을
歲月方驚離別盡(세월방경리별진)-세월에 놀라다가 이별마저 다한 뒤
烟波仍駐古今愁(연파잉주고금수)-안개 물결 머무니 옛일과 지금의 근심이라
雲陰故國山川暮(운음고국산천모)-구름 낀 고향 땅엔 산천이 저무는데,
潮落空江網罟收(조락공강망고수)-물이 빠진 진 텅 빈 강서 그물을 거두구나
還有吳娃舊歌曲(환유오왜구가곡)-여기에 예쁜 아가씨 옛 노래가 들려오니,
棹聲遙散采菱舟(도성요산채릉주)-노 젓는 소리만이 채릉주(采菱舟)로 흩어진다!
이정(李靖)
일생의 막(幕)은 이렇게 내려온다 !
潮落空江(조락공강) !
위의 시(詩)는 중국 당(唐)나라 때의 명장(名將) 이정(李靖)이 송강역(松江驛)이라는
작은 부두(埠頭)의 물가에서 쓸쓸한 저물녘 감정을 시(詩) 한수로 표현한 것이다.
시(詩)를 감상하면서 상상하면 참으로 적막하고 쓸쓸한 광경이다.
조각배를 탄 나그네가 물가를 쉽게 떠나지 못하는 것은 강가에 핀 붉은 여뀌꽃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돌아보니 지나온 세월은 덧없고,
사랑하던 사람들은 다 내 곁을 떠났다.
아내도 친구들도 그리고 여러 인연(因緣)이 맺었던 사람들.
산과 강은 자옥한 구름 속에 가뭇없이 저물고,
썰물 진 빈 강에서 어부들은 말없이 낮에 쳐둔 그물을 거둔다.
허깨비(幻聽)에 홀렸는가 싶게 먼 데서 연기 꼬리 같은 노랫소리가 가냘프게
들리는 것만 같다.
사공은 나그네를 쓸쓸한 강가에 내려놓고 느릿느릿 노를 저어
저물어가는 강 저편으로 아련히 사라진다.
청(淸)나라 때 대 문장가인 김성탄(金聖嘆)이 위의 시(詩)중에서
5句와 6句의
“산천은 저무는 데, 그물을 거둔다(山川暮 網罟收)”를 읽고 아래의 평을 남겼다.
“하루가 끝난 뒤는 이 시구(詩句)와 같을 뿐이다.
한사람의 일생이 끝나는 것도 마치
하루해가 다하여 산천(山川)이 저무니까 어부가 강에서 거물을 거둔다”
는 것처럼
한 시대나 한 사람의 일생이 끝나는 것도 이와 같음에 지나지 않는다.
조선 정조(正祖) 때의 실학자(實學者) 이덕무(李德懋)는
김성탄(金聖嘆)의 시평(詩評)을 보고 자신이 쓴 시평집(詩評集) “청비록(淸脾錄)”에
또 평(評)을 쓰기를,
“내가 이 말을 듣고 망연자실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드넓은 흉금에 감탄했다.”
걷기 운동을 할 때에 “뒤로 걷기”를 하면 걸어온 길이 보인다.
앞으로 걷든 뒤로 걷든 눈에 보이는 거리와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다.
그 시간만큼 살아온 길은 없어지고 남은 시간이 가까워 진 것이다.
순간과 한 시간과 하루가 이렇게 간다.
한 인생이 이렇게 가고, 한 시대도 이렇게 물처럼 흘러가는 것이다.
눈앞의 일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며 사생결단(死生決斷)하는 일들이
부질없고 머쓱해진다.
교도소에서 100세를 기다리는 전직 권력이나
전직 권력을 감옥에 넣은 현 권력이나 흐르는 세월은 거역 못한다.
다 한 물결 속에 같이 떠내려간다.
모두 애들 장난 같은 짓들이다.
위의 시(詩)속에 들리는 노래는 환청(幻聽헛개비)이었을까?
나그네는 아주 먼 길을 돌아서 처음 떠났던 자리에 다시 섰다.
하지만 그럴까?
어둠이 곧 찾아들고 금세 새벽이 올 것이다.
또 사공은 부지런히 노를 저어 물가에 다시 배를 댈 것이고,
어부는 힘차게 새 그물을 칠 것이다.
어여쁜 아가씨는 간밤의 슬픈 가락을 잊고 새 단장에 분주하리라.
일상의 이런 반복 속에서 장강대하(長江大河)와 같이 하루가 지나가고,
일생이, 한 시대가 흘러왔다.
부동산이 올랐다 !
내로남불 이다 !
“내가 서울시장 부산시장”이 되어야 한다는 소음(騷音)속에
인생의 막은 서서히 내려온다.
다, 거역할 수 없는 곤곤(滾滾)한 세월의 흐름 속으로----------
농월